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4월 30일 금요일 오전 02시 01분 48초 제 목(Title):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고.. 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 윗글 퍼온글에 언급되어지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읽으니, 과거, 대학에서 한국미술사과목 들을때 감동이 생각나서 몇자 적습니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어보면 간략히 언급되어지는 우리나라 국보 그림에 대한 설명이 소상하게 나오기도 하지만, 잠시 교과서 인용,, "15세기의 최대 거장으로 안견을 꼽을 수 있다. 안견이 대성하게된 배경에는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의 이론과 중국화 소장품이 큰 역활을 했다. 그는 안평대군이 소장하고 있는 뛰어난 중국화를 철저히 연구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해냈다. 그의 '몽유도원도'등을 보면 그가 곽희파 학풍을 토대로 자성일가했음을 알수있다. 현실세계와 도원의 강한 대비. 도원의 면적과 산의 높이를 강조하기 위한 상이한 두가지 시각의 활용. 왼편 하단부부터 오른편 상단부로 이어지는 대각선 운동의 효율적인 활용. 그리고 환상적인 세계의 구현등은 안견이 형성한 화풍의 특색을 잘 반영해준다. 안견 화풍의 특징은 그의 전칭작품인 '사시팔경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안견은 화원으로서 세종, 세조, 그리고 성종조에 걸쳐 활약하였는데, 그의 화풍은 양팽손을 비롯한 일부 사대부화가들과 그 밖의 많은 화원들이 추종하였다 ". 미술사 강의실에서 슬라이드로 된 확대사진을 봤을때 그 감동을 결코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은은하게 분홍빛 바탕색에 아름답게 채색된 복숭화꽃을 보고있자니 마치 지금도 눈앞에서 그 복숭아꽃들이 흩날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슬라이드로 본 감동도 이러한데 정작 마주 본다면..) 몽유도원도 안견. 조선, 1447년 , 견본담채(비단위에다 그렸다는 말), 38.7 X 106.5cm, 일본 나라 텐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