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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1일 일요일 오후 11시 48분 24초
제 목(Title): 신동아/세계최대의 마약지대,골든트라이엥�


 [15] 제목 : [제4세계를 가다] 세계 최대의 마약지대, 골든 트라이앵글

  중국의  문호개방 이후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세력 판도에 큰 변화
  가 있었다. 그동안 세계적인 마약왕 쿤사가 미얀마 정부에 투항하면
  서  와족이 마약조직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골든 트라이앵글을 
  취재한 동기는 쿤사의 항복이라는 뉴스보다는 한국이 트라이앵글 마
  약수출의  중개지, 소비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
  이다.  마약에 관한 한 비교적 안전지대로 인식돼온 한국과 골든 트
  라이앵글의 마약조직 간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97년11월  하순  방콕으로 향했다. 골든  트라이앵글은 96년에 이어 
  두 번째다. 마약 취재는 간단치 않았다. 4개월 전부터 준비해왔지만 
  현지  안내자가 방송 뒤의 후환이 두렵다며 소극적으로 돌변했기 때
  문이다.  이번 취재는 신변안전을 고려해 쿤사 조직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동행했다.
  
  태국의 제2 도시 치앙마이. 관광, 섹스, 마약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치앙마이는 태국으로 밀반입된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의 해외 밀반출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때문에 상당수의 마약조직이 활동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온 마약수사관들이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치앙마이에서  마약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수카메라
  를 가지고 길거리로 나섰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다가와 마약이 필요
  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뚝뚝이(관광객을 태우는 삼륜오토바이)로 안
  내한 다음 어디론가 갔다. 뚝뚝이를 타고 가는 동안 운전수는 두 사
  람을  만나 무언가 얘기를 하더니 인적 없는 공터에 내려놓았다. 순
  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마약구입을 요구했다는 사실 때문에 협박
  을 할 경우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0분이  지나자  운전수는 마약을 가져왔다며 ‘야마’라는 알약 두 
  개를 건넸다. 가격은 한 알에 100바트(약 3000원). 야마는 히로뽕과 
  같은  ‘암페타민’  성분으로 장기간 복용할 경우 뇌세포가 파괴돼 
  죽음에  이르는 신종 마약이다. 야마는 청소년들에게 급속히 확산되
  면서  태국을  마약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그 심각성은 치앙마이 
  마약환자 수용소에서도 알 수 있었다. 300여명의 환자 가운데 80%가 
  야마 중독자였다. 대부분이 초·중·고교생들이었다. 야마를 복용한 
  지 2년이 되었다는 중 2년생은 학교에서도 야마를 복용하고 있고 한 
  반에 2~3명이 중독자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쏟아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태국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태국 마
  약청  부청장은 “마약조직이 헤로인에서 야마로 생산품목을 바꾸고 
  있는 게 큰 문제” 라고 지적했다. 마약조직은 왜 품목을 바꾸는가. 
  양귀비를 재배하고 화학처리를 해야 하는 등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적
  발될  위험이 높은 헤로인에 비해 야마는 화학약품만 있으면 간단하
  게 만들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마약조직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골든 트라이앵글에는 쿤사, 와족, 링민샨 등 6,7개 조직이 있다. 특
  히  96년 마약왕 쿤사의 항복 이후 세력판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쿤사조직이  쇠퇴한 반면 그동안 군소조직이었던 와족, 링민샨 등이 
  세를 확산해가며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심장부인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도시 메싸이. 우
  리나라 읍단위 크기의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이곳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은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이 해외로 밀반출되는 첫 관문
  이기  때문이다. 메싸이 주변에는 쿤사, 와족의 병사들이 400~500명
  에서 많게는 2000명씩 모여 마약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
  다. 
  
  태국과  미얀마 양국을 이어주는 것은 50m 길이의 2차선 다리다. 다
  리  중간지점이 국경선이다. 이 다리는 ‘헤로인 밀수 고속도로’라
  는  별칭을 갖고 있다. 태국 쪽 국경 검문소에서는 무장군인들이 차
  량, 사람에 대한 세밀한 조사를 벌인다. 그동안 다리 주변에서는 마
  약조직과  군경찰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
  하곤  했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메싸이에는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정보원들이 1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마약을 둘러싼 숨막히는 첩보전
  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메싸이는  한마디로 마약 천국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실태
  가  심각했다. 다리 주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은 마약복용자
  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헤로인이나 야마는 길거리에서 돈
  만 주면 구입할 수 있었다. 
  
  메싸이 경찰서를 취재하는 동안 마약조직과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
  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작전캠프가 설치된 곳에는 부상당한 
  군인,  압수된 마약 재료가 있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산속으
  로 올라갔다. 10여분간 총성이 울린 뒤 조용해졌다. 잠시 후 산등성
  이에서 내려오는 군인들은 마약조직이 달아났다며 그들이 버리고 간 
  마약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이날 압수된 마약은 야마로 3만개가 
  넘었다.
  
  메싸이 경찰서장은 쿤사, 와족이 여러 곳에 분산돼 마약을 생산하고 
  있다며  이들이 만드는 야마는 생산량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
  했다. 취재진은 경찰서장이 알려준 쿤사조직의 은신처를 찾았다. 언
  뜻 보기에 평범한 마을이었지만 촬영을 시작하자 갑자기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삿대질을 해대며 촬영장비를 빼앗으려 했다. 현
  지  통역은 그들과 몇 마디 얘기하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리고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위기감을 느꼈는지 
  운전수는  전속력을 내 빠져나갔다. 젊은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따
  라오다  거리가 벌어지자 되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와 통역에게 물어
  보니 그들이 죽이겠다는 말을 해 도망쳤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곳을 취재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변에  위험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메싸이를 빠져나가 쿤
  사 잔존세력이 은신하고 있다는 미얀마, 태국 국경 산악지대로 향했
  다. 해발 1000여m. 태국 북부지역 미얀마 국경 옆의 반힌테크 마을. 
  일반인의  출입이  좀처럼 없는 곳이다. 메싸이에서 반힌테크까지는 
  산길이지만 포장이 되어 있었다. 
  
  반힌테크는  쿤사조직이 처음 출발한 곳이다. 이곳에는 쿤사의 항복 
  이후  2000여명의 조직원이 미얀마를 떠나 은신해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주민들에게 쿤사조직과 마약에 대해 질문해보았지만 모두 피
  해버렸다. 단지 첩첩산골 마을에 위성안테나가 있고, 집집마다 차량
  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느낄 수 있
  었다. 반힌테크에는 지금도 20여년 전 쿤사조직과 태국 정부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던 흔적이 그대로 있고, 쿤사조직이 생활하던 건물들
  은 복원돼 쿤사의 전성시대를 다시 꿈꾸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쿤사조직 2인자를 면담
  
  취재진은 쿤사조직원들이 은신해 있는 또 다른 지역으로 향했다. 락
  랭  마을. 메싸이에서 차로 9시간 거리에 있다. 이 마을은 취재하기 
  이틀  전 쿤사조직과 정부군 간에 한 차례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동
  하는 동안 검문을 세 차례 받았다. 군인들은 도로가 마약 운반 통로
  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며 날이 어둡기 전에 서둘러야 한
  다고 충고했다.
  
  락랭  마을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경. 캄캄한 밤이어서 마을 전체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포장된 도로, 규모가 큰 집들에서 이들의 
  생활수준을 알 수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취재진을 한 집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돋보기 같은 
  안경을 쓴 사람이 반갑게 안내인을 맞았다. 그는 쿤사조직의 대변인
  을  지냈던 ‘큰사이’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현지 안내인은 
  취재진을  사업상  한국인을 찾고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먼저 
  국내세관에  적발된 쿤사 마약조직원 사진을 꺼내 확인시켰다. 그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한국인이 있다며 
  사진첩을  가지고 나왔다. 놀랍게도 사진첩에는 95년 쿤사의 헤로인
  을  밀수하려다  붙잡힌 윤모씨가 있었다. 쿤사 근황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쿤사나 마약에 관한 얘기는 금기사항이라며 말도 꺼내지 못
  하게 했다. 윤씨를 잘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묻자 어디론가 안내했다. 
  
  취재팀이  안내된  곳은 해발 2000여m 산골. 그곳에는 상상이 안 될 
  만큼 큰 규모의 저택이 있었다. 잠시 후 50대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
  다.  쿤사조직의 2인자, ‘쿤두안’이었다. 사실 쿤두안이라는 인물
  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어렵게 입수한 쿤사조직 전성기의 자료화
  면에서였다.  군사퍼레이드  행사장 연단, 마약왕 쿤사 옆에 자리한 
  인물이 쿤두안이었다. 180cm에 가까운 신장, 근육질 팔과 큰 덩치에
  서 군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반갑게 맞아주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 쿤사의 근황을 묻자 “
  쿤사의  항복은  잘못된 것”이라며 자신은 미얀마에 투항하지 않고 
  조직원을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만남은 1시간 남짓 계속되
  었다.  많은 얘기가 오가면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는 창문 밖
  을  연신 내다보며 직접 마약장사를 한다는 사실을 거침없이 털어놓
  았다. 혹시 아는 한국인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50대 및 20, 30대
  의  한국인 3명을 아는데 이들을 만나려면 자신의 친구를 통해야 한
  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누구냐고 묻자, 사진 속의 한 남자를 가리
  켰다. 
  
  마침 취재에 동행했던 안내인 중 그 남자를 잘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잇센이었다. 잇센은 쿤사의 수행비서 역할을 했던 
  인물로 95년 구속된 윤모씨 역시 잇센을 잘 알고 있었고, 그동안 여
  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잇센은 본명이 아닌 것으
  로  알려졌다.  잇센의 소재를 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취재진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확인해보
  니  형광등 불빛에 반사돼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한국인
  과의 커넥션을 밝혀줄 사진 확보를 위해서는 몰래 가지고 나오는 방
  법밖에 없었다. 숨막히는 순간이 흘러갔다.
  
  문제가 생겼다. 잇센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쿤두안과 큰사이는 왜 
  그에게  관심을 갖는지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차츰 의심의 눈
  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
  았다.  새벽  1시. 취재진은 밤길을 다니지 말라는 군인들의 충고를 
  뒤로  한  채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섯 시간에 걸쳐 
  험난한 산길을 달려야만 했다. 
  
  
  ◆ 물살에 떠밀려 50m
  
  96년 쿤사 항복 이후 골든 트라이앵글을 사실상 평정한 집단이 와족
  이다.  중국 접경지대에 위치한 미얀마의 험준한 고원, 와족이 사는 
  곳은 ‘황금의 삼각지대’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2
  0여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든 방문객은 머리에 못이 박히
  는  참변을  당해야 했다. 와족은 한때 농경신에게 바친다며 사람의 
  머리를 묻곤 했던 것이다.
  
  취재팀은  중국 윈난(雲南)성을 통해 와족 지역에 접근을 시도했다. 
  윈난성은  최근  동남아 지역의 마약 단속이 강화되면서 마약조직의 
  새로운  루트로 부각되고 있다. 윈난성 수도 쿤밍(昆明)시는 마약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살벌했다. 쿤밍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 마약사범을 공개처형하고 있다. 
  
  쿤밍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진흥이라는 마을로 이동했다. 진흥은 중
  국 남부 국경지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인구가 몇 만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20여개의 특급호텔과 카지노가 
  있었다.  현지인에게 그 이유를 묻자 마약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도
  박을 즐기기 위해 찾는다고 했다. 
  
  진흥을  떠나 10여시간 만에 중국 국경 멍하 마을에 도착했다. 자정
  이 넘었지만 가라오케와 도박장에는 많은 주민이 몰려 있었다. 멍하
  는 남카강을 사이에 두고 미얀마와 인접해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곳
  을 찾는 외국인은 대부분 마약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밝아온 멍하의 아침은 평온한 산골마을이 아닌 살벌한 전장 
  분위기였다. 국경 검문소에서는 마약을 찾아내려는 검문검색이 한창
  이었고  마을을 중심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총을 든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촬영 금지구역이다. 취재팀은 6mm 디지털 카
  메라를 이용했다. 그러나 야간에 몰래 촬영을 하다가 공안원에게 붙
  잡혔다. 다행히 안내한 현지인이 공안원을 잘 아는 사람이라 무사히 
  풀려나왔다.
  
  와족의 수도는 팡상마을이다. 멍하에서는 승용차로 5분거리도 채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국인, 와족, 미얀마 사람만 출입이 
  허용된다. 외국인의 경우는 와족 사령부의 특별 초청을 받아야 하고 
  책임자가 국경까지 마중나와야만 통과할 수 있다. 취재팀은 와족 치
  안  책임자를 접촉해 국경 통과를 부탁했다. 그러나 중국 국경 책임
  자는 상부 지시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심장부 팡
  상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갔다. 
  
  하는 수 없이 비상대책을 강구했다. 취재팀은 현지 중국인에게 촬영
  을  부탁했다.  그러나 중국인은 비디오 카메라를 한번도 만진 적이 
  없다고  했다. 2시간 동안 작동법을 가르쳐 팡상마을로 들여보냈다. 
  3시간 후 중국인이 돌아왔다. 비디오에 찍힌 팡상마을은 은행, 공중
  전화,  병원 등 편의시설은 다 갖추고 있었고 특히 카지노와 술집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화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취재팀은  직접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고용한 카메라맨
  이  못 들어가겠다고 버텼다. 하는 수 없이 필자는 직접 6mm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국경을 넘기로 했다. 그러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
  다. 중국, 미얀마 국경에는 너비 100m가 넘는 남카강이 흐르고 있었
  기  때문이다. 남카강은 메콩강의 지류로 물살이 무척 거셌다. 중국
  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이곳은 마약운반 루트여서 야간에 국경을 넘
  는  것이 발견되면 무차별 총격이 가해진다. 필자는 말도 통하지 않
  는  중국 현지인을 따라 두 차례 월경을 시도했지만 거센 물살 때문
  에 실패했다.
  
  현지인은  마을  주민을 불러 상의하더니 다시 또 한 지점을 선택했
  다.  우리는 옷을 모두 벗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촬영 장비는 현
  지인에게 맡겼다. 20여m를 지날 무렵 수영이 미숙한 필자는 그만 물
  살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살
  아야겠다는  생각뿐. 천운이었는지 50m쯤 떠내려가다 발이 강바닥에 
  닿았다.
  
  천신만고 끝에 건너온 팡상마을, 솔직히 후회가 엄습해왔다. 취재는 
  차치하고 강을 다시 건너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국내 방송
  사로는  처음  카메라에 담은 팡상의 밤은 상상을 넘어설 만큼 환락 
  그 자체였다. 길거리에는 몸을 파는 여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고급
  여관도  눈에 띄었다. 늦은 밤이지만 실외 영화관에는 구경 나온 사
  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상영하는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였다. 
  군복차림을 한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이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팡상
  에서  가장 이채로운 것은 카지노와 정복을 한 여성딜러의 모습이었
  다. 24시간 문을 여는 카지노는 항상 만원이다. 마약을 팔아 벌어들
  인 돈을 쓸 곳이 달리 없기 때문에 모두가 도박에 빠져들고 있었다. 
  
  

 [14] 제목 : [제4세계를 가다] 마약, 한국세관을 무사통과

  한 장면이라도 더 담으려고 정신없이 카메라를 돌리고 있을 때 와족
  치안책임자가  나타났다.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는 촬
  영장비를 압수하고 우리를 체포하려 했다. 아찔했다. 이곳은 중국이
  나 미얀마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 더구나 몰래 국경을 넘어왔
  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미화 1000
  달러를 주며 봐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치안책임자는 봐줄 수 없다며 
  군인을 부르겠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인 안내인이 팔을 잡
  아당기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큰길보다는 산길을 따라 무조건 달렸다. 30분이 지나자 멀리 남카강
  이 눈에 들어왔다. 와족 군인들이 뒤쫓는 소리가 들렸다. 강가에 이
  르러  테이프와 카메라를 현지인에게 맡겼다. 만일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  중국에 있는 취재팀에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군인들의 뒤쫓는 
  소리가 커져 강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건너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수영을 시작했다. 중국땅으로 넘어와서도 안내
  인을  따라 무조건 달렸다. 한참을 지나 멈추어서니 물에 젖은 옷을 
  통해 한기가 파고들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촬영테이프였다. 다행
  히도 팡상의 실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마도 방송생활하면서 이
  렇게 행복했던 시간은 다시 없었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자 여관주인은 대단하다며 한국인에 대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매년  여름 한국인들이 이곳에 오는데 모든 경비는 와족이 
  부담한다고 했다. 김씨 최씨 이씨라는 성만 들었을 뿐이지만 한국인
  이 와족 마약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정보였다.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 프로그램 기획의도는 마약왕 쿤사의 항복 후 
  마약조직의 세력변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추적하고 한
  국이 마약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 취재는 야마라
  는  신종 마약이 한국에 상륙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국내 마
  약 수사에 중요한 정보를 주었다. 
  
  이를 위해 필자는 현지에서 구입한 야마라는 알약을 갖고 세관을 통
  과하는  불법(?)을 감행해보았다. 알약이 쉽게 국내에 들어올 수 있
  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국내에 돌아온 후 곧바로 
  검찰과 세관에 이 사실을 통보했고 구입한 야마를 검찰, 세관, 국정
  원(당시  안전기획부)에  보내 성분 분석과 함께 수사에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이 나간 지 몇달 후 취재를 도와주었던 
  서울지검 강력부 안희권 검사로부터 야마 공급책을 검거했다는 소식
  을 들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야마가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검찰과 국정원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방송사상 처음
  으로  국정원 국제범죄 담당자가 출연했고, 검찰에서는 쿤사 마약밀
  매조직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조직원들을 불러 현지에서 취재해온 내
  용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 다시 험난한 지역으로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는 협박이 뒤따른다. 마약이나 폭력조직 취재
  에는  분쟁지역취재보다  더 큰 위험이 따른다. 자신의 이익에 반할 
  경우 보복 위협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골든  트라이앵글 방송 후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수차례 
  협박을  받았다.  아마도 국내에 있는 마약조직원일 것이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판매중지시켰다. 수없이 걸려오는 구입문의를 뒤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는 이미 뼈저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95년 ‘국제여권 위조조직이 한국을 노린다’는 제목의 프로
  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다. 당시 방콕에 있는 여권 위조조직을 취재
  하는 과정에 중국계 태국인 브로커를 인터뷰했다. 물론 비밀리에 만
  났고  방송에서도 신원을 알지 못하게끔 철저하게 처리했건만 이 제
  보자는 한 달이 지난 후 집에서 피살된 채 발견됐다. 그리고 취재팀
  에도  방콕에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때문에 
  마약취재  역시 방송 테이프가 마구 팔려나갈 경우 제보자들에 대한 
  보복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해 판매를 중지시킨 것이다. 
  
  방송인들  사이에  흔히 하는 말이 있다.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
  다.”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프로그램에 던져야 한다. 때로는 
  생사의  기로에서 회한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험난한 지역
  으로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은 사회정의를 위하고 힘없는 자 
  편에 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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