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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artistry �) <1Cust187.tnt6.ta> 
날 짜 (Date): 2000년 6월 25일 일요일 오전 09시 00분 34초
제 목(Title): 한21/서평 시민과학자로 살다 


한21/서평 시민과학자로 살다, 다카기 진자부로  
파괴의 과학은 종말을 고한다 
핵화학자에서 반핵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다카기 진자부로 자서전 



깊은 숲 속에서 숲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숲을 보기 위해 숲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시민과학자’라 불리는 다카기 진자부로(62)는 숲을 보기 위해 숲에서 걸어나온 
예외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지금 대장암에 걸려 투병중이다. 최근 한글 
번역본이 출간된 <시민과학자로 살다>는 그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대면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술회한 자서전이다. 

이 책은 평범한 일본 가정에서 자라나 촉망받는 원자핵화학자로 일하다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어느 실천적 지식인의 궤적이다. 그는 “40년 
동안 ‘핵’과 함께 일해왔으나, 처음 3분의 1은 원자핵 이용을 추진하는 체제 
내의 연구자로, 나머지 3분의 2는 거대한 연구·개발체제에서 뛰쳐나와 독립적 
비판자이자 시민활동가로 살아왔다”고 자신의 삶을 요약한다. 

“핵의 20세기”에 태어난 다카기는 원자핵 연구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인 오토 한과 슈트라스맨이 핵분열 현상을 발견한 1938년, 보통의 일본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엔 괄괄한 성격의 할머니에게, 
“사무라이는 항상 뜻을 높은 데 둬야 하고 먹지 않아도 배부른 척하는 기품을 
가져야” 하며, “만약 뜻하는 바와 같지 않을 때에는 하라키리(할복 자살)를 하는 
한이 있어도 절도를 지키는 게 사무라이”라는 무사도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앞길이 유망한 첨단과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에서 원자핵화학을 전공한 
뒤 그는 원자로 건설이 주업무인 도시바 계열의 
‘일본원자력사업주식회사’(NAIG)에 취직한다. 그는 이때의 자신이 “아주 
세분화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거기에서 전문가가 되려는” 전형적인 전문가의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에, “깊은 숲 속에 들어간 사람처럼 나무 하나하나는 눈에 
보였지만 숲 전체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자력발전소라는 거대한 
플랜트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그에게는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한가, 
원자력발전이 과연 인류에게 바람직한가를 판단할 자료는 전혀 없었다.” 




한 사람의 과학자, 한 사람의 전문가로 일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다카기는 도쿄대학 원자핵연구소로 적을 옮긴 
뒤, 독일의 막스-프랑크 핵물리연구소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으면서 일본과 독일의 
원전건설 반대운동을 접한다. 이때부터 그는 한 가지 고민을 시작한다. “국가나 
산업의 이해에 맞서 국가나 산업의 프로젝트를 비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의 결론은 그로 하여금 도쿄대학을 사직하도록 만들었다. 73년 
8월, 다카시는 “대학이나 기업 시스템이 주도하는 이해관계를 떠나 시민들 
속에서,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한명의 시민으로서 ‘자립적인 과학’(시민의 
과학)을 하겠다”고 선언한 뒤 연구실을 떠났다. 그뒤 그는 ‘시민과학자’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왔다. 

대학을 떠난 그는 먼저 <과학> 75년 5월호에 플루토늄의 독성에 대해 경고하는 
글을 발표한다. 그의 이 글은 아무 반성도 없이 원자핵 연구를 찬양하는 G.T. 
시보그라는 과학자의 글에 대한 반발감에서 비롯했다. “플루토늄은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위험한 독성물질 가운데 하나이다. 플루토늄은 핵무기 재료로도 쉽게 
이용될 수 있으며, 플루토늄의 대규모 이용은 극단적인 관리사회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시보그의 연구는 미국의 원폭 실험에서 수거한 죽음의 재에서 
아인슈타늄이라는 신원소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만 자랑삼아 서술하고 있었다.” 

그는 차츰 원자력 이용에 비판적인 연구자에서 원전반대 시민운동가로 변모해갔다. 
1975년 8월 교토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원전 반대 집회가 열린 다음달, 그는 
원자력자료정보실을 만들어 반핵운동을 이론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당시엔 원자력 발전이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하다”는 신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원자로 안전성 연구(이른바 <라스무센 보고서>)의 결론은 
“원자로에서 멜트다운과 같은 파국적인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운석이 양키 
스타디움에 떨어질 확률보다 작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드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86년 소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원전에 대한 ‘안전 신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지난 98년부터는 “대안적 과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다카기 학교’를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개설했다. 그가 교장을 맡고 있는 이 학교는 그해 겨울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화학물질과 생활’ 등 현대과학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내용으로 하는 시민강좌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다 대장암이라는 날벼락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절망 대신 희망을 말하는 불굴의 시민운동가다. 그는 
지난 97년 “플루토늄의 위험을 경고하고 시민으로서 활동한 과학자”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안적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을 수상했다. 평생 반핵 
시민운동에 앞장서 온 그가 삶의 막바지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과학자들뿐 아니라 
세계의 시민이라면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다. 

“오늘날 현대과학기술은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파괴와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핵기술은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과학기술은 
철저하게 비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민과학자로 살다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녹색평론사(053-742-0663) 펴냄, 7천원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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