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11.tnt2.re> 날 짜 (Date): 2000년 11월 1일 수요일 오후 02시 28분 48초 제 목(Title): 퍼온글/ 문사철도 국가 경쟁력이다(반론) 빛나는 길 (petrograd@hanmail.net) 수정: 2, 조회: 574, 줄수: 53, 분류: Etc. [검열반대] "'文·史·哲'도 국가경쟁력이다" - 씁쓰레한 조서닐보 사설 조서닐보 조회수 늘려주는 것이 싫어서 chotsun.wo.to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에 클릭해보니 다음과 같은 사설이 실려있더군요. ******************************************************************************* ******************** [사설] ‘文·史·哲’도 국가경쟁력이다 전국 100여개 대학 인문학 교수들이 고사위기에 처한 인문학 부흥을 촉구하고 나선 것에 우리는 주목하나 진단과 처방에는 의견을 다소 달리한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시장경제논리가 인문학을 죽이고 있다며 정부가 지원예산을 늘리거나 세제혜택을 통한 기업체의 지원을 유도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문학 퇴조현상을 시장 탓만으로 규정해서 지원을 요청하는 접근보다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고 국가정책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는 게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인기가 하락한 것은 전공을 해도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조화시켜야 할 대학이 취직학원으로 전락한 데 따른 역기능이지만 무턱대고 학과를 증설하고 정원을 늘린 대학당국에도 책임이 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가 6만3000명에 달한다니, 정원이 얼마인지는 헤아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자연도태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첫째는 인문학이 산업과 경제의 원동력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인문학이 인간다운 삶의 원천이고 반문명적 파괴에서 인류를 구원할 학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무기라는 것은 경제대국 미국이 이미 간파하고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밀레니엄 보고서에서 인문학 강화와 예술교육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보·문화산업이 주도할 새천년의 키워드는 창의력이며 그것을 키울 수단은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논리다. 병들어가는 사회를 치유하는 해법도 인문학에서 찾아야 한다. 6·25 전쟁을 치른 열악한 국가를 오늘 이 만큼이라도 성장시킨 힘은 학구열이었고, 그 바탕에는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의 뿌리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성장 위주의 정책드라이브가 실용성만을 우선하면서 인문학이 시들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했다지만 문학·철학·역사서적 몇 권 제대로 읽지 않다 보니 위아래도 흐려지고 사회 기초질서마저 흐트러져 난폭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경쟁력이 뒤질 수밖에 없다. 초·중·고 학교교육마저 창의력이 싹틀 수 없는 데다 대학에서까지 인문학을 경시한다면 정보·문화·산업인재가 육성될 여지가 희박하다. 정부는 창의적인 인재양성을 위해 인문학을 부흥시켜야 하며, 대학도 학문으로서의 인문학뿐 아니라 교양으로서의 인문학 교육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제 전공이 역사학이니 인문학 전공자이고, 언뜻 보면 조서닐보가 제 걱정을 해준 듯 하기도 합니다. 사실 막막합니다. 팔리지 않는 역사학(더군다나 국사도 아닙니다)으로 무한 경쟁 사회에서 제 앞가림이나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도 자신이 없고, 게다가 혼자 몸도 아니고 두살바기 아들도 먹여살려야 합니다. 우리 나라 사회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준다면, 저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죠. 제 앞날을 걱정해주는 조서닐보가 고마울 수도 있는데, 전혀 고맙지가 않습니다. 위기에 처했다는 인문학의 앞날을 걱정해주는 조서닐보의 사설을 읽고 씁쓰레한 기분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언제는 보수일색의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주류적 사고방식에 조금 어긋나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최창집 교수를 마녀로 몰아붙이던 조서닐보가 주장하기를 "새천년의 키워드는 창의력이며 그것을 키울 수단은 인문학"이랍니다. 사회 구성원의 사고방식을 획일화하는 데 앞장선 조서닐보가 힘주어 외치고 있습니다. '새천년의 키워드는 창의력이란 말이야!' 창의력은 기존 권위에 덤비는 도전에서 나옵니다. 창의력은 "삐딱이"를 북돋아주는 분위기에서 나옵니다. 누가 도전을 죄다 반란, 반역으로 몰아붙여 압살했습니까? 누가 "삐딱이"를 마녀로 몰아 기둥에 묶은 뒤에 장작에 불을 붙였습니까? 그런 조서닐보가 말하는데, "새천년의 키워드는 창의력"이랍니다. 조서닐보가 그러는데 인문학이 퇴조한 원인이 실용성만을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랍니다. 박정희, 전두환 최고최고를 외치던 조서닐보가 말하길 "성장 위주의 정책드라이브가 실용성만을 우선하면서 인문학이 시들기 시작했"더랍니다. 리영희 선생이 그러더군요, 국가권력이 무서워서 일기를 쓰지 못했고 지식인이 일기를 쓰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요.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머리 속까지 비집고 들어와 뇌세포들을 오직 오른쪽으로만 정렬하려고 날뛰던 박정희, 전두환에게 굽신굽신대면서 국가기구의 폭력을 정당화하던 조서닐보가 그러는데, "실용성만을 우선"해서 인문학이 시들기 시작했더랍니다. 인문학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전제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식인이 일기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앞장서 만든 조서닐보가 시들어가는 인문학의 형편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이제는 인문학을 살리자고 합니다. 멀쩡한 사람에게 병균을 주입해서 폐인을 만들어버린 다음에 엉뚱하게 병의 원인을 짚어낸 다음에 약을 주겠다고 나선 조서닐보입니다. 그러더니 한다는 소리가 "대학을 졸업했다지만 문학·철학·역사서적 몇 권 제대로 읽지 않다 보니 위아래도 흐려지고 사회 기초질서마저 흐트러져 난폭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네요! 인문학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목적이 "위아래"를 확실히 하는 거랍니다. 제 짧은 생각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우리 사회의 그 숨막힐 듯한 위계를 타파해서 "위아래도 흐려지"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사회 기초질서"이고 누구에게 "난폭한 세상"입니까? 가진 자를 위한 "사회 기초질서"를 확립해서 상것들이 날뛰는 "난폭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인문학의 목적이라면, 저 지금 당장 인문학 때려치울랍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인문학이 고사하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헛발질만을 해대는 조서닐보가 그러는데,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인문학을 육성해야 한답니다. 인문학을 "인간다운 삶의 원천이고 반문명적 파괴에서 인류를 구원할 학문"이라고 잔뜩 치켜세우더니만,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조서닐보가 그러는데 "인문학이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무기"랍니다. 그놈의 국가, 국가의 폭력, 국가간 체계 때문에 인간다운 삶이 파괴되고 인류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것이 인문학이 밝혀낸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조서닐보가 그러는데 인문학이 그런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무기"랍니다. 조서닐보 가라사대, '인문학이여,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총폭탄이 되어라!' 젠장, 빌어먹을! 조서닐보에게 말하고 싶다. 병주고 약주고 하지 마라! 그 약도 잘못 처방된 약이야! 그리고 너희가 말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이고 목적이라면, 당장 인문학 때려치울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