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3일 화요일 오후 02시 58분 09초 제 목(Title): 중앙/일 징용유해-현황과 실태 [정리안된 과거사 日징용 유해] 현황과 실태 중앙일보 [ 사회 ] 1999. 7. 12. 月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데도 강제로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 유해는 아직도 일본에 버려져 있다. 민간인의 유해는 정확한 실태조차 모르고, 군인.군속의 유해봉환 협상은 지지부진이다. 유해 발굴.봉환은 금세기가 가기 전에 매듭지어야 한다. 민족의 정기를 세우고 한.일 양국의 새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서도 시급히 마무리지어야 할 과제다. 일본내 한국인 유해현황과 한.일 양국정부.유족단체의 입장 등을 짚어본다. 도쿄 (東京)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메구로 (目黑) 구의 유텐지 (祐天寺) .본당 안을 가로질러 골방에 들어가면 긴 글씨의 위패가 눈에 들어온다. '태평양전쟁 조선반도 출신 구일본 군인군속전몰자영위 (靈位)' .일제때 강제 징병돼 복역 중 숨진 한국인 유해 1천1백36위가 모셔진 곳이다. 71년 후생성 청사에서 옮겨진 이들 유해는 일본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절 관계자는 "가끔 한국의 불교.시민단체 관계자가 찾아와 참배한다" 고 말한다. 당초 후생성이 일본군한테서 넘겨받은 한국인 군인.군속 유해는 9천9백71위. 이중 지금까지 11차례에 걸쳐 8천8백35위만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일 양국은 89년 나머지 무연고 유해를 봉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배상을 주장하는 한국 유족단체들의 반대에 부닥쳐 교섭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최근 이들 단체가 '유해 봉환 후 배상처리' 로 돌아서면서 군인.군속 유해는 봉환의 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안치된 유해 중 4백31위는 북한 출신이어서 본국송환의 기약이 없다. 북.일간에는 송환교섭이 시작조차 안됐기 때문이다. 유텐지 유해는 극히 일부다. 모두 20만명으로 추산되는 강제연행 희생자의 유해중 상당수는 일본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안치는 커녕 소재를 파악 못한 것도 수두룩하다. 징용.징병자를 뺀 히로시마 (廣島).나가사키 (長崎) 원폭 피해자, 간토 (關東) 대지진 희생자 유해수습도 문제다. 일본내 '한국인 강제연행 희생자 유골 제사 및 송환협회' 측은 사찰 등에 안치된 한국인 무연고 유골이 5만위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한.일 양국 정부는 민간인 유해에 대해선 나몰라라하고 있다. 그동안 유해수습은 유족단체나 재일 한국민단 (民團)에 전적으로 기대왔다. 민단 조성준 (趙成俊) 민생국장은 "지금까지 재일동포 희생자 위령비를 일본 전국 34곳에 세웠다" 며 "일부 묘의 경우 일본인과 합장된 곳도 있다" 고 말한다. 민단 차원에서 국내에 봉환한 무연고 유해는 3천5백20위. 민단이 지난 90년 마련한 한국내 강제연행 희생자 위령비 설립계획은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민단은 당시 위령비 건립을 위해 상당액을 모금해 아직도 그대로 갖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인의 손으로도 유해가 수습된다.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과거의 짐' 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1월에는 간토 대지진때 희생된 재일한국인 6명의 유해가 75년만에 지바 (千葉) 현 야치요 (八千代) 시의 '조선인 희생자 조사실행위' 에 의해 수습됐다. 당시 6명은 일본 육군시설에 수용됐다가 야치요 주민들한테 살해돼 집단 암장됐다. 히라가타 지에코 (平形千惠子.여) 실행위 사무국장은 "살해된 한국인 유해문제를 후대에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일을 하게 됐다" 며 "올 9월께 시내의 관음사 경내에 묘지를 마련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올초에는 히로시마현 고보 (高暮) 댐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 6명의 유해가 수습되기도 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유해가 발굴되는 것을 보면 수많은 한국인 유해가 아무도 모른 채 버려져 있는 게 틀림없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재일사학자 이진희 (李進熙) 와코대 교수는 "한국인 유해봉환은 한.일간에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 의 하나" 라며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이 문제가 매듭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고 말했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