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27일 금요일 오후 06시 00분 48초 제 목(Title): 이코노/식민지시장둘러싼 제국주의격돌 문화 / Culture 제 463호 1998.12.01 영화로 보는 세계 경제사 식민지市場 둘러싼 제국주의 격돌 1차 세계 대전 그린‘영광의 길’…프랑스선 상영금지 조치 이재광 기자·leejk@ “납세자에게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하고 제조업과 무역업자에게는 사실상 큰 이득이 없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측량할 수 없는 커다란 위험을 가져다 준다. 제국주의는 오직 유휴자본을 갖고 있는 투자가들에게만 도움을 줄 뿐이다. 외국의 유리한 투자 대상을 찾아 돈을 묻고 이 돈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해외 투자가들이야말로 침략적 제국주의의 최대 수혜자인 것이다…(이들의 돈을 관리하는) 금융업자들은 제국주의라는 엔진의 운전자로서 그 힘의 방향을 지시하고 활동을 결정한다.” 약 90년 전 제국주의 시대를 직접 몸으로 체험했던 영국의 가장 양심적인 경제학자 홉슨은 그 유명한 저서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 최대 수혜자를 유휴자금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자본만으로 이익을 내려 했던 이들은 위험도가 높은 해외 투자처를 선호했으며 국가로 하여금 이 돈을 보호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헤지펀드가 세계의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요즘 새삼 와닿는 얘기다. 제국주의 최대 수혜잔 해외 투자가 1870년대 초 유럽을 강타한 공황은 기업의 이익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무너지는 기업이 속출했고 자본 수익률은 땅에 떨어졌다. 해외시장의 확장은 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활로. 유휴자본 소유자, 제조업자, 금융업자 등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식민지를 찾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국가와 민족주의는 이들의 이익을 찾아 주는 대리인� 공격에 대응했다. 프랑스도 영국도 가만 있을리가 없었다. 독일이 총동원령을 내린 그날 프랑스도 즉각 총동원령을 내렸고 이틀 뒤인 8월 3일 독일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단행, 세계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다. 같은 날 영국 의회는 전쟁에 필요한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8월 4일 독일과 단교를 선언했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피살된 이후 40일 만에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모두 참전하는 최초의 ‘세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8월 23일에는 일본이, 3년 후인 1917년 4월 6일과 8월 14일에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세계 주요 국가들 모두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같은 전쟁은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너무 순식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모든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염두에 뒀던 ‘준비된 전쟁’이었던 것이다. 1870년부터 시작된 것이니 선진국들은 무려 40여년을 준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일궈낸 독일의 통일,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복수심, 세계 경제를 뒤흔든 공황, 세계 각지에서 부닥치는 열강들의 식민지 경쟁, 독립과 보복을 불러일으키는 선동적 민족주의의 발흥…. 이를 인지하고 있던 중심국들은 군비를 증강하고 세확대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3제 협상’‘3국 협상’‘3국 동맹’ 등 국가간 합종연횡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반전영화의 白眉… 전쟁 의미 뒤집어 영화가 최초의 세계 전쟁을 그냥 지나칠리 없다. 많은 영화들이 제 1차 세계 대전을 무대로 만들어졌고 그 중에는 길이 기억될 작품도 많다.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와 존 휴스턴 감독의 ‘아프리카의 여왕’(1951)은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명화.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전쟁과 관련해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환상’(1937) 역시 이 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20세기 프랑스 영화계를 이끈 장 르누아르의 휴머니즘이 그대로 담겨 있는 영화다. 수용소 포로들 사이의 계급·민족·국가·종교갈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전장 없는 전쟁영화’로, 나치의 선전 담당 괴벨스가 ‘영화 최대의 적’이라며 모든 복사본을 소각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광의 길’ 만큼 전쟁의 의미를 단숨에 뒤집어 놓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영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참혹함이나 자랑스러운 무용담, 절박한 남녀간의 스), 이들에게 희생당하는 사병들…. ‘겁쟁이’라는 이유로 기자들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해야 하는 사병들을 보고 끓어오르는 닥스 대령의 분노는 큐브릭 감독의 전쟁관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나아가 큐브릭 감독은 닥스 대령의 입을 통해 반전주의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고 있다. 애국심을 강조하며 진격을 강요하는 미러 장군� “� 닥스 대령은 영국의 대문호 새뮤얼 존슨의 말을 내뱉는다. “애국심은 건달들의 마지막 피신처”라는 것이다. 또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전달됐는지를 밝히며 전쟁의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 정치가와 언론 등 권력층의 이해관계가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무모한 전투를 감행한 미러 장군에게 닥스 대령은 “장군님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비꼬고 있다. 두 번째 세계 전쟁이 끝난 뒤 인류는 전쟁의 의미를 돌이켜 봤다. 매카시 선풍이 한창이던 50년대 후반 이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국에서 개봉됐다. 프랑스에서 ‘상영금지’ 조치가 취해졌던 것은 단순히 영화의 배경이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큐브릭 감독의 목적은 전쟁의 ‘부조리’를 밝히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전쟁의 부조리를 밝히다 보니 전쟁에 대한 해석은 순식간에 뒤집혀지고 말았다. 그에게 누가, 왜 전쟁을 일으키며,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질문은 ‘우문(愚問)’이며 코미디다. ▲ 제463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