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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1Cust222.tnt1.re> 
날 짜 (Date): 2000년 9월  5일 화요일 오후 03시 10분 47초
제 목(Title): 강수돌/ 돈의 역사,돈의 광채속에 감춰진 �


돈의 역사: 돈의 광채 속에 감춰진 진실 
 

강수돌/ 고려대 국제정보경영학부 교수  
  


생활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때로는 삶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들기도 하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돈 나고 사람 났냐, 사람 나고 돈 
났지'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우리는 사실상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이 진짜 맞는 거지?'라는 자문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척박한 
삶의 현실이 우리들로 하여금 너무나 평범한 진실조차 의삼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실은 마치 '돈 나고 사람 난'것처럼 돌아가고 있다. 
돈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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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때로는 삶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들기도 하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돈 나고 사람 났냐, 사람 나고 돈 
났지'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우리는 사실상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이 진짜 맞는 거지?'라는 자문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척박한 
삶의 현실이 우리들로 하여금 너무나 평범한 진실조차 의심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실은 마치 '돈 나고 사람 난'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들은 수없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20세기 말을 장식했던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지만, 
돈 있으면 무죄가 되나 돈 없으면 유죄가 된다는 현실은 얼마나 우스운가. 군 
입대와 관련해서도 '돈 있으면 면제고 돈 없으면 고생'이라는 말도 근거가 없지 
않음이 선거 국면에서 명백하게 밝혀지기도 했다. '옷이 날개'라는 옛말도 이제는 
'돈이 날개'로 고쳐져야 할 판이다. 장관 부인들을 포함한 귀부인들이 수백만, 
수천만 원대의 고급 옷을 예사로 '걸치고' 다니다가 청문회까지 열린 판국이니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보다 '돈 나고 사람 났다'는 말이 현실을 더 잘 묘사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Realit t과 진실Wahrheit은 다르다! 대부분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란 
본질Wesen이 아니라 현상Schein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무수한 일들을 
살필 때 그 외양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내면과 심층, 그 본질과 진실을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요컨대 현실은 
'돈 나고 사람 난 것'으로 보이나 진실은 '사람 나고 돈 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그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노동, 상품, 그리고 화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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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여름에 태국의 수도 방콕을 방문한 일이 있다. 당시에 방콕의 출라롱콘 
대학교에서 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워크숍이 있었기 
때문이다. 워크숍이 끝나자마자 저 유명한 불교사원(와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화려한 사원의 외양보다도 그 사원 옆의 조그만 박물관 
안에 전시된 '돈의 역사'가 더 흥미로웠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전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조개껍질이나 동물의 뼈, 돌멩이조차 화폐로 쓰였던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도 아니 까마득한 옛날인 원시 시대에서부터 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기원, 돈의 탄생의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돈은 원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돈은 일차적으로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 
교환을 하자니 그 가치를 측정하여 일정한 단위로 표시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교환의 대상물은 당연히 인간 노동의 산물, 즉 생산물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 생산물을 교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그 생산물이 직접적인 욕구충족 이상으로 
남아돌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잉여'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웃 
사람들이 그 남아도는 잉여 생산물에 대해 '쓸모'를 느끼게 된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사람들이 이것을 미래의 필요를 위해 보관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필요해서 찾는 경우 교환을 하게 되었는데 그 교환의 수단으로 돈이 
탄생한 것이다. 결국, 인간 노동―생산물―교환―화폐의 연결 관계가 성립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환 과정을 보다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화폐란 상품 생산을 떠나서는 생각하기가 어렵기에, 상품의 출현 
과정에서부터 화폐의 탄생을 추적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품Ware이란 
어원적으로도, 잘 보관wahren된 것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인간 노동의 
산물(잉여물)이 자신의 사용을 위해 잘 보관되었으나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환을 위해 생산되고 보관된다. 바로 이것이 상품이다. 즉 상품은 쓸모가 있기에 
교환이 되고 교환이 되어야지만 그 쓸모를 실현한다. 처음에는 교환 행위조차 
쓸모를 위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그것은 과연 서로 다른 상품들이 어떤 식으로 
교환될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쌀과 옷감을 교환한다고 하자.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떤 사람은 손해보고 어떤 사람은 이익을 보면서 교환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평균을 낸다면 쌀과 옷감은 서로 같은 가치로 교환될 것이다. (가치가 
겉으로 드러난 형태인) 교환가치가 서로 같은 상품끼리 상호 교환된다고 해서 
이것을 등가 교환이라 한다. 최소한, 국가나 독점의 인위적 작용이나 왜곡이 
배제된 자유 경쟁 시장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는 그러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각 상품의 가치란 무엇인가? 그 상품의 가치란 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시간(노동량)을 뜻한다. 따라서 쌀 1말과 옷감 5필이 서로 교환된다면 
쌀 1말 생산에 들어간 평균 노동량과 옷감 5필에 들어간 평균 노동량이 같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만일 이런 식으로 동일한 평균 노동량이 투입된 상품들끼리 
교환이 이루어진다면 화폐의 존재가 따로 필요하지 않는데 왜 돈이 출현하게 될까? 

생각해보자. 쌀 1말=옷감 5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쌀 1말=콩 10되, 또 쌀 
1말=보리쌀 2말, 쌀 1말=두루마기 1벌… 등일 수 있다. 이때 쌀 1말은 옷감 5필과 
콩 10되, 보리쌀 2말. 두루마기 1벌 등이 서로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 
주는 기준점이 된다. 이때 이 쌀을 '일반적 등가물'이라 한다. 물론 콩을 중심으로 
다른 상품들의 가치를 재기 시작하면 콩이, 또 옷감을 중심으로 하게 되면 옷감이 
일반적 등가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항상 쌀 1말을 일반적 등가물로 
삼음으로써, 쌀 1말이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작용하도록 약속한다면, 이 쌀이 바로 화폐가 된다. 이제 쌀은 가치 측정의 기준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생산물을 쌀과 교환하고 다시 이 쌀을 가지고 또 다른 상품을 구입할 수가 
있게 된다. 이 쌀의 역할을 한 것이 옛날에는 소금, 조개껍질, 돌멩이, 구슬, 뿔, 
동물가죽, 가축Vieh 등이었고,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와서는 금, 구리, 은 등이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날 자본Kapital이라는 말도 어원적으로 가축의 
머리(首, Viehh upter)에서 왔고, 영어로 요금이나 보수를 뜻하는 'fee'도 
재미있게도 독일어 'Vieh'(가축)와 관계 있다. 러시아의 화폐 단위 루블이나 
인도의 루피도 은silver을 뜻하는 말이지만 원래는 가축 떼Viehherde를 
의미하였다. 이 모든 것은 금이나 은이 화폐로 쓰이기 이전에 가축 등이 배타적인 
일반적 등가물, 즉 화폐로 쓰였음을 말해준다. 

돈의 원초적 의미와 그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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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았듯이 돈은 일차적으로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며 교환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와 분업이 발달하면서 상품을 위한 생산, 팔기 위한 
생산, 돈을 벌기 위한 생산이 더욱 발달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제 갈수록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생산이 발달하게 된다.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를 위한 생산, 
드디어 '돈 놓고 돈 먹는' 사회가 온 것이다. 돈을 생산수단과 노동력에 투자하여 
상품을 만들고 이를 팔아서 마침내 처음에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 즉 이윤을 
거두는 것이다. 이때의 돈은 일반 화폐가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낳는 돈, 즉 
자본이다. 
그리하여 화폐는 마침내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변모, 전혀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쌀이나 옷감, 가축 같은 것이 화폐로 쓰일 적에는 그 축적에 한계가 
있었으나 금·은, 나아가 종이돈이나 수표가 화폐로 쓰이게 되면서 그 물리적 
축적의 한계가 상당히 극복된다. 드디어 무한 축적을 향한 세계적 운동이 
진행된다. 그것도 개인적인 필요나 삶의 의미 찾기 등과는 무관하게…. 아니, 
그것은 차라리 수많은 생명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토대로 해서 무한 축적 
운동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은 상품 생산이 위주로 되는 경제에서는 시장에서 '팔릴' 
상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으로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제 상품 생산자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 관계에 돌입한다. 다른 생산자보다 더 좋은 상품을 더 싸게 
만들어야 마침내 팔리는 것이다. 팔려야만 그 상품은 소비됨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 따라서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그 생산자도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 결국 사회적 인정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 온 사회에 전개된다. 그리하여 
공동체적 관계 대신 살벌한 경쟁관계가 확산된다. 그때 모두가 외치는 구호는 "너 
죽고 나 살자!"이다. 그래서 생존 경쟁을 위해 개별 자본은 그 노동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축적의 무한성이다. 이제 화폐라는 것이 모든 구체적인 
사물들의 다양한 성질을 오직 숫자의 형태로 추상화하여 탈개성화함으로써 '일반적 
등가물'이 되지만, 바로 그만큼 노동력을 상품화한 개별 인간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속으로 깊이 편입된다. 그리고 피와 땀과 눈물에 기초한 투쟁(생산성 
향상 운동, 경쟁력 향상 운동)에 기초하여 무한 축적 운동이 일어난다. 마치 
숫자에 무한대가 있는 것처럼, 회계장부 상에 수치로 기록되는 자본의 축적도 
무한대를 향해 달린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축적 운동의 무한 확산은 그 축적의 물적 토대인 무수한 
생명체들(인간과 자연 모두)의 삶을 제로에 수렴시키는 것과 동시에 전개된다는 
것이다. 자본의 생산시간을 무한대로 늘려갈수록, 노동력을 파는 이의 삶의 시간은 
줄어든다. 일하는 시간에는 전혀 딴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일하지만, 밥 
먹으면서도 일하고 화장실에서도 일을 생각하며 가족 소풍을 가서도 일을 구상하며 
잠잘 때도 일을 걱정해야 한다. 휴식과 휴일조차 일을 위한 재충전의 의미로서만 
의미가 있다. 자본 축적의 무한한 운동 위에 발버둥치는 지구촌 인간들의 삶(삶의 
자율성)은 제로를 향해 달려간다(60억 ÷ ∞ = 0)! 여기엔 일차적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해당되나 수많은 주주들이나 기업가, 자본가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무한 축적을 위한 경쟁에서는 장기적으로 패자와 승자가 모두 희생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대개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느끼는 행복이란 상대적 
우월감(상대적 박탈감의 반대)에 따른 것일 뿐이며 그것조차 일시적이다. 

돈의 위력: 돈이 곧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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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축적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화폐, 마침내 '금융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엔 
투기의 수단, 투기의 대상으로 등장한 화폐, 과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더 많은 
돈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이 행복한 것처럼 보이나, 결코 그것은 내면의 만족감을 
갖다줄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런 행복은 평화적·항구적 성질을 띨 수 없다. 
빼앗길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더 많이 불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며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더 많은 돈을 
추구할까? 
그것은 이 사회가, 그리고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돈에 힘(권력)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원래는 사람의 필요(쓸모)를 위해 돈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 돈에다가 
사람들이 무한한 힘을 부여함으로써("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노라"=황금만능주의 
내지 물신성) 마침내 돈이 엄청난 위력을 떨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돈에 무한한 
신뢰를 부여함으로써 사람보다 돈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그래서 돈이 곧 권력이 
되었다. "돈이 곧 신이다!" 

돈이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돈이라면 못할 게 없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돈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를 경험한다.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 나중에 가서는 그들로부터 매우 낯선 것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 
바로 이것이 '소외Entfremdung'의 원래 의미다. 이 '화폐 소외'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서로간에 인간다운 사회적 관계들을 허물어뜨리고 상호 치열한 
경쟁관계에 돌입한 것, 그리고 사람들이 사물에 불과한 화폐에다 무한한 
신뢰(권력)를 부여한 것이 놓여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동전의 양면이다. 
공동체의 붕괴와 화폐의 득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인정이 넘치던 한 농촌 마을에 대학교가 들어섬으로써 하숙방과 자취방이 
불티나고 돈이 대량으로 흘러 넘치면서 마을 사람들 인심이 매우 고약하게 
변해버린 경우를 들 수 있다. 

다시금 삶의 진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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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지금 시점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돈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일상 생활은 어차피 돈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돈에 파묻힌 삶의 의미를 어떻게 하나씩 되찾아 나갈 것인가? 
첫째, 돈의 논리보다 삶의 논리를 더 크게 따르는 작은 실천을 축적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조차 돈(수익성)의 논리와 삶(인간성)의 논리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루며 삶의 전 과정에 개입해 들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삶이라는 
양극단의 중간쯤 어디에서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돈의 논리로부터 
빠져 나와 삶의 논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재벌급 회장이 부인으로부터 
황혼 이혼 소송을 당하자 그간 악착같이 벌었던 수백 억의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돈의 논리로부터 삶의 논리로 이전한 것이 아니라 돈의 
논리가 다른 옷을 입은 것에 불과하다. 자기 재산을 위자료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장학금으로 변신시켰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의 
정기 예금을 더 이상 예치하지 않고 찾아서 사정이 급한 이웃에게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은 돈의 논리를 삶의 논리로 전환하는 시도이다. 

둘째, 일상 생활의 화폐의존도를 갈수록 줄여나가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자급한다든지 일부 곡물을 자급할 수 있다. 남는 것은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책도 일일이 사기보다는 친구끼리 서로 빌려 볼 수 있다. 
책상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옷도 맞추거나 사기보다는 옷감만 사서 
직접 지어 입을 수도 있다. 세탁이나 음식물, 청소 등을 돈으로 해결하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 간소해야 한다. '자발적 간소함'이나 
'선택한 가난', '청빈' 등의 개념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나아가 사회적으로는 '공공 영역'을 강화함으로써 개인적 지출을 줄여나가고 
공동체적 삶이 가지는 시너지 효과를 십분 살려야 한다. 특히 토지 및 주택 문제, 
육아 및 교육 문제, 보건 및 의료 문제 등은 개인적 해결이 아니라 '공개념'을 
통한 사회적 해결이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존재 양식의 삶을 통해 삶의 내용과 과정을 풍성하게 창조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돈은 무한하지만 삶은 유한하다. 유한한 삶을 끝까지 희생시키면서 돈을 
무한히 모으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바, 더 많은 
것을 축적하려고 하는 '소유양식'의 삶이 아니라 존재와 창조의 기쁨, 나눔의 
기쁨, 공존의 기쁨, 삶의 여유를 추구하는 '존재양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존재양식의 삶을 살게 된다면 사람들은 돈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날마다 풍요를 
느끼면서 삶의 향기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나아가 존재양식의 삶을 
사회구조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자율·자치의 생명공동체'를 진지하게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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