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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90.tnt4.se> 
날 짜 (Date): 2000년 9월 25일 월요일 오후 03시 39분 14초
제 목(Title): 서평/김종락 권혁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


<책과 현장>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에콜로지를 지향하는 격월간지 ‘녹색평론’이나 진보적인 계간지 ‘당대비평’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의 저자인 권혁범(대전대·정치외교)교수가 생소한 인물이 
아니다. 


그가 즐겨 기고하는 매체가 ‘녹색평론’이나 ‘당대비평’인 것에서도 짐작되듯, 
그의 관심사도 이 두 잡지의 주요 지향점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이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맹목적인 민족과 통일 지상주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세계화와 발전주의를 반대하며 그 대안을 모색해 왔다고나 할까. 


‘개인 지향 에콜로지의 모색’이란 부제가 붙은 이 신간은 저자가 90년대 중반 
이후 제기해온 민족주의와 발전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탈 민족적 에콜로지 
정치학을 모색하는 글과 대담을 모은 것이다. 20세기 이후 강대국의 침략이 
가시화하면서 민족주의는 늘 우리의 화두였지만, 통일이 현실 문제로 떠오른 
요즘이야말로 더욱 그런 느낌이 없지않다. 


그럼에도 저자가 부국강병적 민족주의를 외면하고 이를 비판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첫머리에서 예시하는, 한국과 일본의 20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동 의식조사 결과를 보며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두 나라 20대 들의 사랑·가족·직업관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국가 
의식’은 우리 20대들이 훨씬 강했다. ‘전쟁이 나면 나가서 싸우겠느냐’는 
질문에 우리 20대들이 긍정적이었던 반면, 일본 20대들은 회의적이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두고, 흔히 우리 나라 젊은이의 애국심과 민족사랑은 일본보다 낫다고 
안도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반문한다. 국가나 민족의 이름으로 행하는 전쟁이라면, 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바람직한가. 우리 민족에 반대하는 바깥은 
무조건‘악마’이고, 그래서 더러 민족 단위의 차별은 물론 학살조차 용인되는가. 
그러고 보면 ‘민족〓국가〓나’라는 등식이 가능한 열정적인 정서를 토대로 한 
민족주의야말로 인류 보편의 기준에 비춰보면 가장 반윤리적일 수 있지 않은가. 


저자가 제기하는 보다 큰 문제는 ‘민족〓선’,‘타민족〓악’이라는 이분법을 
통해 민족 집단의 상층부가 민족 구성원들을 획일적 집단주의에 가둬두고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나 갈등을 은폐하거나 억누른다는 것이다. ‘우리’를 강조하면서 
우리 내부의 문제는 덮어버리고 특권적 지배적 소수의 이익만 ‘민족’이라는 
가면아래 보편화해 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저자가 현대사에서 피침략국이자 주변국이었던 우리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국가의 민족주의와 다르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족주의자의 
말대로 21세기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서면, 다른 나라는 주변국이 되란 
말인가. ‘진정한’, ‘열린’ 민족주의를 말하기에는 그것이 이미 너무 
오염됐다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저자는 남북정상회담을 타고 폭발중인 통일열기에 대해서도 남쪽 
자본의 ‘물질적 이득’과 ‘북한 지배’의 욕망과 전제가 숨겨져 있는 것을 
경계한다. 신자유주의를 타고 무차별 확산되는 발전주의의 이면에도 여전히 
자민족중심주의의가 깔려있는게 문제다. 이런 발전주의가 자연의 고갈,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그리고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그것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재앙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재앙의 궁극적 부담은 현재의 약자와 우리 자신의 후세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저자는 우선 민족을 포함한 어떤 추상적 공동체도 구체적인 
개인의 생명과 존엄성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세계관의 
중심축을 보편적 인간의 문제, 즉 이성과 양심에 기초한 기준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발전으로 인한 어떤 물질적 혜택도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균형을 깨뜨리는 데서 
오는 치명적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각은, 구체적 개인의 행복과 지구 
생태계의 지속성을 지향하는 에콜로지 정치를 모색하는 이유다. 


일정한 기획 아래 씌어진 글이 아니라서 더러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줄기는 
탈민족주의를 통한 전지구적 연대의 강화, 발전주의의 포기, 그리고 녹색정치에 
대한 모색으로 일관된다. 상당 기간에 걸쳐 있는 그의 글을 통해 지적 편력과 
사상의 성숙 과정을 살피는 것은 의외의 즐거움. 전문성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쉽게 
읽히는 글쓰기도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전문성★★★★ 대중성★★★ 완성도 ★★★) 


〈김종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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