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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4월  7일 수요일 오전 01시 50분 44초
제 목(Title): 서평/유초하  한형조,주희에서 정약용으로 


*** Forwarded file follows ***

Posted By: artistry   (호연지기) on 'History'
Title:     책/서평 한형조-주희에서 정약용으로 
Date:      Sat Apr 03 06:42:20 1999 GMT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세계사
1996. 6. 20. / 319면 / 10,000원
한형조 지음

1

전통시대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사람 가운데 매우 재주있는 소장학자 한 사람을 
만났다. 조선유학 의 철학적 패러다임을 찰구한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의 저자 
한국정신문화원 교수 한형조가 그 사람이다. 한형조는 원전해독력이 뛰어난 
편이다. 원전해독력이란 적어도 두 가지의 능력이 질적 으로 통합됨으로써만 
가능하다. 우선, 대상 텍스트의 문자적-사상적 의미를 두루 이해할 수 있어 야 
한다. 다음, 이해한 내용을 오늘의 우리말로 산뜻하게 재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 능력을 아우르는 일은 언어일반에 대한 조예를 갖추지 않고는 이루기 어렵다. 
한형조는 이 점들에서 일 단 믿음직스럽다.

한형조의 작품이 박사학위논문으로 나올 수 있게 된 데에는 김형효와 김용옥이라는 
스승이자 선 배가 있었음이 이유내지 근거가 된다. 세 사람은 그들끼리는 서로 
다르지만 남들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들은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활달하며 스타일에서 분방하다. 발상에 서의 번쩍임과 개념운전에서의 
자유로움을 두 선배와 공유하는 한형조는 자신의 독특한 말솜씨를 닦는 중이다. 
한형조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김형효와 공유하면서 원전동원에 더욱 충실하며, 분 
방한 넘나듦을 김용옥과 함께 하면서 그 변폭이 덜 넓다. 이는 실상 스타일의 
차이라기보다는 주 제대상의 차이에 가깝다. 한형조가 일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해명하는 작업에서 보여내는 깊이는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을 향해 파고드는 끈기의 
산물이고, 그 넓이는 다양한 영역과 방법에의 관 심에 짝하는 재주의 산물이며, 
이들 끈기와 재주는 서로를 상승적 방향으로 부추긴다. 그의 글은 읽는 이에게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도록 만드는, 헤설프지 않은 발랄함이 있다. 다음 쪽으로 
얼 른 넘어가고픈 안달과 함께 함부로 넘기지 못하게 하는 긴장이 세로-가로의 
짜임새로 작동하게 한다.

2

한형조가 밝히고자 한 것은 공시적으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중세시대 동북아의 
철학적 사유를 이끈 연속적/단절적 범형(paradigm)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또는 
양자에 함축된 의도와 문제이 다. 이러한 해명을 위해 그는 주희와 정약용이라는 
두 지성사적 거인이 체험한 실존적 고뇌와 사 변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는, 다시 그들의 명제에 대한 메타비판의 거점을 장악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들의 의식과 거리를 두었다. 한편 통시적 관점에서 수행한 한형조의 
작업은 맹자에서 정약용에 이르는 유학적 존재관·가치관의 연속적/단절적 두 
범형사이의 꼬임과 풀림 또는 되꼬임의 양상에 대한 해명이다. 여기서 그는 주희의 
사유가 정약용에게로 절실하게 문제로 다가서게 된 계기 또는 다리로서 이황과 
이이를 데려온다. 역사적 사상들과의 이러한 비판적 대 화-이해의 방식은 한형조 
자신의 언명대로 해석학적 접근법에 가깝다.

맹자로 대표되는 원천유교의 가르침은 사회성을 속성으로 하는 인간의 삶을 
향도하는 지남등이었 다. 시공[宇宙] 속에 출렁이는 모든 사물에 대해 존재와 
속성의 각 범주에 걸쳐 ‘설명해내는 이 론체계’는 공자-맹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자연세계와 인간생존을 관통하는 원리’라거나 ‘인간적 실천이 
근거하는 자연적 법칙’같은 것은 그들의 발상에 떠오르지 않았다.

주희가 보기에 맹자의 윤리적 교설은 현실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기에 실패했고, 
따라서 인간현 실을 계도함에 있어 올바른 지침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본성을 이념적으로-현실 적으로 선하다고 강변한 데 있었다. 주희의 눈에 
비친 현실의 인간들은 이욕과 공격충동을 생래 적으로 구유한 존재였다. 인간의 
성은 이가 기에 내려앉은 다음에야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기질 에는 선과 악이 
함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병종의 진단이 사실에 터하지 않을 때 건강회복의 
처방이 온전할 수는 없다. 그러한 처방이 만일 효력을 발생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환자의 체질 이나 약재의 성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묘하게도 맞아떨어지는 
우연의 결과일 터이다.

주희는 현실적 인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성향에 대한 경계를 긴장되게 
보지(保持)했지만, 그 악의 성향이 인간에게 있어 정도적 차이가 있을 뿐 
선천적으로 함유되도록 결정된다고 봄으로써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파국을 미리 
장치했다. 그 파국의 핵심은 인간적 실천이 결과하는 선과 악 양쪽에 대해 
칭송하거나 비난하는 논리, 포상하거나 징벌하는 행위가 무의미하고 근거없는 것 
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데 있다.

정약용이 읽은 주희의 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포괄적 
발상”에 터잡았다. 이 점이 조선성리학의 파탄을 예비하는 뿌리요 씨앗이었다. 
주희는 자신의 포괄적 발상의 틀 속 에서조차 견뎌내기 어려운(incompatible) 
명제들을 제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드러난 것과 숨 어있는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체용론의 틀이 파탄의 계기적 요인이었다. 정약용이 보기에 인간이란 
氣적 자연세계에 내재한 선험적 필연성의 법칙성에 매이지 않는 선택 과 자율의 
주체정을 지녔다. 인간은 육체의 측면에서는 자연의 아들이되, 육체의 근원인 
기(氣)로 환원되거나 기에 종속되지 않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성리학적 이(理)나 기(氣) 어 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영명(靈明)이라는 
기(氣)초월적=비물질적 실체에 속하는 인간심성은 자연 의 아들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초월하도록 또는 초월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다. 초월을 향 한 
인간영명의 의지야말로 정약용적 인본주의의 초석이다.

주희가 건너버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정약용으로 하여금 되건너올 수 
있도록 한 것은 조 선의 성리학이었다. 이황은 주희가 우주만물의 선험적 이념으로 
상정한 이(理)를, 동물적 자기보 존의 경지를 넘어선 인간됨의 자기확인라고 
확신했다. 이 점에서 그는 주희의 무차별적 세계관에 대해 그 범형적 근본의미를 
자각하지 못하는 수준에서나마 지양하고자 했다. 다만, 그 미(未)자각 을 공유하는 
후배들에 의해 도전받는다. 기대승과 이이는 이·기에 대한 이황의 대립적-상호독 
립적 이설을 부정하고 불가분적-통일적 이설을 내세웠다. 그들은 주희에 대한 
이황의 지양에 대 해 논박함으로써 주희적 관점의 현상론적-현실적 측면을 
옹호했다.

주희의 진지한 그러나 몰주체적인 도덕형이상학의 결함을 정약용에게 결과적으로 
일깨운 조선성 리학 또한 원천적으로는 주희적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과 자연의 단절성에 터 한 정약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이황-이이의 철학이라고 해서 그 모습 그대로 수용될 수는 없 었다. 정약용의 
성리학비판은 포괄적이고 발본적인 것이었다. 이상이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에서 
수행한 한형조식 해명의, 미량의 훈수 또는 변조를 보태 정 리한, 줄기이자 
요약이다.

3

한형조의 이번 작품이 제목에 걸맞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약용의 
인간관만 하 더라도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또는 않은 측면이 적지 않다. 하나의 
글이 빠뜨릴 수밖에 없는 진 실은 많다.

공자와 맹자의 실천지침을 자연-사회-인간을 관통하는 체계적 형이상학의 그물로 
되짜낸 것이 주희이다. 그러나 주희에 이르는 철학적 사태의 진전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주희의 체계는 선진유학의 무매개적 재구성으로 표현될 만큼 
공자-맹자의 직접적 계승이나 극복이 아니다. 한 대(漢代)에만 하더라도, 인간적 
당위의 원리를 자연세계의 물리적 법칙성과 연관짓고자 한 학자군 (群)이 있었다. 
인간-자연 사이의 상호 자극-반응 관계를 밝히는 데에 음양가의 참위적 도구들 
을 덮어씌운 동중서(董仲舒) 등의 금문학파가 있었고, 거기서 신비주의적·미신적 
색깔을 벗겨내 기 위해 도가적 발상을 원용한 양웅-왕충 등의 고문학파가 있었다. 
그러한 연관짓기의 과정에서 산출된 도가적 요소의 과잉결합은 위-진 이래 유가의 
얼굴에 도가의 몸뚱이를 지닌 주지적/주정 적 경향의 다양한 현학(玄學)의 
흥성으로, 그리고 거기에 실린 탈속적 경향의 강화는 남북조 이후 불교의 흥성으로 
이어졌다. 동서의 북방족속 흉노/돌궐/선비/거란/말갈/여진의 물리적 침탈과 남 
방출신 불교의 정신적 침식을 극복하고자 한 고중세 중국인의 족속적 
자아회복의지가 만당 이후 송대에 이르는 9~12세기에 걸쳐 학문·사상의 형태로 
발현된 것이 성리학이다. 계승-비판-전화 의 이러한 사상적 변천에는 왕조의 
흥망성쇠를 비롯한 중국 내부의 계급/지역/계층간 투쟁과 화 해, 중국족속과 
이웃족속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긴장/충돌/대립/교통, 그에 조응하는 인간생활의 
조건과 분위기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각종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연변, 계승과 
극복에는 경제정 치적 요인이 규정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태동사상사의 이러한 
결절들에 대한 비약없는 찰구라는 과업이 한형조를 포함한 연구자들의 개입을 
요구한다.

전통형이상학에 담긴 근원존재에의 공통관심의 희석(특히 22쪽), 본체론과 
현상론을 잇는 생성론 의 결석, 주돈이 이래 북송 성리학과 주희체계의 차이, 
소당연에 대한 해석(87쪽), 인설(因說)/대 설(對說)의 의미(122쪽), 
포괄자·근원자에 대한 이황이 지닌 관심의 행방불명 등에 대해서는 미 시·거시 
안목을 질적으로 통합한 방식의 탐색과 확인이 바람직할 것이다.(이 문단은 
독자들보다 는 한형조에게 띄우는 사신의 성격이 짙다) 한솥 밥에 부른 배는 
드물다. 하나의 저작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허물일 수는 없다.

4

이제 한형조를 향하고 위하여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는 채찍을 겸하여 몇 마디 
보태는 것이 온당 하겠다. 체계적 사상들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공시적 안목에 
부과하는 일몫이 통시적 시각에 부과하는 몫 에 비해 무거운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천재적 철학이나 획기적 범형의 출현도 선행사상에 빚지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통시적 관점에서의 해명작업 또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이데올로기 일반이 경제정치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난 세기로부터 의 상식 또한 가벼이 넘기기 어려운, 여기서의 금언이다.

철학적 사유의 형성과 변용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실가닥과 어울려 시대현실의 
밧줄을 꼬아나 간 사회정치적 가닥들에 대한 해명과 관련됨으로써만 제대로 
분석·해석·평가될 수 있다. 이런 조망을 거칠 때, 조선의 성리학과 실학 사이에 
단절성보다 연속성이 더 비중큰 관계가 성립된다 는 한형조의 입론에는 약간의 
일면화가 개입되어 있다. 정약용이 수행한 성리학적 사유구도의 해 체는 주희뿐 
아니라 이황·이이의 것까지를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학은 성리학적 전통 
을 떠나 적절히 이해될 수 없다”는 온당한 지적이 만약 “성리학과 실학은 단절이 
아닌 계승의 지평 위에 정당하게 떠오를 수 있다”는 주장에까지 발걸음을 내디딜 
경우, 자칫 발목을 삐게 할 패인 지점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성리학의 사유구조와 발상법을 통째로 용해한 정약용의 작업이 주희에게 빚진 것은 
물론 사실이 다. 하지만 먼저 난 사람이 나중 올 사람에게 유산을 남길 뿐 아니라 
후자 또한 전자의 자산을 빛냄으로써 거꾸로 채권을 조성할 수도 있다. 정약용이 
주희에게 빚진 것과 빚준 것 중 어느 쪽 이 무거운가, 또 정약용의 후행세대가 진 
빚은 주희와 정약용의 어느 쪽에 더 무거운가? 앞의 물 음은 그 자체로만 
답산되기보다 뒤의 물음에의 답과 결합될 때 더욱 정밀하게 산정된다. 이러한 
셈본에는 철학적 관념연산이나 공시적 감지-각지의 이해와 함께 
역사학적·사회과학적 안목에 바탕한 통시적 판단이 질적으로 통합됨으로써만 
유효한 해법이 구상-구성된다.

블레이처(Bleicher)가 지적한 대로, 사회의 각 분야가 체계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석학적 패러다임이 활성화될 수 없음은 자연스럽다. 사회적 
불균형을 조장하는 의사소통적 과 정은 ‘사이비 대화’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해석학적 방법만을 내세운다면 사회문화적 연구대상의 조야한 개념화라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알맞다.

5

3년 전에 제출된 박사학위논문을 함께 볼 때 이번에 나온 책은 중요한 논점들에 
대한 첨가와 간 접적 논점들에 대한 삭제를 거쳤다. 특히 주희와 이이에 대한 
불공정한 단순화 또는 그 반대의 불필요한 복잡화를 적지않이 다듬었다. 지나친 
친절이나 노출지향 현학성 또한 꽤나 절제되었다. (다만, 선행연구에 대한 부채를 
적시하지 않은 분망성은 여전히 남아 섭함을 사는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이 점 
또한 저자의 학문적 성실성의 발로이자 지적 자기애에 짝하는 세심한 잡도리이리 
라. 이런 태도로 꿋꿋이 감성에 바탕한 지적 탐험을 채워나갈때 정약용 연구는 
물론 한국사상사 의 재구성과 동양철학일반의 해명에서 빼어난 일꾼으로 한형조는 
숙성할 것이다. 공자도 말씀하 셨지. 나중 올 사람이 오늘 사람보다 못하리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보냐. 

유 초 하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저서:「한국사상사의 인식」
논문:“정약용의 우주관”, “동양의 철학적 전통에 나타난 몸과 마음의 존재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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