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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obbes (Calvin)
날 짜 (Date): 1998년 11월  8일 일요일 오후 12시 03분 07초
제 목(Title): 중세1] 200여년에 걸친 십자군 학살극.



띠엄띠엄 글을 쓰려고 하닌 생각도 안나고 글도 잘 안써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쓴 글중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


그럼 이번에는 중세로 넘어가 볼까요 ?

근대 유럽의 활기참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는, 그러나 인류애적으로 보면 정말 

가치없을 뿐 아니라 파렴치한, 종교적으로 보면 (뭐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종교의 가치를 의심하게하는(특히 기독교 근본주의를 지칭.), 그리고 몇백년후 

마침내 서구가 세계를 장악했을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간단하지만

짧지 않은 대학살극과 무의미한 정치쇼, 그리고 권력에 대한 탐욕과 경제적 욕구,

성직자의 타락과 국민들의 어리석음과 무자비한 열정이 조화를 이룬 인류가 만들어낸

어처구니 없는 200여년에 걸친 드라마였던 십자군 학살전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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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학자들이 살라미스 해전과 마라톤 전투로 서양이 동양을 누르게 되었다고 

헛소리를 해도(^.*) 근세까지 서구는 동양, 그것도 가까운 아라비아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여러 사막민족에게도 눌리는 2류들 이었다고 엄밀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2류들은 광기에 어린 2류들이었죠.   즉, 나중에 자기들끼리 치르는

종교전쟁에서 점령한 곳을 어떻게 처분할까를 결정하는 순간에 [모두 죽여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자신의 양들을 알아 볼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족속들이었죠.

이 종교라는 광란에 잔뜩 심취한 로마문화의 후예들은 서기 1000년을 넘으면서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 서 있었습니다.   즉, 로마가 멸망한후 하나의

큰 정치단위가 작은 조각으로 분열한 후에 겪은 시련을 전쟁으로 감내한 후, 다시

자신들의 먼 친척뻘인 바이킹에 의한 전쟁을 겪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됩니다.

이 시련도 점차 시들해지는 1000년말경 동방에서 세력을 확장한 셀주크 제국이 

소위 성지인 예루살렘을 장악하는 해프닝을 연출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죽음에의  두려움과 삶에 대한 욕구로 엄청난 권력과 부를 

소유하게 된 엉터리 성직자들에게는 이것은 자신들의 밥줄을 쥐어 비트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이틈에 세력을 동방으로 확대해서

갑자기 늘어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려는 각국의 권력자들과 [믿음에 대한 열정]을

가진 척하고 전쟁으로 잇속을 채우려는 장삿꾼들이 이 한편의 거대한 사기극의 

감독과 제작을 맡고 가서 죽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다는 허무맹랑한 사기를 믿고

어중이 떠중이처럼 따라나선 서구의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농부들이 희생의 역할을

맡는 조연으로 하여 이 드라마는 막이 오릅니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클레르몽에 모인 각국 대표에게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 

전가의 보도를 위두르면서 멋진 협박+설교를 하고 이에 각국 대표는 천당으로 가는

특등실 예매표와 현세에서의 환락을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이 기막힌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1096년 봄 농부들의 십자군은 자신들의 본거지를 출발합니다.

갖가지 우여곡절과 기막힌 우연 그리고 집단적인 광기가 걷히고 마침내 1099년 가을

예루살렘에 도착한 십자군들은 이 도시를 탈환하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웁니다.

자, 이쯤되자 지리멸렬하게 패배한 분열된 셀주크인들은 불사조처럼 일어나서

이 무식한 침략자들과 결연히 싸울 준비를 하게 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 살라딘이 출현하는것 뿐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일차와는 달리 정치색이 종교색을 압도해던 2차 원정부터는 출발부터 

지리멸렬해졌고,  이차대전때 히틀러의 소련침공 작전명으로 이용되었던 붉은수염

(바르바로사, Barbarossa)의 프레드리히 1세는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에서 강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아마 그래서 히틀러가 실패했나 

봅니다.)    이제 완전히 속셈을 드러낸 각국의 여러 유명인사들은 자신들이 

도와주기로 한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제 4차 원정에서  약탈하고 라틴 

제국을 세우는가 하면(1204,  참고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1261년 다시 

찾았음), 기독교도의 도시인 항구를 약탈하고, 1212년 어린아이들을 전쟁으로 

내모는가 하면(나중에 노예로 팔아치웠음),  1240년경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황들은 프리드리히 2세에게 대항한 십자군을 일으킬 것을 종용하는가 하면,

오래된 전쟁에 적과 아군이 불분명해져서 같은 종교의  다른 계파를 이기기 위해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서로 연합해서 다른 기독교 또는 이슬람교 군을 치는 등

전쟁의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200년간의 물고 물리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도로 볼때는 신성한 믿음의 도시이며 성지인 예루살렘을 방어해야 겠다는 

전쟁이었으며 이슬람교도로 볼때는 전쟁을 통해 빼앗은 자신들의 엄연한 땅이며

또한 성지를 이교도가 와서 무차별 학살을 통해 빼앗으려고 하는것을 방어한 

방어전쟁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슬람쪽에 전쟁의 명분이 훨씬 큽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돈, 권력을 내세의 영생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 당시 

종교인들과 귀족들이 현실의 처참함을 보이지도 않는 사후의 안락함으로 위안을 

삼았던 당시 백성들을 이용해서 저지른 죄악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하고 돌아온 많은 군인들과 농부들이 보고 들은 동방의 발전된

문명과 잊혀졌던 그리스-로마의 저작, 사상들을 담았던 소중한 책들이 이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되어 결과적으로 정체된 유럽을 전쟁이라는 큰 폭풍으로 

순환시켰고, 이후 이어지는 백년전쟁등으로 인한 민족의식의 각성등으로 힘을 

얻어서 페스트를 이겨내고 마침내 다시 한번 세계를 휘두를 만한 정도로 발전하게된

기틀을 마련한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문학, 지식, 과학, 기술, 상업, 무역, 군사적 기술과 건축등 거의 모든 것을

예전과는 다르게 바꾼 이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게 했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럽의 현재모습을 기초한 더러운 전쟁.  => 저의 정의입니다.


  중세 1] 십자군 학살전쟁 끝...







"Any chance of getting transferred, D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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