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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4일 수요일 오전 12시 48분 28초
제 목(Title): 퍼온글/박석 공자는 죽었다. 그 다음은?


『미래의 창-공자는 죽었다. 그 다음은? (go VISION)』 37번
 제  목: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1)                            
 올린이:woosonps(박석    )    99/06/30 14:42    읽음: 65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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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1)


  최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시중에서 꽤 팔리고 있다. 
그 책을 쓴 사람은 바로 내 옆방의 교수이다. 일반적인 관례로는 같은 과
의 동료 교수가 쓴 책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예의
이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의 전공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언급할만한 부분이 별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책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일단 다루고 있는 영역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역이다. 사실 중문학 전공한 사람 치고 유가에 대해
서 나름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본인은 수필처럼 썼다고 
하지만 그 논조나 어조가 매우 과격하고 극단적이다. 이럴 경우 반대의 의
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특히 그 내용이 나 관점이 
오류가 많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
우 관례를 무시하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 책을 보고 난 뒤에 교수들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유
가를 잘 모르는 다른 과 교수들의 질문도 많이 있었다. 나로서도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뒤에서 그 사람에 대해 수군거
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공식적인 통로를 통
해 반론을 제기하여 그에 대한 건전한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 학자의 도리라
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식으로 김 교수에게 반박의  책을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게시판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의 의도이다. 

  그 책에서는 우리 나라를 뿌연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니는 투명하지 못한 
나라,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의 유지시키기 위해 낡아빠진 윤리들을 
교묘히 활용하고 있는 나라, 밝음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컴컴하
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깔려있는 나라, 집단이기주의와 분열만이 존재하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글로발 스탠다드를 부르짖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 시
대에 이런 한심한 나라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낙타가  바늘구멍
을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 수 있다.  

  그 책에서는 이 모든 것의 뿌리가 유교라는 괴물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 책에서는 유교는 2500년 전 공자라고 하는 한 사내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통해 만든 지배자를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송나라 
때 주자라고 하는 한 몽상에 빠진 사색가가 그 위에다가 우주론에 대한 에
세이 몇 편을 더하여 성리학을 만들었는데 조선을 건국한 쿠데타 세력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우
리 나라는 유교 국가가 되었고 그 때문에 결국 일본에게 망했다고  말하고 
있다. 

  김 교수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일본과 중국은 다 같이 공자와 주자를 
모셨지만 우리보다 먼저 공자와 주자를 버리는 노력을 하였기에 우리처럼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누구보다도 먼저 공자와 주자를 버렸
기 때문에 강국이 되었고 우리 나라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
리 나라는 망국의 슬픔을 겪은 뒤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유교를 청산하지 
못하는 바람에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고,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IMF까지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논리이다.

  김 교수의 논리에 의하면 결국 현재 우리 나라의 여러 가지 많은 문제점
들은 모두 유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을 해결
하지 않으면 우리 나라는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공자 바이러스 이론을 제창하였다. 그는 유교 문화 내
부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자체를 부식시켜 마침내 붕괴에 이르게 하
는 내부모순이 내재되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자 바이러스라고 
명명하였다. 즉 유교를 받아들이는 사회는 반드시 공자 바이러스에 의해 시
스템이 다운된다는 것이다. 이 공자 바이러스 이론은 지금까지 공자를 공격
하였던 어떤 대가들도 발견하지 못하였던 전대미문의 대단한 발견으로서 나
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을 경악시킨 참신한 이론이다. 

 김 교수는 공자 바이러스의 성분과 해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
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
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패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 교육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노늘날 우리들의 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
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기간은 
이제 끝났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 나라의 사회 전체의 시스템 속에는 공자 바이러스가 
깔려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깔아도 금방 다운되고 만다고 주
장한다. 그래서 이 공자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롭
게 포맷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정도쯤해서 김 교수의 이야기는 그만 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 나라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은 오직 공
자 바이러스 때문이며 새로 포맷을 해서라도 공자 바이러스만 없앤다면 우
리 나라가 잘 살 수 있다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과연 우리 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문제들이 모두 공자에게
서 기인한 것이며 공자만 죽으면 나라가 잘 살 수 있는가? 

   한일합방을 당한 것도 공자 때문이고 육이오 전쟁이 일어난 것도 공자 
때문이고 IMF도 공자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의 극치이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는 나라 밖의 여러 가지 문제와 나라 안의 여러 가지 문
제들이 산적되어 나타난 사건들이다. 특히 육이오 전쟁은 나라 안의 문제라
기보다는 냉전시대의 동서대립의 산물이며 최근의 IMF사태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나타난 사건이다. 그 속에 물론 효율적으
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있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유교문화의 잔재에서 기인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
건들이 어찌 모두 공자 탓인가? 

  굴직한 역사적인 사건은 그렇다 치고 현재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많은 사회 문제들도 모두 공자 때문인가? 

   예컨대 얼마 전 신문에 한참 오르내리던 고급 옷 사건들에 관련된 상류
층 마나님들의 추악한 행위를 한 번 거론해보자. 이번 옷 뇌물에 관련된 이
형자, 연정희, 배정숙, 정리정씨 등은 모두 강남의 한 부유한 교회를 중심으
로 얽혀있음이 드러났다. 이들 모두는 양재동의 횃불선교원에서 만난 사람
들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친분을 맺고 거기서 고아원 양로원 방문 등의 불
우이웃 돕기를 하면서 겉으로는 열심히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속으로는 부
정부패의 고리를 만들었다. 그러면 사회봉사를 한 맑고 투명한 부분은 예수
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부정부패를 한 투명하지 못한 뿌연 부분은 공자
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우리 나라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감정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우리 
나라의 전임 대통령 김영삼과 현 대통령인 김대중은 모두 기독교 신자이다. 
그들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은 모두 예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고 그들이 
보스정치를 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긴 것은 모두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 것
이란 말인가? 

  또한 날림 공사로 인해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다리가 무너진 것도 공자
의 가르침 때문인가? 공자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던 조선시대에 지은 건물
은 지금보다 훨씬 튼튼하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조선시대 때 건물을 
날림으로 지어 사람이 깔려죽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 

  이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와 우리 나라가 안고 있
는 문제들이 대부분 공자에게서 나온 것인가? 



『미래의 창-공자는 죽었다. 그 다음은? (go VISION)』 38번
 제  목: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2)                            
 올린이:woosonps(박석    )    99/06/30 14:48    읽음: 55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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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2)


   지금 우리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김 교수의 말대로 조선조를 지
배하였던 유교는 이제 그 유효 기간이 끝났다. 가부장적 농경사회를 바탕으
로 하여 성립된 사회 윤리가 산업 사회인 오늘날에 맞을 리가 없다. 그래서 
유교의 사회 윤리는 뒷전으로 물러앉았다. 대신 산업사회에 걸맞은 근대 서
구의 사회 윤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옷은 아직도 우리
의 몸에 맞지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걸음걸이는 어정쩡하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말이 있다. 그대로 풀이하면 
한단의 걸음걸이라는 뜻이다. 한단은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도읍이다. 어느 
시골 사람이 번화한 서울에 갔더니 다들 멋쟁이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걸음걸이가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자기 것을 버리고 서울 멋쟁
이들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었다. 그러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서
울 사람들이 보기에는 촌스러운 걸음이었다. 그리고 고향 사람들이 보기에
도 이상한 걸음걸이였다. 시골은 시골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데 그 고유의 
멋마저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걸음걸이, 이것
이 바로 한단지보다. 

   근대화가 진행된 이후 우리는 서구를 흉내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서구를 완전히 흉내내기는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서구를 흉
내내느라 애를 쓰다 보니 우리의 좋은 장점조차도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바로 한단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던 그 촌사람과 바를 바
가 없다. 오늘날의 혼란과 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 한단지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 김 교수의 말대로 완전히 새로 포맷하면 될까? 즉 유교 및 우리의 
전통은 모두 폐기처분하면 될까?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내가 볼 
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우리를 
지배하던 그것을 단숨에 지워버리기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포맷한 이후에 새로 깔려고 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이
냐 하는 것이다. 김 교수가 새로 깔려고 하는 프로그램은 그의 논조로 보아 
당연히 근대 서구의 사회윤리이다. 김 교수의 눈에는 그것은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그리고 맑은 생명으로 가득 찬 것이다. 

  물론 이 말속에는 근대 서구의 사회 윤리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들어온 
기독교의 종교 윤리의 냄새도 들어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김 교수는 유교의 
문화를 주검을 위한 문화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이 속에는 유교의 제사문화
를 어둠컴컴하고 쾨쾨한 냄새가 나는 미신 정도로 간주하는 기독교의 편견
이 감추어져있다. 

  결국 김 교수의 주장은 우리의 전통문화는 깡그리 버리고 근대 서구의 사
회윤리와 기독교의 종교 윤리로 재무장하자는 이야기와 다를 것이 없다. 그
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초지일관으로 우리의 전통문화와 전통사상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없을 것이다.

  좋다. 나는 무조건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는 어리석은 국수주의
자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서 우리의 것이 부족하고 그들의 것이 좋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근대 서구문명은 이미 서구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문제점
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대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서구의 
지성들은 근대 이후 계속 강조되어 오던 계몽주의적 합리성 내지는 역사의 
진보에 대해 회의를 품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해체주의니 하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모
색의 한 갈래이다. 그리고 많은 서구의 학자들이 오히려 동양의 전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의 불교적 전통이나 유교적 전
통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전통을 모두 버리고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자고 
외치는 것은 실로 시대착오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백년 전의 개
화기에 나 나왔더라면 학문적인 가치도 있고 시사성도 있는 이야기이다. 그
러나 지금은 너무나 뒤떨어진 이야기이다.

   모든 사상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리의 것 가운데서도 부정적인 측
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고 서양의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사상과 근대 서구의 사상을 동등하게 놓고 그들을 융화시켜 새
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어정쩡한 한단지보를 그만두
고 정말 멋있는 새로운 걸음걸이를 창조해야 할 때이다. 

    이와 아울러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근대 서구의 힘에 의해 공자가 밀려나고 난 뒤에 정치사회 윤리 부분에서는 
근대서구의 정치사상이나 사회윤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였고 개인의 수양이
나 종교부분에서는 예수교와 불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예수교의 성장이 괄목상대할 만하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
로 논의해야 한다.

  나라를 살리는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개인적 신앙차원에 속하는 종
교 이야기가 나오는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교
는 단순한 개인적인 신앙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사회에 윤리
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조그만 규모의 종교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별로 크지 않지만 현재 기독교와 같은 규모의 종교는 실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
도 안 된다.   

   서울의 야경을 보면 붉은 십자가가 온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기독교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
이나 정부 고위관료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어느 단체 어
느 모임에 가도 기독교인들의 활동은 대단하다. 운동 선수가 우승하거나 가
수가 상을 타고 난 뒤에 소감을 물으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우선 하
나님께 감사드린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지도적 위치
에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별로 나아지는 게 없을까? 고위관료의 마나님들
이 기독교의 이념 아래 그렇게 열심히 사회봉사를 하고, 훌륭하신 나으리들
이 그렇게 열심히 나라를 위한 조찬 기도회에 나가고, 일반 신도들이 이 사
회와 이 나라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이 사회와 이 나라는 왜 
요 모양 요 꼴일까?

   공자의 망령이 아직도 남아서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인가? 기독교인의 
숫자가 아직도 부족해서인가? 공자를 더 철저하게 죽이고 예수를 더 크게 
살려야 이 나라가 살게 된다는 것인가? 

   나는 중문학자이자 동시에 명상수행자이다. 명상을 통하여 여러 사상과 
종교의 정수를 접하게 되었고 그들의 장점과 한계가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상과 종교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그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나
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문명사와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조
금씩 공부를 하면서 근대서구문명의 한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공자, 근대서구, 예수 등에 대해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비교 관찰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자신의 견해를 올려도 좋다.


『미래의 창-공자는 죽었다. 그 다음은? (go VISION)』 39번
 제  목: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                                
 올린이:woosonps(박석    )    99/07/03 09:28    읽음: 57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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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
     
     
     앞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
다. 이 일은 김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월 하순의 어느 날에 일어난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할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 교수의 책이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자 자연 교내의 교수들끼리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날은 연배가 비슷한 다른 과 교수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토론을 하게 되었다. 

     A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이번에 나온 김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글에 대해 중문
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더구나 박 교수는 신유학에 관련된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받았고 평소 공자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아마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이 있을 텐데."

     사실 나는 이야기하기가 좀 뭐 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B교수가 대신 말했다.

     "내가 듣기에 그 책은 공자 사상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게 아니라 유가
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저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쓴 것이라고 하던데요.  김
교수가 평소에 하고 싶은 말들을 좀 과격한 제목으로 이야기한 것이니 학문적
으로야 토론할 내용이 별로 없겠죠."

     A교수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목이 너무 과격해. 유가 속에도 부정적 측면
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 측면도 많이 있는데 그 전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B교수가 말했다. 

     "아, 그런 식으로 미지근하고 복잡하게 이야기해서는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없죠. 세인의 관심을 끌려면 좀 더 과격하고 극단적이고 그리고 단순하게 써야죠.
"

     나는 말했다.

     "김 교수가 이야기하는 기본 취지에는 나도 동감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
연해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봉건적 남존여비 사상, 그리고 체면문화  등은 
우리가 반드시 청산해야할 유가의 어두운 그림자 가운데 하나죠. 그렇지만 그
렇다고 우리 나라의 모든 부정적인 측면을 무조건 유가의 책임으로 몰아 세운 
것은 문제가 있죠.  게다가 학문적 엄밀성을 결여한 가운데 근거도 희박한 단
편적인 지식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유가사상 전체를 매도한 것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벼운 에세이라고 하지만 글에는 책임감이 있
어야 하죠. 더군다나 중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쓴 글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죠.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을 사실로 오해할 것 아닙니까?"

     A교수가 말했다.   

     "너무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죠. 박 교수가 그 내용에 대해 마음
에 안 든다면 한번 세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책을 써서 반박하면 되잖아요." 

     B교수가 말했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반박하는 글이 승산이 별로 없죠. 왜냐하면 공자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한 책들은 이미 너무나 많이 나와있기 때문이죠. 
세인의 관심을 끌려면 좀 극단적인 제목이나 내용이 필요한데 공자를  칭찬하
는 글로는 그런 제목이나 내용이 나오기가 힘들죠. 그리고 원래 어떤 책이 떴
을 때 그 책을 반박하는 책이 같이 뜨는 경우는 거의 없죠." 

     나는 약간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왕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
가 산다>는 책이 나왔으니 저는 <예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써 볼까
요?"

     사람들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였다. 아무래도 책의 제목이 너무 과격하였
기 때문이리라.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은 근대서구의 관점을 기준으로 삼
아 유교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인 관
점도 깔려 있죠.  유교의 제사 문화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보면 짐작할 수 있죠. 김 교수가 근대 서구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동양 문명
과 공자에 대해 비판을 가했으니 저도 우리의 관점에서 근대 서구문명과 예수
를 비판해야죠." 

     사람들은 약간씩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공자야 근대화 과정에서 이미 죽었죠. 물론 아직도 우리의 의식 
밑바닥에 살아있다고 하지만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죠.  지금 이 시대에 그것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물질만능주의와 종교적 맹신이 만드는 여러 가지 폐해들
이죠.  그 중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종교이니까 이 분야를 심도 있게 
비판을 가해야겠습니다. 지금은 종교 문제에 대한 담론이 시급한 때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종교 전반에 걸쳐 담론을 진행하여야 하겠지만 세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일단 약간 과격한 제목이 좋지 않을까요?"

     B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기야 박 교수는 중문학자이면서 명상과 종교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
이 있으니 그런 글을 쓰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러자 A교수가 말했다.

     "박 교수 맞아죽고 싶은 모양이지. 제목을 그런 식으로 잡았다가는 관심
을 끄는 정도가 아니라 폭탄을 끌 수도 있지. 그런 위험한 일은 아예 할 생각
을 마세요."

     나는 말했다. 

     "아, 우리 김 교수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으로  신문사
와 인터뷰를 할 때 맞아죽을 각오하고  썼다고 말했는데 나도 그런 정도의 비
장한 각오는 하고 써야지요."

     A교수가 말했다. 

     "그것과는 경우가 다르죠.  물론 김 교수도 그 책이 불러 일으킬 사회적 
파문과 일부 유생들의 극렬한 반발을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맞아죽을 
각오를 한 것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는 책을 띄우기 위한 계산도 같
이 포함되어 있죠. 그, 어느 용감한 일본인이 <한국, 한국인 비판>을  선전하
면서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고 말하였던 것과 같은 이야기죠. 
아, 한번 생각해봐요. 유생들의 반발이라고 해봤자 그 힘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의 반발이라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죠.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면 감당 못하지. 그리고 유생들이야 약간 고리타분해서 그렇지 대체로  
점잖은 편이죠.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보다는 훨씬 극렬할거요. 게다가 그 
중에는 광신도도 많이 있을 테니까 진짜 위험하죠. 박 교수 목숨이 열 개라고 
모자랄 거요."

     사실 얼마전에는 유림회인지 유도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하여든 유
가를 신봉하는 몇몇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학교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김 교수
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부 총장실에 찾아가 김 교수의 면직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의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었다.

     B교수가 말했다.

     "맞아요. 그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면 방송국에 찾아가 방송도 중단시키
는 사람들이죠. 우리 나라에서 방송이 불시에 중단된 것은 5·16 쿠데타 이후 
처음이라고 하잖아요. 박 교수가 그런 제목의 책을 쓰고 나면 무슨 일을 당할 
지 아무도 모르지. 내용이야 그렇게 하더라도 제목은 좀 더 온건한 것을 택하
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것은 김 교수의 아류가 되잖아요."

     사실 나는 다소 농담조로 이야기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못 진지한 표
정으로 충고하였다. 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좀더 고조시키기 위해 일부러 약
간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니, 공자는 되는데 예수는 왜 안되는 겁니까? 공자나 예수나 다 같은 
성인이잖아요."

     A교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공자는 그냥 성인이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지요. 
하나님의 독생자를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나지요."

     사실 이 말을 한 A교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약
간 비꼬기 위해서 그러한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예수나 공자가 다 같이 인류가 낳은 위대한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
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진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이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에
게는 철석같은 진리이겠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잖아요. 어느 한 집단에게만 통용되는 진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
리가 아니라 집단 주관적인 진리라고 할 있죠. 이십세기가 끝나 가는 이 시점
에 아직도 절대 객관적인 진리와 집단 주관적인 진리를 혼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자,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
는 C교수가 슬며시 끼여들며 말하였다.  

     "그것은 각각의 믿음에 대한 문제요.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독생자인지 
아닌지는 박 교수가 어떻게 알겠소. 원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깊게 하
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요."

     C교수는 우리보다 연배가 높은 교수로서 물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나는 자유로운 토론에 경건한 종교인이 끼여들면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왕에 진행된 활기찬 분위기를 그 때문에 위축시킬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래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물론 믿음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요. 하
지만 때로는 그것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큰 문제거리가 되죠. 
요즈음 심심찮게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종교간
의 갈등이죠. 특히 배타성이 강한 종교들끼리 부딪칠 때 문제가  더욱 심각하
죠. 역사 이래로 종교간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지금 코
소보에서 진행되고 있는 끔직한 전쟁도 종교간의 갈등이 큰 원인 가운데 하나
잖아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폭동은 또 어떻습니까?  원래 종
교는 인류의 평화를 촉진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평화는 커녕 도리어 
분열과 충돌을 가지고 오니 실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죠."

     그러자 A교수가 편을 들어주었다.

     "맞아요.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죠. 도대체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
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죠. 그러니 그렇게 많은 갈등을 가져올 수 밖
에 없죠. 종교간의 갈등은 그렇게 거창하게 멀리 볼 것도 없어요. 우리  주변
에서도 부지기수로 볼 수 있죠. 종교적 갈등 때문에 가족 사이도 서로 서먹해
지고 때로는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죠.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였
는데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서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원수가 된다고 
하는 것은 실로 비극입니다."

     B교수가 말했다.

     "내 주변에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 기독교 신자인 며느리가 들어와
서 제사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히는 집안이 한 둘이 아니죠.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내고가 뭐 그리 중요한 것인지.. 사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이고 관습이잖
아요. 왜 그렇게 편협한지 모르겠어요."

     C교수가 다소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그것은 단순한 문화의 문제가 아니지. 죽은 귀신에게 절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니까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지." 

     A교수가 말했다.

     "사실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내고 하는 것은 개인의 신념문제이니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념이나 문화를 무시하고 방해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
죠. 제가 학교 다닐 때 캠퍼스 내에 운동권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천하대장군
과 지하대장군이 극렬 기독교 학생에 의해 잘려진 일들이 몇 번 있었죠. 그때 
교내에 기독교인들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곤 하였지만 걔들은 끄떡하지 않더
군요. 하기야 남의 절에 들어가서 불상도 태워버릴 정도이니 힘없는 천하대장
군이나 지하대장군쯤이야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없애버릴 수도 있겠죠."

     B교수가 말했다.

     "개신교 사람들 가운데서는 카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것 조차도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죠. 그렇게 따진다면 십자가도 일종의  우상이 
아닐까요."

     C교수가 약간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하면 곤란하지. 신학적으로 예수는 하나님이 육화
되어 나타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성모 마리아는 
피조물이니까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

     나는 말했다.

     "사실 그 부분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미묘한 부분이죠. 기독교와 마
찬가지로 유일신을 믿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도  예수가 
하나님의 육화라고 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죠.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야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사실 이슬람교도 유대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슬람교에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을 인
정합니다. 그리고 예수 또한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하지요. 그렇지만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성모독이라고 말하지요. 우상숭배
를 금지한다는 차원에서는 이슬람교가 가장 엄격하죠. 그래서 이슬람교  사원
에는 어떠한 형상도 없죠. 그리고 좀 더 넓게 바라보자면 우상숭배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유일신교 내에서나 심각한 개념이지 다른 종교에서는 별로  중요
하지 않죠."    

     옆에서 다른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는 긍정의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C교수는 말없이 계속 밥만 먹고 있었다. 나는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
에 한 마디 더 하였다.

     "우상에도 여러 차원이 있죠. 밖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우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우상이 더 심각하죠. 진리 보다는 돈을 더 밝히는 사람은 황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 더 심각한 것은 성인의 가르침을  이상
으로 삼고 실천하기 보다는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어쩌면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천당간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가장 황당한 우상숭배인지도 모르
죠."   

     순간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는 않았지만 C교수의 얼굴이 그다지 편치가 않았다. 

     흔히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깊게 하지 않는  것이 문화인의 에티
켓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종교는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이므로 깊게 들
어가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벽들이 있고 이 벽을 건드리면 서로에게 심한 상
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슬그머니 이야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역시 공자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어도 예수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
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공자와 예수는 그렇게 차원이 다른 
존재인가?  한 쪽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어도 한 쪽은 절대 함부로 말할 수 
없는가? 20세기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아직도 고대 성자들의 절대권위에 짓
눌려 있어야 하는가? 

  나는 이번에 김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써서 공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
용이 어떠한가를 떠나서 이 부분에 대한 김 교수의 공로는 참으로 크다고  생
각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자만이 아니라 예수, 석가 
등의 모든 종교적 성자 까지도 다 같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분위기로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근대 서구문명에 대한 이야기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장점은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단점은 수정보완하여 보다 나은 방향
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의 발전을 모색하는 길이 아닐까?  그것
이 우리 지성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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