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90.tnt4.se> 날 짜 (Date): 2000년 9월 25일 월요일 오후 03시 40분 41초 제 목(Title): 서평/고명섭 , 번역과 일본의 근대 고명섭/책과사람, 번역과 일본의 근대 [책과사람] 일본은 없었을거다, 번역이 없었다면 흔히 일본을 `번역의 왕국'이라 한다. 전세계에서 출간되는 중요한 저작들이 거의 빠짐없이 일본어로 옮겨지고 있는 형편이니 그렇게 부를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왕국의 지위는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19세기 중엽 이래 일본은 말 그대로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 번역사업을 벌였다. 왜 일본은 일찍부터 외국 저작을 가져다 자기 나라 말로 옮기는 데 몰두했을까?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와 가토 슈이치(1919~)가 함께 만든 <번역과 일본의 근대>는 일본의 번역 열풍의 기원과 그것이 지닌 정치적·역사적 의미를 풀어놓은 책이다. 임성모 옮김, 이산 펴냄, 1만원. 지난 98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출간된 이 책은 애초 이 출판사가 기획한 시리즈인 `일본근대사상대계'의 편집과정에서 곁가지로 벋어나온 것을 따로 정리한 것이다. 마루야마와 가토는 이 시리즈 중 한 권인 <번역의 사상>의 공동편집자였는데, 편집을 진행하던 도중 마루야마가 건강을 잃자 가토가 그를 찾아가 번역에 관한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문답한 것이 이 책으로 갈무리됐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엮여 있어 통상의 이론서가 보여주는 치밀한 짜임새는 부족하지만, 번역과 근대화의 상관관계를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살펴가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두 사람의 문답 혹은 대담은 몇 가지 논점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졌다. 요컨대,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왜 번역에 그토록 힘을 썼는가, 어떻게 번역을 했는가, 무엇을 번역했는가, 그리고 번역이 끼친 사회적 영향은 무엇이었는가'가 이들의 논점이었다. 두 사람이 이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제기하는 것이 `번역의 역사적 배경'이다. 그 배경이라는 것이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해체하고 근대적 국가체제를 형성하는 메이지 유신(1868년)을 전후한 대외관계다. 일본은 미국의 페리함대의 내항(1854년)으로 서구의 무력에 압도당한 직후 재빨리 변신해 “서양으로부터 배우자”를 슬로건으로 내건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배척의식이 가장 강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가장 먼저 `전향'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 전향을 주도한 것이 무사계급인데, 마루야마는 일본의 근대화에서 무사계급이 아니라 문치관료가 지배계급이었다면 이런 기민한 반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서양을 배워 어서 힘을 기르자는 것이 이들의 뇌리에 박힌 생각이었다. 근대화를 곧 서구화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서둘러 유럽에 유학생을 보내고 사찰단을 파견한다. 그러나 사람을 내보내는 것만으로는 서양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었던 탓에 일본이 정책적으로 취한 것이 번역이었다. 군사·법률 같은 나라 세우기에 직접 필요한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화학·의학·문학·예술 등 온갖 분야의 책이 다 번역됐는데, 메이지 시대 초기에 벌써 “몇 만 권”이 일본말로 옮겨졌다. “번역의 홍수”였다. 얼마나 많이 나왔던지 번역서 읽는 법을 안내하는 책자(<역서독법>)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시기에 잠깐 등장한 것이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주장이었다. 모리 아리노리가 주창한 `영어 국어화론'은 “일본어에는 추상어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는 서양문명을 일본 것으로 만들 수 없으니 아예 영어를 국어로 채택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영어를 국어로 할 경우 영어를 쓰는 상층계급과 영어를 모르는 하층계급으로 나라가 갈리게 된다”는 바바 다쓰이의 반박을 받고, 또 번역이 제 자리를 잡으면서 스러졌다. 번역물이 하루아침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려면 지적인 토대가 있어야 한다. 마루야마는 여기서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이 토대가 이미 마련됐음을 강조한다. 오규 소라이를 효시로 한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모국어처럼 쓰는 한문을 외국어로 인식하고 번역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는 것이다. “소라이가 일본어를 수많은 언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그건 일종의 의식혁명이다.” 쏟아지는 번역서 가운데는 잘된 것도 있었지만 엉뚱한 번역도 많았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정학>(Social Statistics)은 <사회평권론>(社會平權論)이란 평등주의 냄새가 강한 제목으로 번역돼 수십만부가 팔리며 당시 타오르던 자유민권운동의 성전이 되기도 했다. 또 별볼일없는 통속서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같은 고전과 나란히 번역돼 거의 동등한 영향을 주었고, 노동계급도 없고 노동운동도 없는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관련 서적이 먼저 번역돼 급진사상을 뿌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앞서 모리 아리노리가 주장한 대로 추상어나 개념에 대응하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한문번역본을 참조하기도 하고 유학의 용어를 빌려와 무수한 새 말을 만들어냈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엇을 번역하느냐 또 어떻게 번역하느냐를 놓고 번역 활동은 진보 사상과 보수 사상 사이의 치열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성격을 띠게 됐다. 이 싸움은 결국 보수적 근대화 세력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은 청일전쟁을 거치며 제국주의화한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