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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28일 토요일 오전 06시 38분 25초
제 목(Title): 퍼/김병국  반유교적 유교정치 


반(反)유교적 유교정치
-한국정치담론의 모순-
 
 

김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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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생. 82년 하바드대 경제학과 졸업. 88년 하바드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분단과 혁명의 동학 : 한국과 멕시코의 정치경제" "국가. 
지역. 국가체계 : 변화와 연속성" 등 주요 논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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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어(造語)의 세계
  우리는 번역어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오늘날 현대 한국인이 별다른 생각없이 
구사하는 정치적 개념 중 상당수는 서양이 발명한 것들이다. '민족'이라는 단어도 
'계급'이라는 개념도,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라는 말도 19세기 중반에는 한국어 
사전에 존재하지 않은 외래개념이다. 현대 한국에서의 삶이 이렇게 외래 개념을 
통해서만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불어닥치면서 한국인은 자기 고유의 전통을 부정하게 되었다. 그로부터는 국제적 
도전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전략도 도출해낼 수 없고, 
경제사회적 근대화를 촉진시킬 원동력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며, 대신 
서세동점의 시대에 새로운 생존의 지혜를 터득하려면 무조건 월등한 서양의 관념과 
이론으로 재무장하고 서양의 '체제'를 모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명시적 체제원리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이 전통의 전면적 
분해와 해체, 나아가 외래문화에 의한 대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전통이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본래 인간은 낯선 외래문화와 만날 때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理解)를 가능케 할 '주파수'를 자신의 전통 속에서 찾고 외래 관념을 자기식 
대로 재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조신인이 데모크라시나 캐피탈리즘 
등과 같은 낯선 개념과 처음 만날 때 하는 것은, 자기 고유의 한국어 사전 속에 
나열되어 있는 '민'자(字), '자'자(子) 등의 흩어져 있는 단어들을 여러 개 묶어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 뿐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조선 보다 한발 앞서서 
서양문물을 도입한 일본에 의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조어(造語)를 수입한 것이 
조선이었다.

바로 여기서 한국 고유의 전통이 공식적으로는 사망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은밀하게 살아남을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캐피탈리즘과 
자본주의, 데모크라시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구사할 때 서구인과 한국인이 동일한 
관념을 떠올린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단어의 배후에 숨어 있는 독특한 존재론과 
인식론까지 의식하면서 본래의 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긍정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이다. 존재론과 인식론은 단어의 배후에 숨어 
있으면서 단어에게 구체적인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삶에 대한 무언의 가정과 명제를 담고 있는 말들이다. 브르디유는 
그러한 가정과 명제를 '독사'(doxa)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진실로 보이는 덕분에 논쟁에 부쳐지지 않는, 그러나 발상과 문제제기의 형식 및 
내용을 규정하는, 그리하여 행동을 제약하고 결과에 부분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치는, 자연과 사회의 배경원리나 구성원칙 등에 대한 일련의 명제 및 가정들이 
귀에 들리는 말 안에 숨어 있고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단어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서구라파의 정치적 담론체계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모든 문화에는 자기 
나름의 독특한 독사가 있다. 근대적 서구라파 지역에서는 사회를 원자화시키고 
개인에게 절대적 주권성을 부여하며 과학적 인간이성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개체론적 존재론과 경험론적 인식론의 새로운 독사가 계몽주의 시대의 개막과 함께 
등장하여 현실을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각 자체를 바꾸어켜 놓았다. 근대 
서구라파가 자랑하는 '사회계약론'의 학문적 전통이 그 구체적 결과물 중 
하나이고, 그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를테면 로크식(式) 아니면 루소식 등으로) 
개념화되는 '자연상태'가 바로 개개 인간에게 절대성과 주권성을 부여하려는 
계산에서 사상가가 상상해 낸 가상적인 역사의 기원이다. 한국인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념을 서구라파로부터 들여오고 국가이념으로 채택하였을 때, 그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이러한 서구라파의 독특한 존재론과 인식론까지 이해하고 
긍정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러한 철학적 명제와 가정의 제도적 
결과물인 시장질서와 선거정치만이 '눈'에 보이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말만이 '귀'에 들렸을 것이다.

따라서 서구라파의 근대적 관념에 대한 오해는 필연적이다. 통역관을 대동하면 
서로가 서로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데모크라시(캐피탈리즘)라는 단어가 민주주의(자본주의)라는 말로 번역될 때 말한 
사람과 듣는 사람이 머리 속에 연상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본래의 
개념 구석구석에 은밀히 숨어 있는 개체론적 존재론과 경험론적 인식론은 통역의 
과정에서 증발하고, 넉자(子)의 말 한마디만이 남아 한국식 재해석을 기다린다. 그 
재해석의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아닌 한국의 독사이다. '이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무언의 독사는 서구인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 속에도 은밀히 
존재하는 것이다.

독사는 남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거쳐 온 독특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적 편견'밖에 되지 않지만, 그 
문화권 내에서는 진실처럼 보이는 삶에 대한 기본 가정과 명제이기 때문에 열린 
공론의 장으로 끌려나와 회의와 논쟁에 부쳐지지 않는 것이 독사이다. 대다수는 
남의 담론체계의 배후에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적 대화 속에도 독특한 존재론과 
인식론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은밀하게 말 속에 
숨어 있는 독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식 해석을 낳는다.

그 오해의 과정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오해가 
없었더라면, 근대 한국인이 그렇게 적극적 자세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념을 
들여오고 각각을 국가이념의 자리에 올려놓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서구라파에서는 
시장과 선거의 제도가 개인을 모든 유형의 사회공동체(가족, 교회,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그 자신에게 절대성과 주권성을 부여하려는 근대적 프로젝트의 
도구로 인식되고 긍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았더라면, 다시 말해서 
근대적 사회계약론이라는 서구라파의 개인 중심적 독사가 가족적 공동체 의식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한국의 독사와는 일정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더라면, 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방식이 오직 한국의 독사인 
가족공동체 의식을 버리고 철저히 개인 중심의 서구라파적 자본주의/민주주의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밖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더라면, 한국인은 해방 
직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국가의 공식적 지배이념으로 채택하는 것을 
그렇게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결국 한국인은 
서구라파의 독사도 자신의 독사도 의식하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근대화의 과정을 '쉽게' 생각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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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의 독사(doxa)
  한국인의 관점을 틀지우는 독사는 인본주의와 가족주의의 존재론을 가지고 있는 
유교이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론은 일상적인 말들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고, 
한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 말들을 배워가면서 부지불식간에 인본주의와 
가족주의의 세계관을 지니게 된다. 학연과 지연 및 혈연이라는 타자와의 특수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아를 상상하도록, 또 그러한 인간관계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권리와 책임 및 역할을 규정하도록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끊임없이 
교육받고 훈련받는 것이 한국인이고, 그 결과 우리는 서구라파 사회계약론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절대적 개인의 상(像)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타인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간주관적(intersubjective) 인간의 상을 
상정하게 된다. 또 국가도 가족의 확대 모형이고, 민족도 겨레와 동포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기본적으로 혈연관계의 연장선 상에서 상상되는 인간공동체가 된다.
유교정치는 여기서 두가지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첫째, 가족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의식주(衣食住) 등과 같은 수많은 실질적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단위체인 동시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의 덕목으로 구성되는 윤리적 
사회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족을 기본 모형으로 삼아 국가를 조직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곧 정치에게 두가지의 역할을 동시에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의식주와 같은 실제 삶 속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윤리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교화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한가족처럼 아끼는 윤리적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부남철의 지적처럼, 각각 '현실'과 '원칙'을 중시하는 
프라그마티즘과 도덕주의가 서로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보다, 
오히려 서로 만나 (프라그마티즘과 도덕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으로 평가됨으로써, 현실과 원칙 사이에 일종의 
긴장관계를 막 형성시켜 놓자마자 곧바로 이를 초월(그래서 사실상 그 긴장관계를 
부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과 원칙, 프라그마티즘과 도덕주의의 관계를 
부남철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저울의 막대기에는 눈금이 그어져 있고, 한쪽 끝에는 저울추가, 그 반대쪽 끝에는 
재려고 하는 물건이 매달려 있다. 저울추를 조금씩 좌우로 이동시키면서 균형을 
잡을 때 그 막대기에 그어져 있는 눈금이 (만고불변의 떳떳한 원칙과 원리를 
지칭하는) 경(經에) 해당하고, 재는 물건에 따라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이는 
저울추는 (때에 따라 변하는 상황 논리를 가리키는) 권(權)에 해당한다... 어떤 
물건의 무게를 측량하는 데는 경이나 권 하나만 가지고는 잴 수 (없듯이) 어떤 
판단을 내릴 때는 경과 권이 아울러 적절하게 고려되어야만 비로소 ... 최적 상태 
중(中)에 (도달할 수 있다).




유교는 탄탄한 대지 위에 두발을 디디고 서 있는 신중한 '현실론자'와, 도덕적 
이상을 중시하고 지조를 지키는 '원칙론자'를 중심으로 정치의 세계에서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다시 현실론 대(對) 원칙론이라는 
잠재적인 피아(彼我)구분의 경계선을 지워버리고 조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은 단순히 경과 권 및 중의 관계에 국한되어 나타나기 보다, 가족주의의 
존재론을 품을 때부터 생겨난 유교 그 자체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 
사회에서 인간은 신앙이나 계급을 중심 축으로 하여 '너'와 '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線)을 그려 놓고, 그 선이 의미하는 갈등 속에서 신자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않는다. 상대방과의 이질성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선 보다, 어떤 
형태로든 동질성이 부각되는 동심원을 몇 개 자신의 주위에 그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교이다. 혈연을 기준으로 하여 그린 원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라면, 
학연이라는 보다 큰 동심원으로 나아가 '나'와의 인연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그것 또한 여의치 않으면, 지연으로 상대방을 자신과 묶어보도록 노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유교 사회라는 말이다.

현대 한국정치의 향방에 은밀하게 영향을 미치는 독사는 바로 이렇게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아를 규정하도록, 또 현실과 원칙을 동시에 중시하고 이들을 
서로 조화시켜 보다 높은 지적 상태인 중의 차원으로 올라가도록 부단히 유도하는 
유교문화이다. 그것은 서세동점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불어닥친 고통과 좌절의 
민족사로 말미암아 정치경제질서의 구성원리를 명시적으로 밝혀주는 
국가이념으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하였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 번도 
본질적 회의나 질문에 부쳐보지 않는 일상적 삶 속의 문화적 관습과 의식 및 의례,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매일 구사하는 언어 속에 살아남아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관점을 틀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의 해석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발명한 서구라파의 해석과는 다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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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존의 역사
  이를테면 해방정국에 한국 보수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명시적 국가이념으로 
채택한 까닭은 자신의 신념 보다 분단과 냉전이라는 통제불능의 전후(戰後)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당시의 한국인은 일제강점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돌아갈 만한 
과거도 없었고, 또 치열한 냉전 때문에 '팍스 아메리카나' 이외의 다른 대안을 
선택할 기회도 없었다. 미국은 여러 의미에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한반도 
내에서 벌어지는 북한과 남한간의 생존경쟁, 대한민국 내부에서 빚어지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갈등, 또 정치권 내에서 일어나는 여당과 야당의 권력투쟁 -- 이 모든 
것에서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일정 부분 결정하는 것이 
미국이었고, 한국 정치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구조적 역할과 
비중 때문에 한국 보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명시적 국가이념으로 
채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심층적인 철학적 논의 없이 '단순히' 생존의 문제 때문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채택한 사실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 현대사에서 
양(兩)개념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폄하하는 것으로 해석되서는 절대 안된다. 
첫째,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의 문제는 다른 어떠한 철학적·이념적 신념 보다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는, 그리하여 사고와 행동의 방향을 확실하게 제약하고 또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그 자체가 일종의 담론체계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둘째, 현대 한국에는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유도하는 프라그마티즘의 정신이 독사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이 생존의 문제로 국가이념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준 문화적 기반이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전통문화와 기능주의의 차원에서 만날 기회를 
포착하였다. 시장은, 개개인이 국가와 교회 등과 같은 외부세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다시 말해서 주체적인 
시민이 만들어지는 배움의 터라는 서구적 철학이 한국에 존재한 적은 없다. 
한국인이 동감할 수 있는 시장에 대한 최대의 정당화 논리는,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개발하거나 세계화 시대에서의 국가생존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시장 
보다 월등한 해결책은 없다는 기능주의적 정당화의 논리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본주의의 관념을 프라그마티즘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껴안는 것이 한국 보수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시장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취약하지만은 않는 
이중성을 가지게 되었다. 즉, 시장의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상황의 급변으로 말미암아 정책의 최우선적 목표가 성장 이외의 다른 것(특히 
안보)으로 이동하게 되면, 별다른 사상적 고민이나 철학적 논의없이 즉각 
국가권력을 가동시켜 목적을 달성해 온 곳이 한국이었다는 진단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이념적 정체성은 서구라파 식으로 '시장이 맡아야 하는가 국가가 나서야 
하는가' 하는 시장 대(對) 국가의 대립구도를 통해 형성되지 않았다. 시장 자체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한국인은 많지 않았다. 시장은 
단순한 문제해결의 수단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장에 대한 기능적 이해는 당연히 국가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면서도 또 
좁혀 놓았다. 손을 댈 수 없는 신성한 불가침의 세계로서나, 아니면 타파하여야 할 
정반대의 부당한 착취기제로서 시장을 보려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는 
주어진 사안이나 상황에 따라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신축성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 자체를 부당한 착취기제로 보는 대중적 이념도 
존재하지 않고, 또 경제성장이라는 실생활 속의 문제를 시장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해 줄 대안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역할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신축성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의 경우에서 처럼) 복지의 
문제가 국가적 의제에 포함될 때에도, (1970년대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군사안보적 위기상황이 불어닥쳐 방위산업의 육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때에도, 국가는 언제나 시장이 마비되고 가격의 매개변수적 기능이 무너지도록까지 
국가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지 않았다. 누가 보나 자본주의 시장질서 보다 
경제성장의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줄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원칙없이 단순히 현실의 논리에 따라 시장의 
기능을 억제하다 다시 활성화시키는 -- 말하자면 이념적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정책결정의 방식처럼 보였을 것이 한국에서의 개발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인의 잣대로 한국의 정치경제를 바라보는 모순적인 진단이다. 
또 한국의 정치담론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무언의 독사를 의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조어의 세계 내에 남아 철학적 내용이 없는 것(시장)에서 철학적 내용을 찾으려는 
잘못된 분석방법이다. 시각을 달리하여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 중 하나로서의 시장을 상정하면, 오히려 무(無)원칙이 원칙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주어진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최상의 잣대였다면, 주어진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시장을 활성화하거나 국가권력을 
가동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한국에서 프라그마티즘은 영국에서와 달리 
시장을 성역으로 삼고 그 안에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원칙의 
원칙 덕분에 (즉, 시장을 이념의 문제로 보지 않는 프라그마티즘 덕택에), 국가는 
신축적으로 상황의 필요성에 따라, 시장 자체를 재형성하는 개입정책과 시장의 
논리에 순응하는 철회정책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경제성장의 가속화를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시장을 이념 보다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기존의 프라그마티즘을 장기적으로는 더욱 더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서구라파가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한국이 
불과 30여년의 세월을 통해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한국 독사의 독특한 
성격에 있었다는 진단이다. 서구라파에서는 이념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적 
평화를 위협하며 정책에 큰 혼선을 빚었을 시장의 문제가, 한국에서는 
도구적·기능적으로만 인식됨으로써 정책의 신축적 운영이, 나아가 경제발전의 
가속화가 가능해졌고, 그러한 성과는 다시 프라그마티즘의 문화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전후 한국의 경제사는 철학이나 이념 보다 더 견고한 삶의 
기반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정책의 구체적 성과와 결과라는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준다고 하겠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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