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10월 10일 토요일 오후 04시 33분 04초 제 목(Title): 중앙/ 만파식적 [분수대]만파식적 ------------------------------------------------------------------------------- - 삼한 (三韓) 시대부터 삼국 (三國) 시대 전기까지의 기간에 종교적 필요에 따라 가장 많이 사용한 악기는 방울 (鈴) 과 북 (鼓) 과 거문고 (琴) 와 피리 (笛) 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 악기가 신묘 (神妙) 한 힘을 지니고 있어 이들 악기를 이용해 하늘에 빌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방울을 흔들거나 피리를 불어 초혼 (招魂) 하는 풍습이 오래도록 지속된 것도 거기에서 연유한다. 이들 악기의 신통력을 대변하는 것이 '삼국사기' 에 나오는 '왕자 호동 (好童)' 의 설화와, '삼국유사' 에 나오는 '만파식적' 의 설화다. '호동' 의 설화는 고구려가 낙랑 (樂浪) 을 정복하던 때의 이야기로서 당시 낙랑에는 적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리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나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 낙랑의 공주를 설득해 북과 피리를 없애게 함으로써 정복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호동' 이 북과 피리의 신통력을 곁들인 '사랑' 에 초점을 맞췄다면 '만파식적' 은 만파를 가라앉히는, 곧 '나라의 온갖 환난 (患難) 을 잠재우는' 피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라 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 (感恩寺) 를 지은 뒤 해룡 (海龍) 이 된 문무왕과 천신 (天神) 이 된 김유신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는가 하면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하고 장마엔 비를 그치게 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해 이를 '만파식적' 이라 하여 국보로 삼았다는 것이다. 예나이제나 나라가 이런저런 환난에 빠져 갈 길이 막막하면 위정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어떤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북이나 피리 같은 악기를 신통력을 불러오는 데 이용한 것도, 그것을 소재로 한 여러가지 설화가 나온 것도 모두가 잘 사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긴 것이다. 조선시대까지 '만파식적' 으로 분류했으나 정확한 시대고증이 이뤄지지 않아 75년 이후 국립경주박물관 보존고에 보관중인 옥저 (玉笛)가 있다. 박물관측이 공개여부를 놓고 고심중인 가운데 그 옥저가 지상 (紙上) 공개 (중앙일보 10월 9일자 35면) 됐다. 만파식적의 신통력이 어차피 염원일 뿐이라면 신라 때의 실물이든 아니든 '이 시대의 만파식적' 을 고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하면 어떨까. 입력시간 1998년 10월 09일 19시 22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