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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26일 월요일 오전 01시 19분 26초
제 목(Title): 류동민/시론  희극넘어 희망찾기 


[야-한국사회] /희극 넘어 희망 찾기/류동민/충남대 교수 
한낱 파렴치범에 불과함을 알리려는 당국의 꾸준한 노력에도, `맞는 말만 골라' 
하는 신창원에 정체모를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닌 듯하다. 그 
와중에도 합당이니 신당이니 하는 진흙탕 속 개싸움은 계속되고, 큰 도둑 조세형 
또는 유전무죄를 외쳤던 또 다른 탈주범, 그리고 두 김씨를 포함한 세명이 
어정쩡하게 서서 3당 합당을 발표하던 그날의 모습까지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되풀이되는지. `역사는 반복되며 마침내 그 두번째는 희극'이라던 어느 
사상가의 말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 

바로 그 반복되는 역사가 처음 이뤄지던 시절, 나는 파렴치범과 로빈 후드의 차이 
만큼이나 커다란 의식의 간격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 시절 고시파 친구들을 한 수 접고 보던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 `저런 날라리 
같으니라구'라는 독백을 날렸다. 폭압과 부정의의 시대에 고시공부는 캠퍼스 
한복판에서 여학생의 뺨을 후려갈기던 백골단과 한패라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오월 하늘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아! 그 노래만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할 때도 있었다. 어느해 겨울 학교 앞 카페에서 그 `광주'의 주역에게 
투표하겠다던 친구와 맥주잔을 날리며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절, 대책없이 과격한 운동권들을 보면서 이갈리도록 지겨운 적도 
있었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필연이라 주장하는 선배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재벌회사 파업장에 빵 사들고 
위문갔던 그 선배가 잡혀가고 구사대의 쇠파이프질에 피투성이가 된 그의 티셔츠만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쇠파이프의 한쪽 끝을 내가 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눈부시게 화창하던 봄날, 이제는 이름조차 아스라한 김세진·이재호의 분신 때 
그들과 입학동기인 나는 빈 강의실 한켠에서 릴케의 싯구를 인용하며 연애편지를 
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알던 어느 재야인사가 `파쇼의 주구'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정당에 제발로 들어갈 때, 내게는 이미 술잔을 날릴 만한 혈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노동의 새벽>을 읽으며 속으로는 섬뜩해 하면서도 겉으로는 높이 평가하던 내가, 
이제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으며 속으로는 감동하면서도 겉으로는 `박노해도 
갔군'하며 빈정거린다. 이 지독한 이율배반. 

*날라리와 운동권의 악수 

얼마전 고시 3관왕 출신 변호사의 출마 해프닝에는 전도양양한 재야출신 30대 
국회의원도 중요한 조연으로 출연했다. 한쪽은 날라리 중의 왕날라리(?), 다른 
한쪽은 운동권의 신화로서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들은 이제 원조 쿠데타 이래의 
원로배우들이 대거 우정출연한 희극에 사이좋게 출연했다. 

이 세상은 `힘있고 사악한 자들'의 치밀한 음모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수많은 1차적 관계와 우연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이는 
옷감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씨줄과 날줄에 접근조차 어려운 이들에게는 그 
옷감이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의 음모로 다가온다는 점도 새삼 확인한다. 
유신, 5공, 문민정부의 모든 지배세력이 새로운 깃발 아래 다시 모이고, 이제는 
이미 지켜야할 것이 너무 많은 기득권층이 되어 그 속에 개별적으로 편입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스타들, 그리고 체념하는 우리들 자신. 

한때 엄두도 낼 수 없이 저 멀리 왼쪽에 서 있던 이들은 `우리가 믿었던 새로운 
세상을 위한 꿈들은 이제는 한물간 이야기'라고 가르치면서, 새는 좌우의 양날개가 
아니라 오른쪽 날개만으로도 잘 날 수 있음을 믿으라고 욱박지르는 자들 앞에서는 
결연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말로 우리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할 때라고 믿는다. 수많은 
씨줄과 날줄을 하나씩 정성들여 엮어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희망에 
도달해 있으리라 꿈꾼다. 반복되는 역사로부터 이런 희망마저도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일 것이다. 

류동민/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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