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artistry �) <ip216.tacoma18.w> 날 짜 (Date): 2000년 5월 25일 목요일 오후 03시 38분 53초 제 목(Title): 기사/10번째 경주남산신성비 발견 유적지] 10번째 경주 남산신성비 발견 모두 200개 가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신라 남산신성비가 최근에 또 발견됐다. 지난 94년 9번째비가 발견된 이후 6년여만에 10번째비가 발견된 것이다. 남산신성비란 신라 진평왕 13년(591년) 신라가 수도 경주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인력을 징발해 경주 남산에 있던 기존의 남산성을 새로 만들면서(신성<新城>비란명칭은 이에 연유한다) 성벽 일정 구간마다 성벽 축조기록 내용을 담아 남긴 기록이다. 최근 10번째비가 발견됨에 따라 신라 지방통치사 연구에 획기적인 지평을 열게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洪性彬)는 남산 전역(史蹟 제311호)에 대한 보존·정비 계획의 하나로 이 일대 정밀지표조사를 벌이던 중 지난 18일 경주시 배반동 751-3 논둑(九黃洞 옥다리들 逸名寺址 부근)에서 글자가 새겨진 비석편을 발견해 분석한 결과 남산신성비임을 확인했다고 25일 발표했다. 이 비석은 높이27㎝ 폭16.5㎝ 두께13cm로 완전한 형태는 아니며 파편이고, 머릿말에 해당하는 3행5줄의 명문 15자가 확인됐다. 한 글자의 크기는 2.5×2.5cm로 지금까지 발견된 9개의 신성비 중 완형인 제 1,2,3,9비 등의 예로 보아 파괴되기 전 비문은 65×59cm로 추정되고 있다. 비석은 붉은색이 도는 화강암이며 파손된 후 남산신성에서 약 1.1km 떨어진 현재의 출토지까지 이동된 것으로 판단된다. 새로 발견된 남산신성 제10비에는 `辛亥年二月卄六日南山新城作節如法以作後三年崩破者罪敎事爲聞敎令誓事之'라는 글자가 확인되는데 이를 풀면 `신해년(591년) 2월26일에 남산신성을 만듦에 법에 따라 만든 지 3년 안에 무너져 파괴되면 죄로 다스릴 것임을 널리 알려 誓約케 하노라'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신성비와 같은 내용이다. 남산신성비는 진평왕 13년 남산신성이라는 성을 축성한 후 세운 碑로, 여기에는 축조연대를 시작으로 성이 파괴되면 죄로 다스린다는 내용과 축성관련자 집단과 여기에 관여한 관직,사람이름, 구간별 축조를 맡은 거리 등을 담고 있다. 이런 내용은 『삼국사기』에도 똑같이 남아있어 『삼국사기』의 정확성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남산신성은 전체적인 규모가 2천854보(步)로 기록되어 있고 이미 발견된 비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 1개 축성집단의 담당거리가 대략 6∼21보인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새로운 남산신성비가 계속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관련, 진홍섭 박사는 남산신성비 숫자가 대략 200개쯤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발표한 바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비만으로도 신라가 각 지방을 어떻게 통치했으며 얼마나 중앙집권적이었는지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