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1일(목) 19시26분55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2) 결국 도네츠강 상류의 전선은 벨고로드-하르코프 선에서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제 휴식의 봄을 맞은 양 군에게 지도의 상황은 몹시 껄끄러운 문제를 야기시켰다. 그것은 바로 동부전선의 중앙 쿠르스크 전면에 남겨진 거대한 돌출부 때문이었다. 독일군의 동계공세가 벨고로드에서 정지하게되어 쿠르스크 남방으로 파고들던 독일 남부집단군의 쐐기는 덜 박힌채 돌출부만 남기고 말았다. 이 돌출부의 크기는 남북으로 무려 120km에 이르는 것이었으며 그 둘레는 더욱 장대하여 400km가 넘었다. 결국 이 돌출부가 제거되면 단 120km에 이를 전선이 무려 3배가 넘는 길이로 늘어나 있던 상황이었고, 가뜩이나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군 전력으로서는 몹시도 괴로운 것이었다. 독일군은 1943년 3월의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간신히 승리하기는 하였으나 그 전력은 너무나도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이때 동부전선에서만 정규 편제에 비해 47만명의 병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전 육군 전체로는 무려 70만 명에 이르는 병력이 부족했다. 이 정규 편제라는 것도 이미 1941년 겨울의 혹독한 전투를 치루면서 대폭 삭감된 것을 생각하면 1941년의 위세등등하던 독일군의 위용과는 거리가 멀었다.(1941년 겨울의 전투를 치루고 1942년 봄에 독일군 1개 보병사단의 편제는 9개 보병대대에서 6개 보병대대로 대폭 삭감되었었다) 더욱더 독일군의 비참함을 극명히 나타내었던 수치는 독일군의 자랑거리였던 기갑부대의 전차보유량이었다. 독일군은 동계공세가 끝날 무렵 전 동부전선에 걸쳐 18개 기갑사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정규편제라면 약 4000대의 전차를 보유해야만 했음) 실제 이 부대 전체에 배치되어 있던 전차들은 불과 600대였다! 심지어는 단 한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한 기갑사단마저 있었다. 소련은 이미 우랄지방으로 소개된 중공업지대에서 한달에 수백대씩 전차를 생산하던 차였으므로 실로 전선 전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다. 전차 없는 기갑사단으로 어찌 전선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독일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가오는 1943년의 여름을 준비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