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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월 12일 금요일 오후 05시 08분 07초
제 목(Title): 신현준/ 이민 2


 이민2  
 
이 땅에서 보기 싫었던 것들은 그곳에도 다 있었다. 룸살롱과 노래방, 영,호남간 
지역감정 등등. 게다가 '동포'는 돌봐준다는 다른 소수민족의 갱과 달리 한국인 
'형님들'은 동포들을 등쳐 먹고 산다는 말까지 들었다.

<씨네21>의 넘버 투인지 넘버 쓰리인지쯤 되는 인물이 다른 신문사의 기자로 있을 
때 전화를 걸어 ‘이민’이라는 주제에 관해 나를 취재한 일이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터라 희망과 포기가 뒤섞인 투의 말을 전했다. 나중에 
기사화된 활자를 보니 “늙기 전에 뒈져버리고 싶다”(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는 영국의 록 밴드 후(The Who)의 가사를 패러디하여 “늙기 전에 떠나고 
싶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게 이민을 꿈꾸는 한국인의 심정이라면서. 내가 직접 
한 말이었는지 아니면 나와 대화하는 중에 그의 머리에 떠오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비스무리’한 생각이 있어서 입 밖으로 새나왔던 건 
분명하다(물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피트 타운센드는 나중에 “늙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뭐 웃자고 한 소리니까 ‘한입으로 두말한다’고 삐질 
필요까진 없지만. 그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떠나지 않고 ‘이땅’에 살고 있는 이유는 지식인의 
거창한 임무 때문도 아니요, 처자식 딸린 (형식상) 가장의 책임 때문도 아니요, 
벌여놓은 일을 내팽개치고 떠나면 듣게 될 욕사발 때문도 아니다. 그건 10년 전 
재미동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두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지식인 출신의 한국인’이 배추나 생선을 팔거나, 세탁소와 미장원 정도나 
경영하는 이등시민이요, 소수민족이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었다. 다이아스포라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다고 일등시민, 다수민족을 바라겠는가. 내가 목격한 것은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서조차 ‘똘똘 뭉쳐’ 산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즉 한인 커뮤니티(이상하게도 한국인은 러시아에 살면 
고려인, 중국에 살면 조선족, 일본에 살면 조선인, 미국에 살면 한인이 된다)는 
사업도, 친목도, 행사도 심지어 ‘운동’도 ‘우리끼리’ 하고 있었다. 유학생 
커뮤니티도 덜하지 않았다. 그때 만난 한 유학생은 “여기서 옆집 한국인에게 무슨 
말을 하면 창문 열고 확성기로 외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한국에서 뭐하다 왔는지, 집안이 어떠며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심지어 
냉장고와 가스레인지가 어디 제품인지도 속속들이 꿰뚫는다고 했다. 그때 떠올린 
노래가락은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는 민중가요였다. 누구 
말처럼 ‘빨갱이’나 ‘공산화’가 두려워서 이땅을 등진 경우가 태반일 텐데 
말이다. 더더욱 이상했던 것은 다른 민족들과 티격태격하면서 뒤섞이는 일은 
안중에 없고 ‘언제쯤 한국에 돌아갈까’, ‘뼈는 조국땅에 묻혀야 되는데…’라는 
‘꿈’을 꾸던 이민 1세들의 모습이었다(그래 놓고 그들은 2세에게는 “한국말 
하면 출세 못한다”고 영어만 쓰게 했다. 그래봤자 국내 대학의 한국어 학당만 
좋은 일이 돼버렸다). 그때 번쩍 든 생각은 ‘한 핏줄의 동포는 어디 나가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나만 안 그러면 될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버거워보였다. 개인의 성향에 맞게 다른 민족과 
‘트랜스컬처(터)럴’(transcultural)하게 살아가면서 아주 가끔 비빌 언덕을 찾는 
상태를 바랐던 나의 희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현실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와 
동시에 내가 이땅에서 보기 싫었던 것들은 그곳에도 다 있었다. 룸살롱과 노래방, 
영·호남간 지역감정, 운동권의 노선투쟁 등등. 게다가 못된 짓을 일삼다가도 
‘동포’를 돌봐준다는 다른 소수민족의 갱과 달리 한국인 ‘형님들’은 동포들을 
등쳐 먹고산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마음을 굳혔다. ‘어디에’ 
사느냐가 문제는 아니라고. 

다른 곳의 이민은 어떤지 모르겠고, 이것도 10년 전의 일이라서 사정이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근 조기유학에 미쳐 날뛰는 부모들의 심정은 
‘우리 애들이 여기 돌아와서 잘되는 것’을 꿈꿀 뿐이다. 이런 말에 구역질이 날 
때쯤이면 나는 한국인들의 DNA에 새겨진 ‘에스닉’ 정체성이 궁금해진다. 이런 
이야기는 어차피 ‘구라’일 수밖에 없지만 어떤 책에 의하면 화살로 멧돼지 
잡아먹던 북방계(유목민?)와 창으로 생선 잡아먹던 남방계가 뒤섞여 만들어진 게 
한민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늘 떠나고 싶지만 눌러 앉는 성향’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다. 친가의 내력으로 보아 두 세기 전만 해도 ‘여진족’으로 
짐작되는 유목민의 형질이 절반인 나 같은 경우는 더더욱. 

신현준 / 문화수필가 http://shinhyunjoon.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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