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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6월 11일 금요일 오전 07시 15분 04초
제 목(Title): 배선영/어 뉴 패러다임 , 초록 







 초 록 (抄 錄 ; ABSTRACT)
 
     
  
 
▶ 서문(序文)
 
▶ 해제(解題)
 
▶ 요약본 다운받기
 
▶ 한국의 외환위기의 원인에 관한 소고
 




 
 
제 1 장

집필의 동기 및 과정



〔서문(序文) 중에서〕



   기성의 경제학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컬으며, 그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위세로 당대를 풍미하고 있을 때, 그것에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도전하여, 
마침내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경제학의 역사에 일대변혁(一大變革)을 불러일으키는 
획기적인 이론서--- 그런 저서들이 금세기 들어 두 권 있을 수 있다면, 그 첫번째 
책으로는 일단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즉, 1936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그 
역저(力著)가 선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두번째 책으로 선정될 역작(力作)은 과연 어느것인가 ? 저자는 
감히 단언한다. 그것은 목하 한국에서 출간되는 저자의 {새로운 패러다임}--- 즉, 
바로 이 책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께서는, 그 이전까지 성리학의 대가들이 치열하게 
벌여 왔던 이기논쟁(理氣論爭)에 서른일곱 살의 연세로 결연(決然)히 종지부를 
찍으시면서, 이(理)와 기(氣)의 속성들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다 :

   "대저, 발(發)하는 것은 기(氣)요, 발하게 하는 소이(所以)는 이(理)다. 기가 
아니면 능히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하게 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이 말씀 바로 아래에 다음과 같은 자신만만(自信滿滿)하신 
말씀을 첨기하셨다:

   "위에서 말한 바는, 후세(後世)에 성인(聖人)이 다시 탄생하더라도 이를 
개역(改易)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의 서문에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술회하였다 :

   "선친께서는 소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주공(周公)께서 졸(卒)하시고 나서 500년이 지난 연후에 공자(孔子)께서 
나오셨다. 그런데, 공자께서 졸하시고 나서 다시 500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이제 
주공과 공자의 뒤를 이을 사람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
라고 하셨다.
선친의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 그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 소자가 어찌 감히 그 
뜻을 좇지 아니할 수 있으리오 ?"

   제갈량(諸葛亮)은 열아홉 살이 되면서부터 매양 자신을 비기기를, 문(文) 內政 
및 外交〕으로는 춘추시대의 명재상인 관중(管仲)에, 그리고 무(武)〔軍事〕로는 
전국시대의 명장인 악의(樂毅)에 비기곤 하였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 5월 그의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을 검증해 보기 위하여 
영국의 천문학자들이 천체관측(天體觀測)을 실시하고 있던 시기에, 한 제자로부터 
그 이론이 타당한 것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렇다면, 나는 아마 하느님께 유감(遺憾)을 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나의 이론은 옳다."

   이제, 독자제위께서는, 우리가 흔히 자부심(自負心)이라고 일컫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새겨 보셔야 하실 것이다.

   이이(李珥) 선생께 자부심이 없었다면, 선생께서는 우리들 후손들에게 율곡의 
철학을 남겨 주시지 못하셨을 것이다.

   사마천에게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는 "역사학의 비조(鼻祖)"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갈량에게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는 후대(後代)의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을 적시게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에게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는 "20세기의 코페르니쿠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자에게 그 자부심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다면,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선친〔故 智山 裵宗鎬〕께서는 동서고금의 철학들을 섭렵하신 기반 
위에서 한국철학의 중흥을 위하여 사실상 칠십평생을 모두 바치신 분이셨다. 
저자가 대학신입생이 되었을 때, 선친께서는 저자를 훈계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의 
찬란했던 고대사(古代史)를 알려 주셨다. 그리고, 선친께서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우리는 민족의 자존심(自尊心)을 되찾아야 한다. 
나는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대역사(大役事)의 진척에 한 조각의 벽돌이라도 
보태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진력(盡力)하여 왔다. 그 동안 내가 걸어 온 길은 물론 
형극(荊棘)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로서 자식인 너에게 차마 같은 
길을 밟으라고 강요하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이 말만큼은 명심(銘心)해 주기를 바란다 :
{효경}(孝經) 같은 데에서는, 사회적으로 입신(立身)하여 부모의 이름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효도는 오히려 작은 
효도〔小孝〕다. 정말로 큰 효도〔大孝〕는,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어 민족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그때, 저자는, 한편으로는 저자가 한국에서 태어난 사실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학계에서는 세계의 학계를 주도할 수 
있는 이론들이 전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그만큼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게 
되었다 :

   한국의 학자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외국의 학자들을 추종(追從)하기만 하고 있을 
것인가 ? 한국의 학자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외국의 학자들이 제조한 이론들을 
수입하기만 하고 있을 것인가 ?

   그리하여, 저자는 바로 그때, 기필코 선친의 뜻을 받들어 대효(大孝)를 행하여 
보겠노라고 굳게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가 냉정(冷靜)하게 판단해 보니, 저자의 재능은 한두 가지 
면들에서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적어도 기존경제학이 어디까지 옳고 어디에서부터 그른지를 
판별할 수 있는 안목(眼目) 정도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추구하여야 할 목표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저자는 케인즈 이후 최고의 경제학자로 평가받아 보겠다는 야심과, 한국을 
경제학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浮上)시켜 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제 저자가 대학신입생 시절 이래 근 20년 동안 품어 온 그 야심과 그 포부를 더 
이상 감추지 않겠다.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귤보다 오렌지를, 그리고 가요보다 팝송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서양에서 태어나신 분들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장차 칸트의 철학보다 율곡의 철학을, 그리고 새뮤엘슨의 경제학보다 저자의 
경제학을 더 좋아하시게 되시더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실 필요는 전혀 
없으시다고.

   백락(伯樂)은 말의 상(相)을 잘 보는 명인(名人)으로서, 숱한 말들 속에서도 
한눈에 천리마(千里馬)를 가려낸다. 그러나, 천리마의 입장에서는 백락을 만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백락을 만나지 못한 천리마는, 결국 천리마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채 불우하게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다. 한유(韓愈)는 
인간사(人間事)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슬퍼하였다 :
"천리마를 다루는 법이 따로 있고, 그것이 먹는 양이 따로 있건만, 하인(下人)은, 
채찍질만 마구 하고, 먹이는 조금밖에 주지 않는다. 이에 말이 자신을 천리마답게 
대우해 달라고 섧게 울어도, 그 뜻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울음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는 암매(暗昧)한 하인이 채찍을 들고 다가와서 꾸짖기만 한다. 
그것도,
'세상에는 좋은 말이 참으로 없구나.'
하고 한탄하면서 말이다.

슬프다 ! 세상에는 정말로 말이 없는 것이냐 ? 아니면, 말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냐 ?"

   그러나, 저자 자신의 처지를 두고서라면, 저자는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슬퍼할 이유가 없다. 저자에게는 독자제위 한 분 한 분께서 모두 백락이 되어 주실 
터인데, 저자가 무엇 때문에 슬퍼할 것인가 ?

   돌이켜보건대, 저자가 주경야독(晝耕夜讀)하듯 이 책을 집필하며 지금까지 보내 
온 십수 년(十數年)의 기간은, 어쨌든 저자에게 있어서는 인고(忍苦)의 
광음(光陰)이자 대장정(大長征)의 세월(歲月)이었다.

   저자는 이제 그 인고의 대장정을 마치면서 또 한 번 감히 단언하고자 한다 :

현대경제학은, 그것이 진정한 경제학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면, 기존경제학의 
낡은 패러다임을 포기하고, 저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하여야만 한다.

 

〔해제(解題) 중에서〕

   먼저, 저자가 한 사람의 경제학도로서 거쳐 온 행로(行路)에 언급하고자 한다. 
아직 30대(代)에 불과한 나이로 "행로"를 운운하는 외람됨을 범하려고 하는 
저자로서는, 저자가 경제학에 개안(開眼)하게 된 것이 단순히 천부(天賦)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과, 저자가 케인즈를 좋아하는 것이 단순히 우상(偶像)을 
추종하는 차원의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 독자제위께서 일말(一抹)의 주의(注意)라도 
기울여 주시기를 앙망할 따름이다.

   저자는 케인즈를 좋아한다. 저자는 그를,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스승으로서, 
그리고 선망(羨望)과 추종의 대상으로서, 그러면서도 도전과 경쟁의 대상으로서 
좋아한다.

   저자는 고등학교 때, 대학생이던 가형(家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몇 권의 
경제학교과서들을 한 장 두 장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경제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케인즈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내 그의 인력(引力)에 
이끌리게 되었다.

   저자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78년이었는데, 저자는 그때부터--- 어린 
마음에--- 설사 케인즈에 필적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에 버금갈 수는 있는 
경제학자가 한번 되어 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같은 꿈이 
비상(非常)한 노력(努力) 없이 이루어질 리는 만무할 것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또한 그때부터 나름대로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 경제학을 천착(穿鑿)하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학부과정 4년 동안의 면학을 통하여 특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즉,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有效需要理論)은 자본주의경제가 존속하는 한 그 타당성을 
잃을 수 없는 불멸의 이론임이 분명하지만, 그의 유동성선호설(流動性選好說)은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할 허구적인 이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저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계를 학부과정을 졸업하기 전까지 완료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1982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다 집중적으로 
구상(構想)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석사과정에 진학하였고, 저자의 
정진(精進)은 계속되었다.

   당시에 저자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하면서 걸었던 논리적 소로(小路)는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전인미답(前人未踏)의 험로(險路)였고 또한 
다기망양(多岐亡羊)의 미로(迷路)였다. 저자의 그 노정(路程)은 한마디로 고독한 
투쟁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그 고독한 투쟁이 그 자체로서 하늘에 치성(致誠)을 드린 것이 
된 셈이었는지, 어쨌든 저자는 그 고투(孤鬪)의 과정에서 숱한 논리적 난관들을 
하나하나 극복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1983년 2월경, 마침내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계를 완료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고독한 투쟁은 그 지점에서 끝나지 않았다. 
역설적(逆說的)이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계를 완료하는 저자의 그 성공은 
저자를 오히려 더 큰 시련(試鍊)의 장(場)으로 들어서게 하였다.

   그 시련이란, 설계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공(施工)하는 어려움, 즉, 그 구상된 
바를 글로 옮기는 어려움이었다. 사실상, 공자께서도 {역경}(易經)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며, 또한,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書不盡言하고, 言不盡意니라.)

라고 말씀하셨는 바, 그러할진대, 구상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뜻"을 곧바로 "글"로 다 표현하려는 작업이었으므로, 그 작업이 결코 쉬울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저자는, 이미 1983년 3월부터 
행정공무원의 생활을 시작하여 이후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실무자로 바쁘게 
일하게 되었기 때문에, 집필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 처지에 줄곧 놓여 있었던 
것이다.

   췌담(贅談)이지만, 저자가 일찌감치 행정공무원을 지망하고 또 그에 따라 지난 
십수 년 간 고생스럽지 않다고 할 수만은 없는 그 생활을 해 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동기들이 작용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그 동기들 가운데 두 가지를 
밝히기로 하겠다.

   첫째,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저자 스스로 직접 현실의 경제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 저자로서는--- 케인즈도 자신의 이론을 자기 스스로 직접 현실의 경제에 
적용해 보려 하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현실적 
타당성을 저자 스스로 직접 검증해 보고 싶었다.

   둘째, 저자는 이 책을 저자의 일신(一身)이 편안한 상태에서 저술하고 싶지 
않았다. 저자로서는, 오히려, 그 역경(逆境)이 불가피하게 닥쳐온 것이든 아니면 
자기희생의 각오로 스스로 선택하여 들어선 것이든, 역경 속에서 분발하여 
역사적인 명작들을 탄생시킨 위인(偉人)들을 본받고 싶었다 :

   주(周)나라 문왕(文王)께서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에 의하여 유리( 里)의 
감옥에 구금되신 상황에서 역(易)의 원리를 연역(演繹)하셨고, 공자께서는 
"상가지구"(喪家之狗)의 신세로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를 떠도시다가 
당신의 도(道)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절망하신 상황에서 {춘추}(春秋)를 
찬술(纂述)하셨다. 그리고, 손빈(孫 )은 방연(龐涓)의 모함으로 두 다리가 잘린 
뒤에 "손가(孫家)의 병법(兵法)"을 집대성하였고, 굴원(屈原)은 간신들의 참소로 
방축(放逐)을 당한 뒤에 [이소](離騷)를 창작하였으며, 사마천은 직언을 하다가 
"이릉(李陵)의 화(禍)"를 입은 뒤에 {사기}를 편찬하였다. 또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는 각각 불우하고 궁핍한 가운데 불멸의 명시(名詩)들을 남겼으며, 
모차르트와 베토픈은 각각 가난과 청각장애에 시달리면서 영원한 명곡(名曲)들을 
남겼다.

   한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선생께서는 장장 27년 동안 객사(客死)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국토 전역을 답사하신 끝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완성하셨고, 마르크스는 가족들이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비참한 환경에서 
{자본론}을 집필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도 특허업무를 담당하는 하위직 행정공무원의 초라하고 
빈궁한 생활을 감수하고서 특수상대성이론 등 현대물리학의 서막을 올리는 
주요이론들을 정립하였으며, 케인즈도 건강을 상실하는 희생을 감수하고서 
{일반이론}을 집필하였다.

   그러므로, 논리가 비약(飛躍)하는 일면이 없지 않지만,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필사(必死)의 산고(産苦) 없이 태어나는 작품은 그것이 
아무리 천재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역사적인 명작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이 점에 대하여 독자제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

   아무튼, 저자는, 저자에게 적지 않은 희생이 요구된 고독하고 또 고통스러운 
투쟁을 통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고, 그 저술과 출간준비에는 모두 15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 담겨질 저자의 구상을 서술함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문장의 
평이성(平易性)보다는 그것의 명료성(明瞭性)을, 그리고 논리전개의 
간이성(簡易性)보다는 그것의 엄밀성(嚴密性)을 공히 중시하였고, 그리하여, 그 
목적을 위하여 단어의 선정·어순의 조정·문장부호의 사용·단락의 구분 및 
수사법의 구사 등 작문에 필요한 각각의 과정에서 매번--- 진정 이 책의 어느 한 
군데에서도 빠짐없이--- 심혈(心血)을 기울였다.

   케인즈는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1935년 12월 13일에 {일반이론}의 서문을 
통하여 그 책의 독자들에게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그런데, 
케인즈의 그 메시지와 저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독자제위께 남기려고 하는 
메시지는 그 내용이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하여, 이 시점에서 저자가 60여 년의 
세월을 격(隔)하고서도 케인즈에 대하여 어떤 묘한 연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인 바, 아무튼, 저자가 가장 존경하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그 
메시지는--- 따라서 저자의 그 메시지도--- 다음과 같다 :

   "이 책을 저술하는 일은 저자에게 있어서는 기나긴 탈출의 고투(苦鬪)--- 
사고(思考)와 표현(表現)의 습관적 방식들로부터의 탈출의 고투--- 였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매우 공들여 표현하는 관념들은 기실에 있어서는 지극히 
단순하고 또 너무나도 자명(自明)한 것들이다. 어려움은, 새로운 관념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들 속에 그물 모양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낡은 
관념들로부터 탈출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서 하늘의 
명(命)을 기다린다는 그 마음가짐으로 독자제위의 공정한 평가를 기대한다.

 

제 2 장

주요 논의내용


1. 프롤로그

   저자는, 이제, 기존경제학과 결전(決戰)을 치르기 위하여--- 카이사르가 로마에 
입성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루비콘강을 건넌다.

   물론, 독자제위 가운데에는, 기존경제학은 백만대군이지만 저자는 단기(單騎)에 
불과하기 때문에 저자의 승리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예단(豫斷)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 그 분들께서는, 아마도, 저자가 무모하게도 뜨거운 태양을 향하여 
이카루스의 비상(飛翔)(Icarian flight)을 감행(敢行)한다고 안타까워하실 것이다.

   그러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일 것이기에, 그리고--- 워털루에서의 
대회전(大會戰)에 임하여 웰링턴이 말하였듯이--- 승부는 최후의 5분이 결정해 줄 
것이기에, 승리의 여신 니케(Nike)는 결국 저자를 위하여 개선(凱旋)의 팡파르를 
울려 줄 것임을 저자는 확신한다.

   어쨌거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남은 것은, 앞으로 전개될 기존경제학과 
저자 사이의 운명적인 한판 승부를 독자제위께서 하등(何等)의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관전(觀戰)하여 주실 일뿐이다.


2. 기존 화폐수급패러다임의 허구성(虛構性)

   요지 : 기존경제학은, 경제의 내부에는 화폐공급과 화폐수요를 일치시키려 하는 
힘이 존재하여, 양자(兩者)가 일치하는 상태인 "화폐시장의 균형상태"는 성질상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실현 및 유지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경제학은 이 같은 인식--- 케인즈의 화폐수급패러다임--- 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방대한 규모의 이론체계를 구축(構築)해 놓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에 있어서는, 화폐공급과 화폐수요가 일치하는 상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립할 수 없으며, 언제나 화폐공급이 화폐수요를 현격(懸隔)히 
초과하는 상태가 지속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기존경제학의 이론체계 가운데 
적어도 케인즈의 화폐수급패러다임 위에 축조(築造)되어 있는 부분은, 그 규모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사상(砂上)의 누각(樓閣)으로 전락(轉落)할 수밖에 없다.


   기존경제학에 의하면, 화폐공급이라 함은 "한 시점에 있어서 목하 그 경제에 
존재하고 있는 화폐의 총량"을 말하며, 화폐수요라 함은 "한 시점에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목하 보유하고 있고자 하는 화폐의 총량"을 말한다.

   그런데, 기존경제학은, 경제의 내부에는 화폐공급과 화폐수요를 일치시키려 
하는 힘이 존재하여, 양자가 일치하는 상태인 "화폐시장의 균형상태"는 성질상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실현 및 유지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기존경제학의 이 같은 인식은 케인즈 이래 지금까지 
반세기를 훨씬 넘는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줄곧 부동(不動)의 정설(定說)로서의 
권위를 누려 왔다.

   그러나, 저자는 가장 먼저 기존경제학의 그 같은 인식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

   "기존경제학이 '화폐시장의 균형상태'라고 말하는 상태는, 간단히 말하면, 
경제주체들이 자신들의 수중에 존재하고 있는 화폐 전액(全額)을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모두 보유하고 있고자 하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 화폐를 보유하고 
있고자 한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화폐를 지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시점에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자신들의 수중에 존재하고 있는 화폐 
전액을 모두 보유하고 있고자 한다면, 그 시점에 있어서 그들의 수중에는 그들이 
목하 지출하고자 하거나 지출중인 화폐는 존재하고 있을 수 없게 되며, 그 같은 
상황하에서는 화폐지출을 수반하는 제반의 거래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실의 화폐경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수많은 
장소에서 막대한 규모의 다양한 거래들이 막대한 금액의 화폐지출을 수반하면서 
부단(不斷)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의 화폐경제에 있어서는 
매시점에 있어서마다 경제주체들 누구누구인가의 수중에 그들이 목하 지출하고자 
하거나 지출중인 화폐가 다량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경제주체들의 수중에 그들이 목하 지출하고자 하거나 지출중인 
화폐가 존재하고 있을 수 없는 상태인 '화폐시장의 균형상태'는 현실적으로는 물론 
논리적으로조차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저자는 이상과 같은 소박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수백 페이지에 걸친 정밀한 
추론을 진행시킨다. 그리하여, 저자는--- 화폐수요의 한 구성요소인 거래적 
화폐수요의 개념을 최대한 기존경제학측에 유리하도록 해석하고서도, 그리고 또 
개개의 거래가 초과분의 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경제주체와 초과화폐수요를 
시현하고 있는 경제주체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을 모두 
고려하고서도--- 마침내 기존경제학의 이론체계를 근저에서부터 붕괴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

   "현실의 경제에 있어서는, 분석단위기간내의 어느 시점에 있어서도 화폐공급과 
화폐수요가 일치하는 상태는 성립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분석단위기간 
전기간(全期間)에 걸쳐 화폐공급이 화폐수요를 현절(懸絶)한 격차를 두고 초과하는 
상태가 지속되기 마련이다. 현실의 경제는 언제나 화폐공급이 화폐수요를 
현격(懸隔)한 차이를 두고 초과하는 상황하에서 운행된다."
 

3. 기존 이자율이론의 오류와 새로운 이론

   요지 : 시장이자율은 어떤 수준으로 결정되느냐의 문제를 놓고서, 
기존경제학자들은 크게 보아 케인즈의 유동성선호설(流動性選好說)을 지지하는 
세력과 빅셀의 대부자금설(貸付資金說)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이들 양설(兩說)은 공히 그릇된 이론들이다.

   저자는 그 대안(代案)으로서 저자 자신의 이자율결정이론인 
유량자금설(流量資金說)을 제시하며 이자율논쟁의 영구적 종결을 선언한다.


   시장이자율은 어떤 수준으로 결정되느냐의 문제를 놓고서, 기존경제학자들은 
크게 보아 케인즈의 유동성선호설을 지지하는 세력과 빅셀의 대부자금설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다. 유동성선호설측에서

   "시장이자율은 화폐공급과 화폐수요를 균등화시키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라고 주장하면, 대부자금설측에서는 즉각

  "시장이자율은 대부자금공급〔경제주체들이 신규대차증서의 매입을 위하여 
제공하고자 하는 자금의 총량〕과 대부자금수요〔경제주체들이 신규대차증서의 
매출을 통하여 조달하고자 하는 자금의 총량〕를 균등화시키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라고 반박하는 논전(論戰)이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먼저 유동성선호설에 언급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폐공급과 
화폐수요가 일치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동설(同說)에서처럼 시장이자율이 화폐공급과 화폐수요를 균등화시키는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렇다면, 대부자금설이 정론(正論)인가 ? 그렇지도 않다. 동설은 기실에 있어 
"시장이자율의 결정에는 제반의 자금 가운데 신규대차증서의 매입 또는 매출에 
관련되는 자금만 작용한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실적 및 논리적 타당성을 
모두 결여한 것이다.

   참고로 첨언하면, 기존경제학자들 중에는

   "유동성선호설과 대부자금설이 모두 맞으며, 각각 동일주화(同一鑄貨)의 
일면씩만을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라고 주장하는 인사들도 많은데, 이 같은 중도통합론(中道統合論)은 
유동성선호설과 대부자금설 양설의 오류들을 모아서 통합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저자는 유동성선호설과 대부자금설의 대안으로서 저자 자신의 이론을 
"유량자금설"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한다 :

   먼저, 신규대차증서를 포함하여 기발행대차증서·신규채권 및 기발행채권 등 
제반의 부리증권(附利證券)의 매입 또는 매출에 관련되는 자금 전체가 종합적으로 
시장이자율의 결정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연후에, "경제주체들이 제반의 부리증권의 매입을 위하여 제공하고자 하는 
자금의 총량"을 유량자금공급, 그리고 "경제주체들이 제반의 부리증권의 매출을 
통하여 조달하고자 하는 자금의 총량"을 유량자금수요로 규정하고서, 요컨대 
시장이자율은 유량자금공급과 유량자금수요를 균등화시키는 수준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의 이 같은 이론은 금융실무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바와도 합치한다.

   저자는, 이제, 이 같은 유량자금설이야말로 이자율결정이론의 결정판이라고 
자부하면서 이자율논쟁의 영구적 종결을 선언한다.
 

4. 새로운 주식수급모형

   요지 : 기존경제학의 통설에 따르면, 주가〔주식의 시장가격〕는 그때그때 
주식매수희망량과 주식매도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저자의 주식수급모형에 따르면, 주가는 그 시점에 있어서 그 경제에 존재하고 있는 
주식의 총량〔주식존재량〕과 그 시점에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고자 
하는 주식의 총량〔주식보유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저자는 저자 자신의 이 같은 모형을 이용하여 주식시장의 장세변동(場勢變動)을 
분석하며, 특히, 활황기에 주식발행이 많이 이루어졌을수록 후속(後續)하는 
침체기의 기간은 길어지고 그 골은 깊어진다는 사실 등을 명료하게 밝힌다. 

   저자는 '89년부터 '93년까지 옛 재무부 증권국에 근무하는 동안 이 같은 이론을 
우리 나라 주식시장에 직접 적용하여, '89년 종반부터 '92년 전반기까지의 
주식시장 침체를 예고하기도 하고, 그 침체에 임하여서는 적절한 대책들을 
제시하여 '93년 하반기부터 '94년 하반기까지의 주식시장 회복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기존경제학의 통설에 따르면, 주가〔주식의 시장가격〕는 그때그때 
주식매수희망량과 주식매도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저자의 주식수급모형에 따르면, 주가는 그 시점에 있어서 그 경제에 존재하고 있는 
주식의 총량〔주식존재량〕과 그 시점에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고자 
하는 주식의 총량〔주식보유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이를테면 〈그림 
1〉에서 의 수준〕으로 결정된다.






 〈그림 1〉



   유상감자(有償減資) 등에 따라 기발행주식이 소각(消却)되는 사례는 무시하기로 
할 때, 주식존재량은 일정기간이 경과하는 동안 유상증자(有償增資)에 따른 
신규주식발행이 있게 되면 그 신규발행분만큼 증가하는데, 주식존재량의 증가는 
일단 주가하락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주식보유희망량의 증가는 
주가상승요인으로, 그리고 그 희망량의 감소는 주가하락요인으로 각각 작용한다.

   우리는 이 같은 모형을 이용하여 주식시장의 장세변동을 분석할 수 있는데, 
이하에서는 주식발행의 과다 내지 방만한 주식발행이 주식시장을 침체시키는 
측면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주식시장 활황기에는, 주식보유희망량이 증가세를 유지함에 따라 주가가 
상승세를 유지하는 한편 주가의 상승세 유지는 주식의 신규발행을 부추겨 
주식존재량을 증가시키는데, 전반적으로 주식보유희망량의 증가속도가 
주식존재량의 그것을 능가하기 때문에, 주가의 상승세는 상당기간 동안 계속된다.

그러다가, 활황기가 끝나게 되었을 때, 주식보유희망량은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한번 발행된 주식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한번 증가된 주식존재량은 
감소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주가는 큰 폭으로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와 함께 침체기가 도래한다.

   참고로, 활황기가 끝나게 되었을 때에 주식보유희망량이 급속히 감소하고 
주가가 급격히 하락하게 되는 원인을, 저자는 크게 두 가지 방면에서 찾는다 :

   첫째, 주식투자자들은, 불현듯 "주식시장이 과열되어 있고 주가가 거품에 
의존하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끼고서, 불원간 주식시장이 냉각될 것을 
우려하여 서둘러 주식보유규모를 축소시키려 한다.

   둘째, 실제로도, 주가 속에는 다량의 거품이 생겨 있게 된다. 활황기에는 
기업들이 주식발행을 통하여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개인들도 쉽게 
가득(稼得)한 수입(收入)이 있으면 그것을 헤프게 지출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기업들도 쉽게 조달한 자금이 있으면 그것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경향이 있는 바, 
기업들이 그 주식발행을 통하여 조달한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함에 따른 
중복·과잉투자 등으로 투자의 한계효율 및 자본의 평균효율이 현저히 저하되어, 
주식의 내재가치(內在價値)는 부지불식간에 활황기의 초기의 경우에 비하여도 
하락하여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활황기에 주식발행이 많이 이루어졌을수록 
후속하는 침체기의 기간은 길어지고 그 골은 깊어지며, 침체기에마저 주식발행이 
많이 이루어지면 그 침체국면은 더욱더 심화된다.

   저자는 '89년부터 '93년까지 옛 재무부 증권국에 근무하는 동안, 이상과 같은 
이론을 우리 나라 주식시장에 직접 적용하여 그것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86년 이래 활황을 구가(謳歌)해 오던 우리 주식시장에서는 '88년과 '89년의 
2개년 동안 대규모의 방만한 주식발행이 이루어졌었다. 당시, 저자는 재무부의 
안팎에서--- 많은 분들께--- 주식발행물량 과다에 따른 주식시장 침체의 임박을 
예고하는 한편, 그 침체에 대비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식발행의 
급증추세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역설(力說)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활황장세가 한창 진행중이던 무렵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그 같은 고언(苦言)은 
묵살 또는 무시되었다.

   결국 우리 주식시장은 '89년 종반에 이르러 기어코 일대침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89년 4월 1일에 1,007.77의 수준까지 상승하였던 주가지수가 '92년 8월 
21일에는 459.07의 수준까지 폭락하였다.

   저자는 '89년 종반 이후 [주식발행물량 축소조절방안] 등 그 침체의 극복을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입안하였고, 그것들은 곧바로 재무부의 공식대책들로 
시행되었다.

   저자는 당시에 많은 분들 앞에서, 그 대책들이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주식시장은 '93년 하반기 이후부터 상당히 빠른 속도로 회복(恢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었는데, 우연의 일치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주식시장은 '93년 하반기에 들어 회복국면에 진입하였고, 주가지수는 '94년 8월 
11일에 사상최고치인 1,138.75의 수준까지 상승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94년 이후부터는 정부의 증권정책이 저자가 제시한 
방향과는 반대로 운용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 주식시장은 '95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또다시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5. 새로운 채권수급모형

 

   요지 : 기존경제학의 통설에 따르면, 채권가격〔채권의 시장가격〕은 그때그때 
채권매수희망량과 채권매도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저자의 채권수급모형에 따르면, 채권가격은 그 시점에 있어서 그 경제에 존재하고 
있는 채권의 총량〔채권존재량〕과 그 시점에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고자 하는 채권의 총량〔채권보유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저자의 채권수급모형은 시장이자율이 여하히 결정되는지에 
관하여 논의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저자는 옛 재무부 증권국에 근무하는 동안 이 같은 모형을 우리 나라 
금융시장에 직접 적용하여, 우리 경제에서 '89년 하반기부터 근 3년 동안 
진행되었던 고금리(高金利) 및 자금고갈(資金枯渴)의 현상을 치유하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기존경제학의 통설에 따르면, 채권가격〔채권의 시장가격〕은 그때그때 
채권매수희망량과 채권매도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저자의 채권수급모형에 따르면, 채권가격은 그 시점에 있어서 그 경제에 존재하고 
있는 채권의 총량〔채권존재량〕과 그 시점에 있어서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고자 하는 채권의 총량〔채권보유희망량〕이 일치하게 되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채권존재량은 일정기간이 경과하는 동안 당해기간중의 신규채권의 발행량에서 
당해기간중의 기발행채권의 상환량을 차감한 "순증발행분"만큼 변동하는데, 
순증발행분이 양〔+〕의 수치를 취하여 채권존재량이 증가하는 것은 채권가격의 
하락요인으로, 그리고 순증발행분이 음〔-〕의 수치를 취하여 채권존재량이 
감소하는 것은 채권가격의 상승요인으로 각각 작용한다. 한편, 채권보유희망량의 
증가는 채권가격의 상승요인으로, 그리고 그 희망량의 감소는 채권가격의 
하락요인으로 각각 작용한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저자의 채권수급모형은 시장이자율이 여하히 결정되는지에 
관하여 논의하는 데에도 적용〔내지 응용〕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채권가격과 
채권유통수익률 사이에는 역비례의 관계가 존재하고, 채권유통수익률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시장이자율을 대표할 수 있으며, 저자의 채권수급모형과 저자의 
유량자금설 사이에는 〔말하자면〕 표리(表裏)가 상응(相應)하는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옛 재무부 증권국에 근무하는 동안, 이상과 같은 모형을 우리 나라 
채권시장〔넓은 시각으로 보면, 우리 나라 금융시장〕에 직접 적용하여 그것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우리 금융시장에서는 '89년 하반기부터 '92년 상반기까지 근 3년 동안 고금리 
및 자금고갈의 시기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있으면서 
고금리 및 자금고갈의 현상이 가장 심화되었던 연도는 '91년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회사채유통수익률만 하더라도 연 20 %의 수준에 접근하고 
사채금리(私債金利)는 이른바 A급어음에 적용되는 할인율 기준으로도 연 25%의 
수준에 접근하는 등 제반의 실세금리들이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아 있었고, 
기업들은 그에 따른 과중한 금융비용부담과 함께 극심한 자금고갈에 허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상황이 그와 같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재무부와 그 주변에서는--- 
허다한 경제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금리의 하향안정화와 
자금사정의 완화를 성공적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하여 하루가 멀게 
난상토론(爛商討論)이 벌어졌지만 ; 그러나, 일방에서 금리의 하향안정화와 
자금사정의 완화를 도모하기 위하여는 통화의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不可避)하다고 주장하면, 타방에서는 통화의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물가를 
자극하는 것이므로 채택이 불가(不可)하다고 반대하는, 그러다가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는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되었다.

   저자가 채권순증발행의 축소조절이라는 비책(秘策)〔?〕을 꺼내 보이기 시작한 
때는 바로 그 무렵이었다. 저자는 '91년 6월경부터, 당시의 여건하에서는 
채권순증발행의 축소조절이 금리의 하향안정화와 자금사정의 완화를 물가를 
자극함이 없이 성공적으로 기약(期約)할 수 있는 묘책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저자의 견해 및 비책이 재무부의 공식적인 견해 및 대책으로 채택·시행된 때는 
'92년 1월경이었다. 그리고, 이 또한 우연의 일치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 
저자가 기자회견에서 그 대책의 효과를 전망하였던 대로, 자금사정은 '92년 
2/4분기가 채 종료되기도 전에 현저히 완화되었으며, 회사채유통수익률은 '93년 
3월 29일에 이르러 사상최저치인 연 10.95%의 수준까지 하락하였다.

 

6. 우리 나라 외환위기의 원인

   요지 : 많은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각자의 대외신용도가 허용하는 
해외차입잔액한도가 거의 소진(消盡)될 때까지 최대한으로 대규모의 해외차입을 
추진하였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대외신용도를 하락시키는 1차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해외차입 → 외환공급〔달러화공급〕의 증가 → 
환율〔달러 값〕의 저수준 유지 → 수출의 둔화 및 수입의 증가 → 경상수지의 
적자 누적 → 순외채잔액의 급증 → 대외신용도의 추가하락"의 과정을 진전시켰다.

   한편, 많은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해외차입으로 조달한 막대한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하여 경제 전반에 걸친 중복·과잉투자를 진행시킴으로써, 경제의 
거품성장을 유발하고 구조적(構造的)인 경영부실을 자초(自招)하였다. 

   이상의 요인들로 인하여 대외신용도가 급전직하(急轉直下)의 형세로 
하락하면서, 결국 외환위기가 엄습(掩襲)하였다. 

   저자는 옛 재무부 증권국에 근무하는 동안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의 과도한 
자금조달 및 그 조달자금의 방만한 운용을 억지(抑止)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책들을 제시하였고, 당시 그 대책들은 소기(所期)의 성과를 시현하였다.

   그러나, '94년에 들어선 이후로는, 경제현실을 직시(直視)하시지 못하시는 
분들의 주도로 금융정책이 운용되는 과정에서, 저자가 제시하였던 정책들은 사실상 
모두 폐기되었다.


   저자가 확신하건대, 만일 저자가 제시하였던 정책들이 '94년 이후에도 적정한 
강도로 계속 시행되어 현재에 이르렀다면, 우리 경제는 전반적으로 
건실(健實)해졌을 것이며, 그에 따라 금번의 외환위기는 근원적으로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가. 첫번째 요인

   우리 나라의 많은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특히 '94년초부터 '97년 9월까지의 
기간중 각자의 대외신용도가 허용하는 해외차입잔액한도가 거의 소진될 때까지 
최대한으로 대규모의 해외차입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의 
총외채잔액〔IBRD 기준〕은 '93년말의 439억 달러 수준에서 '97년 9월말의 1,197억 
달러 수준으로 급속히 증가하였고, 그 총외채잔액에서 차지하는 
단기외채(短期外債)의 비중도 '93년말의 43.7% 수준에서 '97년 9월말의 54.8% 
수준으로 현저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진전된 것은, 같은 기간중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 각자의 대외신용도와 우리 경제 전체의 
그것〔국가신용도〕을 공히 하락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나. 두번째 요인

   우리 경제는 '94년초부터 '97년 9월까지의 불과 3년 9개월 동안 총 496억 
달러의 경상수지 누적적자를 경험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이 경상수지 적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환율〔달러값〕은, '94년부터 '96년까지의 3개년중에는 
연중평균치 기준으로 771원 805원 수준에서 유유(悠悠)히 ?〕 머물러 있었고, 특히 
'95년중에는 오히려 하락세를 시현하였다.

   이 같은 기현상(奇現象)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작위적(作爲的)으로 환율을 낮추었기 때문인가 ? 
아니다. 이미 시사한 바와 같이, 그 기현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 
무엇보다도--- 과도한 해외차입이 줄곧 진행되어 외환공급〔달러화공 급〕이 
증가세 내지 증가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췌언(贅言)을 덧붙인다면, '94년초부터 '97년 9월까지의 기간중에 형성되었던 
환율은, 분명히 시장원리에 의하여 결정된 "시장환율"이었지만, 경상수지를 
균형시킬 수 있는 "적정환율"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94년초부터 '97년 9월까지의 기간중에는 "과도한 해외차입 → 
외환공급의 증가 → 환율의 저수준 유지 → 수출의 둔화 및 수입의 증가 → 
경상수지의 적자 누적 → 순외채잔액의 급증"의 과정이 진전되었는 바, 이것은, 
같은 기간중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 각자의 대외신용도와 우리 경제 전체의 그것을 
공히 하락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다. 결정적 요인

   '94년 초반 이래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적어도 '96년 하반기 이전까지는 
해외차입을 통하여 명목금리〔향후의 환율변동이 감안되지 않은 금 리〕가 낮은 
대규모의 자금을 상당히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개인들도 쉽게 가득한 수입이 있으면 그것을 헤프게 지출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기업들도 쉽게 조달한 자금이 있으면 그것을 헤프게 운용하는 경향이 
있는 바, '94년 초반 이래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한마디로 말하여--- 쉽게 
조달한 자금을 헤프게 운용하였다 :

  첫째, 많은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이 해외차입을 통하여 조달한 막대한 양의 자금 
가운데 상당부분을 분석 또는 심사를 소홀히 한 채 대기업들에게 제공하였다.

  둘째, 많은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금융기관들로부터 조달하거나 직접 해외차입에 
나서서 조달한 막대한 양의 자금 가운데 상당부분을 이를테면 
철강산업·자동차산업·반도체산업· 
정보통신산업·유통산업·건설산업·레저산업···등에 경쟁적으로 
투하(投下)하면서 중복·과잉투자까지도 거침없이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94년 초반 이래 우리 경제는 "거품성장"〔중복·과잉투자에 힘입은, 
내실 없는 성장〕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97년 1월에 들어선 이후로는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 중 상당수가 공히 구조적인 경영부실상태에 몰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앞에서 언급된 요인들에 여기서 언급되는 요인이 결정적으로 
가세하면서---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 각자의 대외신용도와 우리 경제 전체의 
그것은, 공히, '97년 1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동년 10월 12월중에는 가위(可謂) 급전직하의 형세로 추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향세를 보여 오던 
"대외신용도가 허용하는 해외차입잔액한도"〔〕와 상향세를 보여 오던 "실제의 
해외차입잔액"〔〕이 교차하여 "데드 크로스"(dead corss)를 형성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 '97년 10월말경을 전후하여 외환위기가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림 2〉




라. 외환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을 거시경제정책적 대책들

   대략적으로 말할 때,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88년 중반 이래 '97년 중반에 
이르기까지 '92년과 '93년의 2개년을 제외한 근 8년 동안, 대규모의 
국내주식발행·대규모의 국내채권발행·대규모의 국내차입 그리고 대규모의 
해외차입 등을 통하여 막대한 양의 자금을 비교적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언급하는 바지만, 개인들도 쉽게 가득한 수입이 있으면 그것을 
헤프게 지출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기업들도 쉽게 조달한 자금이 있으면 그것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전기(前記)한 근 8년 동안 그 막대한 양의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바, 안타깝게도, 이미 시사한 바와 
같이, 그 가능성은 실제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금융기관들과 대기업들이 〔경영건전성(經營健全性)이나 
시장안정성(市場安定性)을 도외시(度外視)하고서〕 과도한 자금조달 및 그 
조달자금의 방만한 운용을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하였던 것--- 현금(現今)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보다 포괄적이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저자는, '89년부터 '93년까지 옛 재무부 증권국에서 증권정책 관련업무를 
담당하면서, 주식시장 및 금융시장의 안정과 방만한 자금운용의 방지를 위하여는 
사전(事前)에 과도한 자금조달을 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책(方策)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국내주식발행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그 물량을 
관리하는 정책〔주식발행물량의 관리〕과 국내채권발행물량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그 물량을 관리하는 정책〔채권발행물량의 관리〕을 직접 기안(起案) 및 시행하는 
한편, 대기업들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여신(與信)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그 물량을 
관리하는 정책〔대기업여신물량의 관 리〕과 해외차입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그 
물량을 관리하는 정책〔해외차입물량의 관리〕을 측면에서지지하였다.

   이들 네 가지 정책들이 동시에 집중적으로 시행되었던 시기는 '92년과 '93년의 
2개년 동안이었다. 그렇다면, 그 2개년 동안에는 과도한 자금조달 및 그 
조달자금의 방만한 운용을 억지(抑止)할 수 있는 정책들이 시행되었던 셈이다.

   실제로, 이들 네 가지 정책들의 당시의 시행효과들 가운데 가시화(可視化)된 
것들 몇 가지를 예시하면,

   첫째, '92년 8월 21일에 459.07의 수준까지 하락하였던 주가지수가 '94년 8월 
11일에는 1,138.75의 수준까지 상승하였다〔주식시장의 회복(恢復)〕.

   둘째, '91년 10월 16일에 연 19.90%의 수준까지 상승하였던 회사채유통수익률이 
'93년 3월 29일에는 연 10.95%의 수준까지 하락하였다〔금리의 하향안정화〕.

   셋째, '90년부터 '92년까지 3년 간 연속적자를 시현하였던 경상수지가 
'93년에는 흑자로 반전(反轉)되었다〔경상수지의 흑자 시현〕.

   그러나, '94년에 들어선 이후로는, "금융의 자율화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나 선(善)이다"라고 주장하시며 거시경제정책적인 "관리"(管理)까지도 
불필요한 "규제"(規制)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 정부의 안팎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형성하셨고, 그리하여, 경제현실을 직시하시지 못하시는 이 분들의 주도로 
금융정책이 운용되는 과정에서, 전기한 네 가지 정책들은---그 명맥(命脈)의 유지 
여부를 불문하고 그 시행의 강도(强度)를 고려하여 평가하면--- 사실상 모두 
폐기되었다.

   저자가 확신하건대, 만일 그 네 가지 정책들이 '94년 이후에도 적정한 강도로 
계속 시행되어 현재에 이르렀다면,

① 우리 경제는 전반적으로 건실해졌을 것이며,

② 그리고, 그에 따라 지금의 외환위기는 근원적으로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첨언하면, 저자의 소견(所見)으로는, 주식발행물량의 
관리·채권발행물량의 관리·대기업여신물량의 관리 및 해외차입물량의 관리도, 
그것들이 각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를테면 "경영건전성기준"(manage- 
ment soundness criteria)이나 "시장안정성기준"(market stability criteria) 같은 
것〕에 의거하여 시행될 수만 있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각기 적절한 
거시경제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 기타 논의사항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이상에 그 논의내용이 간략하게 소개된 사항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논의된다 :

   1) 화폐의 정의(定義)·기능(機能) 및 구체적 범위 등과 화폐경제의 특성 등이, 
기존경제학이 상투적(常套的)으로 논의하고 있는 바와는 달리 엄밀하고 정확하게 
논의된다.

   2) 화폐공급방정식(貨幣供給方程式 ; money supply equation)이 또한 
기존경제학이 상투적으로 도출하고 있는 바와는 달리 엄밀하고 정확하게 도출된다.

   3) 투기적 화폐수요에 관하여, 케인즈의 이론이 토빈에 의하여 
왜곡해석(歪曲解釋)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케인즈의 이론에 대한 재해석이 
시도되며, 케인즈의 이론과 토빈의 자산선택이론적 접근의 통합도 시도된다.

   4)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국민소득결정이론〕과 저자의 
유량자금설〔이자율결정이론〕을 통합한 모형, 즉,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의 
상호연관성(相互聯關性) 및 그 동시균형(同時均衡)을 분석할 수 있는 모형이 
제시된다.

   5) 경제재시장은 어떤 경우에 균형상태에 있게 되는지, 그리고 경제재의 
시장가격은 어떤 수준으로 결정되는지 등을 살펴보는 데에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모형이 소개된다.

   6) 발라스의 항등식(Walras' identity)과 발라스의 법칙(Walras' law)이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되고, 기존경제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발라스의 법칙을 
오해(誤解) 및 오용(誤用)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7) 유효수요(有效需要 ; effective demand)와 유효공급(有效供給 ; effective 
supply)은 각각 무엇이고, 관념수요(觀念需要 ; notional demand)와 
관념공급(觀念供給 ; notional supply)은 각각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8) 일반균형(一般均衡 ; general equilibrium)이 달성될 수 있기 위한 
필요조건들로서 "관념수요·공급들의 유효화"(effectuation of notional de- mands 
and supplies)와 "가격들의 신축성"(flexibility of prices)이 제시되는 한편, 
이들 두 조건들 사이에는 양자(兩者)가 동시에 충족될 수는 없는 
상충관계(相衝關係)가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일반균형의 달성은 현실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9) 자연의 세계에서는 예외 없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는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 
; Relativit tsprinzip)가 경제의 세계에서는 예외 없이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10) 마지막으로, 대부자금설의 비논리성(非論理性)과 유동성선호설의 
허구성(虛構性) 등이 추가적으로 논의된다.
 

8. 에필로그


--- 기존경제학의 최후(最後) ---

증자(曾子)는 이런 말을 남겼다 :

   "새는 죽게 될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게 될 때 그 말이 착하다."

   (鳥之將死에 其鳴也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善이니라.)

   이제, 기존경제학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 기존경제학은, 벽옥(碧玉)을 진열해 
놓고서는 잡석(雜石)을 판매하고, 현명함을 광고해 놓고서는 어리석음을 배달하던 
그 파렴치(破廉恥)한 모습을, 최후에 임하여서도 그대로 보여 줄 것인가 ?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존경제학은, 아마도, 자신이 저질러 온 
지난날의 과오(過誤)를 뼈저리게 뉘우치고서, 그 과오에 대하여 숙연(肅然)히 
사죄할 것이다. 증자(曾子)의 말이 옳다면 말이다.

   이렇게 하여, 기존경제학은 창연(愴然)히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저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기존경제학의 명복(冥福)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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