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4월 25일 일요일 오전 08시 35분 05초 제 목(Title): 이종응의 서사록 (2) [연재] 100년 전의 세계일주--이종응의 `서사록' (2) 의사당에 만발한 토론문화…지폐통용 `신용사회정착' 선망 . ♧ 6월 9일(5월 초나흘) 흐리다가 비 오후 3시에 네 사람은 영국 주재 공사 민영돈과 함께 마차를 타고 유람하였다. 층루와 고각이 티끌 세상을 우뚝 벗어나 가지런 하여 그저 수 십 길의 석벽이 연이어져 있는 것과 같았다. 여관은 궁궐에 비할 만하였으며 도로는 모두 반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사 람의 어깨가 부딪치고 수레 바퀴가 서로 닿으니 옛날의 임치(전국 시대 제나라의 수도)도 이를 능가하지는 못했으리라. 도성의 거리 위, 다니는 길에도 법이 있다. 큰길의 중간으로 마 차가 왕래하는데 각기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었다. 좌우편의 돌계 단 위로는 보행하는 사람들이 다닌다. 길을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길가 표지 기둥 아래에 서 있으면 순사가 큰 길을 향하여 손을 들 고 손가락으로 마차에게 신호를 보내 앞에 가는 마차는 빨리 지나 가게 하고 뒤에 오는 마차는 멈추어 서게 한다. 잠시 마차의 운행 이 끊긴후에 사람들이 건너갈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수레바퀴나 말 발굽 아래에 깔려 죽 는 일이 허다하게 생길 것이라 한다. 한참을 가서 동물원에 이르렀다. 수목이 빽빽하게 열을 지은 가 운데 도로는 반듯반듯하여 절도가 있었으며, 꽃과 풀은 땅에 가득 하고 그 향기는 흠씬 풍겼다. 쇠로 만든 우리와 망 안에는 날짐승 과 길짐승, 물고기며 갑각류 족속들이 모여 한 편의 금수부를 만들 었다. 영웅호걸인 호랑이와 표범, 흉포한 사자와 곰, 사나운 무소 와 코끼리, 건장한 낙타, 민첩한원숭이며 바다코끼리, 돌고래, 사 슴, 노루, 여우, 이리는 물론 고양이와 쥐, 개구리와 두꺼비 족속 도 있었다. 뿔이 하나인 짐승이 있었는데 뿔 끝에는 살이 있고 소 꼬리에 말의 발굽을 한, 크기가 소만한 기린(성인이 나면 나타난다는 상상 의 동물로, 아프리카 일대의 기린과는 다르다. 글 쓴이는 영국의 문명을 찬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일시하였다)이라는 동물이었다. 이 기린은 인도산인데 서방에 성인이 있다는 것인가?. 날짐승의 족속으로는 원앙, 공작, 앵무새. 물총새, 각지의 꿩과 닭은 물론 산새와 물새 등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이 많았다. 연못 속에 바위만큼이나 큰 어별의 족속이 있었는데 따로 돌로 만든 연 못에 네 마리가 있었다. 몹시도 흉포하고 표독스럽게 보여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네 발에 눈빛이 푸른 듯하면서도 붉은 놈이었다. 동 물원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더니 악어라고 하였다. 그제쯤 한유의 <제악어문>을 상기하고서 그 짐승은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큰 뱀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길이가 3, 4간(한 간은 여섯자) 이 넘고 허리는 기둥만 하며 몸에는 오색이 영롱하고 눈빛은 횃불 과 같았다. 오로지 육류만 먹으며 한 번 고기를 배불리 먹으면 6, 7일씩이나 잔다고 하였다. 이 녀석은 열대지방의 산물인 까닭에 증 기를 쐬주며 온도계를 달아두고 그 기온을 조절한다. ●6월 10일(5월 초닷새) 흐림 네 사람이 큰 거리를 걷다가 보석상가에 들르게 되었는데 금옥 과 보석이 되나 말로 세어야 할 정도로 많았다. 패물과 노리개에 깃든 수공의 기묘함이란 글에 귀신이 아니고서는 묘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가게가 8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오후 7시에 서커스장으로 갔다. 누각은 매우 컸으며 5층으로 된 난간이 있었다. 난간은 둥글기가 반달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것과 같았는데 황금빛과 푸른빛, 붉은빛 비취빛이 사람의 눈을 어찔하게 하였다. 수 백, 수 천의 관람객들은 난간 안쪽에 요술에 홀린 듯이 앉아 있었다. 앞쪽에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음악은 바뀌어가 며 연주되었는데 웅장하고 호방하면서도 맑고 밝았다. 수 십명의 미녀들이 금은보석에 아름다운 옷을 입고서 서로 마 주 서서 재주를 선보였는데 잠깐 앞으로 나왔다가 잠깐 뒤로 물러 나는가 하면, 혹은 몸을 펴고 혹은 몸을 굽히며 모여도 어지럽지 않고 흩어져도 산만하지 않아 무척이나 절도가 있었다. 노랫소리는 간드러져서 숱한 가지 드리운 버들 위에서 한 무리 꾀꼬리가 다투 어 노래하는 듯하였으며, 춤추는 소매는 나풀나풀하여 복숭아꽃 오 얏꽃 위를 봄바람 맞으며 나비들이 하늘하늘 날아 다니는 것과 같 았다. 관객이 뿌리는 은화가 검광처럼 번뜩였는데 마치 배꽃이 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지는 것과도 같았으며 쇠소리가 짤랑짤랑 울렸다. 잠 시 후 한 무리의 낭자군이 나왔다. 앞뒤로 진퇴하는 낭자군의 모습 은 질서정연하였는데 이들의 출현은 적에게 승리한 기쁨을 기념하 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얼마 후에 대 여섯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서로 마주 보며 섰다가 한사람이 홀연 몸을 튕겨 마주 선 사람의 어깨 위로 뛰어 올랐다. 또 한 사람이 나와 수 차례 왔다 갔다 하더니 불현 듯 몸 을 날려 뛰어 올랐던 사람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열 두 셋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다시 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더니 문득 가장 꼭대기에 선 사람의 어깨 위로 몸을 날렸다. 앞으로 뛰어오르고 뒤로 뛸 때의 모습이 나는 새가 오르락 내리 락 하는 것과 같아서 정말 볼 만하였다. 장내가 문득 우레와 같은 바닷소리로 가득 차고 망망한 창파 위 에는 윤선들이 오간다. 평원과 광야, 깊은 산과 깊은 골짝을 기차 가 세차게 달린다. 경마장에서 말들이 앞을 다투자 거기서 구경하 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한다.-이것은 활동사진인데 전기가 그 렇게 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사람의 지시에 따라 묘기를 보이기도 하고, 앵무새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한다. 금수를 길들이는 것이 지극한 이치가 아니라면 이와 같을 수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영국 황제의 사진이 화면 위로 엄숙하게 나타나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공경스럽게 예를 표하고는 자리를 떴다.이 것은 아마 자기 군주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6월 13일(5월 초파일) 비 오후 2시에 영국 장례원의 경이 황실의 마차를 이끌고 와서 왕 궁에 들어가 폐하를 알현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네 사람은 민영돈 공사와 함께 예복을 갖추어 입고 왕궁으로 향했다. 여러 관리들이 에워 선 가운데 장례원의 안내로 사중의 문을 지나 잠시 휴게소에 머물렀다. 이곳의 조각한 옥과 실같은 금은 사람의 안공을 아찔하 게 하였다. 잠시 후에 장례원의 경이 들어오기를 청하여 다시 이중의 문을 지났다. 지나는 문마다 장수들이 고깔을 쓰고 창을 쥔 채 고니처럼 고개를 쳐들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황제 집무실로 나아가자 황 제께서는 자리 아래에 내려 서서 계셨는데 외부대신과 시위하는 사 람 너댓명이 배석하고 있었다. 이에 문 안으로 들어가 국궁하고 머 리를 조아렸다. 또 몇 걸음 나아가 처음처럼 예를 행하였다. 황제 앞에 나가 서서 또 예를 행하고 국서를 받들어 올렸다. 영국 황제께서 악수를 건네며, "몇 만 리 바닷길을 편하게 오셨 는지요?"라 하시기에 "황제의 신령스러움에 힘입어 일행이 편안히 왔습니다"라 대답하였다. 황제께서 또, "귀국의 대황제께서는 옥체 가 편안하신지요?"라 하시기에 "편안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또 말 씀하기를, "귀국의 대황제께서 특별히 대사를 파견하시어 먼 곳에 와 안부를 묻게 하시니 감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양국의 우의가 더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라 하셨다. 영국 황제는 넉 넉한 얼굴에 백발이었는데 덕스러운 기운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영국의 황궁은 광대하고 훌륭하였다. 옛날에 맹자가 제나라 왕 의 거처를 보고 탄성을 지르며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거처여!"라 하였는데 그 옛날 제나라가 바로 오늘의 영국이리라.… ●6월 16일(5월 11일) 흐림 오후 2시에 영국의 궁내대신 삼빛들낭과 그의 부관 잎늬쓰가 왔 다가 문 밖에 명함을 두고 갔다. 오후 3시에 황실 마차에 올라 유 람하였다. 국립은행에 이르자 병정 30명이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철문은 매우 컸는데 아래 위로 두 개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두 사람이 각자 열쇠를 가지고 동시에 문을 열어야만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 어두운 동굴은 마치 칠흑과도 같았다. 잠시 후에 전등을 켜자 사면이 십 여간은 됨직하였다. 3층으로 된 시렁이 있었는데 윗 시렁에는 금화가, 가운데 시렁에는 은화,아 래 시렁에는 지폐가 있었다. 또 금괴도 있어 크기가 목침 만한 것 이 시렁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좌 우 양 곁에는 철궤와 목궤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궤 하나에 들어 있는 돈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었더니 2억9000여만원이라 하였다. 저울 두 개와 돈을 만드는 기계도 보였다. 기계 위에서 도는 침 은 반드시 화폐의 수량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것으로 만든 돈의 수 효를 안다고 하였다. 또 돈을 싣는 수레도 있었다. 수레 위에는 스 물 네개의 금괴가 있었는데 금괴 하나는 400냥이며 이 전체가 하루 에 환전되어 나가는 지폐의 어림수라 한다. 민간에 통용되고 있는 지폐가 비록 수재와 화재를 당했더라도 실표증(사실증명서)이 있고 혹 불에 탄 재나 물에 훼손된 찌꺼기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실표증에 따라 환급하는데 실 표증은 유리 그릇 안에 넣어 훗날을 위한 표기로 보관한다고 한 다. 관 민 사이의 신용을 알 만하다…. ●6월 17일(5월 12일) 흐리다가 맑음 …오후 2시에 네 사람은 문을 나서 마담슛소듸(마담탓소 박물관) 로 갔다. 흰 밀랍으로 사람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 사람의 모습이며 얼굴 생김새, 두발과 수염은 물론 심지어 피부색까지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 비단옷을 걸친 제1 반열의 사람은 당연히 지금의 황제와 황후, 태자와 태자비이다. 그 외의 반열에는 선대에 공이 있었던 황제와 황후 및 각국의 황제, 대통령, 영웅호걸, 유명인사들이 있었는데 이홍장과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등이 그러한 예이다. 당시 정부의 대신들도 모두 참여하고 있었다. 산골짝에서 전쟁을 하는 중에 죽 거나 다친 사람들이 널린 모습이며 범죄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모습, 강도가 부유한 자를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모습, 전쟁에서 이겨 항복을 받아내는 모습 등등 과연 모두가 장관이었다. …오후 9시에 외부 참서관 포선비가 와서 국회당으로 안내해 구 경시켜 주었다. 국회당 의석 가운데 있는 아취형 약식 방은 의장이 앉는 곳이다. 이 자리 앞의 책상에는 국보 한 점이 놓여 있었다.그 옆에 국표(나라의 상징물?)를 하나 두었는데 금으로 주조한 것으로 모양은 절구의 공이와 같았다. 책상 앞에 또 큰 책상이 하나 있었 는데 각종 문서가 놓여 있었으며 서기관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의석 오른쪽에는 정부당이 줄지어 앉고 왼쪽에는 반대당이 줄지 어 앉아 있다. 할 말이 있으면 의식을 취하고 일어나 시의를 진술 하고 굳세고 바르게 변론을 한다. 말이 끝나면 좌우의 당이 의논하 였다. 만일 의논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결국 투표를 하고 다수에 따라 시행한다고 하였다. 그 옆자리의 신문사 사원(기자)들은 말하 는 것을 따라서 기록하고 있었다. 이 때에 의논한 것은 모두 주세 한 항목이었다고 한다. ( 번역=강성위/ 한학자 ). .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