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4월 30일 금요일 오전 01시 38분 35초 제 목(Title): 꽃으로 보는 미술사 /월간미술 그림사진들은 월간미술에서 보실수 있습니다.(http://art.joongang.co.kr) 꽃으로 보는 미술사 최태만 <미술비평·서울산업대 교수> ------------------------------------------------------------------------------- - 태초에 인간이 꿈꾸던 낙원의 꽃은 이제 플라스틱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미술에 있어서 꽃은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과 상징의 보고였다. 꽃그림이 단순히 장식적인 도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종교·사회·문화의 대표적 상징 이미지로서 각 시대마다 피어났음을 알아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싹틀 무렵인 14세기에 마르티니(Simone Martini)가 그린 <수태고지>는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수태할 것을 알리는 천사를 그린 것이다. 성모 앞의 화병에 흰 백합이 꽂혀 있고 천사의 입에서 “은총받은 자여, 주가 그대와 함께하리라”(Ave gratia plena do-minus tecum)1)란 라틴어가 흘러나오고 있는 점을 보아, 이 꽃이 동정녀의 순결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성스러운 상징으로서 꽃의 미학 신화와 종교는 모든 예술적 비유, 상징, 알레고리의 원천이듯이 불교 역시 꽃과 관련된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설화로 석가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내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 그 뜻을 깨닫고 미소짓자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는, 이른바 염화미소를 들 수 있다. 더러운 곳에서도 맑은 심성을 잃지 않는 것을 일컫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은 연꽃의 속성을 드러낸 것으로, 이 때문에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유한다. 또한 경전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부처가 일곱 발자국을 옮겼을 때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태자를 떠받들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불교미술품에서 부처나 보살은 연화좌 위에 있는 것이다. 불교미술에서 활짝 핀 연꽃은 우주 자체를 나타내며, 줄기는 그 축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화엄(華嚴)이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다는 말로, 장미나 모란처럼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니라 영원히 지지 않는 공덕의 꽃을 의미한다. 선재동자의 구도 과정을 밝혀놓은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비슬지라 거사가 동자에게 보타락가산의 관자재보살을 찾아가 보살행과 보살도에 대해 물어보라고 조언하며 “바다 위에 산이 있어 성현들 계시니 온갖 보배로 된 아주 청정한 곳, 꽃과 과수들이 우거져 있고, 샘과 못과 시냇물이 갖추어져 있다”2)고 읊은 게송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수월관음도>는 세계 미술사에 빛나는 고려회화의 정수인데, 장엄한 이상적 세계의 상징인 성스러운 연꽃이 관음보살의 발 아래 펼쳐져 있다. 이처럼 꽃은 종교적 신비의 상징물로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예컨대, 붉은 카네이션이나 붉은 장미는 ‘예수의 수난’을, 중세의 필사본 삽화에서 마리아의 손에 쥐어진 카네이션은 동정녀의 순결을 상징한다. 따라서 꽃은 예술적 영감과 상징의 무한한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은 수동적인 여성 원리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며, 같은 종류라 하더라도 지역·시대에 따라 다른 상징적 의미를 띠기도 한다. 신화적 내용을 암시하기 위해 꽃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해바라기는 아폴로로 향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불쌍한 처녀가 죽어 피어난 꽃으로, 그리스어 ‘클리오트로프’는 태양을 향한 꽃이란 의미를 지닌다. 백합은 제우스가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아내인 헤라의 젖을 몰래 먹이려다 아기가 너무 세게 빠는 바람에 땅에 떨어진 여신의 유액이 전화(轉化)한 것이며, 튤립은 세 남성의 구애를 수줍음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한 아름다운 처녀가 상심해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러나 꽃의 탄생 신화가 오직 여성들에게만 연관된 것은 아니었다. 수선화·아네모네·아이리스3)는 모두 운명적으로 죽었던 미남들이 흘린 피에서 피어난 꽃이다. 꽃은 관능·성애의 상징물로도 묘사되는데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4)와 같은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솔로몬의 아가(雅歌)는 더욱 향락적이다. 성 풍속이 방탕해질수록 꽃을 성과 관련시킨 비유 또한 많았으며, 신대륙 발견의 잉여물로 유럽에 전파된 매독이 18세기에 창궐한 것은 절대주의의 인생철학과 정치방식이 매독의 발생과 만연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기 때문인데, 당시 사람들은 이 질병을 ‘장미의 가시’5)라고 불렀다. 18세기의 방탕한 귀족 취향을 반영한 프라고나르(Jean Honor Fra-gonard)의 그림에서 꽃은 연애·구애를 위한 보조물로 등장한다. 이른바 ‘좋은 시절’(Belle oque)의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꽃말6)은 우정·연애의 감정과 얽힌 당대의 풍속을 파악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세속적 사랑과 권력의 상징 그러나 꽃의 이미지는 당대의 사상이나 지배이념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반영하는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모두 꽃의 알레고리로 가득 차 있다. <봄>의 정원에는 작가가 현실에서 관찰하여 그린 꽃과 상상으로 창조한 꽃이 만발한 가운데 입에서 꽃을 내 뿜으며 달아나려는 꽃의 요정을 붙잡고 있는 서풍의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정은 결국 바람의 신과 결혼하여 남편으로부터 꽃을 피우는 능력을 받아 화관(花冠), 꽃목걸이, 화려한 의상을 입은 봄의 여신인 플로라가 된다.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거품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서풍에 의해 해안으로 밀려나오자 장미꽃 무늬가 그려진 외투로 그녀를 감싸려는 플로라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조화를 의인화한 이 작품들에서 꽃은 주제를 강화하는 요소인 것이다. 보티첼리의 현학적인 우의화와 달리 아르침볼도(Guiseppe Arcimboldo)의 작품은 세속적 이데올로기를 초현실적·마술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여 흥미를 끈다. 그는 동시대의 시인인 폰테오(Giambattista Fonteo)의 시를 조형화했다. 폰테오는 사계절을 “여름은 무덥고 건조하므로 불과 같고, 겨울은 춥고 습하므로 물과 같다. 대기와 봄은 다같이 덥고 습하며, 가을과 대지는 춥고 건조하다”7)고 규정했다. 겨울의 여신인 페르세포네는 물의 신인 포세이돈과 절친한 관계이므로 겨울과 물은 서로 같은 것이며, 대지와 가을이 달과 연관된다면 여름과 불은 태양을 공유한다. 한편, 봄은 꽃봉오리의 움을 틔워 온 세상을 밝고 화사한 색으로 가득 채우는 대기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아르침볼도는 대기인 봄을 꽃으로 구성된 여성의 측면 상반신으로 표현하였다. 폰테오에 따르면 사계절과 네 성질의 비교 구성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화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아르침볼도가 대기를, 합스부르크 왕가의 번영을 상징하는 공작과 독수리들로 구성된 측면인물상으로 묘사한 다른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결국 화려한 꽃들로 이뤄진 봄의 이미지는, 그가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할 막시밀리언의 궁정화가로 비엔나에 머물며 그렸던 많은 그림들처럼 당대 권력의 정치이념을 우의적으로 형상화해 놓은 것이었다. 화조화의 발달과 함께 동양문화권에서 군자(君子)의 지조와 절개,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그린 사군자는 사계절의 변화를 신화나 권력의 상징으로 표현했던 서양의 전통과는 달리 시서화(詩書畵)를 삼절이라 하여, 문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긴 유교적 전통 아래 발전하였다. 정물화의 독립과 부르주아 키치의 성장 자본주의의 성장에 따른 신흥자본가 계급의 출현은 종교적·문학적 알레고리로 넘쳐나는 교훈적 그림 대신 세속적·장식적 용도를 충족시키는 작품을 요구했다. 순수하게 장식적 목적으로 제작된 정물화는 이미 고대 로마의 폼페이에서 발굴된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에 나타나고 있는 바, 자연과 일상을 시각적 감상물로 표현했던 로마인의 취향을 반영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도 독립된 정물화는 희박하며, 17, 18세기에도 역사화와 비교해 대상의 단순묘사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빈곤한 것으로 치부되어 미학적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정밀한 관찰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알브레흐트 뒤러에게 훌륭한 정물화를 남기게 만들었다. 신흥 부르주아의 세속적 취향과 프로테스탄트의 확산은 종교 회화보다 장식용 순수 회화의 발전을 촉발시켰으나, 상징성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16, 17세기에 정물화가 가장 발달했던 플랑드르 지방에서 그려진 그림에서 책· 지도· 악기 등이 예술과 과학의 상징물로, 돈주머니· 보석 등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술잔· 담배· 파이프· 카드놀이 등이 현세적 즐거움의 상징물로 그려졌던 것처럼 꽃은 곧 시들 운명이므로 해골· 모래시계· 촛불· 비누거품 등과 함께 죽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 따라서 당시에 그려진 대부분의 정물들은 순환하는 자연 현상을 통한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 즉 ‘바니타스(vanitas)’에 집중되고 있다. 오늘날 유럽 언어권에서 정물을 지칭하는 용어가 ‘죽은 자연(nature morte)’을 의미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편,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 범위가 넓어진 해상무역은 이국의 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17세기에 번성한 정물화에 표현된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포함한, 정원술의 발달은 이런 사정을 반영, 17세기 바로크미술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식미술(Floral Deco-ration)을 낳았다. 실낙원에 대한 강박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꿈에 그리던 지상낙원의 이미지를 꽃에서 찾도록 만들었으므로 그들은 바로크 건축의 지극히 호사스런 실내 디자인을 모두 꽃으로 장식했다. 18세기 이후의 꽃을 소재로 한 정물화는 그 세속성 못지않게 부르주아 키치 취향에 봉사하는 대표적 장르가 되었다. 그러나 인상주의에 이르러서는 빛과 색채에 대한 그들의 열광을 반영한 많은 꽃그림들이 그려졌는데, 모네는 마침내 자신의 집 정원에 일본식 연못을 만들고 백내장으로 감퇴된 시력으로 말년의 걸작인 <수련>을 그렸으며, 일본 목판화의 평면성과 장식성에 열광했던 고흐는 복제 일본화 위에 방사선까지 그려가며 그것을 모사하기도 했다. 인상주의 이후 꽃을 주제로 한 그림 중에서 르동(Odi-lon Redon)이 대상의 정확한 묘사 너머에 있는 초자연적 진동을 감각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려놓은 작품은 상징주의 정물화로서 단연 돋보인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작가들이 추구해온 자연의 관찰(정복)과는 다른 맥락에서 꽃이 내뿜는 찰나적이며 신비로운 매력을, 화려하면서도 무상한 원색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 바로 르동의 신비롭기 그지없는 꽃그림이다. 동양문화권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화조도’란 독자적인 장르가 발달하였다. 북송대의 휘종(徽宗)은 화원들에게 많은 화훼그림을 그리게 했으며, 그 자신이 직접 화조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미 6세기 말경에 장승요(張僧繇)가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사실성이 뛰어난 꽃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8) 우리 나라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 나타나는 꽃의 이미지 역시 중국으로부터 화조도가 전해지면서 독자적인 감상용 그림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선덕왕의 총명함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해 놓은 일화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9) 또한 《삼국유사》는 꽃에 얽힌 문학을 전하고 있다. 신라 제33대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의 아내인 수로부인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다 벼랑 위에 핀 꽃을 보고 주위사람에게 꽃을 꺾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다들 주저하는 사이 한 노인이 꽃을 꺾어주며 불렀다는 <헌화가>가 그것이다. 화조도와 사군자 화조화의 발달과 함께 동양문화권에서 군자(君子)의 지조와 절개,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그린 사군자는 사계절의 변화를 신화나 권력의 상징으로 표현했던 서양의 전통과는 달리 시서화(詩書畵)를 삼절이라 하여, 문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긴 유교적 전통 아래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청대에는 왕개(王槪)가 일종의 화법서라 할 수 있는 《개자원화전》의 제3집에 사군자를 다룰 정도였는데, 조선 말기에 추사(秋史)는 화법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고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에서 우러난 난초그림으로 일가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계몽군주로서 학예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는 먹의 농담으로 자연대상을 생기 넘치게 표현한 <파초>를 남겼다.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정선의 화조도들은 자연에 대한 정밀한 관찰정신을 보여주는 바, 그 섬세함이 신기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비단 화조화와 사군자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민간사회에 널리 애용된 민화에도 많은 꽃그림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 모란그림은 풍요· 부귀· 다산· 화목이란 대단히 현세적인 구복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프리다 칼로 또한 <생명의 꽃>에서 꽃의 구조를 여성의 자궁이나 나팔관과 동일시했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에 벼락과 행성인 듯한 별을 그려놓은 것으로 보아 생식을 담당하는 신체기관이 세계의 중심, 모든 생명의 기원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임에 분명하다. 성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 무의식 속에 잠재된 모성 숭배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낙원으로부터 향토적 서정으로 안평대군이 꿈에 본 무릉도원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복숭아꽃 피는 고을은 우리 선조가 갈망했던 이상향에 대한 관념을 보여준다. 이 그림이 그려졌던 15세기 중엽에 독일 작가인 로흐너(Stefan Lochner)가 그린 <장미 그늘 아래의 성모>가 종교적 맥락에서의 낙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몽유도원도>는 자연과 합일하고자 한 조선시대 귀족계급의 미적 취향을 드러낸 것으로서 봄을 낙원과 동일시한 것은 멀리 송대의 곽희(郭熙)가 그린 <조춘도>와 정신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런 점은 양식과 시대는 다르더라도 최영림의 그림에 표현된 향토적 이상향으로 향한 동경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설화적 분위기로 가득 찬 그의 그림에서 꽃피는 낙원은 청정무구한 고향의 이미지, 즉 낙원인 것이다. 최영림의 작품에 나타나는 설화적 분위기를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연결시킨 진환 역시 <천도와 아이들>에서 어린이의 도식적인 표현방식으로 세속에 때묻지 않은 지상낙원을 그렸다. 이상향에의 동경은 마침내 살구꽃 무성한 낙원에서 노동하는 도중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농부들을 그려놓은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모내기>에서 되살아났다.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원을 마치 그림 속으로 진입하는 입구인 양 묘사한 이 그림은 검열의 표적이 돼 압수· 파괴· 재창작이란 수난을 겪었으며, 대법원에서 이적성이 있다는 판결을 받아 창작의 자유와 국가이념이 충돌한 대표적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쨌든 근대기의 많은 꽃그림들은 여전히 문학적 상징성에 얽매여 있는데,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의 해바라기와 풀꽃들은 그림의 주제를 보조하는 소재로서 작렬하는 태양 아래 피어난 꽃과 상반신을 벗은 여인과의 대비를 통해 고갱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원시적 생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1941년에 제작한 <해당화>는 상징성 대신에 고답적인 사실주의로 귀착되고 있다. 전후에 류경채가 그린 <해바라기>에서도 <가을 어느날>의 우수 어린 정조가 엿보이는데 이인성의 작품이 야생의 싱싱함이 아니라 조락하는 꽃을 통해 패배주의를 암시한다면, 류경채 역시 영락하는 꽃으로 파괴 앞의 무력감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1930년대의 조선향토색 추구와 맞물려 한국적 인상주의를 개척했던 오지호는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을 과수원에 만발한 사과나무 꽃을 통해 표현하였다. 오지호의 <사과밭>은 그 어떤 문학적 서술성도 배제한 시각적 순수성을 표출하고 있는데, 빛과 색의 감응을 중요시한 그의 인상주의적 태도는 그가 남긴 기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10) 그러나 근대미술에서의 이러한 특징과는 달리 개화 이후 수입된 새로운 식물에 대한 관심이 이국취향과 맞물리며 도상봉의 <라일락> 같이 서구적 취향과 아카데미즘이 절충된 정물화를 출현시키기도 했다. 김용준의 <달리아와 백일홍>에서조차 이러한 절충적 취향이 발견된다. 사실, 꽃을 소재로 한 정물화는 그 장식성 때문에 부르주아 키치에 가장 근접해 있다. 현대미술에 나타난 꽃의 이미지 현대미술에서도 꽃은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로서 많은 작가들에 의해 표현되었다. 그중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검은 붓꽃>은 페미니즘의 확산과 함께 초기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적 예로 분류된다. 그녀는 미국의 모더니스트들과 친밀했으나 형식적 혁신보다 감각적이며 풍부한 색채를 지닌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했던 화가였다. 이 작품의 정밀한 사실주의는 사진의 영향을 받은 객관적인 관찰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린 꽃잎은 여성의 신체 구조와 조응하고 있다. 비록 작가 자신이 꽃잎의 이미지를 성과 연관시키는 것에 반대했더라도 그것은 ‘자연=여성’이란 관념을 불식시킬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연의 생명력을 여성의 생식 능력과 연관시키려는 온갖 시도들에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하다. 칼로(Frida Kahlo) 또한 <생명의 꽃>에서 꽃의 구조를 여성의 자궁이나 나팔관과 동일시했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에 벼락과 행성인 듯한 별을 그려놓은 것으로 보아 생식을 담당하는 신체기관이 세계의 중심, 모든 생명의 기원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 두 작가의 꽃을 쿠르베가 그린 <세계의 기원>과 비교하면 비록 여성의 신체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현격하더라도 그 뿌리에는 성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 이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모성 숭배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꽃의 이미지와 여성의 신체구조의 동일시는 출산을 주제로 그린 시카고(Judy Chicago)의 그림에서도 발견된다. 바야흐로 꽃으로 상징된 여성성은 세계를 포용하고, 세계를 출산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오키프의 붓꽃처럼 화면을 가득 차지한 꽃을 그린 마그리트의 <레슬링 선수의 무덤>은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소설가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에서 장미는 바닥으로부터 벽·천정에 이르기까지 방안을 장악하고 있다. 그는 입체·미래주의적 실험을 할 당시 아내를 그린 누드의 복부에 큰 장미를 그려넣기도 했다. 여성의 성을 장미와 연결시킨 작품이 자신의 뜻을 구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 마그리트는 방안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사과나 장미를 그렸다. 그는 회화의 골격을 만드는 것은 별이 빛나는 밤에 넓은 정원에서 한 송이 장미를 끄집어내는 것이라 생각하여 가로등 기둥에 장미를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후 그는 사물이 지닌 비례를 전복, 공간개념과의 연관 속에 사물을 새롭게 지각하고자 터무니없이 성장해버린 장미를 표현했다. 어둠 속에 빛나는 이 꽃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공간을 장악, 사물의 현존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뒤흔든다. 그러나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꽃은 관능의 소비를 예찬하는 엠블렘이 되기도 했다. 후기 산업사회의 징후인 혼성모조는 꽃에 얽힌 상징성들을 제거한 단순 볼 거리이자 시각의 촉각적 쾌락을 자극하는 쿤스(Jeff Koons)의 플라스틱 화원을 생산했다. 그것은 시각적 쾌락의 뿌리 없음, 키치문화의 시각적 탐욕의 허망함을 조롱하는 듯하다. 부르주아 키치가 그의 모조정원에 의해 부활하고 있다고 할까. 화려하지만 덧없고, 매혹적이지만 무의미한 쿤스의 조화들은 현대인들의 가망없고 무한정한 욕망으로 향한 유혹임에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최정화의 모조정원 역시 쿤스의 전략과 유사하다. 인조섬유에 바람을 넣어 꽃잎이 폈다 지는 것처럼 표현한 그의 꽃은 자연에서가 아니라 기껏 아파트 베란다에 갖다놓은 나무나 화초를 통해 자연을 ‘양육’한다고 위안하는 우리의 가련한 욕망을 가짜를 통해 만족시킨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그는 정부기관의 엠블렘이나 표창장에 붙어있는 무궁화 문장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권위를 우스꽝스러운 싸구려 모조로 만들어버렸다. 경박하면서 진지한 그의 (의사) 키치작품은 가짜를 통해 진짜의 무력감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최정화 류의 키치미술이 미술의 경계를 뒤흔들어 놓기 이전에도 이른바 순수미술의 고귀한 명분 아래 수많은 부르주아 키치 꽃그림이 그려졌고 현재에도 여전히 발표되고 있다. 정종여나 길진섭의 모란, 박생광의 <목단>, 그 밖의 꽃그림들을 보면 강렬한 원색이 뿜어내는 시각의 즐거움에 도취되어 세속의 고통을 초월해버린, 위생적인 식물원에서 재배한 표본으로 만든 도감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점은 유화에서 더 심각한데, 장식성을 배제한다면 무의미한 이런 것들은 키치의 또 다른 유형이다. 그러나 보수적 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던 꽃그림이 새로운 표현 방식이나 주제와 결합되면서 종래의 그림과 다른 양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김종학이 자연과 대면하며 느낀 감흥을 즉흥적이면서 표현적인 필치로 그려낸 <꽃>은 현실의 의사(擬似) 미화가 아닌 자연 속에서 경험한 바를 주관적이면서 빠른 붓질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언제나 삶의 환희, 시각적 만족, 생명에의 경이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꽃은 관능의 소비를 예찬하는 엠블렘이 되기도 했다. 후기 산업사회의 징후인 혼성모조는 꽃에 얽힌 상징성들을 제거한 단순 볼 거리이자 시각의 촉각적 쾌락을 자극하는 제프 쿤스의 플라스틱 화원을 생산했다. 그것은 시각적 쾌락의 뿌리 없음, 키치문화의 시각적 탐욕의 허망함을 조롱하는 듯하다. 부르주아 키치가 그의 모조정원에 의해 부활하고 있다고 할까. 꽃, 작가의 또다른 얼굴 임옥상의 <꽃밭>은 초현실적 기괴함이나 화려함 위로 엄습하는 불길하면서 도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상적인 토양과 기후 조건에서 성장하는 식물과 달리 가상의 꽃들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놓은 그의 꽃밭은 자연에 대한 착취와 학대가 가져올 돌연변이에의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임옥상은 꽃밭 이후의 몇몇 그림에서 문학적·역사적 상징성을 띤 민들레·배추꽃을 소재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의 민중미술을 보면 민들레와 같은 꽃이 자주 그려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바, 민중의 저항의식과 연결되면서 강요배의 <호박꽃>이나 <동백꽃 지다>와 같은 작품이 나타났다. 이들과는 달리 안창홍은 퇴폐적 악마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자주 꽃을 등장시켰다. 그의 꽃은 화려함과 을씨년스러움을 다같이 갖춘 모순된 양상을 드러낸다. 그의 그림에서 관능적이면서 참혹한 들판은 죽음을 선고받은 땅이며, 꽃은 그것을 치장하기 위해 어둠 속에 처연하게 만개해 있다. 반면에 김홍주가 그린 꽃은 연등행사에서 보던 연꽃과 흡사하지만 종교적 상징성이나 꽃이란 보통명사가 환기하는 감각적 아름다움이 아닌 철저한 거리두기, 즉 대상과의 동화가 아닌 이화의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황용진은 노아의 대홍수로 순결성을 회복했던 대지 위에 피어나는 꽃을 그림으로써 꽃의 이미지를 종교적 상징과 다시 한 번 결합시키고 있어 주목된다. 이상으로 낙원의 이미지로부터 최근의 모조 화원에 이르기까지 꽃과 연관된 작품들을 훑어보았다. 추사가 귀양지에서 초의선사에게 부친 편지에 “을미 섣달(臘月) 오일 밤, 이 거사가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수선화가 만개하여 맑은 향기가 벼루에 뜨고 종이에 스며드네”11)라고 적었는데 바야흐로 목련이 흐드러지고 모란이 봉오리를 틀 이 ‘찬란한 슬픔의 봄’에 컴퓨터 자판 위로 꽃의 향기가 스며들 리 만무하고, 매양 박학(薄學)의 부끄러움을 떨치지 못하는 미욱한 서생일지언정 꽃과 더불어 옛 스승들의 운취를 흉내라도 낼 수만 있다면…. 최욱경 <언젠가 호색가가 기이한 꽃 한송이를 주었다> 종이에 아크릴릭 1975 황용진 <Eve’s lily> 밀랍 석고 동판 91×91cm 1999 김홍주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185×185cm 1996 ------------------------------------------------------------------------------- - 주 ------------------------------------------------------------------------------- - 1) Frederick Hartt,《Italian Renaissance Art》, Harry&Abrams, Inc., 3판, 1987년, 99쪽(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하는 축복의 말은 <누가복음> 제1장 28절에 기록되어 있다.) 2) 《新譯 華嚴經》 法頂 옮김, 동국대 譯經院, 278∼281쪽 3) 에코의 사랑을 무시한 징벌로 자기와의 사랑에 빠져 상사병으로 죽은 가엾은 미소년 나르키소스(수선화)/ 잘생긴 용모 때문에 비너스와 지하의 여신 페르세포네 사이에 쟁탈전을 불러일으켰던 아도니스(아네모네)/ 아폴로와의 원반경기 도중 아폴로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은 히아킨토스(아이리스). 이상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6) 참고. 4)「雅歌」, 제2장 제1절 5)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 색의 시대》, 이기웅·박종기 옮김, 까치, 316쪽 6) 당시 대중적으로 유포되었던 대표적인 꽃말 몇 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앵초(櫻草) : 당신 가슴속에 감추어진 내 하늘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붉은 장미 : 이것은 나의 정조와 사랑을 보증합니다/ 가시가 있는 붉은 장미 : 사랑의 설렘과 의심/ 흰장미 꽃잎 : 싫어요, 안돼요 라일락 : 이 꽃의 싱싱함이 시들기 전에 어서 빨리 제단 앞에 무릎 꿇어요(한시바삐 결혼합시다)/ 튤립 :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 당신의 오묘한 가치를 어디에 숨겨둘 수 있을까요?/ 수선화 : 맙소사, 당신은 나를 완전히 파멸시키려고 작정했군요?(이상 《Encyclop die des Symboles》(sous la direction de Michel Cazenave, la Pochoth que, 1996년, 266∼268쪽)에서 발췌·요약) 7) Benedikt Taschen, 《Guiseppe Arcimboldo》, trans by. Hugh Beyer, Taschen, 1993년, 50쪽 8) 마이클 설리반, 《중국미술사》, 한정희·최성은 옮김, 예경, 164∼165쪽 9) 《三國史記》 新羅本紀 第五卷 및 一然, 《三國遺事》, 卷第二 紀異篇 善德王 知幾三事條) 10) “봄에 피는 과수의 꽃으로는 제일 늦고 또 일찍 지는 것이 이 꽃이다. (…) 이곳을 지날 적마다 꽃봉오리의 변화에 주의를 해오다가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곧 나도 그리기 시작했다. 오월의 햇볕은 상당히 강렬하고 그리는 도중에 꽃은 지고 피었다. 왱왱거리는 벌들과 한가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임금원(林檎園)에서 사흘을 지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거의 완성하면서 꽃도 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월에 오지호는 <도원풍경>을 그리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빛의 약동! 색의 환희! 자연에 대한 감격- 여기서 나오는 것이 회화이다. 만개한 복숭아꽃, 외얏꽃, 그 사이로 파릇파릇 움트는 ‘에메랄드’의 싹들! 윤택하게 자라는 젊음의 생명들! 이 환희! 이 생의 환희! 말소리가 가끔 오고갈 때 이외에는, 뒤에서 그리고 있는 김형(김주경)의 존재도 잊어지기 쉬웠다.”(오지호, <林檎園>(7쪽)·<桃園風景>(6쪽),《원색판 이인화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38) 11) 乙未臘五夜 居士書 時水仙盛開 淸香泛 硏沁紙. (《阮堂先生全集》第五 書牘 與草衣 其六) ------------------------------------------------------------------------------- -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