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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1일 일요일 오후 03시 10분 27초
제 목(Title): 조철수/ 환웅과 지하수신 엔키 


출처: 이머지 2

2. 桓雄과 地下水神 엔키 
조철수 
서강대 신학대학원 초빙교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성서학, 고대 셈어, 
앗시리아학, 이집트학 등을 공부하고 수메르어 문법으로 박사학위 취득. 
《사람이 없었다 신(神)도 없었다》 《수메르 신화 1》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 등의 저서가 있다.  
  
 


어느 민족에게나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신화는 있기 마련이다. 자기 민족의 
시원을 찾는 일은 창세신화나 건국신화 등에 나타난다.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공동체의 뿌리를 가다듬는 작업은 필수적이며 주체적이다.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화 가운데 씨족이나 부족 혹은 민족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신화는 
이처럼 그 민족 공동체의 존립에 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의 고대 건국신화는 삼국유사의 冒頭모두에 알려진 朝鮮의 개국이다. 고려 
말 민족의 주체성을 찾고 민족의 역사를 편찬했던 역사가들은 우리 민족의 
국가의 시작을 壇君王儉단군왕검으로 세웠다. (단군은 壇君 혹은 檀君으로도 
표기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 史話는 실상 古記에 기록된 글을 축약하여 
전한 것으로 이야기의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여러 부분이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 신화/사화의 시작 부분을 읽어본다. 

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이 있었는데 그 庶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貪求人世].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三危太伯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下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可以弘益人間], 이에 天符印 
3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려 三千 명을 이끌고 太白山 
꼭대기 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神市라 부르니 이 분이 
환웅천왕이다[是謂桓雄天王也].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게 하여[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在世理化]. 

다음으로 이어지는 단락은 곰과 호랑이 이야기이며 곰이 변신하여 웅녀가 되고 
그녀는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게 된다. 단군이 즉위한 지 50년 되는 해에 
平壤城에 도읍하고 나라를 朝鮮이라 불렀으며 단군은 후에 山神이 되었다는 
史話的 신화이다. 단군 신화를 주인공별로 크게 환웅, 웅녀, 단군의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山神이 된 단군 

단군 사화는 평양성에 도읍지를 정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칭한 단군 임금에 
관한 이야기이며 단군 신화는 단군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환웅과 웅녀는 
누구이며 단군이 山神이 될 정도로 그에게 神的인 요소가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왕, 즉 神이며 그의 어머니 또한 司祭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그의 
의지(뜻)에서 알 수 있다. 환웅은 하늘에서 그의 보조자들을 이끌고 땅에 
내려와서 인간을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직무인 곡식, 命,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한다. 그의 임무를 계승시키기 위해 환웅은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고 그는 사라진다. 실상 텍스트에 더 이상 언급이 되지 않는 
것은 그가 없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며 아마도 그는 하늘로 다시 올라갔을 
것이다. 그의 모든 업무를 단군에게 맡기고 아버지는 하늘(고향)로 돌아가는 
신화 같다. 

그래서 단군은 山神이 되어 아버지가 인간 세상에 뜻을 두고 내려오며 짊어지고 
온 다섯 가지 임무를 신의 역량으로 하게 된다. 山神은 저승신이다. 산에 뫼를 
쓰기 때문에 무덤을 山所라고 부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도 산이라는 
단어 ‘kur’는 저승이라는 뜻도 된다. (두 문화권 사이에 비슷한 점들을 찾아 
그 보편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산신이 된 단군은 저승의 善神이다. 
적어도 민간 신앙에 단군 산신은 보호신이며 수호신이다. 조선시대 민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군 할아버지는 호랑이 옆에 앉아 있거나 호랑이 등에 타고 
있다. 때로는 동자 단군이 호랑이 등에 앉아 있거나 옆에서 걸어가고 있다. 
단군 산신은 종교적 표현이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단군 산신도를 걸어놓은 사당에 와서 단군에게 기원을 한다. 단군 산신도에 
보여지는 단군은 평화롭게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사화는 단군이 조선을 건국한 창시자로 대두되지만 그가 
산신이 됨으로써 조선의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 단군 사화/신화의 마지막 
출발점은 산신으로서의 단군이며 우리 민족/나라의 太祖 단군을 종교적으로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서술된 우리의 태초 역사이다. 

창세신화의 쉬는 날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창세기 1장의 창세 이야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사관이 반영된 인류의 태초 역사이다. 이스라엘의 唯一神 
하느님은 빛과 어둠, 하늘과 땅, 풀과 과일나무, 해와 달과 별들, 새들과 
물고기, 가축과 들짐승, 그리고 세상을 다스릴 사람 등을 6일 동안 만들고 
다음날은 쉬었다. 창세기 1장의 핵은 하느님이 일곱째 날에 쉬었다는 것이며 
쉬는 날, 즉 안식일의 관점에서 태초 창세 신화를 기술한 것이다. 하느님의 
역사를 서술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사관에서 보면 神은 쉬는 날이 있어야 
하며 그 날에는 人間事의 일상 작업도 멈추어야 한다는 계명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역사적 배경은 신석기 시대 혹은 그보다 더 이전이 될 수 
없다. 그 역사적 상황은 적어도 일주일을 7일로 고정하여 日常事를 운영하던 
시기이다. 그래서 6일 동안에 창조주는 세상을 만들었고 7일째에 쉬는 것이다. 

이레째 쉬는 날(안식일)을 히브리語로 샤바트라고 부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원래 보름날이 ‘쉬는 날’이었다. 이날을 바빌로니아語로 
샤파투 혹은 샤바투라고 부른다. (샤바트와 샤파투/샤바투는 같은 단어이다.) 
바빌로니아의 주석책Malku에 따르면 샤파투는 ‘神의 심장이 쉬는 날’이라고 
해석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人들은 이 날에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신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기원했다. 흔히 홍수나 가뭄, 질병 등의 재해는 신들이 화가 
나서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며 옛날부터 신들이 쉬는 날을 정하여 정규적으로 
종교의례를 행하였다. 히브리성서에 안식일을 창세의 마지막 날로 설정하는 
것은 신의 평화를 갈구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사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은 바빌로니아의 창세 신화 에누마 엘리쉬(‘그때 위에’)와 비슷한 
구조로 엮어진 작품이다. 에누마 엘리쉬는 1,100행 정도의 서사시이며 일곱 
개의 토판으로 작성되었다. 기원전 12세기경부터 매년 신년축제 행사에 모인 
순례객 앞에서 대사제는 에누마 엘리쉬를 낭송했다.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의 
대략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태초에 地下水와 바닷물이 함께 섞여 있던 곳에서 신들이 생겨났다. 하늘신이 
지하수신을 낳았을 때 바다의 바다괴물은 신들을 괴롭혔다. 이 때 
지하수신에게서 마르둑(‘태양신의 송아지’)이 태어났으며 그의 형상은 
커가면서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해졌다. 마르둑은 사방의 바람을 일으키는 
노리개로 폭풍을 일으켜 바다괴물을 괴롭혔다. 마르둑은 바다괴물과 싸움을 
벌이고, 그의 아버지 지하수신 에아Ea가 준비해준 呪文을 읽어 바다괴물을 
잠재우고 죽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예술에서 마르둑이 무찌른 바다괴물은 
龍으로 형상화된다.) 마르둑은 바다괴물 시신의 반을 갈라 그 윗 부분으로 
창공을 세워 태양과 달과 별들을 두고 나머지 반으로 땅을 만들어 온갖 것을 
만들어내었다. 또한 사람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바빌론 신전을 짓게 한 다음 
신들을 초대하여 그곳에서 쉬게 하였다. 모든 신들이 모인 가운데 마르둑은 
가장 높은 왕좌에 앉게 되고 하늘과 땅의 주권이 그에게 있음을 확인한다. 
마르둑에게 오십 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이 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된 전승이 반영된 에누마 엘리쉬의 특징적 요점은 
신전을 건축한 날에 신들이 그곳에 모여 먹고 마시며 쉬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창조 신화의 궁극적 목표는 완성된 신전에서 신들이 평화롭게 
쉬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의 중심 도시 바빌론의 한가운데에 신전을 
짓게 하여 그곳에서 신들을 쉬게 하는 것이 구원신의 임무였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마르둑은 그의 아버지 에아의 呪文의 힘(권능)으로 인류의 對敵者 
바다괴물을 물리치고 성공할 수 있었다. (에아는 수메르語 이름으로 엔키이다.) 
창세기 1장에 전개된 7일 동안의 태초 이야기나 7개 토판에 기록된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에 펼쳐지는 전쟁과 창조의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목표는 
神(들)이 쉬는 날/곳이다. 창세 신화를 이야기하던 현자들은 신들이 쉬는 
평화로운 곳을 고대했으며 창조의 목적이 평화라고 말했다. 단군 신화에서 
단군도 그의 아버지의 다섯 가지 임무를 이어받아 국가를 創業하고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으며, 山神이 되어 민족을 보호하는 평화의 수호신이 되었다는 
신화로 이해할 수 있다. 


환웅의 다섯 가지 임무와 엔키의 권능 

고대 사회로부터 나라의 질서와 풍요를 기원하는 것은 통치자의 염원이었다. 
단군 신화에서 환웅이 땅의 세상에 뜻을 둔 것은 인간을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探求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규례를 가르치기 
위해 세 명의 보조 신들을 데리고 다섯 가지 임무[主穀 主命 主病 主刑 
主善惡]를 짊어지고 내려온다. 환웅은 나라에 풍요[穀]를 가져다주는 후원의 
신이며, 인간의 생명[命]을 구하는 구원의 신이고, 몹쓸 질병을 고쳐주는 
치유의 신이자, 형벌을 감해주는 자비의 신이고, 선악을 가르쳐주는 지혜의 
신이다. 고대 신화의 세계에서 이러한 다섯 가지의 역할을 모두 주관하는 신은 
별로 없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서 지하수신이며 구원의 신이고 
치유의 신, 엔키가 적어도 이러한 다섯 가지의 일을 담당한다. 지하수신 엔키가 
도시에 문명을 가져다주는 일을 도맡아 한다. 엔키의 신화에서 환웅의 다섯 
가지 임무를 찾아볼 수 있다. 

生命의 창조 

고대 메소포타미아 창세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신들이 살았는데 작은 신들은 
勞役을 했으며 큰 신들은 놀았다. 큰 신들은 하늘신, 땅 여신, 지하수 여신, 
出産母神, 大氣神, 지하수신, 해신, 달신, 금성여신, 천둥신, 전쟁신 등으로 
구성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계보에 의하면 신들의 수효가 3,600이나 
된다고 하지만 3,600은 60을 60번 한 숫자이기에 60진법을 사용했던 수메르 
사람들의 생각에서 보면 매우 많은 수효인 것을 말해준다. 수십 명의 큰 신들 
이외의 나머지는 큰 신들의 시종 신들과 일벌처럼 단순 노동을 하는 작은 
신들이었다. 작은 신들은 강과 수로에 퇴적된 흙을 파서 강둑으로 쌓아올리는 
힘든 일을 하였다. 기원전 17세기 이전에 창작된 ‘신들이 사람 대신에 노동을 
하였고 노역을 감당했다’라고 시작하는, 바빌로니아 창세 신화 
‘아트라하시스’(‘매우 지혜로운 자’)에서도 그 전승을 읽을 수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역에 작은 신들은 호미와 쟁기를 팽개치며 파업을 
선언하고 큰 신들이 쉬고 있는 신전을 빙빙 돌며 투쟁시위를 벌인다. 이에 큰 
신들은 놀라자빠지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때 엔키는 작은 신들을 대치할 
사람을 만들자고 제의한다. 이래서 인간이 탄생한다. (적어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노역을 감당하던 작은 신들의 
대치물이다. 엔키는 작은 신들 가운데 주모자 신을 색출하여 그를 처형하고 그 
피를 받아 粘土에 섞어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 그리고 엔키(에아)는 큰 
신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아트라하시스 I, 214∼216). 

지금부터 영원히 북(鼓動) 소리를 
들읍시다. 
神의 살에서 魂이 생기게 합시다. 
목숨이 그의 징표임을 알립시다. 

목숨(生命)이 사람의 징표라는 인간창조의 이야기이다. 엔키는 목숨(命)을 
주관하는 신이다. 따라서 생명에 위협이 생기거나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 
그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엔키는 병을 고쳐주는 치유의 신이며 
치유의 목적으로 생겨난 呪文은 엔키의 권한에 속한다. 

병의 치유 

수메르 문자가 개발되면서 가장 이른 시기의 점토판은 물론 영수증이나 계약서 
같은 경제 문서이다. 그러나 기원전 27세기경에 2∼3행 정도의 呪文을 기록한 
토판이 나온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치통이 있거나 解産할 때 사제가 
주문을 읽어줌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기대했다. 병의 종류에 따라 주문의 내용도 
달랐다. 뱀이나 전갈에 물렸을 경우 그것을 처치하는 神名이 기록된 주문을 
음송하여 완쾌를 다짐했다. (그 당시에도 물론 상식적인 응급조치는 취했다.) 
驅魔司祭구마사제는 呪文을 읽으며 물을 뿌리거나 기름을 바르는 간단한 의례를 
했다. 물이나 소금을 뿌리는 종교의례는 어느 원시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글이 기록된 주문을 읽어서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전승은 기원전 
30세기경에 형성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文字 문화에서만 볼 수 있다. 문자가 
갖는 이러한 권위성이 구마사제의 수호신 엔키의 권능으로 나타난다. 아래 
텍스트는 ‘惡한 우둑 귀신udug-hul-a-kam’이라고 알려진 주문의 
부분이다(III, 36∼43). 

나는 엔키의 사람이다. 
나는 담갈눈나의 사람이다. 
나는 그의 使者이다. 
그 사람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위대한 主 엔키가 나를 그에게 보냈다. 
그의 거룩한 呪文이 내 呪文이 되었고 
그의 거룩한 입이 내 입이 되었다. 
그의 거룩한 呪文이 내 呪文이 되었고 
그의 거룩한 기도가 내 기도가 되었다. 
四肢를 괴롭히는 것들이 아픈 사람의 몸 안에 있다. 
엔키가 말한 呪文으로 이 악한 것들을 뽑아버릴 것이다. 

(담갈눈나는 엔키의 정처이다.) 여기에서 ‘나’는 구마사제를 가리키며 엔키의 
주문/입/기도(말씀)가 구마사제의 힘(권능)이 되어 환자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 엔키의 주문으로 환자의 몸 안에 있는 악한 귀신을 뽑아버린다고 믿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기본적인 판례법을 기준으로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고 부정을 척결했지만, 보다 이른 시기에는 淨潔禮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생활 의례였다. 정결례의 목적은 사악한 자의 저주에 걸려 병이 들거나 부정한 
것에 접촉되어 병이 든 사람을 치유하는 데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정결례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지하수를 뿌리는 예식이다. (지금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세례나 침례를 행한다. 이 같은 종교 
의례는, 예를 들어 ‘우리를 유혹에 들지 말게 하며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문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 그 기원을 둔다.) 
지하수신 엔키는 병을 치유하는 임무를 주관하는 신이며 치유 사업은 
홍익인간사회 건설의 다섯 가지 임무 가운데 하나로 단군신화에 기록되었다. 

곡물과 풍요 

고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추구하기 위해 해마다 종교행사를 거행하였다는 
기록은 자주 나온다. 풍요를 기원하는 祭禮는 원시사회나 도시사회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고 악한 저주에 걸려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복지 사회의 건설에 밑거름이 되는 것은 富의 축적이다. 고대 
사회에서 부의 축적은 곡물의 잉여생산으로 이루어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남쪽 지역 도시민들이 풍요를 누려 천문학, 수학, 농토측량술 등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두 강 사이에 많은 운하와 수로를 파서 경작지를 넓힌 
결과였다. 곡물 생산을 전업으로 하여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가 된 도시는 
중앙 지역의 도시국가 니푸르Nippur였다. 기원전 27세기경 니푸르의 수호신 
엔릴은 ‘신들의 왕’으로 군림했다. (경제부흥으로 신들의 세계에서 최고신이 
된 것이다.) 엔릴은 권력자(압제자)의 표상이다. 

한편 곡물의 잉여산물은 해외 물품과 교역하게 되고, 국제 무역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구할 수 없거나 부족한 값진 나무, 설록암, 구리, 주석 
등 광물이나 보석 같은 물품을 수입하여 부유한 나라의 몫을 하게 되었다. 
페르시아 만으로의 해상 무역이 활발했으며 지금의 바레인 섬에 진출하여 
인더스 지역 등 먼 곳의 상인들과 교역을 하였다. 바레인의 옛날 수메르 이름이 
딜문Dilmun이다. 수메르 신화에 지하수신 엔키가 딜문에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신화의 시작에 딜문은 옛날에 거룩하고 깨끗하고 
빛났다고 전한다.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지 않았으며 들짐승이 괴롭히는 일이 
없었고 아프거나 늙어도 그렇게 느끼지도 않았다. 위급하거나 슬프거나 
장사지내는 일이 없었다. ‘獅子가 죽이지 않았으며 늑대가 羊을 채어가지 
않았다. … 할머니가 “나는 할머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할아버지가 
“나는 할아버지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처녀가 목욕하지 않아도 도시에서 
버림받지 않았다.’ 고대인들이 연상했던 ‘지상 낙원u-topia’이 이러하다고 
말한다. 이런 도시를 엔키가 닌씨킬라(‘깨끗한 女主’)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딜문에는 연못이 없었고 농토도 없었다. 닌씨킬라는 엔키에게 딜문을 
풍요의 도시가 되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엔키는 그녀의 발자국에서 물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약속한다. 우물에서 단물이 솟아오르게 했고 풍요한 도시가 
되었다(52∼64행). 

에젠의 해변에 서 있는 
계선주(繫船柱)에 
잉어로 채운 난나(Nanna)의 
집(신전)으로부터 
땅 밑으로 물이 흘러 단물을 
그 입구로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녀의 큰 발자국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그녀의 도시는 그 곳에서 풍요의 
물을 마셨다. 
딜문은 풍요의 물을 (마셨다). 
그녀의 쓴물의 우물이 단물의 우물로 되었다. 
밭과 농토와 경작지에 곡식이 
자랐다. 
그녀의 도시는 나라의 선창가 
집(창고)이 되었다. 
딜문은 (나라의 선창가 집이 되었다). 

‘축제’라는 뜻인 에젠ezen은 딜문의 항구 도시일 것이며, 엔키가 일으킨 
우물의 기적은 난나의 도시 우르Ur의 신전 아래층 밑에서 지하수를 끌어 딜문의 
우물로 올라오게 한 것이다. ‘거룩한 도시 딜문’의 신화에 곡식과 관련된 
부분은 엔키의 입심으로 지하수를 끌어와 곡식을 자라게 하였다는 점이다. 실상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서 곡물 생산은 하늘 아래와 땅 위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대기신의 권능에 속한다. 땅 위에 자라는 곡식이기 때문이겠지만 
곡창지역이 도시 니푸르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불모지에 곡식을 
자라게 하는 힘은 지하수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딜문 신화의 초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환웅의 임무인 主穀주곡을 이해한다면, 환웅이 내려다 본 인간세상이 
원래는 불모지였으나 환웅이 농토로 만들었다고 재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환웅이 雨師와 雲師를 대동하고 내려왔다는 기록을 해석할 수 있다. 


형벌과 자비 

어느 사회나 정의를 지향하는 것은 보편적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시민 사회가 
형성된다. 그러나 경제 부흥과 맞물려 항상 대두되는 사회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계약서를 체결하며 부정을 
막기 위해 방지책을 마련했다. 계약서에 여러 명의 증인을 명기하고 공증인의 
날인을 받았다. 기원전 24세기경에 이미 결혼 계약서 토판이 나온다. (결혼 
계약서가 필요한 이유는 이혼할 경우 위자료를 받기 위한 증빙서류였기 
때문이다.) 일상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에 그 형벌도 만만치 않았다. 아래와 
같은 계약 문구로 계약서에 첨부했다. ‘만일 賣渡人 아무개가 그가 판 물건을 
붙들고 異議를 제기하면 그의 입 속에 죄악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입 속에 쐐기를 박아 버릴 것이다.’ 이런 벌칙이 두려워 계약을 어기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금전으로 배상하는 보상제도가 흔했다. 

기원전 2350년경 수메르 도시국가 라가쉬의 통치자는 그 동안 많은 권력자와 
사제들의 횡포가 심하여 시민들의 원성이 높았던 것을 알고, 그들의 권한을 
줄이고 빚을 져서 종이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사회개혁칙령을 남겼다. 
‘도둑질이나 살인으로 팔려간 가족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권력자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그의 도시 수호신에게 약속했다. 
이러한 준법정신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21세기말에 공포된 
우르남무의 법전이며 기원전 1760년경에 편집된 함무라비 법전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서 재판관 신은 태양신이다. 태양은 옛날부터 
正義를 대변하는 명사이다.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등 여러 사회에서 
태양신이 판관으로 나온다. 함무라비 법전이 기록된 석비의 상단에 줄자와 
측량자를 손에 쥐고 앉아있는 태양신에게 함무라비 왕은 예배드린다. 

함무라비 왕의 아버지가 세운 도시 바빌론의 수호신은 마르둑Marduk이며 
마르둑은 ‘태양신의 송아지’라는 뜻이다. 함무라비 왕의 전성기에 도시국가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가장 큰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이와 
동시에 도시 수호신 마르둑도 전통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높은 위치로 올라간다. 
함무라비 집안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출신이 아니라 북서쪽 광야 지역의 
半유목민 부족 출신이다. 유목민 출신의 마르둑도 도시 神들의 세계에 한몫을 
차지하게 된다.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에 그 과정을 천명한다. 

아눈나키 큰 신들의 왕,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 훌륭한 아누(하늘신)와 
하늘과 땅의 主 엘릴은 에아의 첫째 아들 마르둑에게 온 누리의 주권을 정해 
주었다.1) 

마르둑은 엔릴의 주권을 넘겨받고 신들의 세계에서 最高神이 된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볼 점은 마르둑이 지하수신의 아들로 큰 신들에게 소개되며 신들의 
세계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하수신은 ‘태양신의 송아지’라는 
이름의 아들을 두게 한다. 지하수신도 형벌을 다루는 문제에 깊이 관여한다. 
실상 수메르 신계보에 의하면 엔키와 그의 정처 담갈눈나와의 사이에 태어난 
큰아들은 알쌀루히Assaluhi이며 그가 구마사제의 일을 맡아 한다. 즉 아버지의 
전문직을 계승한다. (Assaluhi의 그리스語 음역이 의술의 신 Asklepius이다.) 
이러한 수메르 전통이 바빌로니아 시대에 와서 무너지고 마르둑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바빌로니아 呪文에서는 마르둑이 구마사제의 수호신으로도 나온다. 
그래도 신화에 나오는 마르둑은 전쟁과 單판을 좋아하는 호전적이며 판결을 
내리는 판관의 모습으로 부각된다. 
지하수신 엔키가 형벌에 관여하는 이야기를 찾아 볼 수 있다. 고통받는 한 
書士가 그의 괴로움을 엔키에게 편지로 써서 전하는 작품이다. 이 서사는 
엔키의 희생제물 축제일에 잘못했다고 고발당하여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며 엔키에게 보낸 편지이다. 

엔키, 天地에 우월한 主여, 
당신의 재능은 견주지 못합니다. 
그(엔키)에게 말하시오. 
조물주, 넓은 귀(지혜)의 대표자, 
하늘신과 운명을 결정합니다. 

당신의 희생제물 축제에 내 발로 
끼어든 것이 아닙니다. 
속아서 간 것뿐입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했던지 
내 죄의 판결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운명신(저승신)이 와서 나를 거짓의 자리로 끌어갔으며 
(좋은) 징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적의를 품은 神이 죄를 가져왔으며 
그 한도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늘신이 내 집에 즐거움을 
다짐하였을 때에 
내가 죄지은 것이 없어 머리를 숙여 그와 대면했습니다. 

書士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의 유혹에 빠져 속임을 당하여 
잘못한 것이지 자기 자신은 진실로 올바른 사람임을 거듭 말한다. 억울한 그의 
처지를 구해달라고 엔키에게 호소한다. 끝으로 신을 두려워함이 신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근본임을 말하고 그의 수호신이 그에게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 

재앙의 입구에서 (나를) 풀어 
주십시오. 
목숨을 건져 [주십시오.] 
백성들에게 당신을 증언하겠으며 나라에 알리겠습니다. 
내 神이여,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는 바로 나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내 神의 마음이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처럼 애절한 편지를 쓴 書士는 엔키에게 자비를 갈구한다. 엔키는 벌주는 
神이라기보다 억울하게 벌받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자비의 신이다. 이것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하수신의 특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웅 신화를 이해하면 
홍익인간의 뜻을 두고(可以弘益人間) 다섯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환웅이 형벌을 
내리는(主刑) 判官神으로 생각되기보다는 오히려 억울하게 벌받는 자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救濟神으로 보인다. 곡물로 후원하고 병을 치유하며 생명을 
아끼는 수호신으로서 자비를 베푸는 신이어야 앞뒤가 맞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엔키 신화를 읽으며 찾아보는 이러한 설명이 主刑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혜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식은 배워서 안다고 고대 현자들은 말한다. 창세기 
2∼3장의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선악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아담의 아내는 
뱀의 교묘한 질문에 넘어가 먹지 말라고 경고한 열매를 집어먹고 또한 아담도 
함께 먹어 결국 벌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실상 지혜로워지려고 탐스러운 
열매를 먹은 것이다. 

처음에 뱀은 여자에게 하느님이 열매를 먹지 말라고 경고하였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만일 그것을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때 뱀은 사실을 말한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은 안다. 만일 너희가 그것을 먹을 때 
너희 눈이 떠지고 너희는 선과 악을 아는 신들처럼 된다는 것을”(3장 4∼5절). 
그러자 ‘여자는 나무(의 열매)가 먹기에 좋고(맛있고), 그것은 눈(으로 
보기)에 예쁘고, 나무(의 열매)는 지혜롭게 해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녀는 그 
열매를 집어먹고 그녀와 함께 있던 그녀의 남편에게 주어 그는 먹었다’(3장 
6절). 보통 열매가 먹음직스럽다고 말할 때 ‘먹기에 좋고(맛있고), 보기에 
예쁘다(멋있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아담의 아내는 “지혜롭게 해줄 것처럼 
탐스럽다”라는 묘한 문구를 첨가한다. 여자의 관심은 지식을 얻고자하는 
소망이었지 그것을 먹고도 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뱀의 말에 귀가 솔깃한 
것은 아니었다. 

이 단락의 첫 구절에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뱀은 主 하느님이 만든 
온갖 들짐승 가운데 교묘한 것이었다”(창세기 3장 1절). 뱀에 대한 묘사이다. 
‘교묘하다’라고 번역한 단어(아룸)는 바로 앞 절(2장 25절)에 아담과 그의 
아내는 ‘벌거벗었다’는 단어(아루밈)와 비슷하게 발음된다. ‘벌거벗었다’의 
초점은 그들이 열매를 먹고 눈이 떠져 벌거벗은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열매를 
먹고 얻은 지식은 벌거벗은 것을 남에게 보이면 수치스러운 것이며 또한 남이 
벌거벗은 것을 쳐다보아도 창피한 것이라는 禮儀이다. 초기 유대교 문헌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예법(규범) 중에 하나는 합당한 이유 
없이 옷을 벗지 말라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나이(13세)가 되면 적어도 
준수해야 할 사항이다. 초기 유대교의 한 분파의 규례에 이와 같은 조항이 
나온다. ‘저마다 그의 이웃 앞에서 인간적인 이유 없이 벌거벗고 걷는 자는 육 
개월 벌받는다. … 자기 옷 밑으로 손을 꺼내며 몸을 드러내 보이면 삼십 일 
벌받는다.’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그들의 눈이 떠지게’ 가르친 자는 
뱀이다. 

뱀과 여자와 과일 열매가 나오는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몇몇 원통형 
인장에 새겨진 그림에서 볼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세계에서 뿔 
달린 두 뱀의 상징으로 나오는 닌기쉬지다(‘좋은 나무의 主’)가 바로 그 
뱀신이다. 닌기쉬지다는 개인이나 가문의 수호신으로 저승의 善神이며 치유의 
신으로 억울하게 죽어 저승에 내려온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준다. 서로 꼬고 
있는 두 뱀이 치유의 신으로 고대 그리스 세계에 전해져 제우스의 使者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새겨졌으며caduceus 지금도 병원이나 약국의 마크로 두 
뱀의 문양이 사용된다. 에덴동산의 뱀(신)은 닌기쉬지다를 가리키는 것이다. 
에덴이라는 지명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들판’을 뜻한다. 
(히브리성서에는 이스라엘의 신 이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못하므로 그는 
뱀으로 등장한다.) 수메르의 神族譜에 의하면 뱀신 닌기쉬지다는 포도주 여신이 
저승에 내려가 6개월 있는 동안 그녀의 배우자로 선택된다. 포도주 여신 
게쉬틴안나는 엔키의 딸이다. 선악을 아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뱀신은 엔키의 
친인척이다. 

엔키는 지혜의 신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늘의 여주’ 인안나가 저승에 붙잡혀 
삼일 동안 올라오지 못하자 엔키는 그의 손톱 밑에서 때를 꺼내 哭꾼을 만들어 
인안나를 구출하는 機智를 보여준다. 태초에 엔키의 지혜로 인간을 만들었으며, 
부정한 인간을 모두 휩쓸어버리려는 큰 신들의 계략을 알고 착한 왕에게 묘책을 
가르쳐주어 홍수에서 살아남게 만든 것도 엔키의 지혜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학에서 첫 번째 지혜서는 ‘슈루파크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슈루파크의 아들이 바로 홍수에서 살아남은 착한 왕 지우쑤드라Ziusudra이다. 
수메르 홍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엔키는 하늘신과 대기신 엔릴에게 
이야기하여 지우쑤드라에게 신처럼 사는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고 산 넘어 동쪽 
먼 곳 딜문에 가서 살게 한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배운 아들에게 지혜의 
신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교훈이다. 이처럼 교육을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문화는 그 신화도 교훈적이다. 

다섯 가지 임무 

환웅의 다섯 가지 임무는 전통적이며 상징적이다. 여기에서 다섯이라는 숫자는 
상징어이다. 다섯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다섯 손가락을 보여주는 손에서 그 
표상을 찾을 수 있다. 그 두드러진 예로 기원전 9세기경 이스라엘 왕국에서 
출토된 항아리 표면의 그림과 글을 들 수 있다. 곡식 항아리 표면에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진 문구와 그 밑에 그려진 그림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다섯 손가락의 손’그림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글의 내용은 
이스라엘 왕국의 행정관 우리야가 야웨 하느님의 보호로 (그의 친구) 오니야를 
구원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섯 손가락의 손은 보호와 수호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유대인들은 부적에 많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다섯의 상징성은 
오각형Pentagon의 건물 모양뿐 아니라 무궁화의 다섯 꽃잎 등에서도 우리가 
흔히 본다. 

단군 신화에서 말하는 환웅의 다섯 가지 임무는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기본 
요소이다. 또한 이 다섯 가지는 도성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확립하는 
근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하수신 엔키의 경우처럼 환웅이 인간세상을 
貪求하는 것은 도성국가의 훌륭한 통치자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단군 
신화는 원시신화가 아니라 도시신화이다. 흔히 단군신화를 시베리아의 원시 
신화와 혹은 원시 사회적 샤머니즘과 비교하여 그 유사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단군 신화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엔키 신화와 대조 분석하였듯이 
도성국가 체계를 배경으로 하는 도시적 신화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삼국유사에 전해진 단군 신화는 약 70문구 정도의 매우 짧고 단편적인 
이야기이지만 환웅이 지하수신 엔키와 매우 흡사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비교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통치자가 널리 이롭게 될 수 있으려면 다섯 
가지의 임무를 잘 수행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곡식을 쌓아 먹고 살 수 있게 
하고,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목숨을 중히 여기고, 병을 치유하여 악인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고, 억울한 형벌을 가려내어 자비를 베풀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理想的 통치자 ‘환웅’의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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