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1일(목) 19시45분34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3) 2.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 구데리안이 돌아오다 1942년 말부터 독일 기갑부대에는 심대한 위기감이 닥쳐오고 있었다. 이미 지난 2년여의 전투에서 독일군의 전차는 소련군의 전차에 비해 너무도 기술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고, 이제까지 그나마 버텨오던 독일군의 우수한 전술도 점점 씨가 먹혀들지 않았다. 소련군도 독일군의 전술을 모방하여 더욱 나은 전술을 실험,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더욱 나빴던 점은 이제 그 숫자 에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독일의 공업생산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 매우 비효율적이었던데 반하여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차로 손꼽히던 T-34전차만 집중적으로 대량생산하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열세라면 독일군 전체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다. 독일군이 가장 많이 쓰던 3호전차의 60구경 50mm 포와 4호전차의 43구경 75mm포를 가지고는 소련군의 T-34 전차를 상대하기 힘들었다. 단지 88mm 고사포만이 무적의 위용을 자랑하였으나 56구경 88mm KwK36이 탑재된 6호전차 `티거(Tiger)'는 이제 막 생산을 시작하였을 뿐이었다. 독일군 전차생산의 치명적 결함은 그전부터 많이 지적되던대로 너무 종류가 많았고 설계가 자주 바뀌었으며 각 전차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 생산효율이 낮았다. 이래서는 주조식으로 간략하고 빠른 생산이 가능했던 T-34와는 경쟁할 수 없었다. 결국 독일 군수장관 슈페어는 일선 공업현장의 이런 불만사항을 받고 이런 문제 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슈페어는 불필요한 전차 생산 라인을 전부 없앨 것을 히틀러에게 진언했고 결국 히틀러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티거와 판터(Panther. 5호전차로 개발되었으며 70구경 75mm KwK42을 탑재하고 있었다 -- 이 포는 당시의 세계 모든 전차를 일격에 격파할 수 있었다)를 제외한 전 전차의 생산을 중지하고 이 두 전차 생산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이 결정은 슈페어의 대대적 환영에도 불구하고 일선 기갑부대 지휘관에겐 실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도 그럴것이 판터는 아직 생산에 돌입하지도 않았고 티거는 1달에 25대 정도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결국 이 결정대로 시행되면 독일군은 판터의 대량생산 체제가 갖춰지기 전에는 불과 월간 25대 밖에 보급을 받지 못한다 -- 월간 손실이 수백대까지도 이르는 상황에 이건 기갑부대의 전멸을 의미하게 된다. 기갑부대 선임장교들은 이제 기갑부대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정책을 세워줄 수 있는 인물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