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8일 수요일 오전 11시 54분 14초 제 목(Title): 책/노리히로 사죄와 망언사이에서.. `이중인격` 실체를 본다 가토 노리히로 `사죄와 망언사이… ▶프린트 하시려면 지난 20일 정부는 영화 만화 등 일본 대중문화를 부분적으로 개방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언제까지 빗장을 걸어잠글 수 없다는 인식은 퍼져왔지만, 한국 사회에서 일본의 문화·정서·논리에 대한 이해는 아직 그다지 깊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 출간되는 일본의 전후세대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50)의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전후 일본의 해부〉(원제 〈敗戰後論〉, 97년)는 이른바 ‘전쟁 책임’ 문제에 대한 일본 내부의 논리와 정서를 이해하는 데 풍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서은혜 옮김, 창작과비평사 펴냄. 일본에서 출간 직후부터 혁신과 보수 양쪽으로부터 ‘집중 성토’를 당했지만, 이 책은 대동아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전후세대의 시각으로 일본 사상계의 ‘무의식 구조’를 파헤친 문제작이다. 일본에서 혁신세력이 #일본의 전쟁책임 인정 #2천만에 이르는 주변국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 #미군 점령기에 만들어진, 전쟁 포기 조항(제9조)을 명시한 ‘평화헌법’의 수호 등을 주장해 왔다면, 보수세력은 #영미 제국주의에 대항한 대동아전쟁의 정당성 #300만 일본 희생 ‘영령’에 대한 추모 #미군정기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의 개정 등을 주장해 왔다. 가토는 이를 호헌논리 대 개헌논리, ‘사죄’의 논리 대 ‘영령’의 논리로 요약한 뒤, 일본의 혁신과 보수가 사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이중인격적 존재’라고 갈파한다. 그에 따르면 지난 93년 당시 호소카와 내각에서 벌어진 사태는 좋은 예이다. 당시 30여년 만에 성립한 비자민련 연립내각의 수반인 호소카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침략행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사죄했다. 이는 그때까지의 ‘사죄’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후 1년 동안 그의 사죄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각료들의 ‘망언’이 세 차례나 이어졌다. 가토는 일본 정신분석학자 기시다 슈의 논법을 빌려 이런 일련의 ‘망언’은 “호소카와의 사죄에도 ‘불구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호소카와의 사죄발언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호소카와의 사죄발언을 지탱하고 있는 일본 혁신파의 사죄론이란 ‘과거의 악을 받아들인 이후의 사죄논리’가 아니라 ‘과거를 단순히 부정하는 사죄논리’이기 때문에, 그럴 듯한 사죄가 나오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망언을 불러일으키는 한 쌍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가토는 “혁신과 보수라는 이중인격의 분열은 전후 일본에서 죽은자에 대한 시각의 분열에서 기원한다”고 말한다. 혁신파의 사죄 논리는 국외에서는 통용되지만 국내에서는 300만에 이르는 일본 희생자들을 ‘영령’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보수파들의 반동성향을 자극한다. 반면 보수파는 “자국 사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반쯤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짐짓 대동아전쟁이 의로운 싸움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는 2천만에 이르는 주변국 희생자들이 설 땅이 없으며, 타국에 통용될 만한 보편성과 정당성도 들어 있지 않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양쪽 모두가 지킬박사, 하이드라는 이중인격의 반쪽짜리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가토는 “일본의 300만 사망자에 대한 애도를 앞세우고, 이를 통해 아시아의 2천만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사죄에 이르는 길”을 모색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를 함부로 부정하지 않는 자기비판”을 행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른바 ‘야스쿠니 신사의 논리’도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내가 저지르지 않은 전쟁에 대해 왜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하느냐”고 당돌하게 되묻는 ‘전후세대’에게서 ‘일본 국민’이라는 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일본인’이라는 주체가 서야 타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 책이 나온 뒤 일본에서는, “일본 전후사상의 구조적 맹점을 자각하게 만들었다”(오사와 마사키·사회학자)는 긍정적 평가에서, “국민 관념을 강화하는 내셔널리즘의 논리”(다카하시 데쓰야)이며 “역사 교과서를 재검토하라는 무리들의 주장과 같다”(가라타니 고진·문학평론가)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혁신진영에서는 “시대착오적 내셔널 파시즘”이며 “정통파 우익”이라고 혹평했고, 보수진영에서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필수조건은 대동아전쟁을 긍정하는 것”인데, 그의 주장은 ‘반동적’이며 “결코 ‘보수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재일동포 지식인 이순애씨(히토쓰바시대 강사)는 이 책에 덧붙인 ‘해설’에서 그의 논리에 대한 일본 사상계의 들끓는 반응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타자를 만나려면 자기가 우선 자기이어야 한다”는 가토의 논리는, ‘자기(일본 국민)’의 강화가 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낳은 혹심한 결과를 돌아볼 때 ‘시대착오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일본 지성사의 이율배반적 구조를 드러낸 날카로운 분석은 한·일 두 나라의 독자 모두에게 진지한 검토를 요구하는 중요한 문제제기이다. 이상수 기자 ♠위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