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월 12일 금요일 오후 05시 09분 08초 제 목(Title): 권혁범/ 이민 3 [논단] 이민 3 한국사회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연초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루아침에 ‘화끈한’ 변화를 기대하는 순진한 이상주의나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부패를 악마시하는 태도야 버린 지 오래지만 그래도 정말 변치 않는 우리 사회의 후진성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나는 모든 게 연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 절망한다. 장애인·여성·결손가정 출신이라면 더더욱! 사립초등학교 교사부터 공기업의 고위간부 그리고 대학교수 채용에 이르기까지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삼대 연합체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젊은 학자는 거의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저서를 내놓았는데도 열번도 넘게 대학교수가 되는 관문에서 넘어졌다. 지금 그는 결국 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원자의 연구성과에 대한 엄격한 학문적 분석을 통해서 교수를 뽑는 대학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학의 현실이 이렇다면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을 맡고 있는 한 간부는 서류심사에서 대부분의 비명문대 지원자를 ‘자동적으로’ 탈락시킨다는 고백을 해서 나를 아연케 했다. 명문대 출신들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서 상부상조한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이념보다 진한 것은 학연이다! 감옥을 갔다와도 외국에서 20년이 넘게 살다와도, 특정대 출신이라면 언제든지 한국사회의 상층부에 진입할 자산을 갖고 있는 셈이니까. 재벌의 뒤를 이어 최근에는 목사의 아들이 목사가 되고 교수의 딸 아들이 교수가 되며 의사의 딸 아들이 의사가 되는 ‘자랑스러운 명문가’의 모습들이 전면에 나타나고 있다(이분들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계급과 신분의 세습이 우리 사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한 세습은 능력과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세 가지 연고의 유기적 결합에 힘입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연줄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자질이나 노력보다는 연줄망을 활용할 수 있는 연고를 본인이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연줄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능력이 없다. 그러니 자고로 “대한민국에서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는 얘기가 실감나는 것이다. 이래서 효도주의가 유독 강한 걸까? 따지고보면 한국이 총체적 파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도 비합리적 연줄중심 결정구조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은행의 대출부터 그렇다. ‘빽’ 없고 학벌과 집안이 ‘나쁜’ 인간들은 애당초 은행으로부터 큰돈 빌릴 생각을 접어둬야 하는 것이다. 합리적 기준과 절차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이런 한국 자본주의가 개방으로 인해 외국 사회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될 때 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민족정체성 상실 위기’니 ‘국부 유출’이니 하는 얘기를 들으면 답답해진다. 당신의 대안이 뭐냐고 따진다면, 애국심으로 무장된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방안이지만, 내 답은 ‘이민’이다. 나는 앞서 말한 삼박자를 모조리 갖추지 못한 ‘비명문대’의 내 제자들에게 정말 ‘성공’하고 싶으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민가라고 진심으로 권유한다. 서방이나 마누라는 바꿔도 대학 졸업장은 못 바꾼다. 비명문대 비명문 가문 출신으로 한국사회에서 어찌 큰 성공을 바라겠는가? 사회과학 공부로 미국에 대해 제법 비판적인 그들에게 인종차별이니 제국주의니 하며 따지지 말고 이민가라고, 어떻게 해서든 초기 비용을 만들어서 유학가라고 얘기한다. 게다가 장애인 혹은 여성 혹은 ‘결손’가정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권유한다. 적어도 그 사회는 무일푼과 ‘유색인종’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어도 10시간 넘게 노동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려는 의지만 있으면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가르친다. 그러한 사회적 조건이 중심부의 주변부에 대한 역사적 착취에 기초하고 있다 해도 그곳에 주변부의 주변부 인생이 가서 그 녹을 받아서 성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도피며 패배주의라 비판하여도… 아마도 많은 분들은 문제있다고 다 떠나면 누가 문제를 해결하겠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것은 도피이며 패배주의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 문제의 해결책도 이민이다. 제도를 개선하여 실력있는 외국인들을 교수, 공무원, 경영자 심지어 의원과 단체장 등이 될 수 있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연고주의적 비합리성을 단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한국 이민을 촉진하는 제도개혁은 과연 가능할까? 누가 하려고 할까? 그러니 이민 ‘가는’ 수밖에 없다. ‘오는’ 것을 결사 반대하는 ‘명문’의 힘이 세니까. (참고로 <씨네21>에 실린 ‘이민 1’과 ‘이민 2’를 읽어주시기를 부탁한다. 물론 내가 쓴 글은 아니다.) 권혁범/ 대전대 정외과 교수·당대비평 편집위원 kwonhb@dragon.taej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