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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6일 토요일 오전 06시 01분 55초
제 목(Title): 강준만/박정희신드롬을 해부한다


'박정희 신드롬'을 해부한다/강준만
 
 

조선일보는 박정희식 군사 독재 부활을 꿈꾸는가?

 

나는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공과를 균형되게 
평가하자는 사람이다. 나는 '박정희기념관'을 만들자는 데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가 이룬 업적과 그가 잘한 일을 어떤 형태로든 전시하잔 말이다. 다만 나는 그 
기념관에 박정희가 잘못한 일도 동시에 전시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매우 온건한 
사람이다. 그 어느 한 쪽을 다 무시하고 다른 한 쪽만 부각시키자는 사람이 
과격하지 내가 과격한가? 

지금 나는 이 글을 박정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간주하여 
쓰고 있다. 그들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과를 균형되게 평가하자는 내 
말이 틀렸는가?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조선일보의 과격한 행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게 부당한가? 대답 좀 해 주시라. '전혀 부당하지 않다'는 답을 
주신 걸로 알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현재 조선일보가 추진하고 있는 '박정희 미화' 작업은 박정희식 군사 독재 부활을 
꿈꾸고 하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감히 군사 독재 부활까지 꿈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군사 
독재 정권과 적극적인 유착을 했던 조선일보의 과거를 정당화해서 그걸 앞으로 
조선일보의 지속적인 성장에 이용하려는 속셈이 아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아니 그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가 이번에 {조선일보}에 박정희를 미화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 조갑제씨가 그간의 글을 책으로 묶어낸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사서 '머리글'을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행여 독자들께서는 이 책을 사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조갑제씨의 주요 사상은 진중권씨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에 잘 나와 있으니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무엇에 놀랐다는 말인가?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다.

 

박정희는 일제의 군사 교육과 한국전쟁의 체험을 통해서 전쟁과 군대의 본질을 
체험한 바탕에서 6백 년만에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상무(尙武) 정신과 자주 정신의 
불씨를 되살렸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한 1988년에 군사 정권 시대는 
끝났고 그 뒤에 우리 사회는 다시 상무, 자주 정신의 불씨를 꺼 버리고 조선조의 
문약성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복고풍이 견제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의 영도하에서 1류 
국가의 문턱까지 갔던 우리 나라는 원래의 우리 수준, 즉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만의 하나, 북한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우리는 4류 국가(크메르 
루즈나 르완다)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필자가 박정희 전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 늘 머리에 넣고 다닌 생각이 바로 이런 전락의 악몽이었다.

 

소설가로 변신한 조갑제

 

아니 이럴 수가! 그러니까 '민주화'가 곧 '조선조의 문약성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란 말인가? 하기야 내가 바보다. 오늘날 누가 조갑제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조갑제씨가 개인 조갑제씨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조갑제'라는 데에 있다. 조갑제씨의 사견(私見)은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사견으로 끝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조갑제씨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매일 그 넓은 지면을 
맡겼을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니 조선일보는 과연 박정희식 군사 독재 부활을 
꿈꾸고 있는 건지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조갑제씨가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조선일보의 '박정희 미화' 작업에 
관한 한 조갑제는 곧 조선일보요 조선일보는 곧 조갑제다. 조갑제씨가 그 작업의 
연출·각본·주연까지 도맡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조갑제로 대표되는 
조선일보가 설사 박정희식 군사 독재의 부활을 꿈꾸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후진성을 꼭 움켜쥐고 그걸 지키려는 수호신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앞서 인용한 '머리글'에서 조갑제씨가 한 말을 더 들어 보자.

 

박정희는 인권 탄압자가 아니라 우리 나라 역사상 획기적으로 인권 신장에 기여한 
사람이다. 인권 개념 가운데 적어도 50%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고, 
박정희는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음 단계인 정신적 인권 신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대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하느님처럼 모시려고 했던 서구식 
민주주의를 감히 한국식으로 변형시키려고 했던 점에 박정희의 위대성과 이단성이 
있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주자교(朱子敎)로 교조화했던 한국 지식인의 사대성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민주교(民主敎)로 만들었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정하려는 
박정희를 이단으로 몰아붙였다. 물론 미국은 미제(美製) 이념을 위해서 충성을 
다짐하는 기특한 지식인들에게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냉철하게 박정희에 대해선 외경심어린 평가를, 민주화 세력에 대해선 경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음을 제1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 신드롬'은 PR의 승리

 

일일이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조갑제씨는 소설가로 
변신했다! 그는 역사를 희롱하면서 마음대로 소설을 쓴다. 그의 소설은 소설가들에 
대한 모독이건만 분노하는 소설가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막강한 조선일보를 등에 
업고 조갑제씨의 뒤를 쫓지 못해 안달하는 소설가들은 여러 명 있을망정 말이다. 
그러니까 이는 조갑제씨의 소설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보는 조선일보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건 물론 박정희에 대한 이른바 '국민 정서'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있다. 그 그리움을 외면한 채 조선일보를 아무리 비판해 봐야 
소용이 없다. 도대체 왜 '국민 정서'라는 것이 그리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러 설명이 나왔지만 한결같이 빠트리지 않고 거론하는 것이 
박정희를 부정했던 김영삼 정권의 대실패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러한 설명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인기라거나 그에 대한 인정의 정도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 
높다. 외국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안다고? 이 점에 주목해 보면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의 정체가 풀린다. 이 점에 대해선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박정희 
신드롬'은 PR의 승리다. 이걸 제대로 깨닫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언로(言路) 
구조와 관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스스로 다가와 대중의 눈 앞에서 옷을 홀라당 벗지는 않는다. 대중의 세상 
인식은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대중의 역사 인식은 개인 영역에서의 경험에 의해 
채색되고 굴절된다. 그들에게 간접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는 와닿지 않는다. 
그들은 군대 시절이나 처녀 시절의 이야기처럼 과거엔 관대하고 현재엔 엄격하다. 
그들은 피부반응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외부의 선전·선동에 취약하다.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박정희 신드롬'은 돈의 문제다. PR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구조와 제도도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박정희 미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과 집단은 많다. 그들에겐 
'박정희 미화'가 매우 중요한 이해득실의 문제다. 조선일보의 경우 박정희가 
어떻게 평가되고 그 당연한 귀결로 전두환이 어떻게 평가되느냐에 따라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다. 신문은 권위와 이미지를 파는 장사이기 때문에 박정희와 
전두환과 유착했던 조선일보로서는 그들에 대한 평가를 한가하게 역사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30년 기득권 세력의 위력

 

어찌 조선일보뿐이랴. 박정희와 전두환 체제,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노태우 정권까지 합하면 이 나라는 30년 넘게 실질적인 박정희 체제의 
지배를 받아 왔다. 그 기간 동안 엄청난 규모의 기득권층이 형성된 것이다. 
그들에겐 박정희가 어떻게 평가되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박정희가 나쁘게 평가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재산을 내놓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명예는 실추될 것이다. 그 명예는 '사회적 자본' 또는 '문화적 자본'으로서 
결국 돈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박정희 미화'에 그들이 가진 
각종 유형의 '자본'을 투자하는 데에 매우 열성이다.

반면 박정희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박정희 평가 문제는 개인적인 이해득실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에게 그건 지극히 공적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국가·민족·사회·역사 ―― 이런 거창한 단어들의 문제인 것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우리는 흔히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즐겨 하지만 그건 그만큼 
정의가 승리하는 데엔 우여곡절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당장 현실의 세계에선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기게 돼 
있다. 특히 '박정희 미화'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자본력과 적극성에 있어서 공익 
추구자들이 감히 사익 추구자들의 적수가 되질 못한다.

곧장 언로(言路) 분석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일보는 '박정희 미화'에 사운(社運)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반대편에 있다 할 한겨레신문이 그 반대되는 
운동을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한 걸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게다. 한겨레신문은 
조선일보가 주동이 된 '의제 설정'에 대해 간헐적인 비판만 가할 뿐이다. 
한겨레신문은 조선일보에 비해 훨씬 작은 신문이거니와 적극성에 있어서도 
조선일보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다른 신문들은 어떠한가?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른 신문들은 한겨레신문보다는 
조선일보쪽에 가깝다. 그 신문들의 칼럼 지면을 장식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옛날 사람들 그대로다. 정권은 교체되었다지만 그 분야에선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30년 세월의 구조와 관행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방송은 
달라졌나? 어느 정도 달라졌지만 그건 즉각적인 정권 홍보의 작은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변화일 뿐 그 물도 역시 예전 물 그대로이다.

이건 도무지 게임이 안 되는 게임이다. '박정희 미화' 세력과 그 세력에 대해 
동조하거나 수수방관하는 세력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적 
사실과 논리는 극소수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다가 끝날 뿐, 일반 대중은 그런 
힘의 관계에서 '박정희 미화' 세력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이걸 간과한 
채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놓고 아무리 분석을 해 봐야 완전한 답이 나올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유산}

 

{인물과 사상}은 늘 우리 언로(言路)에 관심을 기울인다. 출판 시장을 보자. 
박정희를 미화하는 책들의 종수와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언론 시장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미약한 존재이지만 {인물과 사상}은 그 힘의 
관계에 조그마한 변화를 주고 싶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박정희 미화'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에 해당하는 책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한국정치연구회 편, {박정희를 넘어서: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비판적 
연구}(푸른숲, 1988, 408쪽, 1만3천 원)라는 책이 있다. 12명의 학자가 쓴 책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딱딱한 학술서라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같은 출판사에서 7개월 후에 나온, 김재홍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쓴 
{박정희의 유산}(푸른숲, 355쪽, 1만3천 원)이라는 책을 추천하련다.

이 책은 <중앙정보부 채홍사의 육성 증언>과 <김재규의 군법회의 최후 진술> 등 
'10·26 사건 군사재판 녹음테이프' 2개를 특별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엔 
김일성, 김정일, 황장엽에 관한 글 등 여러 종류의 글이 섞여 있긴 하지만, 제법 
술술 읽힐 만하게 씌어졌고 '박정희 신드롬'의 허구를 지적하는 대목들이 꽤 
설득력 있다는 데에 높은 점수를 줘야 할 것이다. 김재홍 논설위원의 결론은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박정희 권력은 개발 독재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지만 나쁜 유산을 더 많이 
남겼다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무엇보다도 국가 정보 기관의 정치 공작, 정치 
군벌과 지역 차별, 왜곡된 언론 구조, 북한과의 극단적 대결 구조가 박정희 
권력에서 자라났다. 이 책은 그 실상을 경험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패륜의 극치'를 보여 준 박정희의 엽색 행각

 

박정희를 전면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박정희가 잘한 점을 아무리 인정한다 해도 조선일보가 시도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박정희 미화'는 곤란하다는 소박한 수준의 인식을 제대로 가져 보자는 말이다. 이 
책은 '박정희의 안가에 온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김 
논설위원은 10·26 박정희 살해 사건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통령과 국가 공직자들이 외부와는 일체 차단된 안가에서 주연을 벌이는 자리에 
주흥을 돋우고 술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젊은 여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런 
술자리 행사가 한 달에 열 번, 그러니까 사흘 걸러 한 번씩 벌어졌다. 그 자리에 
한 번씩 왔다간 여자들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TV탤런트와 가수 등 
연예계의 일류 스타들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 이것이 절대군주나 봉건영주 
시대가 아닌 20세기 말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 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먼저 경호실장 차지철이 심사했다. 차지철은 채홍사에게 "돈은 
얼마를 주더라도 좋은 여자를 구해오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채홍사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보다도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붙여야 할 이름이었다. 
…… 갑작스런 궁정동 연회의 차출 지시로 영화나 TV 프로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의 힘 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이런 일로 한두 차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17∼26쪽)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이런 가공할 엽색 행각에 대해 단지 재미있어할 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오입'의 기회가 세계에서 가장 잘 
보장돼 있다는 우리 나라의 남성우월주의적 문화 때문일까? "저기 걸린 달력에 
나온 미녀 모두가 안가를 다녀갔다"는 중정 의전과장의 말에서 그 어떤 소름끼치는 
전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현대사 연구가 박세길씨의 말마따나, 그건 
"패륜의 극치"였다.

그러나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패륜의 극치'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저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해 버린다. 아니 그렇게 하게끔 이 나라 언로(言路)가 
움직였던 것이다. {조선일보}를 보라. 그 '패륜의 극치'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듯, 박정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온갖 미사여구를 헌납해 대고 있지 않은가.

 

신민(臣民)문화와 김영삼의 책임

 

김재홍 논설위원은 직업이 언론인이라 그런지 박정희 추모의 붐에 대한 책임을 
일반 대중에게도 묻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박정희 체제가 심어놓은 우리의 
신민(臣民)문화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하는 말로 
이해하련다.

 

어렵게 문민 시대를 연 국민이 웬 군인 독재자 예찬인가. 이에 대해서는 어느 TV 
방송의 여론 조사 결과가 답변해 주었다. 이 방송은 여론 조사 결과 다수의 국민 
정서가 독재 방식일지라도 경제 발전의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지난 72년 10월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무려 
90% 이상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을 때와 똑같은 국민의식이다. 집권 세력의 
공작이 있었다손 쳐도 군부 독재 체제를 지지한 책임은 상당 부분 다수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국민 
정서를 대하면서 나는 정치문화의 불변성을 실감한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습속이고 문화이다. 유신 체제 같은 것이 박정희 추종자들의 말대로 정녕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일지도 모른다. 많은 여론 조사 결과가 
한국인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정신 문명의 풍요보다 물질의 
가치를 절대적 우위에 두고 자유를 팔아 질서를 사며 합리적 과정보다 독선적 
결단을 더 평가하는 것이 개발독재 아래 신민(臣民)문화의 특징이다. 끝없는 
개발독재를 요구하는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나는 정치적 마조히즘 냄새를 맡으며 
허무주의에 사로잡히고 만다.(70∼71쪽)

 

앞서도 지적했듯이, 박정희 부활의 가장 큰 책임은 김영삼 정권에게 있다. 김영삼 
정권의 대실패가 박정희를 무덤에서 끌어냈다는 데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런 견해에 동의할망정 좀더 깊이 생각해 볼 점은 있을 것이다. 
일단 김 논설위원의 진단을 들어 본 다음에 이야기를 해 보자.

 

하지만 오늘날 역사의 아이러니는 문민 시대의 정치인들이 그 씨앗을 뿌렸다. 
목불인견의 문민 정치가 군인 정치인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복고반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은 책임은 다름아닌 문민 정치의 주역들이 져야 할 것이다. 오랜 군사 
정권에 억눌린 한국의 시민사회에 문민 정치를 되살려 준 공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민 정권 5년 만에 경제 발전과 부패 방지는 역시 독재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한 과(過)가 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71쪽)

 

나 역시 김영삼 정권의 책임을 인정한다. 김영삼뿐만 아니라 김영삼 정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해 앞으로 더욱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여 주고 있는, 여전히 오만한 행태를 감안할 
때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민주화'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취약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책임을 김영삼 
정권에 떠넘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말자는 것이다.

 

부정부패는 박정희의 유산

 

박정희 정권 시절엔 정권이 더러운 정치적 목적으로 무고한 인명을 죽여도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소리 한 마디 할 수 없었다(예컨대 인혁당 사건을 생각해 보라). 
고문도 밥 먹듯이 저질러졌다. 부패는 또 어떠했던가?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예 
언로(言路)에 들어서질 못했다. 반면 김영삼 정권 시절엔 어떠했던가? 조선일보가 
정권을 조종하려고 했다! 김 정권이 조선일보의 말을 잘 듣지 않자 조갑제라는 
일개 기자가 김영삼에게 박정희를 배우라고 훈계까지 했다.

사정이 그와 같은데 어찌 박정희와 김영삼을 단순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대중은 늘 '현재적 동물'이고 언로(言路)의 포로가 아니더냐. 이걸 실감나게 해 
주는 게 김재홍 논설위원이 하버드대의 니만펠로십을 받아 미국에서 연구하면서 
접한 미국인들의 박정희에 대한 호의적 평가에 대한 분석이다. 이 분석에 앞서 김 
논설위원이 박정희 시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에 대해 반론을 펴는 
걸 먼저 들어 보자.

 

미국에서 전두환·노태우씨의 구속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듣다가 세 가지 
점에서 크게 놀랐다. 첫째는 박정희 시대엔 권력 남용과 독직 부패가 적었다고 
미화하면서, 전·노 체제를 그 이전의 군인 정치 체제와 영 다르게 보려는 
경향이다. …… 한국인들이 가난을 벗기 위해 각자 얼마나 피땀어린 고생을 
감수했는지는 정치학이나 경제학·사회학적인 연구 대상에 들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오로지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과 정책 수행만이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였던 것처럼 운위되는 현실을 보면 당시의 3선 개헌 논리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 박정희 시대는 처음부터 부패와 공작정치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엄령으로 정치 활동을 전면 동결시켜 놓은 가운데 자신들만이 
비밀리에 정당을 조직했다. 이것이 공화당 사전 조직 비리다. 4대 부패 사건은 
일본의 새나라자동차 수입 이권, 파친코 수입 이권, 증권 시장의 주가 조작, 
워커힐호텔 건설 이권 등을 쿠데타 세력이 챙긴 것으로 당시엔 희대의 권력 부패 
사건이었다. …… 심지어 한국에서 유신 독재가 싫어서 미국에 이민온 사람들 
중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는 했어도 부정 축재나 비리는 저지르지 
않았는데……."라고 말했다. …… 박 대통령 살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청와대를 
수색한 보안사 요원들이 청와대의 철제 금고에서 발견한 돈의 액수가 9억여 
원이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치면 수백억 원대가 된다. 전씨는 법정 진술에서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축재한 경위와 관련,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 관행이란 박정희 체제 때부터 내려온 권력자들의 행태였다는 뜻일 것이다. 
군인정치인들의 부패상은 전·노씨 때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며 박정희 시대에 
이미 만연돼 있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부패 독직이 없었다는 주장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 …… 전·노씨는 퇴임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박씨와 다르다. 그 
퇴임 준비 중 하나가 엄청난 비자금 축재였다. 박씨는 생전에 권좌에서 
퇴임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어 보인다. 그는 갑자기

피살됐기 때문에 퇴임 후의 대비를 못 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퇴임 후에 대비해 비자금을 모아 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32년간의 군인정치 체제는 저항, 불복종, 그리고 분열적인 정치문화를 
남겼다. 이는 민주화와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통합과 협력의 토양을 말살했으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민의 역사적 과제가 될 것이다.(194∼203쪽)

 

돈으로 매수한 해외의 '박정희 평가'

 

그런데도 박정희는 그간 왜 그렇게 미화되어 왔던가? 우리는 박정희와 그 추종 
세력이 언로(言路)까지 장악했으며 지금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걸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그 뻔한 이치를 깨닫는 데에 의외로 무감각한 것이다. 김 
논설위원은 외국에서 유입돼 국내에서의 박정희 인기를 더 높여 준 박정희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 그 실체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나는 미국 대학의 한국학 연구가 지나치게 연구비라는 이름의 금력(金力)에 
좌우되는 것 아닌가 의심한다. …… 박정희 체제의 미화 작업과 관련, 그 체제의 
수혜자들이 한국민의 눈을 피해 미국과 일본의 학계를 대상으로 연구비와 함께 
예찬 일변도의 자료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워낙 
오랫동안 수혜를 누렸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자금력과 정보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 한국의 군인정치 체제에 대해 경제 성장을 치적으로 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특히 외국 학자들 사이에 강하다. 이는 일제 식민 시대 이후 
축적돼 온 한국민의 역량을 모르는 소치다. …… 나는 한국 국민이 일제 식민 통치 
종식 이후 15년 이상 교육받은 시점인 60년대부터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축적했기 때문에 한국민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과 같은 번영을 열망하고 
있었으며 바로 그 시점에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당시 
한국민의 번영에 대한 열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에 큰 거리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빈곤 추방을 정치적 구호로 내세워 호응을 얻었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군인정치인의 독재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시사 주간지 {타임}지 표지에 박정희의 얼굴 
사진을 게재하려는 로비 사건이 당시의 로비 대상자였던 미국인 교수에 의해 
폭로됐다. 3선 개헌 후 유신 체제로 가는 문턱인 1970년 초여름의 일이었다. 
한국의 로비스트가 미국의 영향력 있는 대학 교수 겸 프리랜서에게 박정희의 
얼굴을 {타임}지 표지 사진으로 게재하게 주선해 주면 5만 달러를 제공하겠노라고 
제의했다고 이 미국인 교수가 1996년 8월 11일 저자에게 증언했다. 그 당시 5만 
달러라면 지금의 실질 화폐가치보다 훨씬 높아 큰 돈이었다. 미국 교수들에 따르면 
1970년대 거물 교수들의 가장 큰 연구 프로젝트가 2만 5천 달러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211쪽)

 

'박정희 민족주의의 반민족성'

 

오늘날 '박정희 미화' 작업에 '약방의 감초'처럼 꼭 따라붙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박정희의 민족주의다. 그러나 이건 상명대 강사 이우영씨가 {역사비평} 90년 
가을호에 쓴 <박정희 민족주의의 반민족성>이라는 글에서 잘 지적했듯이, 대단히 
과장되고 왜곡된 것이다. 이우영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0년대의 군부는 친미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엉뚱하게도 박정희 시대에는 
민족적 주체성이 강조되었다는 일종의 착각 현상도 없지 않다. …… 사대주의의 
배격을 주장하였음에도 미국과 일본의 문화적 경제적 침투는 심화되었으며, 이것은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정당화되었다. …… 박정희의 정치 이념은 전통적인 
유교나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일본의 군국주의와 결합시키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서구의 근대화론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충효를 독재의 정당화로 이용하는 등 전통 
사상의 긍정적 승계를 가로막았고, 전통 사상의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인 
요소들이 강조되게 하는 문제를 낳았다. 이것은 결국 정권을 지지하였던 사람이나 
그 반대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전통적인 이념의 부정적인 인상을 강화시켜 
궁극적으로 주체성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 결국 박정희가 강조하는 민족은 
민족의 이익이나 발전을 토대로 하였다기보다는 그가 경험하였던 교육과 개인적 
성장 배경과 성장 과정에서 받아들였던 사상적 조류들이 종합된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그의 민족주의는 오히려 반민족적 이념의 대표적인 
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의 민족주의를 '반민족적 이념의 대표적인 예'로까진 보지 않더라도, 그것이 
정치적 전략으로서의 효용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그걸 무턱대고 예찬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랴. 
박정희에 관한 이야기는 학술적 논쟁의 형식으로도 이루어지지만 그건 애초부터 
무모한 일이다. 그건 현실 세계에서의 '밥그릇 싸움'이기 때문에 '박정희 미화' 
세력은 설득될 리도 없고 설득당할 뜻도 없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일반 대중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반 대중을 얕잡아보는 것 아니냐고 시비를 
걸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난 얕잡아볼 땐 얕잡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경우에 늘 얕잡아보는 건 아니니까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기 바란다.

 

언권(言權)의 주제넘은 오만이 나라 망친다

 

나는 '박정희 신드롬'은 어떤 면에선 '여론 조사 신드롬'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하는 편이다. 여론 조사에서 박정희를 지지하는 것이 곧 개발 독재를 요구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건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표출하는 하나의 '시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군대 시절에 대한 향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문제는 그걸 진지하고 심각하게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다.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조선일보가 군사 독재의 상무(尙武)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면, 그 잣대를 현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김대중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해 그것이 
비민주적이라고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는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인 것이다.

조갑제씨는 어떤지 몰라도, 사실 조선일보에게 중요한 건 리더십의 방식도 내용도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의 패권인 것이다. 그 패권을 위해 
조선일보는 역사를 가지고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의미의 
상무(尙武) 정신을 가장 많이 훼손하는 것도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조선일보와 같은 언권(言權)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언권(言權)이 제 몫 이상을 누리면서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조선조의 
문약성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이 복고풍이 견제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1류 국가의 문턱까지 갔던 우리 
나라는 원래의 우리 수준, 즉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내가 "조선일보는 
박정희식 군사 독재의 부활을 꿈꾸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늘 머리에 넣고 
다닌 생각이 바로 이런 전락의 악몽이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가 박정희에 대한 공과를 균형되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조선일보의 일방적인 미화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적으로 엉뚱한 뜻을 갖고 추진하는 그런 평가 작업이야말로 
오히려 박정희를 더 욕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박정희가 아무리 나쁜 
독재자였다고 할망정 사익을 추구하는 일개 집단의 이용물로 전락해도 좋을 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역사적 인물을 가지고 사적인 게임을 벌이는 
일은 이제 제발 그만하자. 그리고 그것을 팔짱 끼고 멀거니 구경하는 일도 이제 
제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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