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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10일 화요일 오후 12시 52분 24초
제 목(Title): 퍼/ 이또히로부미가 반출한 한국고문서 


*** Forwarded file follows ***

Posted By: seody (Beyond the Mind's Eye) on 'Library'
Title:     伊藤博文이 반출한 고문헌들은 어떤 책인가 
Date:      Mon Nov  9 17:13:52 1998

伊藤博文이 반출한 고문헌들은 어떤 책인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으로 반출한 77종 1천28책(冊)에 달하는 
우리 고문헌은 주로 조선의 정치와 역사, 풍속, 인물 등에 관한내용으로 
돼 있다. 

일본이 관련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 현재 이 책들의 소장처조차 알 
수 없지만 삼충록(三忠錄)을 비롯, 상당수 책들은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며 
동문고략(同文考略)의 경우 겉표지만 남아 있다. 

심양일기(瀋陽日記)는 병자호란 뒤 청나라 수도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 
현세자와 봉림대군(뒤의 효종)의 생활상이 담긴 중국 체류기로 이토는 이 
중 9권을 가져갔다.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와 청의 관계 및 청나라 초기의 실정, 명나라와의 
관계사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며 후일 일제가 영친왕을 볼모로 데려 
간 점은 문헌의 상황과 놀랄 정도로 흡사한 것으로 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는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조감( 
朝鑑)은 영조 4년(1728년) 조현명(趙顯命)이 왕명을 받아 역대 명언과 훌 
륭한 정치가를 엄선, 편찬한 책으로 문헌비고(文獻備考)에 4권이라 기록돼 
있으나 현재 규장각에는 2권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저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국조통기(國朝通記)는 규장각에는 사본 단 1권 
만 남아있고 이토가 10권을 가져갔으니 원래 11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충록(三忠錄) 또한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우리나라 고문헌 
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종합할 때 촉한의 제갈량(諸葛亮)과 송(宋)의 악비 
(岳飛), 진(晋)의 목공(穆公) 등 3사람의 충절록(忠節錄)인 것으로 보인다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는 경상도 출신 정치인과 학자들의 전기물로 정조 
때 만들어졌는데 현재 규장각에는 전질 17권 중 10권만 남아있다. 

또 동사보유(東史補遺)는 단군 이래 우리나라 역사를 간단히 기술하고 역 
사에서빠진 나머지 사실(史實)을 보충한 책으로 광해군 때 편찬됐다. 

기재잡기(寄齋雜記)는 인조때 문신 박동량(朴東亮.1569∼1635)이 저술한 
것으로 인목대비가 연루된 계축옥사(癸丑獄事)를 비롯한 당시 정치사를 이 
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나 천(天),지(地),인(人)이라고 각 
각 제목이 붙은 3책중 현재 天, 人만 남아있다. 

이러한 책들은 다른 문헌이나 규장각에 남아있는 나머지 부분들로 미뤄 
내용추적이라도 가능하지만 술신사속(戊申事續)이나 을사정난기(乙巳定難 
記), 축계갑일록(丑癸甲日錄) 등 이토가 반출해간 상당수 문헌들은 현재까 
지 그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伊藤博文, 규장각 도서등 1천여권 일본반출 



安重根 의사에게 사살당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규장 
각 도서를 포함, 1천여권에 이르는 우리 고문헌을 일본으로 반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원래 규장각 소장본이거나 이토가 통감 재임시절 별도로 수집한 이 책들 
은 주로 조선의 정치와 역사, 풍속, 인물 등에 관한 내용으로 학계는 일제 
가 식민통치의 기획과 그 이행과정에서 이 도서들을 참고 자료로 사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합통신 취재팀이 10일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인 `도서관계서류철(圖書 
關溪書類綴)'의 마이크로필름을 분석한 결과 이토 히로부미는 규장각본 3 
3종 5백63책(冊)과 통감부본 44종 4백65책 등 모두 77종 1천28책을 일본에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 

반출된 책들은 `삼충록(三忠錄)',`여사(麗史)`, `동문고략(同文考略)등 
현재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거나 일부만 빼간 낙질본(落帙本)들이다. 

이 서류철에는 지난 1911년(명치 44년) 5월15일 일본 궁내성(宮內省) 대 
신 와타나베(渡邊千秋)가 당시 조선총독 데라우치(謝內正毅)에게 보낸 "伊 
藤博文이 한일관계 조사를 위해 한국서적을 가져왔는데 伊藤 사후 일본 궁 
내성 도서료(圖書寮)에 보관중"이라면서 "이 책들은 일본 왕족및 공족(公 
族)의 실록편수에 참고서로 필요할 뿐 아니라 일본의 帝室圖書에도 없는 
책이니 (궁내성으로) 넘겨달라"는 내용의 공문이 도서 목록과 함께 첨부돼 
있다. 

이에대해 당시 규장각을 관할하던 취조국은 총독부로 일부 도서목록과 함 
께 공문을 보내 "이토가 가져간 책들중 목록으로 제시한 일부를 제외하고 
는 꼭 필요한 것이며 규장각도 소장하고 있지 않아 넘겨줄 수 없다"고 거 
부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는 이토가 특사자격으로 조선에 다녀간 1904,1905년과 자신의 통감 
재임기간에 걸쳐 이 책들을 가져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도서들은 을사 
늑약과 한일강제병합등 식민통치 과정의 참고자료로 활용된 것으로 분석하 
고 있다. 

학계는 이 책들의 반환기록이 없고 규장각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아직도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일본은 
이 도서들의 행방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난 1968년 당시 규장각 열람과장이던 白麟씨는 서지학(書誌學) 학 
회지를 통해 이 가운데 일부 내용을 소개한바 있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 
으며 그동안 규장각측은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고 파손이 우려된다'는 이 
유로 도서관계서류철 원본과 마이크로 필름에 대한 열람과 대출을 일체 금 
해왔다. 

이와 관련, 고려대 鄭光 교수(국문학)는 "문화재의 해외반출이 문서를 통 
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며 "일본과 유럽 등 해외로 빠져 나간 엄청 
난 양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소재를 파악하는 작업이 가장 시급하다 
"고 말했다. 

성균관대 辛承雲 교수(문헌정보학)는 "이토 히로부미가 가져간 책들은 
65년 한일 수교 정상화에 이은 문화재 반환때 단 한권도 돌아오지 않았다 
"면서 "하루빨리 돌려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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