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11월 25일 수요일 오전 10시 10분 26초 제 목(Title): 연합]<우리나라 기상관측의 역사> 번호 : 187/1299 입력일 : 98/11/24 13:55:32 자료량 :30줄 제 목 : <우리나라 기상관측의 역사> 날 짜 : 98년 11월 24일 (서울=연합) 權赫昌기자 =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은 1904 년 3월 일본이 러일전쟁을 위해 목포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하면서 부터다. 일본은 같은 해에 부산과 인천,원산,용암포에, 1905년에는 성진에 관측소를 설 치했고 1907년 러일전쟁이 끝나자 6개 관측소는 우리측에 이관됐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기상관측 업무는 조선총독부가 관장했고 그 후 전국 각지 에 측후소가 설치돼 1944년에는 기상대 1개, 측후소 24개, 항공기상출장소 17개, 간 이우량관측소 5백90개가 한반도의 기상관측을 담당했다. 해방이후 기상관측업무는 남조선 과도정부하의 문교부 관상국에서 맡았고 48 년 정부수립과 함께 문교부 소속의 국립중앙관상대가 발족했다. 이후 62년 교통부소속으로 이관됐고 69년에는 다시 과학기술처 소속으로 넘어간 기상청은 이름도 자주 바뀌었다. 구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는 관측소와 측후소라 불렸고 해방후 관상대에서 81년 엔 기상대로 90년엔 기상청으로 변천해왔다. 근대이전의 기상관측은 한마디로 하늘을 바라보며 날씨를 추측하는 `觀天望氣' 수준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사기 및 증보문헌비고 등에 각종 기상관측 기록이 나타나있는 데 기원전 34년에 안개를 관측했고 신라초기에는 천둥벼락을 감지했으며 백제 고루 왕 40년(서기 116년)에는 '큰 비가 내리고 한강이 넘쳐서 인가가 떠내려갔다'는 기 록과 함께 '먼저 황새가 도문에 보금자리를 만들면 마땅히 수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 각했는데 과연 그러하였다'라고 적혀있다. 고려시대에는 천문과 측후,역수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 생겨났는데 太卜監, 太史局, 司天臺, 觀候署, 書雲觀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시대는 고려의 서운관을 계승해 측후,천문,曆日 등의 업무를 담당했는데 세 종 7년엔 서운관을 觀象監으로, 연산군때는 司曆署로, 중종대는 다시 관상감으로 개 편됐다가 갑오경장으로 1894년 폐지됐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