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2월 21일 일요일 오후 02시 31분 55초 제 목(Title): 조선/ 카게무샤 12/15(화) 20:34 [영화평] 인간애로 재현한 일본 전국시대…`카게무샤' 일본 사상 최고 제작비·역대 흥행 8위의 구로자와 감독 대작 . ♧ 16세기 말 중세 일본 무로마치(실정)시대 말기. 전국의 다이묘(영 주)중 대권을 꿈꾸지 않는 자 한 명도 없었으나, 그 중 가이의 다케다신 겐,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치고의 우에스기 겐 신 등이 큰 세력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 명장 다케다 신겐이다. 도쿠가와군을 포 위하고 있다 저격당한 다케다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 돌연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케다가 자기의 죽음을 3년간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내리자 가신들은 그와 닮은 인물을 찾아 꼭두각시 영주를 만들어낸다. 전장에서 적을 속이기 위해 내세우는 가짜 장군을 '카게무샤'라 한다. 다케다와 얼굴이 닮아 도적에서 졸지에 영주 노릇을 하게 된 카게무 샤는 가신의 도움으로 소실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진짜 다케다가 되어 간다. '삼국지'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격파하듯 다케다 신 겐의 카게무샤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3년간 물리친다. 1575년 카게무샤의 정체가 탄로나자 그를 평민으로 돌려보내고 집권한 다케다 신겐의 아들 가스요리는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대군을 일으 켜오다·도쿠가와군과 정면 대결을 펼친다. 오다군은 다케다군의 막강한 기병을막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고 3500명의 조총 부대로 다케다군을 전 멸시켰다. 일본 전쟁사에서 전술과 병제의 혁명을 가져온 유명한 나가시노 전투 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말과 함께 무차별 총격에 쓰러진 희생양 은 다케다군의 막강한 기병대였지만, 구로자와는 이 전투 신에서 카게무 샤가 창을 들고 적진으로 홀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실체 없는 그림자인 카게무샤는 다케다군이 패배한 이상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게 역 사 속에 사는 인간의 운명이요 구로자와의 화두다. 일본사와 일본인. '카게무샤'(영무자·12월 12일 서울극장 개봉)의 시 대를 모르면 일본 영화도 없고 구로자와도 없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 에야스가 봉건 영주들을 통합해 전국 통일을 이루기 직전 무장들이 지배 하는 전국시대. 누군가는 피를 뿌려 대권을 장악해야 다 살 수 있다. 그 는 누구인가. 결국 나가시노 전투를 기점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패권을 장악한다. 이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찬탈했고 조선 침략중 병사 하자 17세기 초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 통일을 이룩해 에도시대가 열린다. 일본은 아직도 먼 나라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지난 9월 사망한 이후에 비로소 그의 영화가 개봉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16세기 일본 전 국시대 이야기가 복잡하고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951년 '라쇼몬'으로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세 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거장 구로자와의 수상 경력은 세계 영화사에 굵은 줄기를 세웠다. '이키루'(53년·베를린영화제 은곰상), '7인의 사 무라이'(54년·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데루스 우잘라'(76년·아카데 미외국어영화상), '카게무샤'(80년·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란'(86년·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등이 한국 마니아들이 남몰래 보고 자랑하 던 그 목록이다. 70년대 말 구로자와는 일본 영화계에서 어정쩡한 존재였다. 일찍이 50 년대에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아 국내의 형님뻘 되는 영화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참인데, 70년대 등장한 신세대들은 억울하게도 배척해야 될 낡은 관습으로 구로자와를 지목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대규모 제작비가 드는 스펙터클을 선호해 일본 제작자들의 계산과 맞지 않았다. 사면초가에 빠진 구로자와가 선택한 길은 외국 자본과 합작이다. 루 카스와 코폴라 감독이 그를 도왔다. 20세기폭스사는 '카게무샤'의 해외 판권을 사들였다. 일본 사상 최고의 제작비(600만달러)와 일본 역대 흥 행 8위(46억엔)의 역사는 서구를 동경하고 서구를 받아들인 가장 일본적 인 방식 덕분에 가능했다. (이성복디지틀조선일보영상사업부장기자 : sblee@chosun.com) ------------------------------------------------------------------------------- - Copyright (c) 1998 Digital Chosunilbo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chosun.com for more information.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