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Tao ( 烏有先生) 날 짜 (Date): 2000년 3월 21일 화요일 오후 11시 50분 00초 제 목(Title): 신규탁/ 김용옥 불교이해 정확 “선어록도 해설돼야 한다” 변상섭씨가 쓴 〈김용옥 선생 그건 아니올시다〉(시공사)에 대한 서평형식으로 쓰여진, 연세대 신규탁교수의 ‘김용옥 선생의 선불교 이해는 정확하다’에 따르며 당나라 선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사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이런 체험’을 제자들에게 맛보이려고, 스승들은 온갖 방편으로 제자들을 지도한다. 김용옥 선생의 선불교 강의도 ‘이런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올의 선불교 이해는 주체적이면서도, 그 주체성이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 그렇다고 김용옥 선생의 선어록 해석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선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 도올의 식견은 탁월하다는 것이 신교수의 입장이다. 신교수는 나아가 “〈벽암록〉은 해설해서는 안된다”는 변상섭씨의 견해에 동의 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인간의 언어와 사유가 불완전하지만, 인간들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언어나 사유를 정확하게 써서 세계와 인간을 설명·이해하는 도구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신교수에 의하면 사유와 언어를 포기하는 삶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선문답을 바라보는 김용옥 선생의 입장은 바로 합리성의 마지막 벼랑까지 몰고 가서 포기하지 말고, 언어와 사유로 ‘초합리’를 까발려 보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사들의 대화는 게다가 긴장감으로 일관되고, 긴장감은 당시의 구어(口語)로 생생하게 정착돼 있다. 선어록이 읽혀야 되고, 합리성에 더한 언어와 사유로 해설돼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신교수의 글에 따르면 언어와 문자를 금기시하는 선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언어와 문자를 많이 남겼다. 그들은 언제나 당사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남이 이미 사용한 언어나 문자가 아닌 자신의 것으로 세상을 체험하도록 한다. 자신의 체험에 안주하여 그 체험을 재료로 삼아 제3의 체험을 추론하는 것도 싫어한다. 자신만의 주체적인 체험을 수도자에게 알려주고 싶다보니, 선사들은 이 말 저 말을 하게 됐다. 말을 이용하여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를, 듣는 이 스스로 터득하도록 한다. 때문에 선어록도 해설돼야 한다는 김용옥 선생의 입장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이 신교수의 입장이다. 김용옥씨의 경전 번역에 오류가 많다는 변상섭씨의 지적에 대해 신교수는 “김용옥 선생의 번역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변상섭씨가 〈김용옥 선생 그건 아니올시다〉 제2장에서 예로 든, ‘재유어언 시간택 시명백’에 대한 도올의 번역 “인간의 언어가 있게 되면 곧 선택적 판단에 떨어지지 않으면, 곧 명명백백한 절대경지로 가게 되지”는 잘 옮겨졌다는 설명. 어법적(語法的) 시비보다 문맥 속에서 해석을 읽으면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신교수는 마지막으로 동양철학계 전반에 퍼져있는, 잘못된 ‘고전 읽기’를 이 글에서 비판한다. 고전은 시대와 역사의 산물. 소위 초시간적인 텍스트는 없다. 불경 등 여러 경전은 역사의 산물이고, 인간 사유의 산물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들 고전을 ‘불변의 진리’ 내지는 ‘도(道)’를 통하기 위해 읽어오고 있다. 이런 고전 읽기는 잘못이라는 것이 신교수의 설명. 그런데 도올은 텍스트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읽으려 했고, 시대를 읽으려 한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사유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했는가를 현재의 지평 위에 재현하려 한다. “도올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신교수는 밝히고 있다. 趙炳活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