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4일 수요일 오전 01시 08분 35초 제 목(Title): 퍼온글/박석 나라가 산다는 것은..? 『미래의 창-공자는 죽었다. 그 다음은? (go VISION)』 40번 제 목:나라가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올린이:woosonps(박석 ) 99/07/05 16:22 읽음: 38 관련자료 없음 ----------------------------------------------------------------------------- 나라가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주장은 실로 비장하다. 이 말은 우리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자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공자만 죽으면 나라가 사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야기를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다 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도대체 '나라가 산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냥 말하기에 는 쉬운 말이지만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따지면 참으로 어렵다. 이럴 경우에 는 '산다'의 반대말인 '망한다'를 들면 도리어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머리말에서도 나라가 망할 뻔한 사건들을 열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1910년, 한일합방, 1950년 육이오, 1997년 IMF. 100년도 안되는 세월 동 안 우리 민족은 세 번을 죽다 살아났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민족 자체가 자칫 인류 역사에서 잊혀버릴 수도 있었던 위기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그럭 저럭 위기를 수습해왔다.(5쪽) 이 세 가지는 성격이 다 다르다. 한일합방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 것 이니 이것은 정말 나라가 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육이오 전쟁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싸움이므로 우리 나라 전체가 망하는 것이 아니 라 단지 체제가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IMF 위기는 금융위기로 인해 국가가 경제적으로 도산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 중에서 이제 제국주의의 침략의 위험성은 사라졌다. 국제 사회가 옛날 처럼 노골적으로 땅따먹기를 할 수는 없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대립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쟁의 위험성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지 만 이제 남한이 북한에 의해 적화 통일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위기는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아직도 IMF를 완전히 벗 어난 것이 아니다. 설령 벗어났다 해도 언제 또 그러한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 른다. 경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근세사에 있어 우리는 여러 가지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 중에서 일반 민중들에게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은 역시 가난이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은 우리의 가난을 대변하는 명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이다.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은 그를 그릇된 경제 구조를 만든 장본인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사 람들이 그를 흠모하는 것은 속 내부야 어찌되었든지 간에 외양적으로는 우리 를 보릿고개에서 구출한 공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어쨌든 민주화에 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추락하게 된 것도 그가 재임하던 당시 IMF 위기 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천연 자원이 별로 없는 나라이다. 에너지원인 석유를 전액으 로 수입하는 것은 물론 요즈음은 식량조차도 대부분 수입으로 의존하고 있다. 만약 경제적으로 파산하는 경우 우리는 전기불도 켜지 못하고 심지어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이상으로 보아 오늘 날 '나라가 산다'는 것은 결국 경제가 튼튼해지는 것 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라가 산다는 의미를 경제의 발전으로 만 국한시키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일단 경제를 살리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핵심 고리임에는 틀림없다. 김 교수의 책에서도 장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김 교수는 한국 인은 아직 장사꾼의 기질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최 근에 우리의 새로운 경쟁 상대로 떠오른 중국인과 비교하면서 중국인들은 노 동자로부터 대학 교수, 고위 정부 관료에 이르기까지 장삿속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인 데 비해 한국인들은 허풍, 체면과 권위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 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과 상대로 장사하려면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함 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리 문화를 어떻게 상품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좋 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일전에 모 잡지사 기자와 인사동을 걸으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 다. "내가 만일 인사동 동장이라면, 여기에 있는 모든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작은 돌들로 운치 있는 돌길을 만들겠어요. 일부는 황토를 깔고. 그리고 경복 궁 바닥에 있던 큰돌을 하나 깔아놓고 안내판을 세워 '왕이 밟았던 돌'이라고 표시를 해놓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돌을 밟고 서는 순간 잠시나마 조선의 왕이 되어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외국인 관광객들이 잠시 찾는 남대분 시장 입구에 전통 양식으로 문을 건축해서 관광객들이 자신도 찍고 '이곳에 다녀갔다'는 추억을 갖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에 다녀보면 장사 마인드가 뛰어난 중국인 들은 어느 도시를 가던지 이러한 분위기들을 잘 조성해놓았다. 나도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중국 사람과 장사하기 위해서는 중국인의 장 삿속을 꿰뚫어보는 눈이 필요하고 그들에 못지 않게 실속을 차리는 꾀를 배 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좋은 문화 유산도 얼마든지 새롭게 포장해서 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그의 글 곳곳에서는 나라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 으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로서 대변되는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 해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 조하고 있다. 이것 또한 요즈음 우리들의 화두인 세계화와 부합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은 이렇게 구구절절이 수긍이 가는 말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나로 서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도 많다. 그 중에서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김 교수의 시각은 정말 수용하기가 힘들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도 그 시대적 변환의 저변에 흐르는 새로운 질서를 우리는 꺼내보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흐름 속에는 개인적 삶의 자유와 창조 적 공간, 맑은 환경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의도가 숨어 있다. 그러나 보기에 대단히 아름다워 보이는 이 질서 안에는 사실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이제 모두 몸과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삶을 이야기해보 자는 이 질서 속에는 어느 한 지역 문화의 성스러움이나 순수가 그들만의 원 시적 가치로 남아 있도록 놔두지는 않겠다는 '열러라'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제 그 흐름 앞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게 될 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77쪽) 우리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새로운 가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 다. 이 새로운 가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이 다. 엉망으로 늘어져 있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시스템을 놓고 보면 그것은 가 혹해 보이기도 하고 제국주의적 오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또 하 나의 억지일 수 있다. 그러한 가치를 미국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패권의 덤터 기를 덮어씌우는 것은 우리들 의식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약소국 콤플렉 스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295쪽) 이 글을 읽어보면서 나는 왜 김 교수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공자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질서를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 직도 유교 내지는 전통 문화를 고수하려고 하고 있다. 유교는 종주국인 중국 에서마저 버린 것인데 아직까지도 집착하고 있으니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나 라가 살겠는가? 하루 빨리 전통 문화니 사상이니 하는 구태의연함을 벗어 던 지고 세계화의 추세를 좇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문화의 대명사인 공 자를 빨리 죽여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그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 그의 말대로 신자유주의니 글로벌 스탠더드니 하는 것은 피할래야 피하기 어려운 냉혹한 현실이다. 그렇다해도 신자유주의 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 다. 대부분의 지각 있는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 속에 담 겨 있는 미국의 세계 전략의 음흉한 속셈을 우려한다. 미국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하여 전세계의 자본주의 시장화를 더욱 가속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기업과 나라에 모든 부가 집중되고 대부분의 기업이나 나라는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 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체제이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양식 있는 학자들은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개인적 삶의 자유와 창조적 공간, 맑은 환경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의도가 숨어 있는 아름다운 질서이고, 글로벌 스탠 더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미국 상공인 협의회에서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전하기 위해 광고 카피를 뽑는 사람도 이렇게 멋있는 구절을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 니다. 아마 이 구절은 이미 미국인들이 많이 써먹은 말인데 내가 과문해서 아 직 듣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교와 전통 문화에 대해 퍼부었던 온 갖 독설과 폄하에 비교할 때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는 가? 아무튼 좋다.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경제가 발전해야 하고 경제가 발전하 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하루 빨리 수용해야 한다는 주 장도 좋다. 그렇지만 이렇게 모든 국민들이 정신없이 '돈, 돈'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 가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경제적으로 풍요해진 것은 사실 이지만 별로 사람 사는 세상 같지는 않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아름 답던 금수강산은 쓰레기 더미가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나라가 사는 길인 가? 윤리와 도덕 이야기가 나오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드 디어 속셈이 나오는군. 역시 당신은 유가적 전통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이구 나."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나는 이 글이 끝날 때까지 충효사상 내지는 삼 강오륜 등의 유교적 전통 윤리를 옹호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가운데 벌어지 는 여러 가지 불상사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된 다는 배금주의 사상이 만연해있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사회 비리 및 범죄는 위로는 높으신 정치인, 관료, 점잖은 교육자로부터 아래로는 천박한 사기꾼, 도둑, 10대 강도에 이르기까지 실로 성역이 없다. 최근 씨랜드 사건으로 온 사회가 떠들썩하다. 천진난만한 어린애들이 유 치원 교사들의 인솔로 바닷가에 있는 수련장에 갔다가 화재의 변을 당하여 새 생명을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어버이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오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어 린 자식을 잃어버린 어버이의 마음은 미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그 어린것들이 뜨거운 불 속에서 엄마를 얼마나 찾았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고 터질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삼풍백화점 사건, 성수대교 사건, 대구 가스 폭파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우리의 뇌리 속에 아직 남아있는데 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왜 자꾸 생기는 것일까? 이것이 과연 유교 문화의 폐해인가? 이번 사건은 무허가, 허위 신고, 안 전사고에 대한 무사태평주의 등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것은 김 교수의 논리 에 의하면 법치주의가 되지 않고 적당히 인치주의로 넘기는 유교적 문화에서 기인한 재앙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무조건 끌어다 붙이는 것은 너무 심한 아전인수가 아닐까? 내가 볼 때 이것은 바로 황금 만능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결 정적인 원인은 날림 공사와 소방시설의 미비에 있다. 날림 공사를 한 것도 소 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결국 몇 푼의 돈 과 소중한 어린 생명들을 맞바꾼 것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사회 비리 가운데 돈에 관련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언 론에서는 연일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언론 인들 또한 돈의 유혹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다. 심지어 종교인들조차도 겉으로 는 성스러운 체 하지만 속으로는 실속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 우리 나라는 종교의 천국이다. 서양 전통적인 종교인 기독교 계열, 동양 의 전통적인 종교인 불교 계열, 그 외 민족 종교와 신흥 종교를 합치면 수천 가지가 된다고 한다. 종교란 원래 정신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종교인이 많아지면 그 사회는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세상은 더욱 황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다. 그것은 종교가 양적 확산에 눈이 멀어 사회 정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보자. 세계 10대 교회 중에 5개가 우리 나라에 있 다. 그 중 1위도 물론 우리 나라에 있다.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몇 십 년 사이에 양적으로 엄청나게 팽창하였지만 질적으로는 정말 한심하다. 종단 재산을 놓고 벌어지는 승려들의 이권 다툼은 돌부처도 돌아앉을 판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기성 종교가 이러니 신흥 종교는 어떻겠 는가? 그야말로 혹세무민하면서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진실한 종교인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주류가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이렇게 혼탁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마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종교 조차도 삼켜버렸으니. 돈의 마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경오염 문제는 또한 어떠한가? 단 몇십 년의 공업화에 우리의 금수강산은 이미 쓰레기 강산이 되었다. 대부 분의 하천은 생활하수와 공장의 폐수로 거무칙칙한 색으로 변하였고 최근에 는 연안 바다에도 황폐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이것 또한 돈 때문이다. 오 염 방지 설비를 갖추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돈은 가까이 있고 환경은 멀리 있다. 그래서 비만 오면 공단에서는 눈 딱 감고 몰래 폐수를 방출한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미국과 서구는 환경문제에 우 리보다 많은 신경을 쓴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공업화를 시작하였고 그로 인한 환경 오염의 피해를 겪었다. 그래서 지어낸 꾀가 오염 산업들은 모두 후 진국으로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쾌적한 환경 속에서 우아한 생활 을 누리고 있다. 하여튼 우리도 빨리 선진국이 되어야 환경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 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다. 중국의 북경 천진 지구의 공업단지의 굴뚝에서 뿜어내 는 유독성 가스는 황사를 타고 우리 나라에 그대로 날아온다. 그리고 그들의 공장 폐수는 그대로 황해로 흘러 들어와 물고기의 배에 축적되었다가 우리의 식단에 오른다. 많은 환경 학자들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환경오염과 자연파괴가 계속 된다면 인류는 채 오십 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체가 다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 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지금도 신자유주의니 글로 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세계 자본주의화를 강행하고 있고 그 속에서 모 든 국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 오염과 자연 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돈은 물론 중요하다. 물질적 풍요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시키는 획일적인 가치관이 횡행하는 시대는 문제가 있다. 돈이 주는 물질적 풍요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은 상실되고, 순수 의 마지막 보루이어야 할 종교도 타락하고 우리의 삶의 터전인 환경도 썩어 간다. 지금은 새로운 천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20세기 말이다. 희망에 찬 인 류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도 많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체 제, 지금의 의식수준으로 계속 나가면 인류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동서양의 많은 선각자들이 탈자본주의 적인 새로운 경제체제를 제시하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 운 삶의 양식을 제창하기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많은 서양인들이 동양의 지 혜에 관심을 기울이며 동서문화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전통을 모두 버리고 신 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좇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 고 생각한다. 근대화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0년이다. 우리는 서구문명의 충격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근대화 서구화만이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어왔다. 이제 근대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 고 생각한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아직도 한참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시점은 서구를 향한 맹목적인 달음박질을 잠시 멈추고 앞뒤를 살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근대화 백년간을 돌이 켜 보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반성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통 사상과 문화에 대해서나 서구 사상과 문화에 대해 서나 충분히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였다.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서구의 관점에서 우리를 비판하는 경향이 훨씬 심하였다. 그 반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이제는 균형 감각을 잡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서구문명을 절대우위에 놓고 그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 는 환상에서 깨어나 다른 문명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 문명의 다양한 흐름들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속에서 미래의 대안을 모 색할 수 있다.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