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1일 일요일 오후 11시 44분 46초
제 목(Title): 신동아/시계제로, 멕시코농민전쟁


 [16] 제목 : [제4세계를 가다] 시계 제로, 멕시코 농민전쟁

  올해  초 멕시코 농민전쟁 이야기를 다룬 ‘분노의 그림자’라는 책
  이  출간되면서 멕시코 인디오 원주민들의 처절한 삶이 세상에 공개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마르코스 사령관. 인디오 무장조직인 ‘멕
  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이끌고 있는 4명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마르코스는 백인으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인디오
  의  인권문제를  외부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러나 항상 복면을 쓰고 
  있고, 박사학위를 소지했다는 사실 때문에 신비의 인물로 알려져 있
  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어떤 단체인가. 94년 멕시코와 미국의 북
  미자유무역지대협정(나프타)이  발효되면서 외국자본들이 토지를 사
  들이고 경제권을 장악하자 상대적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인디오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빼앗긴 땅을 돌려달라며 만든 무장 게릴라 
  조직이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구호에서 보듯 생사를 
  건 이들의 투쟁은 한때 멕시코 남부지역을 장악할 만큼 기세를 올렸
  다. 그러나 군대를 동원한 멕시코 정부의 강경진압이 시작되면서 현
  재는  멕시코, 과테말라 국경 밀림지역에서 은신하며 정부군과 대치
  하고 있다.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 멕시코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주민 
  대부분이 마야계 인디오다. 그 치아파스의 주도는 산크리스토발. 수
  도  멕시코시티에서 항공편으로 2~3시간 거리에 있다. 산크리스토발
  은  94년 정부군과의 전투 당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가장 먼저 
  점령했던 곳으로 지금도 수많은 조직원이 있다.
  
  이런  분위기는 거리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시가지 건물벽에는 페
  인트로 쓴 ‘승리’라는 구호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고, 시 중심가
  에 있는 성당광장에는 사파티스타 성금모금을 위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인디오들의 사파티스타에 대한 기대는 길거리 날품팔이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노인에서부터 어린아이까지 양손에 사파티
  스타 게릴라 인형을 들고 “승리”를 외쳤다. 
  
  필자는  이곳 사정을 정확히 듣기 위해 현지 신문기자를 만났다. 그
  러나  기자는 취재를 만류했다. 멕시코 정부군이 대대적인 토벌작전
  을 펴고 있어 위험하고, 게릴라들이 밀림으로 숨어버려 자신들도 만
  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기자는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
  다며 천주교 사무엘 루이스 주교를 만나보라고 귀띔해주었다.
  
  사무엘  루이스  주교는 농민전쟁 당시, 게릴라 측 대표로 정부측과 
  협상을 해온 인물로 인디오 원주민들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
  만 주교는 만나주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한 번 성당을 찾아가 통사
  정한 끝에 10여분 정도의 짧은 면담시간을 얻어냈다. 그러나 사파티
  스타의 활동에 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며 인터뷰를 그만 끝내자
  고  했다. 필자가 한국의 36년 일제 식민지 역사를 설명하며 도와달
  라고  간청하자 편지 한 장을 써주며 CONPAZ(멕시코 평화를 위한 비
  정부단체 연합)를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CONPAZ는  게릴라를  지원하고 있는 외곽단체로 인디오에 대한 의료 
  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시외곽 주택가에 위치한 CONPAZ는 이곳의 
  위험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건물 유리창에는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사무엘 루이스 주교의 친필을 보이자 관계
  자는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30평  남짓한 2층 건물 곳곳에는 인디오들의 처참한 삶을 알리는 사
  진과  글이  걸려 있었다. 관계자에게 대낮에 왜 커튼을 치는가라고 
  묻자, “경찰정보원들이 건물 주변에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리고  이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체크되니 각오하라”고 말했다. 
  이 단체의 책임자 셰르난도 미첼코르나는 취재목적과 일정을 듣더니 
  위험하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1시간여를  버티며 설득하자 그는 마침내 지도를 펴보이며 사파티스
  타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게릴라들은 멕시코, 과테말라 국경 근
  처  5곳에 분산돼 있는데 길목 곳곳에 정부군의 검문소가 있어 붙잡
  힐  염려가  있고 통과하더라도 사파티스타 복장으로 위장한 폭도들 
  때문에 위험하다며 취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하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었다.
  
  
  ◆ 게릴라를 찾아서
  
  다음날 필자는 새벽시간을 이용해 접근키로 했다. 동이 틀 무렵에는 
  검문소 경비가 허술하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새벽 6시. 첫
  번째 검문소가 눈에 들어왔다. 검문소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
  찌된  일인지 차량검문을 하지 않았다. 현지 안내인은 정말 운이 좋
  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검문소를 통과한 지 1시간쯤 후 또 다
  른  검문소가  나타났다. 멀리서 검문소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초소 옆 냇가에서 군인들이 작전중이었다. 
  순간  화면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촬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군인들에게 들켜버렸다. 멕시코인 운전사에게 무조건 “G
  o”를  외쳤다. 긴장 속에 한참을 달렸지만 다행히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검문소를 지나 2시간 가량 지나자 주인 없는 허름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 마을은 5개월 전만 해도 사파티스타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멕시코 정부군이 점령했다. 이를 말해주듯 마을 언덕에는 군
  부대에서 내건 멕시코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도대체 사파티스타 게릴라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차를 타고 밀림 
  속으로  3시간을 더 달렸다. 길이 험해지고 인적이 사라지자 무모한 
  짓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밀림에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한참을 더 가니 언덕 아
  래로 마을이 눈에 띄었다.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냇가
  에서 목욕하는 아낙네들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도 잠시뿐.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무장한 청년들
  이 차를 에워쌌다. 그리고 모두 내리라고 했다. 통역이 무언가 열심
  히 설명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끌고가려고 했다. 순간 CON
  
  PAZ에서 만들어준 신분증이 생각났다. 신분증과 루이스 주교의 친필
  편지를 건네며 취재내용을 얘기하자 그들은 마을회관으로 안내했다. 
  
  1시간을  기다리니 마을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무
  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마르코스 사령관, 게릴라들의 활
  동을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질 무렵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었
  다.  초조해진 취재진은 먼저 마을부터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먼저 
  어린아이들에게  “사파티스타를 아는가”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엄
  지손가락을  내밀고는 달아나버렸다. 잠시 후 우리를 검문했던 젊은
  이가 나타나서 취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길 건너편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남자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복면을 하고 총기로 무장하
  고  있었다.  그는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으로 달려갔다. 
  통역을 통해 몇 마디 던졌지만 한마디 대꾸도 없이 쌀주머니를 들고 
  사라졌다. 인터뷰는 못 했지만 말로만 듣던 사파티스타를 봤다는 사
  실에  흥분이 됐다. 그러나 밤늦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다시 불안
  감에 휩싸였다. 
  
  
  ◆ 점령군에게 몸을 파는 여인들
  
  새벽  2시가 지날 무렵. 마을대표가 뛰어와 빨리 인터뷰를 준비하라
  고  알려왔다.  누구냐고 묻자 마르코스는 아니라고 했다. 누구냐고 
  되물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2인자인 모이세스 장군이라고 
  했다.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집으로 달려갔다. 150cm 정도의 작은 
  체구에 복면을 한 사나이가 무장군인 5명의 경호를 받고 있었다. 
  
  모이세스는  인디오 원주민으로 사파티스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
  는  인물이다.  그는 인터뷰를 오래 할 시간이 없다며 서둘러달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조
  명 배터리를 충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타고 온 차
  량과  마을에 있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이용해 촬영을 시작했
  다. 파이프 담배연기를 연신 뿜어내는 모이세스에게 현재 상황을 묻
  자 전력열세를 솔직히 시인하면서 마지막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
  다. 30여분의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며 서
  둘렀다. 필자는 가지고 간 KBS 로고가 찍힌 볼펜 50자루와 라이터를 
  전달했다.  모이세스는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한국을 잊지 않겠다
  며 필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밀림으
  로  사라졌다. 죽음의 그늘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들의 뒷
  모습을 보며 필자는 가슴 한구석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가루챠 마을로 이동했다. 이 마을은 얼마 전만 해도 
  사파티스타의  본거지로 알려진 곳이다. 취재진은 가루챠 마을에 있
  는 학교로 안내되었다. 시설이라고는 엉성한 교실이 전부였다. 멕시
  코 정부에서 교사들과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운영은 CONPAZ에서 맡고 있다.
  
  미국인 교사가 가르치는 영어시간. 수업 도중 학생들에게 미래의 꿈
  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이 “우리 권리를 찾을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얘기다. 오후 5시, 운동장 농구코트에 어른들이 몰
  려들었다.  모두가 농사일을 하다 온 듯했다. 농구경기를 하는 광경
  을 촬영하자 한 젊은이가 달려와 촬영중지를 요구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재협조가 되었는데도 촬영을 못 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늦은밤이 돼서야 알 수 있었다. 
  
  밤  11시경. 마을 대표가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취재진을 깨워 교실
  로  안내했다. 붉은 수건으로 마스크를 한 젊은이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농구경기를 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바로 그들이 사
  파티스타  게릴라였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마을에서 자행되고 있는 
  정부군의 만행을 폭로하며 “인디오의 모든 젊은이는 사파티스타 게
  릴라”라고  말했다.  2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잘  
  곳이 없어 차에서 지내야만 했다. 
  
  잠을  청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밖이 소란해졌다. 그리
  고  10여 차례의 총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마을대표를 찾았다. 무
  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군인들이 밤마다 공포탄을 쏴 주민들을 공
  포에  떨게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게릴라들을 지원하는 것을 막고 
  겁을 주어 마을을 떠나게 하려는 술수라 했다. 
  
  그러더니 마을대표는 자신들의 치부로 감춰온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놨다. 배고픔에 지친 인디오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몸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대표는 자신들을 짓밟는 군인에게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처절한 아픔을 토해내며 목소리가 잠겼다. 필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
  해 다음날 오후 군부대 주변으로 향했다.
  
  실제로 군부대 정문 주변에서 서성이는 인디오 여성들이 보였다. 주
  말에는 더욱 많다고 마을대표는 말했다. 오후 3시경, 마을에 굉음이 
  들려왔다.  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은 귀를 막고 숨기 시작했다. 30여
  대의 탱크와 군용 트럭. 비디오 카메라로 마을과 취재진을 촬영하는 
  군인이 눈에 띄었다.
  
  마을대표는 하루 한 차례 무력 시위를 한다며 이는 강압적이고 비열
  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인디오 마을에는 외국인이 간간이 눈에 띈
  다. 그들은 인권단체 소속으로 정부군의 인디오에 대한 탄압을 감시
  하고 있다. 
  
  잘  곳,  먹을 것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지만 그들의 얼굴은 밝았다. 
  정부군은 이들을 붙잡는 대로 추방하지만, 또다시 이곳에 들어와 인
  디오들과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 그들은 보며 필자는 취재를 마쳤다
  는 안도감보다는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4박5일의 여정이 마
  치 몇 달을 지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을 무력으로 탄압하는 현실. 그러나 외부
  세계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인디오 원주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고 무장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비관적이다. 정
  부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가루챠 마을 소식
  이 외신을 타고 전해왔다. 군인들의 무차별공격으로 마을 전체가 파
  괴되고, 많은 주민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