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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10월  9일 금요일 오후 02시 35분 26초
제 목(Title): 퍼/아이비 동녘창  유일과 중심사이 


*** Forwarded file follows ***

Posted By: namsan     (오두방정) on 'History'
Title:     [동녘창] 유일과 중심 사이
Date:      Wed Oct 07 17:00:43 1998 

[동녘창]                  


                        중심과 유일 사이
                                                                        



     이디올로기에서나 종교 사상에서 유일 개념이 자주 다른 문화나 사상을

  배타적인 적의감으로 배격한다. 특히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에서 강조하는 

  유일신 문제는 아예 다른 종교인들의 신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데 

  있어서 그 배타성과 혐오감은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여 왔고 현대의 걸프전의 

  원인의 하나도 결코 이러한 상호 유일주의 배타성의 구도에서 크게 멀리 있지

  않다.


     유일이라는 말은 역사에서 분리주의자들의 동족 보존의 자기고취 의식에서

  비롯한다. 유일주의는 약자가 강자들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화석같은 
  
  사상이다. 반면에 다양과 통일 그리고 보편적인 입장을 강조한 것은 포괄력이 
  
  있는 자들의 태도였다. 


   초기의 기독교가 약할 때는 유대교적인 유일이란 말을 많이 쓰다가 로마의 

  국교가 된 초기에는 보편이란 말을 많이 쓰게 되었고 그것의 일단이 캐토릭이란
  
  말이 되었다. 말하자면 본래 로만 카토릭의 신은 유일신이라기보다 보편적인 
  
  신을 의미하려 했다. 보편이란 만인을 보다 폭넓게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한편으로 유일개념은 제국주의적 통치개념으로 모든 것을 중앙집권화 하면서

  생긴 독재적 산물이기도 하였다. 기독교도들을 화형에 처형한 로마제국이나 
  
  나중에 국교로 받아들여졌던 로마제국의 기독교 권력도 로마제국의 이같은 
  
  처형 전통을 이어서 기독교도 이 외 종교인에게는 화형에 처하였다. 심지어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유대인들을 집단 살해한 나찌의 제3제국 의식은 보다 
  
  배타적인 통치권력을 무기로 여타의 문화나 종교를 믿는 자들을 처형으로서 
  
  배격하였다. 그것은 국가 이디올로기로나 통치주의 권력 종교를 더 앞세워 
  
  무고한 생명들을 수없이 죽음에 던진 야만적 행태였다.
  
  
     신의 개념이 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혐오한 나머지 그들의 생명까지도 
   
   죽이고자 했다면 이미 그들은 그들이 믿는 유일신의 이름을 사악한 신으로 
   
   만든 꼴이 된다. 그것은 타종족에 대하여 나약한 위치에 있었던 고대 
   
   유대인의 민족주의 전투계명 정도가 아니면 적군살상을 종교적으로 
   
   이디올로기화 했던 중세적 십자군이나 사라센 정복 의식과 같은 전쟁사상에 
   
   머물러 있는 정도의 몽매에 불과할 것이다.


   유일신이 있다면 또 그 신이 만인류의 올바른 신이라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이 무슨 신을 믿든 그들도 같은 유일생명으로 포용하고 있을 

  것이다.


    다함께 공존해야 하는 오늘날의 인류의 평화를 향한 이념과 신앙은 유대인과

  로마인의 구분을 넘어섰던 초기의 기독교 사상인 코이노니아의 인간 공동체

  이상 속에도 있었다. 사도바울의 선교의식을 보더라도 타종교의 문화들을 결코
  
  배타하는 자세만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현대신앙에서
  
  협의적인 유일신만 강조하여 여타의 타종교 문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덜 기독교적인 고대 쥬다이즘의 잔재인 것이며 덜 바울적이며

  
  이방인을 구원하기를 꺼려했던 베드로의 초기 신앙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가 
  
  위대했다면 바로 고답적인 유대인들의 민족적 분리주의를 벗어나 만인 이웃에 
  
  대한 우주적인 사랑의 선포였을 것이다.


     근대의 역사 사상가로서 지암비스타  비코는 모든 종교와 문화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불교의 화엄사상이 오늘날 서구 
  
  과학자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과학 운동의 이론적 배경으로 리바이벌 되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동양복고주의 운동이면서 동양사상의 서양적 르네상스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기적인 우주의 생명 공동체를 재발견하고 있는 
  
  현상이다. 기독교도로서 모든 인류가 하나의 생태적인 카테고리에 살고 
  
  있는 유기적인 생명 공동체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한 떼야르 샤르뎅의 사상이 
  
  동서양의 사상을 융화시키고 있는 생태적 공동체 이념이란데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흔히 말하는 다원주의는 그 뜻이 잘못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그것은 근본이 여럿으로 중구난방이란 의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전체가 근본일 수 있는 포괄적인 전원주의(全元主義)의 의미가 될 때

  유일주의와 다원주의는 상호 같은 극지점을 가지게 될 어휘가 될 것이다.

  

    유일주의 문제는 정치이념에서도 나타난다. 오랜동안 북한에서는 남한을 
    
  인정하지 않고 유일주체사상만 내세워서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온 것은 
  
  중국과도 사뭇 다르다. 이것은 북한이 약하기 때문에 취해온 정치적 방편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정치사상에서 결코 `유일'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대신에 중심이란 의미를

  선호한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전통적으로 바로 중화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중심에 놓고 모든 주위를 변두리로서 사해동포로 인정하고 있던 
  
  의미이다. 외족 지배 방편이라는 사대주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중화 사해동포주의는 고대 알랙산더의 코스모폴리타니즘과 함께 동서양 
  
  양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사상적 발전을 가져온 기반의 하나였다. 서구의 
  
  기독교 사상이 이같은 알렉산더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기반 속에 성장했다면 
  
  동양사상은 바로 이같은 중국의 중화 사해동포주의 영향 속에서 그 우주성의 

  발전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북한에서 주장하는 유일 주체사상의 강조는 한편으로는 민족적으로

  더욱 배타적이 될 수 있다. 유일사상을 강조할수록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은

  물론 그것은 남쪽의 모든 동포들마저 모두 외세에 부역한 반역자로 모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나진 선봉지역과 남포 원산 지역을 개방해가고 또

  신포지역의 경수로 건설을 수용한 일은 국제사회에 하나의 커다란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북한이 고대 고구려의 천문도를

  그리던 우리 민족의 과학 기술의 후예라고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북한은

  세계에서 미국과 대결하는 또 하나의 주체적 문명국임을 과시하려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동북아에서 주변국들과의 상호 공동발전에 대해서도 좀더

  의연하고 신사적이어야 할 것은 더 중요할 것이다.


     리더쉽이 약한 지도자들일수록 추종자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서 단속하는

  말로 타종교나 타문화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본다. 얼마전

  한국에서 어느 목사를 포함한 일단의 기독교인들이 불교사찰에 방화한 사건은

  그같은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얼마전 시카고 한인 기독교 단체들이 주관하여 북한동포들에게 양곡 보내기

  운동을 했을 때 불교단체에서도 참여하여 보기에 좋았다. 또 그렇게 
  
  타종교에서도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마련한 것은 우리의 동족애 이상 
  
  이념적 종교적 울타리를 넘어선 따뜻한 평화의 의미를 보는듯 해서 더욱 
  
  그렇다. 이웃동포를 구호하기 위한 사랑으로 뭉쳐진 자리에는 모든 믿는 
  
  종파를 초월한 진정한 사랑의 이웃만 존재할 뿐이리라.
  
  
    우리가 무엇을 앞장서 하든 그것은 중심에 서 있을 뿐 모든 이웃이 주위에 
    
  함께 참여해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 일이다. 분명히 다신과 유일신의 
  
  이분법적 배타주의보다는 전체를 포괄하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유기적인 이해가 
  
  도리어 유일과 배타보다는 상대적으로 포괄적이며 범우주적인 보다 고등한 
  
  정신이다. 중심사상의 보다 깊은 의식은 때로는 남들을 중심에 두고 주변의 
  
  입장에서 참여해 줄 수도 있는 대아적인 아량을 함양하고 있는 일일 것이다.











                                                 오두방정(namsan)

    wansoo@interaccess.com-----------------------------------------------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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