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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워싱턴사과)
날 짜 (Date): 1999년 1월 12일 화요일 오전 05시 58분 14초
제 목(Title): 퍼/홍원식 /  동양철학에서 바라본 '진보'


역사/철학(KNGO 1 9) [344/420]
제목:[철학]동양철학에서 본 '진보'
98.01.13 21:20:14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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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명대학교 제291회 목요철학세미나 
                           동양철학에서 본 '진보'
                                 1997. 3. 20


                                         홍원식(계명대  철학과   교수)     
 
   
  우리는 흔히 '역사는 흐른다'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과연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그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
은 어디인가? 아니 역사에는 정말 그 시작이 있고 그  끝이 있어서, 역사란 
그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 것일까? 역사란 그저 똑같은 인간이 똑같은 공간 
위에 그려 놓는 단순한 시간의 궤적인지도 모른다. 

  1.

  지금 우리가, 또  지금 내가 '진보'의 문제를 문제삼는 것은  과거를 향한 
역사 해석의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향한 역사 신념의 것인가. 곧 지금 우
리가 '진보'를  문제삼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신념에 대한 것인가. 
  지금 몹시 흔들리고 있다. 100년을 단위로 하는  크기만큼의 세기말 증후
군이 아니라 1000년  단위의 끝자락에 서서 인류는  몹시 흔들리고 있으며 
불안에 떨고 있다. 인류는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에 대해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진보에 대한 논의도, 진보에 대한 믿음도 그야말로 진부하고 시
대착오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진보'만이 이러한 운명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 '진리', '보편'과  같은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거대 
물음'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자잘한 물음속으로 우리들은 파묻
혀가고 있다. 
  또한 진보의  개념이 뒤엉키고 있다.  러시아에서 말하는 진보의  내용은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결코  같지 않다. 도리어 반대의 내용을 갖기까지  한
다. 이렇게 되다 보니  어느 발걸음이 진보의 발걸음인지 도무지 알  수 없
게 되었다. 이제 진보를 믿는다는  것, 아니 진보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
미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때 인류는 진보를 한껏  느끼고 그래서 진보를 굳게 믿었던 적
이 있었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머지 않은 1세기 전 바로  19세기의 사람
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 
이미 이성이 인간의 것이 된 이상, 그것이 신으로부터  받은 은총의 선물이
든 아니면 인간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보배로운 이성을 통해 지난날을 꿰뚫어 보고  미래를 
설계하였다. 그리고 그 설계된  미래에 조금의 의심도 갖지 않았으며, 그러
했기에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이다. 뭔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  변화를 느끼고 그 변화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성은 앞으로 나아가는, 보다 나아지는 바로  진보의 
발걸음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2.

  이처럼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던 19세기 서구인들이 지구의 다른 
문화권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헤겔도 그러했
고, 마르크스도 그러했으며, 베버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19세기 서구
의 아들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서구인들은 우월감에 바탕한  서구중심적 관
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의  틀속에서 동양
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헤겔, 마르크스  등은 중국 등 동양을  '동양적 전제주의'란 틀로, 
베버는 '유교적 합리주의'란  틀로 바라보았다. 곧 이들은  모두 유럽사회를 
그 내적인 동력에 의하여  전개된 '보편적' 인류역사의 전형으로 간주한 반
면 동양적 사회는 半문명·半야만적 사회 또는 '정체된 사회'로 보았다. 
  먼저 헤겔은 『역사 속의 이성』에서 중국을 '지속의 제국', '역사의 유년
기', '비역사적  역사' 등으로 특징지었다.  여기에서 헤겔은 중국은  스스로 
변화할 수  없으며, 왕조의 교체라는 쉴  새 없는 변화를 통해서도  아무런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몰락해갔다고 말하였다.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글에서 자신에 찬 한 서구인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자본가는 모든 생산수단을 재빠르게  개선하고 전달수단을 
촉진시키며, 모든 국가,  심지어 가장 야만적인 국가(중국)까지  문명속으로 
편입시켰다. 상품의 저렴한 가격은 모든 중국의 장벽을 허물고  … 모든 국
가들로 하여금 소위 문명이라고 하는  것을 그들 국가의 중심 속에 소개하
도록 하였으니, 바로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화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관
점은 동양사회는 "외부적 힘(서양)의 충격 아래서가  아니고서는 그 기본적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비트포겔의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이어진다. 마
침내 마르크스는 중국  등의 동양사회를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으로 정식화
해낸다. 그가 말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은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의 결여, 
공동체 소유 양식에 근거한 자급자족적 촌락공동체의 존재,  상대적으로 미
약한 계급 발전 등이 그  중요한 내용이다. 결국 당시 중국을 '역사의 유년
기', 곧 원시공산사회에 가장 가까운 사회로 보았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려깊고  조심스런 베버도 마찬가지로 19세기 서구
의 아들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정체성은 유교사상이 효율적이고 합리적
이었기 때문에, 즉 중국문명이 일찍부터 합리성과 효율성을  성취하였기 때
문에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것을 '유교적 합리주의'라는 말로  특징 
짓는다. 한편 베버는  중국이 자본주의로 발전하는 못한 원인을 유교의  사
상과 윤리속에서 찾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근년에 약간의  경제적 성취에 고
무된 동아시아의 유교자본주의자들에게 호된 비판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베버류의 동양 인식은  동양에 대해 다소 우호적인 면도 없
지 않다. 가령  합리성은 중국에서 일찍 확보되었지만 너무 일찍었기  때문
에 도리어 역사 정체의 원인이 되었다는 식의 논법이다.  중국 문명에는 아
예 합리성이 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내용이다. 이러한 류의 다소  우호적이
라고도 할 수 있는 동양 이해는 영국의 과학사가인 조세프 니이담에게서도 
발견된다. 뉴우튼 이전까지는 중국의 과학기술이 서양보다 앞섰는데  그 뒤
에 바뀌게 되었다는 판단 아래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그는 찾아나섰던 것
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동양을 보면, 동양은 아무래도 열등비교의 틀
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굳이 서양이 전 역사시기에 걸쳐  동양보다 우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할려 들지는 않는다. 그들이 애착을  가진 것은 그들이 
살고 있던 근대의  서양이었다. 그들은 서양을 신앙한 것이 아니라  근대를 
신앙하였다.

  3. 

  이렇게 19세기 서양인들이 진보를 소리 높여 떠들고 있을  때, 다른 한편
의 동양  지식인들은 그만큼 심한  열등감과 자기비하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 중 어떤이들은 서양과 조금이나마 닮은 모습, 그  흔적이나마 찾아 보
려고 무척  노력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진보의 의식이 서양  역사의 
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중국 역사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기
도 했다. 길을 비껴 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중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에 대한 신심을 일
부 저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에 대해 
뭔가의 부정을 가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중국 역사의  객관적 모습이 
마르크스가 말한 것과  일치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론의  현
실적 수요에서 볼 때 더욱 그러했다. 원시공산 사회와  고대노예제 사회 사
이를 배회하는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으로 당시 중국 현실을 읽으면 도무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약이나 근거가 없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였
다. 결국 그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수정하여 당면한 혁명의 이론적  수요
에 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밖에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문화적·역사
적 자존심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마르크스에 
대한 이러한 부정을 통해 중국  역사에 있어서 비록 완만하나마 내재적 발
전이 있었음을 확보해내기에  이른다. 곧 상대적으로 봉건사회가  지나치게 
길긴 하지만  나름의 사회성질의 차별성에  따라 시기구분을 하기도  하고, 
그 결과 당시 사회를  半식민지半봉건사회로 규정하여 사회주의 혁명의 정
당성과 필연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상에서 처럼 '동양사회 정체론'에  대해 사실적 자료를 통해 나름의 발
전을 설명한 중국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다른 길을 간 사람들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이들이 이른바 '현대신유학자'들이다. 그들은  경제·정치·사
회와 같은 것이 아닌  문화를 통해 중국 역사를 읽었다. 그들은  중국 역사
를 중화문명의 자기전개사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  중국이 처한 
위기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위기가 바로 중화문명의 위기로 파악했던 것
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본질적 위기인 문화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자
기들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문화가 자기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며, 문화속에 담긴 정신이나 철학과 같은 것이  역사의 참 내
용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문화가 정치·경제·사회 등에 뿌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이 문화에 뿌리를 둔다고  생각했다. 그들
은 19세기  서구인들의 시선을 애써 피할려   들었으며, 소리를 애써  듣지 
않으려 들었다.

  4. 

  그러면 이제 전통철학으로 돌아가 그 속에 진보의 개념이 어떠한 모습으
로 담겨 있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변화'에  대한 인
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변화에 대한 인식은  유사과학서類似科學書라
고 할 수 있는 『주역』속에 잘 담겨 있다.  서양인들은 『주역』이라는 책
명을 번역하면서 '변화의 원리를  담고 있는 책'이란 의미에서 The Book of 
Change라고 하였는데 정확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대 중국인들
은 자연 현상을 64가지의 틀을  통해 나름의 법칙적 인식을 시도했던 것이
다. 나아가 역사의 변화에 대해서도 감지하였다. 가령 기원전 4세기 맹자는 
역사가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지면서  이어진다고 생각하였으며, 
이후 오행의 원리에 따라 다섯 가지 각기 다른 덕을  지닌 왕조가 교체, 순
환한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역사의 변화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순환의  한 고리라고 인식
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결국 그들은 그 어느 한곳을  향하여 내달리는 변화
의 인식을 갖지는 못했다. 
  한편 10세기 경이면 새로운 유학의 내용을 가진 성리학이 등장하는데 성
리학자들은 철저하게 도덕사관의  입장에 서서 고대의 '황금시대',  곧 성인
이 다스리는  시대에서 후대로 올수록  도덕은 타락해갔다는 주장을  폈다. 
이것은 일종의 퇴보사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동서고금할 것 없이  도덕
사관에 선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물론 그들이 말한  것처
럼 고대에 정말로  성인이 이상적인 덕의 정치를  행한 시대가 있었다고는 
믿기 어렵지만, 그들은 그것을  굳게 믿은 것이 사실이다. 발걸음은 뒷걸음
질쳤지만 걸어가야 할 곳은 분명하게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에게서 이처럼 퇴행적인 발걸음이  분명히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이상시
하는 고대가 단순한  역사상의 고대가 아닌 이념상의  지표란 점에서 인류 
역사는 도덕의 푯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는 여지가 
반드시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지나치게 상고적으로 기우는  그들에게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자들은  인류가 걸어가
야 할 길을 분명히 내세우지는 않았다.
  요컨대 중국의 전통철학에서는 역사에  대한 변화의 인식은 가지고 있었
지만 역사가 그  무언가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인식을 갖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역사의 진보를 감지하고,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기 위해
서는 무엇보다도 진보의 느낌을 분명히  줄 수 있는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
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그러한 변화는 없었다. 비록 일시적으
로는 급격한 듯했다가도 다시금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버리는 그러한 변화
를 습관처럼, 법칙처럼 경험했던 것이다. '지속의 제국'이란 말이 마냥 빈말
은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역사적 진보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  진
보의 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관과 공간관도 진보 의식의 확보와 아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
다. 중국철학에서의  시공간관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광대무변하게 펼쳐진 
끝없는 공간 위에 처음도 끝도 없이 '펼쳐지기만 하는',  그 어디로 향해 걸
어가는 것이 아닌  오직 '펼쳐지기만 하는' 시간만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철학의 대표적인 우주관이요 시공간관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이 생겨나
고 없어지는 것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모두  기의 모이고 흩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 모이고 흩어지는 가운데 하나의 법칙(道)이  있고, 그 법칙
은 우주대자연이  걸어 가는 길이요, 인간은  그 가운데 한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또한 그 길은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 길은 그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서 나 있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걸어가다간 다시
금 되돌아가는, 끝없이 되돌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시공간관 아래에서는 변
화는 존재하되 순환의 한 고리로서 변화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5.

  지금 우리들은 우리의 앞날에 대해 '진보'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이 걸어왔던 길마저 부정하려 드는지  모른다. 진보의 
개념이 헝컬어지고  진보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그렇다고 동양철학자들이  보란듯이 쾌재를 외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
다. 이제 과거의 동양 철학이 아니라 현재의 동양  현실에서 진보의 문제는 
그대로 화두로 남기 때문이다.근대  이후 이중 삼중의 급격한 변화를, 그것
도 떠밀리면서 변화를 경험했던 동양으로서 과연 진보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진보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미  과거 동양의 역사철학과는 무관한 논의
이다.
  진보의 논의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단순히  과거를 향한 진보
의 해석은 그다지  생산적이질 않다. 그리고 진보의 확신은 희망을  의미한
다. 희망없는 미래를 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절망이다. 우리는 이제 절망
하지 않기 위해서도 진보의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러
한 문제의식 위에서 역사상 진보의 문제를 논의하고 새롭게 채워넣어야 할 
진보의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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