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4월 11일 일요일 오후 02시 09분 55초
제 목(Title): 김영민/ 아, 한국교회여.. 


 

아, 한국교회여… 


 

김영민/ 한일대 교수·철학 


이상한 곳이 있다. 돈 몇푼으로 인륜이 망가지고 천륜에 금이 가도록 알알이 
자본주의적인 세상이지만, 수령자도 모르면서 한주에 수백 수천만원이 자발적으로 
헌납되는 탈자본주의적인 곳이 수두룩하다. 


참으로 기이한 곳 


희한한 곳이 있다. 시간이 돈이라고 분초를 다투어 뛰어다니며 실없는 모임이라면 
누구나 기피하는 세상이지만, 엿새를 꼬박 일하고도 쉴 줄 모르고 줄기차게 매주 
수백명씩 한데 모여서 별 생산성 없는 프로그램을 경건하게 진행하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곳이 있다. 

기이한 곳이 있다. 온갖 원심력으로 찢어져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없는 세상이지만, 
믿을 수 없이 견고한 구심력으로 뭇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냉소와 허탈이 만연한 
세상에서 열정과 광기가 살아 번득이며, 이기적 보신주의로 살벌한 세상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쏟아붓고도 득의한 듯 희희거리는 곳이 있다. 

그러나 정녕 이상한 일은 그 놀라운 자산과 열정과 에너지가 여름강물처럼 사회로 
밀려들어가 정화와 연대와 정의를 위한 변혁의 힘으로 기능하지 못한 채 필경 
파편처럼 분분히 날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당연히, 실존과 구원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환원할 수 없다. 그러나 이곳이야말로 자기갱신과 
자기소진(自己消盡)이 온통 뒤섞여 있는 참으로 기이한 곳이다. 

어느 사람은 이곳을 ‘신의 무덤’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그렇게 냉소적이고 
싶지 않다. 이곳은 기실 내 정신의 쉼터와 같은 곳이며, 개인적으로는 서구적 
근대화를 선취(先取)하도록 도와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이곳 ‘교회’에 
바쳤던 내 열정과 성실은 실로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가령 성인이 돼서야 그 아릿한 향수에 떠밀려 오래 격조했던 모교인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생각해 보라. 일견 그곳은 그 수많은 추억의 만화경을 
펼쳐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초라해 보이지 않던가. 이렇듯 기실 환멸은 환상의 
꼬리이지만, 우리는 그 꼬리를 외면하고 얼굴을 스치는 가속(加速)의 미래를 
욕심낸다. 환상과 환멸의 순환은 물건처럼 붙박인 채 자족하며 살 수 없는 
사람살이의 필연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의 계몽과 성숙을 유보한 채 
오히려 환상에 머물러 있고 싶어한다. 

한국의 기독교회를 짧게 평가하거나 단번에 그 속내를 들춰낼 수 없다. 개화기 
민족주의적 계몽의 전위에 우뚝 선 것이 불과 어제같은 데 종말론적 환상의 기류에 
편승한 잔가지들이 어느새 사방에서 웅성거리기도 하니. 

일찍이 기독교를 알코올과 더불어 유럽을 마취시키는 두개의 약물로 본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교회의 행태가 생명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며 자기파멸적 순환구도 
속을 뱅뱅 돌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국교회는 교회 내부의 그 놀라운 자본과 
열정과 에너지가 창조적 생산성을 품고 교회 안팎을 소통시키지 못한 채 뱅뱅 돌고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투적 노방전대에서 보는 ‘극단’ 


그는 또 기독교회의 가치관이 이른바 ‘교수형리(絞首刑吏)의 형이상학’에 근거해 
있다고 보며, 사랑과 심판이라는 잣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분열증적 심리학을 
숨기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시한부 종말론자들, 그리고 역전이나 전동차 안에서 
흔히 목격하는 전투적 노방전도대의 행태에서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두드러진다. 
‘사랑’이라는 광기, 혹은 알리바이를 비집고 거침없이 배어나는 그 살기(殺氣)를 
목도하고 있노라면 교수형리의 심리학이라는 표현이 실로 과장이 아니다. 

이 세속의 예언자는 또 교회가 비범한 사람들을 멸종시키는 ‘가축떼의 윤리’를 
설파하면서 “모든 팽팽한 활을 부러뜨리려고 신중하고 다정스럽게 온갖 노력을 
다한다”고 항의하기도 한다. 

100년 전에 유포된 비난이지만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도 맹성(猛省)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고도로 상업주의화한 이 자본주의 체제를 견제하고 향후의 
심층근대화를 주도할 주체세력을 구상할 때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야속하기 짝이 
없다. 아 교회여, 내 순정의 샘터였던 곳이여. 돌진적 근대화의 튀기나 속물들과 
단호히 결별하고 전국의 인문세력과 견결히 연대하시라. 




▣ OPEN! 한·겨·레 인터넷쇼핑몰! 한번 와보세요~ http://hani.s-mart.co.kr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