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5년08월01일(화) 22시09분43초 KDT 제 목(Title): 뉴른베르크 전범재판 음... 라이너스 님이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에 관해 물어오셨는데요, 뉴른베르크 전범재판 및 도꾜 전범재판은 정말 복잡한 문제이죠. 이후 이 전범재판은 정말 많은 국제법 해석 및 역사적 관점 등의 문제를 낳았으니까요. 라이너스 님이 국내에 이쪽에 관한 책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셨는데, 저도 그래요. 이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을 자세하고 체계적이며 객관적으로 쓴 좋은 책은 저도 본 적이 없군요. 소수의 책들은 너무 편파적 시각이 두드러진 것들이고. 도꾜 전범재판 경우에는 일본의 어느 저널리스트가 자세히 전범들의 범죄행각들에 대해 파헤치며 분석한 책을 본 기억이 나는 것 같은데, 아직 우리나라가 세계화가 덜되었는지 멀리 뉴른베르크 전범재판 방면의 명저들은 번역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제가 아는 사실도 체계적인 책을 본 것이 아니라 이책저책 조금씩 등장하는 내용을 짜맞춘 것이라 자세한 것은 아닙니다. 뭐 하지만 이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에 등장한 전범들과 이 재판의 문제점 등에 관해 조금 이야기해보죠. 사실 이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역사를 통틀어 대단히 특이한 경우였습니다. 세계 역사를 들춰봐도 전쟁 종료후에 승전국측에서 패전국이 전쟁 중에 벌인 여러 범죄 사항에 대해 따져가며 지도자들을 목매다는 일 같은 것은 없었죠. 이 논리대로 하면 제 1차 세계대전 경우에도 독일의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제깍 교수형에 처해야 했지요. 그러나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패전 후에도 국민 영웅으로 추앙되었고 힌덴부르크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을 지내죠.(힌덴부르크 장군과 그 참모장 루덴도르프 장군은 탄넨베르크의 전투를 지휘한 주역입니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는 교전국이 전쟁 중에 벌인 행위는 종전협상에서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배상하고 책임지는 형식이었지 각 전쟁 종사자들의 행각을 모두 일일히 따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연합군 측의 심판이 일어나면서 두고두고 역사가들의 아주 깊은 고찰 대상이 되었죠. 전범들의 분류만도 엄청나게 복잡한 것들이었죠. 1급 전범들은 이십 수명 남짓했던 것으로 기억되며 이들은 모두 히틀러의 아주 긴밀한 측근들 및 전쟁수행의 총책임자 였습니다. 이들은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 종전시 독일 최고책임자 칼 되니츠, 국방군(Wehrmacht) 참모총장 빌헬름 카이텔, 국방군 작전부장 요들, 군수장관 슈페어 등등 이었죠. 이들은 상당수 교수형 또는 2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습니다.(다 늙은 이런 사람들에게 20년형은 종신형이나 마찬가지죠) 그 하위 분류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주로 전범으로 걸려들어간 사람들은 SS 계통이 많았죠. 당장 Waffen-SS에서 각종 부대 지휘관들이 별 죄목도 없이 무조건 영창에 들어갔고 유태인 학살관련자들이 또 대거 들어갔습니다. 또 게다가 독일의 전쟁영웅 들이 마구 끌려갔습니다. 전공이 혁혁했던 수많은 독일의 장교들이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도 끌려갔죠. (이건 좀있다 자세히 설명하죠.) 1급 전범들의 경우 그들에게 씌운 죄목은 실로 이후 국제법 해석의 엄청난 연구과제 를 남기게 됩니다. 왜냐고요? 실로 모든 것이 전례없던 일이었으니. 특히 중요했던 것은 국방군 참모총장 카이텔 원수 및 작전부장 요들 원수 등에게 적용된 죄목이 있습니다. 사실 카이텔 원수는 어찌보면 충실한 히틀러의 개였지요. 그는 실무면에서 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히틀러에게 사사건건 반대하는 그런 체질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는 히틀러의 명령에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고, 그대로 단순히 시행했습니다. 요들 원수는 1940년의 베제 작전(노르웨이 침공작전) 이래로 국방군의 작전관리 문제를 총괄하였죠. 그는 카이텔보다는 훨씬 자세가 건전했고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단히 충실했지만 거기에 빠져 히틀러의 명령에는 전통적 군인의 프로정신에 입각, 어떤 이견을 제기하는데에 몹시 회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적용된 범죄는 바로 이것, 즉 전쟁행위 방조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히틀러가 내린 여러 비인간적 명령들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되는 것을 방조했다는 죄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논란이 많았던 것이 군인이란 위치가 과연 국방군 총사령관 히틀러의 명령에 순순히 복종했다고 교수형에 처해야 하는 것인가는 문제였죠. 설사 그것이 도의적 문제가 된다해도 이를 역사적으로 이렇게 응징해야 하느냐는 것은 매우 차원이 틀린 문제니까. 사실 이들에게 적절한 죄를 준다면 차라리 개인적으로는 독일 패전 방조죄가 딱 어울리겠죠. 독일의 장군들이 히틀러의 억지를 꺾고자 노력했을때 특히 카이텔이 히틀러를 감싸고 돌아 많은 경우 실패했죠.(히틀러는 주위의 총체적 반대에 직면 했을 때만 그의 의견을 꺾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독일은 승리의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했으니까요. 그러나 뉴른베르크의 죄명은 좀 애매했습니다. 공군 총사령관 괴링의 경우는 더더욱 여기에 해당이 많이되죠. 괴링의 무모한 자만 때문에 독일군은 곳곳에서 엄청난 곤경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이 괴링의 엄청난 욕심은 공군을 필요 이상으로 확장시키기에만 바빠 육군 전력 약화에 많은 공헌을 했지요. 어찌보면 연합국 측에서는 괴링에게는 표창을 줘도 모자랐을 겁니다. 어쨌든 괴링의 경우는 사사로운 범죄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가지로요. 대단히 탐욕적이었고 각종 비리가 많았습니다. 괴링은 막상 전범으로 체포된 후에는 그의 운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재판중 처음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여러 추한 모습을 많이 보이고 눈물도 종종 보였습니다. 그 뚱뚱한 거구가 사복 차림으로 눈물짓는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죠. 그는 자신이 교수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결국 교수형당하기 얼마 전에 음독자살을 택합니다. 고이 간직하던 독약앰플로. 이 독약앰플로 히틀러, 히믈러, 에바 브라운, 롬멜, 클루게 등 많은 이들이 죽습니다. 독일 전쟁 최고위층 및 원수직 이상들은 대부분 독약앰플을 휴대하고 있었죠. 그것은 만약 이들이 포로가 된다면 그것은 독일의 수치일 것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자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에게 앰플을 씹게 해서 그녀의 죽음을 확인 후에 자신도 그걸 씹고 권총자살하고, 히믈러는 쫓겨 다니다가 최후를 직감하고 역시 앰플을 씹고 자살하죠. 롬멜의 경우는 조금 틀려 7월 20일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을 강요받고 앰플을 씹었으며, 클루게는 서부전선 총사령관 재임중 히틀러의 의심을 사서 죽음으로 구차한 모습을 피했죠. 이 1급전범들 중에서 가장 귀감이 되는 인물로는 단연 군수장관 슈페어였습니다. 슈페어는 연합국측 논리에서는 1급 전범들 중에 정말 연합국에게 해악이 되었던 인물이었죠. 슈페어는 원래 단순한 전문 건축가였습니다. 그런데 전직 군수장관 토트 박사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 직위를 맡아 정말 훌륭히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전시 생산을 연합군의 맹폭격 중에도 꾸준히 올려 1944년에 최고조에 올려놓았고 누구보다도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전쟁 말기에는 히틀러에게 서슴치않고 패전을 선언했습니다. 슈페어는 1945년 초에 소련군이 독일 상부 실레지아의 공업지대를 점령하자마자 즉시로 `독일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로 시작되는 보고서를 히틀러에게 올려서 신속한 강화와 재건을 주장했고 히틀러가 독일 파괴령(<-히틀러는 이 전쟁에서 살아 남은 독일인은 모두 열등한 독일인이므로 더이상 민족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독일을 깡그리 파괴할 것을 명했죠)을 내리자 이를 막는데 전력했습니다. 그리고 여타 1급전범들이 모두 자기 죄 변호에 바빴을때 그 혼자서 의연하게 모든 죄를 시인했으며(실제 적용하기 힘든 죄목들도 속죄하는 심정으로 모두 인정했다고 합니다) 매우 연합국에 협조적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경우는 진정 프로정신에 입각한 군수관리 업무에만 충실했지만 역시 카이텔이 당한 비슷한 논리에 의거, 소위 지나치게 나찌 정권에 협조적(?)이었다는 문제로 결국 중형을 선고받죠.(슈페어의 최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밖의 1급전범들은 대개 유태인 학살 등 후방의 잔학행위에 연루된 사람들로서 표면상으로는 상당수 비인도적 죄인이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급전범들 문제들은 또 매우 기가찰 노릇이었습니다. 특히 SS의 경우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책임 추궁을 당했습니다. 상당수 Waffen-SS의 장교들은 실제 국방군 육군과 아무런 차이없이 헌신적으로 조국을 위해 싸웠을 뿐이며 그들은 실로 막강한 독일의 핵심전투력이기도 하였습니다. LAH, Das Reich, Totenkopf, Viking, Hohenstauffen, Flandersberg, Hitlerjugend 등의 명문사단들은 연합국측에서 보면 실로 엄청난 골칫거리였죠. 그리고 이들은 단순 전투원이었을 뿐인데 (다소 국가주의적인 색채는 짙었지만) 상당수 고급장교들이 그대로 전범으로 재판받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은 사실 Waffen-SS들이 일부 잔학행위를 한 것들이었죠. `라인의 수비'작전(발지전투) 중에 요헨 파이퍼 전투단이 자행한 말메디의 학살같은 것들에 치를 떤 미군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이들은 또 상당수 실형을 선고받습니다. 사실상 이또한 파격적이어서 교전중 양측이 벌일 수 있는 수많은 여러 살상행위가 과연 어디까지 정당화 될 수 있느냐는 법적 문제가 남았습니다. 차라리 이건 서부전선의 문제여서 다행이었지(서부전선은 그래도 인간적이었죠), 동부전선에 이르면 제네바 조약을 인정하지 않던 소련이 해당 승전국이었기에 거의 아무런 국제법 상의 근거 없이도 소련은 마구 독일의 전쟁영웅들을 전범으로 몰아 끌고갑니다. 공군의 경우만 봐도 352기 격추에 빛나는 최고 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은 분명히 미군측에 투항했지만 소련군은 신병을 인도받아 50년대까지 억류했고 그밖에 많은 에이스들을 데리고 가 `인민의 적'이라는 이유로 각종 고문과 범행자백을 강요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잘못이었으나 승전국이라는 이유로 미-영은 일체 간섭하지 않습니다. (전차 519대 격파의 역시 최고영웅 울리히 루텔은 종전 직전에 다리절단상을 입어 화를 피하죠) 이들의 한결같은 문제는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단순한 `뛰어난 전투원' 들이 적나라하게 말하면 `너무도 많은 상대 교전국 병사를 죽였기 때문에' 응징받은 케이스까지 있었다는 겁니다. 물론 어찌보면 모두 잔학행위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승전국도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패전국만 처벌받는 것이 심대한 역사적 관점의 문제도 낳았습니다. 이들 하급전범 대부분도 명백히 처벌이유는 있었지만 어쨌든 전쟁이란 미묘한 상황에서 법 적용의 문제는 복잡한 것이었죠.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문제는, 전범 당사자들의 변론 기회가 거의 깡그리 무시당했다는 거였습니다. 증인 및 참고인 조사는 철저히 연합국측 사람들만 출석했고, 독일측 사람들은 일체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재판의 절차에서 가해자 및 피해자 양측 모두의 참고진술을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철저히 독일이 배재된, 연합국의 응징무대였습니다. 이처럼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어찌보면 긍정적인 여러 측면들도 있었습니다. 전쟁이란 극한상황 속에서도 상식 이상의 잔학행위(홀로코스트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처벌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이것은 차후 여러 전쟁에서의 잔학행위 방지 등에 관해 많은 억지작용이 될 걸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몹시 한탄하는 것은, 이런 전범재판 후에도 현재 보스니아처럼 인종청소같은 잔학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은 미국같은 초강대국에게 힘없는 약소국가에 대한 무한심판의 국제법적 기반을 제공 했다는 것들입니다. 이 논리가 잘못 적용되면 미국이 아무 나라나 시비걸어 전쟁에 이긴 후에 패전국의 당사자들에게 갖가지 전범 명목을 씌워 맘대로 처벌할 수 있는 거지요. 실제 그랬잖습니까? 뉴른베르크 재판은 어쨌든 역사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역사는 상당부분 힘있는 자들에 의해 씌여지고 처벌된다는 그런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며, 다른 측면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류에 대한 잔학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모든걸 시행하는 인간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독재(미국의 세계독재가 아닌지)하에선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으니까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