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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5월 17일 월요일 오전 11시 21분 01초
제 목(Title): 한/고은,백낙청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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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은·백낙청씨 새천년 특별대담 
세월을 헤는 것도 사람이 제 편리한대로 만든 것이어서, 천년이 가고 새로운 천년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세월의 매듭에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우리의 모습을 한번 조금 멀리서 살펴보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때마침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새로운 세기를 앞둔 세계 속에서 
한국과 한국 문학이 나아갈 바를 천착해온 고은 시인과 백낙청 교수의 대담을 통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우리의 좌표를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싱그러운 신록과 
함께 눈부신 5월의 봄 햇살이 쏟아져내리는 하버드대학 교정에서 두 분이 나눈 
대화를 옮겨본다. 편집자 


백낙청: 저는 지난해 9월 하버드에 와서 지내면서 평소 못읽은 책도 읽고, 
여기저기 모임에 가서 한국 문학, 한국 사정을 소개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고은 
선생께서는 더 바쁘게 지내오셨는데. 

고은: 1월에 와서 하버드에 좀 익숙해지다가 버클리대에서 봄학기를 보내고 어제 
다시 돌아 왔습니다. 거기서는 한국 문화를 염두에 두고 현대시 강의를 했습니다. 
시학 자체만을 통해서 펴나가는 강의는 어쩌면 시를 잠들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국의 살아 있는 문화와 시를 얘기했습니다. 

백: 저도 여러 사람들과 한국 문학·문화 얘기를 많이 나눴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의 경우 한국 문학의 절대적인 역량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겠고, 번역상의 문제도 있겠지요. 그러나 번역을 더 
지원한다든가 하는 식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는 한국문학을 번역·소개하는 것을 한국학의 특수분야 
지식으로 생각하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현대문제에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와 관련된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볼때 고은 
선생이 직접 한국 시가 살아있는 시라는 실감을 심어준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한국 문학, 한국 상황을 두고 세계적으로 통하는 담론을 
펼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여겨 저도 나름대로 실험해봤으나 그 점에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고: 우리가 한국 문학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퍽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기고만장하는 태도는 세계문학의 바다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문학 및 문화연구 분야에서 같은 
동아시아권인데도 중국에 대해선 방대한 연구가 돼있고, 일본만해도 다양한 문화적 
접근이 시도되는 데 비해, 한국은 심한 경우 캄보디아와 별로 차이가 없다는 
인상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세계의 인식수준은 이제 시작단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 점에서 근대가 세계와의 관계를 의미한다면, 이제 막 근대가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백: 한국이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저도 받았습니다. 서양이 쥐고 
흔드는 세상이라, 그들의 서양 중심주의가 아직은 완강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정당한 것조차 그들 눈에는 안들어오는 면이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직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문성이랄까--문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실력이 모자란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그런 전문성을 
위한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고은 선생께서는 `근대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 표현으로 하면 `근대에 적응'하는 작업을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서양 사람들 눈에 안 들어와서 그렇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문화역량이라든가, 서방 선진국에서 찾아 보기 힘든 그런 것도 있지요. 가령 
시인의 경우를 보면 미국 시인은 사회적으로 별 지위가 없습니다. 시집출판도 
어렵고 출판돼도 잘 팔리지도 않고…. 그래서 사회적 영향도 별로 없는 셈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시가 읽히고 시인이 대접을 받습니다. <한겨레신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민이 성금을 내서 만들고, 어느 정도 재벌·금권으로부터 독립된 
그런 신문이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지요. 잡지나 그밖의 다른 문화세계의 경우에도 
일본만 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활력이 우리에게는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살리면서 우리 나름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를 `근대에 
적응'하면서 `근대를 극복'하는 우리 나름의 독특한 이중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저는 표현해왔지요. 

고: 이번에 서부에 있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미국 시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미국 
시단이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온 느낌이 든다고 할만큼 서부가 미국 시단의 중심이 
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미셸 푸코 따위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발길로 
차버리자, 머리를 굴려서 만드는 지적인 유희같은 것에 현혹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태양 아래 심장을 가지고 시를 쓰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문학은 문학에 익숙한 
땅에서도 꽃피겠지만, 문학의 박토와 사막에도 새로운 문학이 싹트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의 오랜 문학적 집적물과 함께 그것에 어깨가 짓눌리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백: 저는 그 사이 미국에 잠깐씩 들린 적은 여러차례 있지만 이렇게 오래 체류하는 
것은 72년 이후 처음입니다. 이번에 와서 실감하는 것 중 하나는, 미국이 원래부터 
물질생활에서 제일 앞선 나라였지만, 기술발전 등의 면에서 그 사이 또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했지만 일반사람의 생활이 반드시 편리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 미국경제가 좋다고 하는데 못 사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도 문제지만, 잘 사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경황없이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를 보면서 미국의 장래와 관련지어 자본주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는 
이 둘을 따로 생각해야 된다고 봅니다. 미국은 유럽 나라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자본주의로 출발했고, 지금은 자본주의 총본산이기 때문에 미국과 자본주의의 
장래를 한묶음으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면 미국이 지금 싱싱하니까 
자본주의도 앞으로 영원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본주의에 
문제가 너무 많아 불원간 한계에 봉착할 터이므로 미국도 결국은 망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양쪽 다 안 맞는 얘기같아요. 생태계에 한계도 있고 
해서, 이런 식의 자본주의 문명이 10-20년내 당장 종말을 고하지는 않더라도 
길게는 인류생존과 양립될 수 있는 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 사회, 미국 국가, 아메리카 문명은 인류가 온통 함께 망하지 않는 
한 장래는 있다고 봅니다. 미국인 스스로 자본주의 운명의 막바지에서, 얼마만큼 
자본주의의 근대에 적응하고 자본주의 근대를 극복하는가 하는 나름대로의 노력에 
따라 그 다음 시기의 미국 국가와 아메리카 문명의 장래가 결정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됩니다. 

고: 코소보에 포탄이 마구 날라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포탄과 같은 무기가 인간에게 끼치는 재앙에 대한 아무런 실감없이 공격을 
계속하는데 여기에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에는 다시 한번 어둠의 시대가 오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백: 얼마전 콜로라도에서 고등학교 학생 두 명이 마른 하늘에 벼락처럼 동료 
학생들을 죽이고 자기들도 자살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미 그런 식으로 업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하더라도 비디오 
게임식으로 자기들이 남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도 직접 실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는 것도 언론 보도 정도로밖에 못 느끼는 그런 전쟁을 하고 
있어요. 전자오락식 전쟁의 시대가 지속되면 될수록 미국내의 도덕적 해이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고: 여기에 머물면서 한반도를 원경으로 바라보니까 그 지겨운 정치현실도 
추상화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느낀 한가지는 우리의 근대적 명제인 주체나 
독립의 의미가 이제는 전환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난날에는 독립을 위한 투쟁이 
가장 절실한 과제였는데 이제는 다른 것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역사관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굳어져 가는 혈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백: 45년 8·15 당시 단일 독립국가가 지상과제였지요. 불행하게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20세기 말까지 왔는데요. 지금 시점에서는 통일된 단일 
민족국가를 가져야만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다는 대전제를 깔고 생각할 게 
아니라 오히려 순서를 바꿔서 한반도 남북 대다수 민중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로 발상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현재 어떻게 살고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요. 

고: 70년부터 통일운동을 해왔습니다만, 그 시절은 민주화와 통일이 하나의 전선을 
요구하는 가치였습니다. 그것이 80년대 내내 이어져 왔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통일 
지상주의를 지양하고, 먼저 통일을 향한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민족적 실체가 
함께 민족적 품성을 새로 갖춰야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통일은 내일의 역사입니다. 

백: 당장 통일하자고 목소리 높이는 것은 저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통일을 하려면 한반도 다수 구성원이 개입하는 통일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요. 또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통일을 주장하면 할수록 
사실은 긴장완화, 남북간 왕래, 끊어진 핏줄을 잇는 작업에 오히려 방해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우선 남북교류에서 출발해서 국가연합 단계를 거치고, 그 
다음에 우리 체질에 맞는 국가 형태를 창안하는 길이 온당한 통일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의 통일사업이라면 지금도 빨리 하라고 촉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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