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8일 수요일 오전 10시 44분 18초 제 목(Title): 김우창/ 민주사회의 사상과 정치 논단] /민주사회의 사상과 정치/김우창/고려대 교수/ ▶프린트 하시려면 최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사상적 배경에 대하여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제기한 의문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정치·학문·언론의 바른 존재방식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가지게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최장집 위원장의 정치사상에 대한 해명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요구하는 일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반성이다. 그러한 질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민주적 토대의 취약성을 말하고, 거기에 상존하는 비민주적 원리주의의 위협을 말한다.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핵심을 이루는 시민적 권리이다. 물론 이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이다. 생각하는 자유가 완전한 것이 못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릴 것을 가리도록 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생각의 자유는 문화적·윤리적 통념과 관습의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면, 법이 거기에 제재를 가한다. 이러한 경우 최소한의 납득의 기준은 법률적 한계나 문화적·윤리적 통념의 제약이 그런 나름으로 분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누구를 사상의 검증자가 되게 할 것인가. 민주사회의 생각에 재약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생각의 사실적 결과로 인한 것이다. 그런 한도에서 생각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것도 실증될 수 있는 사실에 근거하여서만 그러하다. 공직자의 생각은 제안되거나 실현되는 정책으로 표현된다. 그때에 그것은 분명하게 따져볼 수 있는 현실적 대상이 된다.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만도, 정책의 현실적 또는 잠재적 결과와 영향이 아니라, 정책 집행자나 수행자의 사상부터 따지고 든다면 어느 세월에 나라의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급한 현실 속에서 동기와 사상을 묻고 늘어지는 것은 현안의 초점을 흐리게 하거나 그 결정을 지연시키려는 필리버스터 전술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때 어디에서고 사상을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적절한 환경과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 학문적 토의와 논쟁의 장소가 그러한 공간의 하나이다. 생활의 차원에서 논란의 궁극적인 조정자는 법정이다. 민주적 법제도의 이념은 문제의 여러 면을 공평하게 검토할 수 있는 조건을 최대로 보장하는 데에 있다. 검사와 변호사의 대등한 관계는 그러한 이념의 한 표현이다. 민주적 법제도가 “네가 네 죄를 알렸다”하고 피고를 얼러대는 봉건사회의 법정이나 이성적 절차 또는 대중의 조작에 의존하는 인민재판에 비하여 월등하게 탁월한 제도임에 틀림이 없다. 일반적으로 자유사회의 질서의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그러나 논쟁과 재판의 균형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곳이 대중언론 매체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대신 여기에 요구되는 것은 어디에서보다도 엄격한 책임의식과 자기기율이다. 자기 회사의 일에 관계되는 한 선전인지, 광고인지, 보도인지 알 수 없는 기사들을 마음껏 싣는 우리 언론의 보도 행위를 보면 우리 민주주의 도덕적 기초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번의 일로 세계와 나라 안의 정세의 경중에 관계없이 지면을 마음껏 할애하는 신문의 힘의 행사를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주의 확산은 이해할만한 것이 된다. 최장집 교수가 민주적 신념에 투철한 학자라는 것은 그의 저서를 널리 접하는 사람에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인 맹신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에 대한 객관적 이해에 뿌리박고, 그것에 의하여 유연하고 섬세하게 조정·형성되는 신념이다. 사실을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연관 속에서 분석·이해하려는 것이 그의 학문적 방법이다. 이것은 맹신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곤혹스러운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제도이지만, 진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을 보는 다양한 관점에 대한 개방성 없이 진리는 근접될 수 없다. 최 교수의 사상을 문제삼는 사람들은 그가 고정된 관점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대통령에게 하나의 주관적 관점만으로 요리한 정보와 견해를 공급하려는 자문역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되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김우창/고려대 교수·영문학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