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10월 9일 금요일 오후 02시 33분 02초 제 목(Title): 퍼/아이비 memo41 *** Forwarded file follows *** Posted By: staire (강민형) on 'Essay' Title: memo 41 Date: Fri Oct 09 01:15:13 1998 프로테스탄트적 이단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신흥 시민층이 건재하다는 것에 상응한 것이었다. 이 시민층이 충분히 강화되었을 때 종래에는 지방적 성격을 띠고 있던 그들의 봉건 귀족과의 투쟁이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대규모적 진출은 독일에서 일어났는데, 이른바 종교개혁이 그것이다. 그때 시민층은 도시의 평민, 하층 귀족 및 농촌의 농민들과 같은 반항적인 기타 모든 신분들을 자기의 깃발 아래 규합하기에는 아직 힘이 모자랐으며 발전하지도 못하였다. 누구보다도 먼저 귀족층이 패배를 당하였다. 이 혁명운동 전체의 절정을 이룬 농민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도시는 농민들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혁명은 지방 영주들의 군대에 의하여 진압되고 혁명의 모든 유리한 결과는 지방 영주들이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만 3세기 동안이나 독일은 역사에서 독립적으로 또 적극적 으로 활동하는 나라들의 대열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독일인 루터와 함께 프랑스인 캘빈이 일어났다. 캘빈은 진짜 프랑스인답게 예리하게 종교개혁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고 교회를 공화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형태로 개조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퇴화하고 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어 갔으나 캘빈의 종교개혁은 제네바에서, 네덜란드에서 그리고 스코틀란드에서 공화주의자들의 깃발이 되었으며 네덜란드를 스페인과 독일 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영국에서 일어난 부르주아 혁명의 제 2막에다 이데올로기적 의상을 제공하였다. 여기에서 캘빈주의가 당시의 부르주아지의 이익의 진정한 종교적 위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1689년 혁명이 (원주 :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이 일부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타협으로 끝난 이후 (원주 : 1689년 이후 영국에는 토지 귀족과 대부르주아지 간의 타협에 기초한 입헌군주제가 수립되었다) 캘빈주의는 완전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영국의 국교는 복구되었지만 그것은 이전처럼 왕이 법왕 노릇을 하는 가톨릭적 형태로 복구된 것이 아니라 현저하게 캘빈주의적 색채를 띤 것이었다. 낡은 국교는 유쾌한 가톨릭의 안식일을 반겼으며 답답한 캘빈파의 안식일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부르주아적 정신으로 충만한 새 국교는 바로 이 후자를 도입하여 지금까지도 영국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685년에 캘빈주의적 소수파가 탄압당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추방되었다. (원주 : 1685년, 루이 14세는 신교도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던 낭트 칙령을 철회하였다.) 이것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당시에는 벌써 자유주의 사상가 피에르 베일의 활동이 전성기에 있었으며 1694년에는 볼테르가 태어났다. 루이 14세의 폭력적인 조치는 프랑스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시민혁명을, 발전한 부르주아지만이 할 수 있는 비종교적이고 순전히 정치적인 형태로 손쉽게 수행할 수 있게 하였을 따름이다. 프로테스탄트 대신에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국민회의의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기독교가 그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기독교는 이미 어떠한 진보적인 계급의 지향을 사상적으로 분장하여 주는 역할을 (staire 註 : 기독교 국교화 직전의 로마제국에서의 역할)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는 점점 더 지배계급의 독점물이 되어 갔으며 지배계급은 단순히 지배의 수단으로, 하층계급을 구속하는 수단으로 기독교를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각각 자기의 고유한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 즉, 토지소유 귀족들은 가톨릭의 제주이트파 또는 프로테스탄트의 정통파를 이용하였고 급진적,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는 합리주의를 이용하였다. 이 경우에 이 지배자들 자신이 자기의 종교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에서)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