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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26일 월요일 오전 01시 04분 44초
제 목(Title): 홍세화/한국을 사세요 


[홍세화] 한국을 사세요!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한국을 사세요”라는 구호에 깜짝 놀랐다. 그런 구호가 
거침없이 토해지고 또 받아들여지는 땅에서 `인문학의 위기'란 말조차 이미 
사치스런 표현일 듯싶다. 

인문학의 위기가 한국에서의 얘기만은 아니다. 이미 세계적 추세가 된 듯 
프랑스에서도 그 징표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파리의 소르본 광장 모퉁이에 있는 
프랑스대학출판사(PUF) 직영 서점이 이번 여름에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한다. 
1921년에 조합으로 시작된 이 출판사는 그 동안 베르그송, 뒤르켐을 비롯해 
사르트르, 푸코, 들뢰즈 등을 냈으며,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총서를 펴내온 프랑스 굴지의 인문과학서적 전문 출판사다. 생긴 이후 70년대까지 
줄곧 프랑스 땅에서 인문·사상의 꽃을 피우는 데 나름의 몫을 충실히 담당했던 
출판사였는데, 90년대 이후 독자층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적자 운영을 감당할 수 
없어 매장을 팔게 된 것이다. 비유컨대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나는 무엇을 
아는가?”로 표현되는 인문학이 두 손을 든 것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시장 
논리만을 강조하고 효율과 성장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나는 무엇을 
아는가?”란 질문은 이 지구상에서 퇴출시켜 마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소르본 광장에 있는 오귀스트 콩트의 동상이 이 여름에 더 쓸쓸해 
보였다. 광장 들머리 두 모퉁이 중 다른쪽 모퉁이에서는 `가프'(GAP)라는 이름의 
옷 가게가 성업중이다. 동남아시아인들을 인간 이하의 노동조건으로 혹사시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 미국제 마크여서 더욱 사회학의 시조는 그 가게에 등을 
돌리고 책방을 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제 책방 자리마저 구두가게나 
다른 옷가게가 들어설 터이니 앞으로 그는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까? 

그런데 지금 나는 누가 누구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인가? 프랑스의 특히 철학과 
역사학은 그 전통과 업적 그리고 잠재력 면에서 견줄만한 나라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최근 7월호에는 
`한국전쟁에서 세균 무기'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 교수인 스티븐 엔디콧과 에드워드 헤이거먼은 함께 기고한 
글에서 “여러가지 증빙들로 보아 미국이 한국전쟁 동안에 세균무기를 
사용했던-적어도 실험했던-것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새로이 
공개되고 있는 문서들에 의해 “냉전시기에 가장 잘 감춰졌던 비밀의 하나”였던 
한국전쟁에서의 세균무기 사용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필자들이 새삼스레 
글을 발표하게 된 속내는 미국의 위선을 까발리고자 하는 데 있었다. 즉 지금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에 대해 화학무기나 세균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폭격을 계속하고 있는데, 세균무기를 군사 전략에 제일 먼저 
통합시켰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반도 
바깥에서는 어쨌든 냉전이 끝났다고 보는 상황이고 보면 필자들의 주장을 냉전 
시기의 선전·선동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로선 실로 
섬뜩한 얘기가 캐나다의 연구자들에 의해 프랑스의 국제 논평지에 실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도대체 누가 이런 글 내용에 관심이라도 가질 것인가? 
우리는 지금 `한국을 사는' 시기에 살고 있다. 

`바이 코리아!'도 줄여서 BK이고 부가가치의 창출을 요구받고 있는 `두뇌한국'도 
BK이니 `21세기 한국'은 이래저래 `BK 21'이다. 그런데 그 비케이에 사거나 팔 수 
있는 두뇌는 있을지언정 사거나 팔 수 없는 인문학도 정신도 가슴도 보이지 않는 
것은 나의 잘못된 선입관 때문일까? 

홍세화/<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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