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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29일 목요일 오전 08시 31분 48초
제 목(Title): 한국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특성



교수글(논문/기고) 
한국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특성


박 명 규 (서울대 교수, 사회학) 

1. 민족주의 논의의 새로운 맥락 


민족 및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 주제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며 따라서 최근의 논의들도 새삼스러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민족 및 민족주의 관련 이론이나 논의들은 그 문제의식이 
이전의 것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최근 논의에서 보이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민족주의 자체가 독립주제로 부각되고 
있다기 보다 세계화 현상에 대한 논의 속에서 부차적으로, 또는 그와 관련된 
현상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민족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크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의 역사적 의미도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의 세계질서의 변모를 일단 세계화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최근 사회과학계의 흐름이고 또 실제로도 WTO체제의 등장과 지역주의의 출현, 
국가차원을 넘어서는 NGO의 활동 등을 통해 세계화의 추세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논의방식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된 것이지만 민족주의를 부정적 또는 제한적인 가치체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 겠다. 세계화를 위하여 
민족중심적인 태도나 가치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세계화주의자들의 주장에서는 
물론이고 민족문제를 중요하게 논의하는 학자들의 논의체계 속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종종 발견된다. 적지 않은 논자들이 한국의 민족주의적 태도나 정서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민족주의적 지향은 새로운 시대의 
이념으로 적절치 않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민족문제가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면서도 민족주의 에 대한 우려는 한편으로 증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과 같은 지적 태도는 우리 자신의 존재양식을 객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민족주의적인 태도'와 구별되는 '민족주의에 
대한 탐구'를 통해 한국인의 집합적 정체성의 내용을 대상화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이 지나쳐 '비민족주의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하여도 우리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서구의 논의들이 그러한 경향을 내포하고 있고 그에 영향을 
받는 우리의 담론들 속에서도 그런 편린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문제, 민족주의의 쟁점은 현재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과제이다. 
그것은 낭만적으로 다루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관념적으로 배제할 것도 아니다. 
민족주의적 태도만을 강조하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일만으로 우리의 소임이 다할 
수는 없다. 보다 객관적이면서도 우리 역사의 현실에 뿌리를 박은 민족 및 
민족주의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2. 한국민족주의의 보편성과 특수성 


필자는 여기서 한국민족주의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가지 점을 (지적 태도를) 
민족주의 일반과의 비교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한국인의 공동체생활과 그에 바탕을 둔 집합적 
정체성이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단일한 종족성과 언어, 
반도라는 생태지리적 조건, 공통의 생활습속 등이 크게 작용하였고 특히 통일신라 
이후 지속되어온 통일왕조체제의 유지라는 정치적 조건이 큰 영향을 주었다. 비록 
신분적 분절성은 강했지만 명확한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지닌, 같은 왕조에 속한 
신민의식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주변의 타집단으로부터 자기집단을 구별하는 집합적 
정서와 자의식이 발달하였다. 일제가 '조선인은 다른 식민지에 있어서의 
野蠻半開의 민족과는 달리 ....고래로 史書의 존재하는 것이 많'다고 말했던 바와 
같이 한국인들에게 '역사'는 공동체적 자기경험,자기인식으로서 뚜렷하게 
존재하였던 것이며 그것은 북방민족 및 일본과의 전쟁경험을 통해 더욱 
심화되었다. 근대 민족주의의 발전도 이러한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인만큼 이에 대한 고려는 대단히 중요하다. 

두번째로 한국민족주의는 동일한 시기에 있어서도 결코 단일한 내용, 통합된 
이념체계나 운동양식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한국민족주의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민족주의는 그 자체내에 다양한 대립과 모순, 상이한 지향과 운동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한국민족주의는 대외적으로는 물론이고 대내적으로도 
투쟁과 갈등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형성해 나온 것이었으며 그것은 과거 
역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 및 
민족주의가 논의될 때 우리는 언제나 그 내용과 주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며 이 
경우에는 겉으로 표방되는 담론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담론의 정치성에 대하여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경우에는 물론이려니와 민족주의의 폐기나 부정을 주창하는 논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세번째로 한국의 민족주의를 이해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하는 점은 그것이 
정치적인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공동체적 이상을 지향해온 집합적 
실천지향이었다는 사실이다. 만하임의 용어를 빈다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라기 보다 유토피아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서구 
및 일본의 그것과 구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많은 연구자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제3세계의 민족주의를 구분하여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단순한 유형론적 구분을 넘어서는 현실적 
의미차를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즉 서구의 진보적인 역사인식이 언제나 
민족주의의 폐해, 민족주의적 지향의 비이성적,파괴적 잠재력을 지적하고 
탈민족주의적 지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한국에서의 민족은 과거 루소가 '시민'에게 부여하였던 것과 같은 성격, 다시 말해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인 복종이 동시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존재론적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한국인에게 민족은 자신들의 존엄,자유,독립,자존,권리의 총체로 
이해되었고 또 그 러한 의미에서 민족주의가 당연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은 부정적인 인식대상인 적이 없었고 언제나 현실정치 속에서 
탄압의 대상이 된 진보적 인식의 한 표상이었다. 이러한 점은 일제하의 
식민통치상황에서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4.19학생혁명의 주요한 기치가 
민주와 민족이었고 70년대 민주화운동이 늘 민족적인 내용을 동시에 강조하였으며 
80년대의 각종 이념과 운동이 한결같이 민주,민중,민족의 이름을 함께 내걸었던 
사실에서도 그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3. 한국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 


필자는 이상과 같은 몇가지 측면에 근거하여 한국의 민족주의를 생각할 때 크게는 
두시기로, 그리고 다시 각 시기 내부에서 두 시기를 나누어 총 4시기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단계는 한국민족주의가 위치해 있던 
사회적 맥락이 크게 달랐고 따라서 각 시기마다 나타난 민족주의의 내용과 주체가 
달라져왔기 때문이다. 큰 시기구분이 1945년 해방을 전후로 나누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 1945년 이전의 한국민족주의 


(1) 근대적 민족주의의 형성과 근대국가수립지향 


한국사회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면서 정치적인 힘을 얻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애국계몽운동기였다. 그러나 독자적인 
정치공동체로서 한반도 주민전체를 의식하고 이 정치공동체의 대내외적 자율성과 
독자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앞선 개항을 전후한 시기였다. 근대민족의 
형성은 그 자체가 정치적 현상이었는데 대내적인 민주성과 대외적인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확립되는 속에서 완전한 실현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민족범주가 막연한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정치적으로 힘을 가진 집단으로 
되기 위하여는 먼저 민족내의 다양한 차별화의 원리들이 붕괴,해체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그 자체가 혁명적인 것이었다. 

신분제도를 해체하고 민족적 범주를 중시하려는 움직임은 크게 개화파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지향과 농민층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지향에서 각기 나타났다. 
개화파들은 실학적 전통의 맥을 이으면서 근대적인 국가의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급진적 개화파들이 시도하였던 1884년 갑신정변의 정강 제2조에는 '문벌을 
타파하여 인민평등의 權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한 항목의 하나로 들어있었고 
김옥균은 전통적인 신분질서, 양반체제의 혁파가 새로운 국가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였다. 또 개화사상가들은 세계각국과의 수교의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국제법에 대한 지식이 전래되면서 대외적 주권의식을 확립하였다. 
독립협회운동은 1880년대의 제한된 민권사상을 보다 실천적인 
민주주의사상으로까지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정치운동의 차원에까지 끌어올리려 
하였고 선진열강의 이권쟁탈에 대하여 저항하기도 했다. 특히 개화사상가, 
독립협회, 애국계몽운동 등에서 한결같이 나타나는 내용의 하나가 곧 교육의 
중요성이었는데 이때의 교육은 '민중의 각성'을 위한 것이었고 '민족의 
실력양성'을 위한 것이었다. '신민'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한다는 계몽운동의 
방향은 근본적으로 각 개인이 근대적인 주체로서 자기각성을 하고 독자적인 능력과 
실력을 지님으로써 독립된 정치공동체를 강화,보존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 
것이었다. 

한편 피지배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권의식의 성장은 조선 후기 이래의 민중의 
사회경제적 성장과 연결된 동학농민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동학농민전쟁은 개화사상에서와 같은 계몽주의적,근대적 형식으로서의 민권사상을 
논리적으로 표방하지는 못하였으나 종교적인 만인평등사상과 구체제에 대한 혁명적 
실천과정에서 민권사상을 구체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농민군이 
고부에서 발표한 격문에는 '蒼生을 塗炭의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의 위에다 
두'는 일을 위하여 '양반과 부호의 앞에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小吏'들이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일어서'기를 요구하고 있다. 
농민군은 집강소 통치과정에서 횡포한 관리들을 징치하고 신분제를 철폐하며 
지역차원에서나마 농민적 참정권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지주제의 
개혁을 지향하였으며 사회경제적인 민권, 민중적인 권리주체의 형성이 강조되었다. 
한편 도시지역에서는 만민공동회운동이 도시민들에게 정치적 의식을 깨우치고 
근대적인 시민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애국계몽운동기에는 군주권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희박해지고 민권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었다. 동학농민전쟁 
이후 크게 위축되고 억압되었던 농민들도 새로운 정치운동,정치단체로 변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 배후에는 이러한 민권의식의 신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민족의식의 발전과정에서는 이후의 한국민족주의의 전개와 
관련하여 긍정적이지 못한 요소들도 나타났다. 우선 그 하나는 민족범주의 형성을 
주도한 세력들이 거대한 '민족'의 틀 속에서 결합되지 못하고 서로 간의 대립과 
배제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개화파와 농민군이 하나의 세력으로 
결합되지 못하였음은 물론이고 위정척사적인 재지유생들도 그 어느 세력과도 
연합하여 민족적 세력으로 결집하지 못하였다. 1894년의 농민전쟁은 개화파와 
농민군의 결합가능성을 어느때보다 높였지만 결국 외세의 개입으로 
불가능해짐으로써 근대국가를 수립하는 주체로서의 민족적 세력화를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 이 시기의 특성을 지적한다면 민족범주가 대내적인 차원에서 확립되기 
이전에 대외적인 주체로 해석됨으로써 사회변혁적인 힘이 약화되고 중세적인 
논리들로부터 완전한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대내적 개혁을 억압할 뿐 아니라 그 개혁의지와 지향성 자체를 
식민지화의 논리로 이용하려는 일제의 외압이 치밀하고도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민족인식은 대내적인 개혁주체로서가 아니라 대외적으로 
구별되는 자기집단의 표상으로서 인식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는 전통적인 
인종적, 중화적 논리들이 그대로 수용되는 측면조차 없지 않았다. 왕조사상이나 
전통적 유교이념은 일본으로부터 조선사회를 차별화시키는데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정척사적 논리가 일견 민족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신분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나, 동학농민군의 일부가 
전통적인 논리로 반일투쟁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에서 그런 일단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 이 시기의 한국민족주의는 일견 매우 강력해 보이는 투쟁성과 배외성을 
한편으로 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자기사회를 변혁시켜 나가는 새로운 시대논리로서의 
힘은 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2) 일제식민지지배체제와 민족해방투쟁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단순히 정치적 억압이나 경제적 수탈구조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보다 총체적인 것이었다. 일제는 민족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고자 
하였고 그 공동체의 기반으로서의 언어,관습,자존,의식의 전영역을 말살하고자 
획책하였다. 일제 식민지체제는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치적,문화적 공동체로 
존속해온 한국인의 역사적 주체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강압에 의해 자신들의 
하위집단으로 편입시킨 제국주의적 폭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화의 결과 한국인에 대한 총체적인 억압, 권리부정이 
강요됨으로써 이제 민족개념은 개인적인 민권, 정치적 주체로서의 권리, 
정치공동체의 집단적인 주권성의 확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었다. 또한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중세적인 민족내적 차별들이 유명무실하게 되면서 
민족집단으로서의 동질성도 더욱 커졌다. 3.1운동 당시 글자 그대로 
'거족적','전민족적'인 시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민족개념의 정치적 성격이 
뚜렷해지고 민족성원 내부의 동질성이 강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제 하에서 
민족은 잃어버린 자기정체성을 표상하는 상징이었고 그만큼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었다. 일제하에서는 한국인의 개인적 자유가 집단적인 민족해방의 과제와 
별도로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3.1운동 당시 
'조선의 독립국'임이 가장 우선적으로 선언된 것은 조선의 대외적인 독자성, 
타자와 혼합될 수 없는 자기정체성을 재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운동 직후에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도 민족의 독자성, 독립성, 주권성이 집합적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민족의 이름으로 각종 활동을 수행하였던 것도 바로 
그러한 집단적 정체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제 민족의 범주는 일제에 의해 가해진 
각종의 비인도적 억압,수탈,민족적 자존의 훼손 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독립국이자 자유민'으로서의 자기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체제변혁, 사회해방의 
이념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꿈은 보다 높은 이상과도 연합되어 '전인류 
공존공영의 도'를 실현할 것이 주창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 이후 식민지적 상황 아래서 계급적인 분화가 나타나고 일제의 
지배정책이 온건화하면서 민족범주에 대한 계급적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민족의 논의가 탈정치화되고 문화적인 범주로 이해되면서 비정치적,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민족논의가 한편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년대 중반 이후 타협론, 
자치론이 등장하면서 민족에 대한 담론은 주로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그것이 본래적 의미에서의 민족공동체의 지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흐름과 결부되어 계급적 범주를 중심으로 민족문제를 이해하려했던 
사회주의자들의 경우는 민족적 범주나 민족의 담론 자체를 부차적인 것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의 관념적인 사회주의 수용도 한몫을 했던 
이러한 편향은,소위 민족주의자들의 왜곡된 민족이해와 함께 일제하의 
민족구성원들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묶어내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신간회의 해산은 그 분명한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들 역시 
그들의 표현방식이나 개념과는 별도로 결국은 민족공동체의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적 범주와 계급적 범주 간의 불일치를 사상적으로나 
조직적,운동적으로 극복하지 못한채 해방을 맞게 되었던 것은 일제시대 
한국민족주의운동의 커다란 한계가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일제하에서는 대다수 민족구성원들이 본격적인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던 까닭에 민족주의운동의 국내적 
기반이 대단히 취약하였다. 국내의 거주자들도 스스로를 독자적인 민족집단으로 
인식하고 독립과 해방을 원하였지만 그것이 대중적 정서나 희망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인 세력이나 운동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기반은 대단히 
협소하였다. 따라서 3.1운동이 실패하고 신간회가 해체된 이후의 한국민족주의 
운동은 거의 해외의 독립운동세력에 의해 주도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외의 
독립운동의 기반이 충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들은 척박한 망명지에서 
살아가고 있던 이주민들을 기반으로 했던 것인데 이 시기의 해외한인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한국민족주의 운동의 기반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 1945년 이후의 한국민족주의 


(3) 체제대립과 개발이데올로기 속에서의 민족주의 


일제 식민지 하에서의 민족해방투쟁은 민족범주를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민족주의적 지향은 모든 정치적 권위와 질서의 
최종적인 정당성의 기반이 되었다. 여러 정치세력들 간의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표방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은 민족적인 것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친일파, 매국노의 논의가 강력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작용하였던 것도 
바로 이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민족주의적인 지향이 정치권력의 정당성과 방향을 규정할 수 있었던 시기는 
해방 직후의 짧은 시기에 불과하였고 한국전쟁을 거치고 분단체제가 고착화되면서 
그 내용은 크게 바뀌어지게 되었다. 민족의 이름과 민족주의적 언사는 여전히 널리 
사용되었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윤색되거나 수정된 내용으로 사용되었다. 남북한 
구성원 모두를 하나의 공동체로 표상하는 민족개념은 현실적인 기반을 갖추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금기시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또하나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외세지배 속에서 민족적 자율성이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냉전체제의 본질이기도 했던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은 남북 모두에 
거대하게 작용하였고 특히 미국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은 민족적 자율성을 
논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지향이 철저하게 부정될 수 밖에 없었던 시기에도 
민족적 가치, 민족주의적 언사는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라 할만하다. 이것은 해방후의 어떠한 정치세력이나 정치제도도 그것이 
민족적 가치, 민족주의적 차원에서의 정당성을 바탕으로 해서만 존립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조건때문이었다. 현실적으로 반민족적인 세력과 운동조차도 
그것이 민족주의적 언어로 채색되어야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한국 
민족주의의 독특한 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 결과 남북한은 각각 자기자신을 
민족적인 정통권력으로 합리화하면서 상대편을 철저하게 '반민족적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1950년대는 형식적인 수준에서조차 민족주의적 지향이나 표현들이 나타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냉전논리와 억압성이 작용하였다. 이승만 정권이 북진통일을 
주창하였고 김일성정권이 조국해방을 강조하였지만 모두가 상대방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체제논리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소 변질된 형태로나마 민족주의적 
지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특히 4.19 학생혁명 이후의 일이었다. 
4.19혁명은 민족주의적 지향으로서의 통일과 대내적인 민주화, 민권의 성장을 
사회적인 관심으로 끌어올렸다. 5.16정변으로 집권한 군부세력도 민족주의적인 
논리를 일정하게 수용하였으나 그것은 상당히 변질된 형태의 것이었다.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으로 나타난 조국근대화의 논리는 '멸공통일'이라는 
또다른 논리와 결합되어 독특한 체제동원논리, 대립적인 경쟁논리 속에 민족적 
논의를 종속시킨 것이었다. 남한은 자본주의적 발전전략을 택하였고 북한은 
사회주의적 발전전략을 추구하였다는 차이는 뚜렷하였지만 체제간의 대립,경쟁과 
체제내의 발전을 위한 주민동원의 강조에는 유사한 측면도 뚜렷하였다. 남북한간의 
체제대립과 더불어 추구된 근대화,발전의 이념은 민족주의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민족주의는 이념적으로 그 내용이 동일하지 않다. 과거의 전통을 부정할 수도 
있고 자유주의나 전체주의적 경향 모두와도 결합이 가능하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적 성장전략과도 연결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적 발전전략 속에서도 자기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민족단위로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민족분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발전이 민족의 다른 한부분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때로는 그 
배제를 더욱 완전하고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추구되었다는 내적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민족개념이 이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윤색되고 왜곡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그 왜곡때문에 민족개념은 엄청난 
체제비판의 담론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국민족이라고 하면 당연히 남북한의 
구성원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을 단위로 한 역사이해, 정치운동은 
당연히 분단체제에 대한 비판,부정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분단구조의 규정력과 
민족중심적 이해 간에는 불가피하게 상호부정적인 관계가 맺어질 수 밖에 없다. 
민족주의 운동은 결국 남북분단에 대한 비판과 통일을 추구하는 통일운동, 
분단극복운동의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고 통일운동은 불가피하게 대내적인 
민주화를 요구하였다. 분단이 정치적 억압과 비민주성의 한 조건이 되고 있는 한 
분단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게 전개되고 통일운동이 활성화되는 것은 대내적인 
정치적 민주화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4.19 학생혁명 이래의 
통일운동이 언제나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은 이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쨌든 반세기의 분단, 전쟁까지 치른 적대감, 정치적 억압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일을 원하고 남북한의 통합을 희망하는 한국인의 집단적 
의식과 정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 사실이자 민족적 자산이라 할 만하다. 민족은 
여전히 남북으로 분열된 집단을 하나로 묶는, 또 묶을 수 있는 힘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은 현실적인 공동체는 아니지만 의식과 집합적 정체성 
속에 살아있는 '상상된' 정치공동체라고 할만하다. 그 상상성은 허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의식과 문화, 정치적 비젼과 집합적인 공동체의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상상성이다. 해방후의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는 곧 
민족의 범주를 현실적으로 다시 의식하는 작업이며 그것이 갖는 현실비판적,진보적 
의미를 현실속에 실현해 내려는 움직임이다. 민족은 그러한 움직임의 주체가 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만 여전히 힘있는 주체로서 역할하게 될 것이다. 


(4) 탈냉전,세계화의 진전과 한국민족주의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전 시기와 뚜렷이 구분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된다. 한국사회의 대내외적 상황이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맥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진전은 한국민족주의의 내용과 성격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 놓고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가지 새로운 
논의들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상황변화의 반영인 셈이다. 

먼저 전세계적 냉전체제의 소멸이 가져다 주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소련의 해체와 냉전체제의 해체는 비록 한반도에는 직접적인 변화를 
아직 초래하지 않고 있으나 이미 엄청난 변화의 계기를 조성해 놓고 있음은 
분명하다. 북한의 고립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남북한의 대립이 체제간의 대립의 상징, 보루로 해석되던 것이 약화되고 글자 
그대로 남북한 간의 문제, 민족내적인 문제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 
미국,중국,일본, 러시아 등 주변강대국들의 이해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가 더이상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각국의 자기이해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구분된다. 

통일지향과 발전지향 간의 관계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사회주의적 발전전략의 비효율성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한편으로 남한의 
성장주의적 발전전략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 대립적인 체제경쟁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던 양자의 상호관계가 질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발전을 위하여 체제대립보다는 오히려 체제통합을 필요로하는 구조적 조건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기반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도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적 상황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 겠다. 동아시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그 기원이 오래인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간에는 역시 오랫동안 서로를 독특한 타자로 
인식하면서 그 타자인식과 더불어 자신들의 인식체계를 확립해온 독특한 지역사의 
경험이 존재한다. 동아시아는 유럽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맥락위에 서있다. 유럽이 
민족주의의 폐해를 절감하면서 공동의 지역주의, 지역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에 비하여 볼 때 동아시아는 오랜 문화적 상호작용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장 지역적 통합과 협조의 틀이 갖추어지지 못한 지역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이 
지역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발전적 가치의 실현에 
있어서도 민감하다. 어느 한 국가의 지역패권은 용납되기 어렵지만 발전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는 경쟁과 대립은 전세계 어디에 비해서도 치열한 
곳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는 이 지역에 새로운 지역공동체적 협조, 새로운 문명의 
창출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에는 이 지역국가들의 
민족주의적, 자문화중심적 태도가 너무 강하다. 그보다도 궁극적으로 이 지역의 
평화와 공존이 체제적으로 정착하기 위하여는 남북한의 분단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이야 말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민족주의적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인류사적 문명을 창출하기 위한 절대적 전제인 셈인데 바로 그 과제의 
해결에는 한국민족주의의 건강한 성장과 작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의 문제를 다루는데 섬세함이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 
있다. 


4.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적 지향 : 공동체적 윤리와 역사적 책임의식 


다시 서론의 문제로 돌아와 보자. 세계화의 논의는 단순히 최근 서구이론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세계화의 
흐름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어떤 의미에서 세계화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민족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화의 의미는 실질적으로 
크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뿌리깊은 민족주의적 정서, 민족주의적 지향에 대하여 우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과연 세계화시대에 한국은 민족주의적 
지향과 가치를 넘어서야 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세계화의 논의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이나 그것을 부정하는 것 모두가 위험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민족주의의 내용과 형식을 
채워나가는 일이지 민족주의 자체를 폐기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몇마디 말과 개념으로 없애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 
엄정한 사회적 사실일 뿐 아니라 그것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진보성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다만 급격히 변화하는 속에서 한국민족주의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는 영역에 대하여 반성적인 고찰이 필요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조차도 한국민족주의에 대한 성실한 고찰, 반성적인 점검에서 가능한 
것이지 그 적부를 논리적으로 규정하는 데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필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며 소중히 보존될 꿈과 
운동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그 몇 가지를 거론하는 것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삼고자 한다. 첫째로 한국민족주의는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적 윤리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된다. 원래 민족개념이 모든 사회성원들의 평등한 권리, 민권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그러한 권리가 집단적,공동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자각 
위에서 형성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한국민족주의는 대내적인 공동체성, 공공복지적 사회의식과 운동의 기반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언젠가 이루어질 남북한의 통합과정에서 
더욱 긴요한 사회문화적 자원일 것이다. 이질적이고 차별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공동체적인 발전과 공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통일한국의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진정으로 세계화된 사회를 만드는 핵심적인 가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통일이 단순히 오랜 민족적 감정에 기초하여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동아시아 및 세계사의 바람직한 발전에 필수적인 
요체라는 사실의 확인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한반도의 분단이 존속하는 한 이 지역에는 불안정성이 항존하게 
되어있다. 실제로 세계화론자들이 말하는 바의 민족주의적 편협성을 넘어서서 
초국가적인 연대와 협조의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이 지역내의 민족간, 
국가간 대립과 불신의 구조를 불식시켜야만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한의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남북한을 하나의 공동체로 의식하는, 공동체 실현을 
위해 함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집단적 의지와 역사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변모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공동체적 책임윤리와 통일을 향한 
역사의식의 정신적,정책적 기반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과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형태의 민족주의를 내용적으로 갖추기 위하여 우리는 
한국민족주의의 담당자, 주체에 대한 냉정한 자기 점검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지금 대단히 중요한 갈림길의 언저리에 서있다고 생각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의 전세계적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한국경제가 중진국을 
넘어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과 새로운 관계들을 맺어가고 
있다. 국적이 다른 수많은 한국인들이 전세계에 퍼져있고 역시 상이한 국적을 지닌 
이민족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 자체로서 
용인되고 때로는 옹호되었던 타민족,이민족에의 저항의식과 배타성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민족주의를 누가 책임있게 실현시켜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한국민족주의의 담당자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지성적인 성찰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담론의 폐기를 운운하는 관념론 또는 세계화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가진 민족주의적 정서와 힘을 활용하여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변혁의 
동력으로 발전시키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와다 하루끼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우리에게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각성과 반성을 요구한다. 
"....조선민족의 역사가 낳은 이 디아스포라의 결과로....각국에 사는 조선인은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인간적,평화적 협력을 위해 일하기에 가장 
알맞은 존재이다." 한국민족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통해 동아시아 와 세계사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비전과 대안이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큰 꿈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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