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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1999년 11월  8일 월요일 오전 11시 54분 32초
제 목(Title): 마리산행기




산에 가 본 지도 두 달이 다 돼어 가니 몸도 찌뿌둥하고 머리 속도 어수선하다.
일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망설이다가 토요일 저녁 예보를 보니 비가 올 
확률은 적다고 해서 일요일 산행을 감행하기로 했다.( 역사 보드에서 공고해서 같이 
갈라고 했는 데, 날씨때문에 공고를 못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돼면 역사 
보드분들과 같이 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강화행 버스를 타기위해 영등포 
역전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쯤. 역 건너편에서 강화 읍으로 가는 버스는 10분 마다 
있었다. 

강화읍으로 가는 길가에 은행 나무는 누르 푸르죽죽한 채 말라서
가끔 부는 바람에 그 잎파리를 우수수 흩날리고 있었다.
곳곳에 러브 호텔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일테면, '여관 켈리포니아'  같은…
휴일 강화로 가는 행락 인파가 밀려 1시간 걸릴 길이 2시간 꼬박 걸린다.
입 안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강화 읍에 도착해 직행 버스를 타고 종점인 화도에 도착한 것은 12시 20분쯤.

산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아직도 단풍이 많이 남아 있어 길 좌우로 울긋 불긋한 게 볼만하다. 
계곡 물은 많이 말라있었다.
30분쯤 올라가다 보면 기도원이 나오는 데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왼쪽은 참성단으로 곧장 올라가는 계곡 코스로 포장된 길이었고,
오른쪽은 능선을 타고 빙 둘러서 참성단으로 가는 산길이었다.
버스가 막히는 통에 산행 출발이 늦어 서둘러야 했지만 오른쪽 길을 택했다.
왜냐하면 그 오른쪽에는 '단군이 오르신 길'이란 팻말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길은 아주 쉬운 편이었지만 막판에는 경사가 가파랐다.
중간에 배가 고파 1시 20분쯤 능선에 막 오른 고개 지점에서 사온 김밥을 
까 먹었다.
능선 너머에 배 엔진 소리는 들리는 데 짙은 운무가 끼어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이 능선 코스는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는 점에도 끌려 택했는 데
날씨가 안 도와주어 반쪽 짜리 산행이 되어 매우 아쉬웠다.

점심을 먹고 곧 출발, 바위를 두 어개 오르내리락 하다 보니 금방 참성단이 나온다.
참성단에 오른 시각은 2시 정각쯤.
산 꼭대기에 조그만 성처럼 돌로 네모난 벽을 쌓고, 그 서쪽에 제단을 쌓아 놓고 
그리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축조 시기는 기원전 2283년.
단군에 관련된 이 엄청난 시기에 대해 불과 얼마 전까지는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했으나, 다들 알다시피  80년 전후 재야 사학자들의 거센 주장으로, 
이 것을 무시하던 주류 사학계에서 지금은 슬그머니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판국이다. 
중국 사서들을 비롯한 많은 사서들에서 단군의 건국 연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상당히 일관성 있는 기록들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사학계는 아마도 이런 식으로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계속 쏙쏙 뺏지 
않을까…

요즘, 종교계 일각에서 단군을 종교적인 인물로 치부하고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는 데 이 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무식한 소치이다.
단군은 분명히 현재 학계에서 역사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홍익 인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렇듯 그럴듯한 건국 이념을 내세운 나라가 있을까?
단군에 대한 자세한 공식적인 역사는 내려오지는 않지만, 
이 것 저 것 보이는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엄청 위대했던 인물
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본다.
아마도 상고 시대의 동북 아시아 문명은 단군을 중심으로 한 고조선 계열이었다는 
게 거의 확실하지 않나 싶다.
물론, 지금은 그 후손들이 못나서 찌그러져 있기는 하지만…
중국도 상고 시대인 은나라 조차도 자기 민족의 역사라고 확실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참성단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단군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는 철판으로 만든 기다란 출입 금지 표지판이 
가로 막고 있었다.
나는 배낭에서 등산용 컵을 꺼내, 강화읍 버스 터미날에서 산 캡틴 큐를 반 잔 
정도 따르고, 2 천원 짜리 구운 오징어를 들고 출입 금지 표지판을 넘어 제단 
앞에 나갔다.
사실, 많이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단군 할아버지를 멀뚱 멀뚱 보고만 간다는 
것이 나로서는 더 용납 못 할 것이었다.
캡틴 큐와 구운 오징어를 제단 위에 놓고 나는 절을 두 번 했다.

일어나 손을 모으고 섰다.
그리고 속으로 얘기했다.

'단군 할아버지, 당신이 서신 이 자리에 4281년 이란 세월을 뛰어 넘어 
이렇게 제가 섰습니다. 
제가 바친 오늘 제사 메뉴가 매우 맘에 안 드실 줄 압니다.
담엔 좀 더 맛있는 걸로 푸짐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술은 빽알로 할라고 했는 데,  아침부터 짱께집을 못 찾아서 그만 싸구려 국산 
양주로 했습니다.
오징어는 좋아 하시는 지요?
올해 오징어가 대풍이라 싼 김에 하나 샀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뜻 깊은 시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당신의 뜻이 온누리에 펼쳐지길 빌겠습니다.'

이랬으면, 얼매나 좋았을까…
실제로 나는 쪽 팔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뒤에 수 많은 팬들이 나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것에…
그 순간, 그런 분위기에서는 나 혼자 완전히 똘아이된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왠지 내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 들어 끝까지 뻔뻔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제단에서 내려와 컵에 담긴 캡틴 큐를 마시고 오징어를 잘라 먹었다.
옆에 있는 꼬마한테 오징어를 권했더니 이 눔이 안 먹겠다고 한다.
이 눔이, 이 오징어가 보통 오징어인 줄 아나…
다량의 캡틴 큐를 다 마시고 보니 제단의 돌이 노랗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돌에 낀 이끼가 말라서 실제로 노랬다.

마리산(공식적으로는 '마니산'이지만 원래 우리 이름은 '마리산'이고 '머리산'이란 
뜻이 랜다. 실제로 강화읍 버스 터미날에서도 '마리산'으로 씌여 있어서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의 정상은 참성단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참성단보다 도리어 낮아보였지만, 참성단은 돌을 쌓아서 높아진 것을 고려하면
정상은 그 쪽이 맞는 것 같았다.

정상의 바위 위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바위 바로 밑에서 한 일행이
돼지 머리 저며 눌러 썰은 고기를 펼쳐 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아닌가.
잠시 쳐다보며 입맛을 다지고 있으려니 밑에 있던 사람 한 명이 눈치를 챘는 지
찡그리며 올려다 본다.
'그래, 내년에는 이 돼지 머리 고기를 단군 할아버지께 바치자…'

조금 더 내려가니, '참성단 중수비'가 나타난다.
1716년 行유수(?)  최석항이 쓴 글로,
'…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한다. 
수 천년이 지났으니 풍우에 씻기고 깍여 서북 양면이 반쯤 무너졌고 동편 계단이 
기울어져 고을 여러 어른이 만나면 개탄한 지 오래되었다…. 
하물며 이 곳은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되시는 단군이 당요(중국의 3황 5제 중 
요 임금을 가리킨다)와 같은 시대에 나시어 손수 단을 쌓아 청결히 하늘에 제사
하시던 곳임에랴. 수 천년 우리 후손들이 이 곳을 바라보면 반드시 경건한 마음을 
일으킬 것인 즉 어찌 바로 고치지 않을 것인가? '
이 비문을 받아 적는 도중에 갑자기 온통 흐려있던 하늘의 한 구석이 개더니 
찬란한 햇살을 비추었다.

함허동천을 향해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험했다.
바위로 이뤄진 능선을 한 시간이나 타서야 계곡으로 내려가는 고개에 닿을 수 
있엇다.
오랜만에 산행을 한데다 험한 암릉을 오래 타서 왼쪽 무릅의 인대가 늘어났는 지
불편했다.
계곡을 다 내려와 함허동천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4시쯤…
등산 진입로 좌우의 은행 나무는 노랗게 잘 물들어 있었다.
보도는 온통 은행 잎으로 덮혀 있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어떤 뇨자는 아예 거기에 요염한 자세로 누워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 옆 벤치에 혼자 앉아 남은 캡틴 큐를 홀짝 홀짝 마시고 오징어를 
다리만 남기고 다 먹어 치웠다.
그렇게 1 시간쯤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드디어 빗줄기는 뿌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 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길 건너편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니 강화읍으로 가는 버스는 5시 
40분이나 
되서야 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여기서 30분 정도 더 걸어가 전등사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가서
탄다는 것이다.
컵 라면을 하나 사먹으면서 가게 할머니에게 물어보닌 할머니도 단군은 틀림없는 
실재 인물이라고 확신을 하신다.
이렇듯, 시골 할머니도 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찌 된 
사람들인가?
진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렇듯 아주 평범한 것이다.

돌아가는 버스는 올 떄보다 더 막혔다.
강화읍까지는 50분 가까이 걸렸고,
강화읍에서 지하철 5호선 송정역까지 오는 데는 2시간 20분이나 걸릴 정도로 
길이 막혔다.

l 경비
- 영등포역~강화읍 3,200 원
- 강화읍~ 송정역 2,500 원
- 강화읍~ 화도 1,100원
- 함허동천~ 강화읍 1,180원
- 구운 오징어 1 마리 2,000원,  캡틴 큐 1병 2000원, 컵 라면 1,000원,  음료수 
700원
- 총 13,6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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