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10월 4일 일요일 오후 06시 22분 37초 제 목(Title): 박세일/신동아 이율곡 이퇴계 [시사포럼] 박세일前수석이 말하는 한국 리더십의 위기 DJ여, 율곡 말씀 들어보소 ------------------------------------------------------------------------------- - 요즘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와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과 가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마 두 가지가 다 맞는 주장일 겁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우리 사회에 위기가 있다면 그 위기의 본질은 리더십의 부재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말씀드린 리더십이라는 것은 정치적인 리더십일 수도 있고, 모든 조직의 리더십을 다 얘기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학교, 기업, 사법부, 일반 행정부 등 모든 조직의 리더십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우리 사회 조직의 문화라 할까 조직의 에토스(ethos)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같이 생각하고 싶은 것은 리더십에 관한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선배 학자 중에 율곡 선생을 뽑아봤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유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유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수기(修己:자기 수양)와 치인(治人: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병행되는 것이므로 수기치인(修己治人) 혹은 수기안민(修己安民)이라고도 말합니다. 저는 수기안민(修己安民)이 더 듣기가 좋아서 율곡(栗谷) 선생의 안민지도(安民之道)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여하튼 자기가 수양을 하고 나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 삶의 이상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옛날 성리학자들이 수기(修己)에 대해 써놓은 책들이 많이 있고 또 치인(治人)이나 안민(安民)에 대해서 써놓은 책들이 있는데, 특히 후자에 대해서 율곡 선생이 써놓은 책을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동호문답(東湖問答)』은 일종의 논문인데 34세의 이른 나이에 쓰셨습니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어느 때는 한 나라가 치국(治國)이 되고 어느 때는 난국(亂國)이 되는가였습니다. 그 다음에 『만언봉사(萬言封事)』를 39세에 쓰셨습니다. 1573년은 우리나라에 자연재해가 상당히 심했던가 봅니다. 옛날에는 큰 물난리가 나거나 자연재해가 있으면 임금이 자신에게 뭔가 크게 부족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서 모든 신하들에게 조언을 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선조 임금도 1574년 1월 초에 『내가 뭔가 정치를 잘못해서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 정치를 잘못하는 게 뭐냐에 대해서 여러분이 의견을 좀 써달라』고 모든 신하에게 숙제를 냅니다. 그때 율곡 선생이 바친 글이 『만언봉사』입니다. 글자 1만자를 썼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1만자가 좀 넘습니다. 『만언봉사』의 기본내용은 「세상이 어지럽고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이니 임금께서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라는 식의 글입니다. 그리고 율곡 선생이 40세 때 『성학집요(聖學輯要)』라는 단행본을 쓰셨습니다. 이것은 율곡 선생이 계실 때까지의 모든 유학을 정리한 겁니다. 『성학집요』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하나는 수기(修己)하는 법, 그리고 가정을 다스리는 법, 끝으로 위정을 쓴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제왕학으로 이만한 책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율곡의 수기치인 사상이 가장 잘 정리돼 있는 책이 『성학집요』로 가까이 두고 가끔 읽으면 굉장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시폐소(陳時弊疏)』는 율곡 선생이 47세 때 쓴 것인데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해서 고발하는 글입니다. 율곡 선생이 49세에 돌아가셨는데, 그 2년 전에 원숙한 경지에서 또 한번 세상의 어지러운 원인이 어디 있고 어떻게 고치면 되겠다는 것을 써서 선조에게 올린 글입니다. 그러고 나서 율곡 선생이 48세 때 『10년 안에 10만 양병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합니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 - 사심(邪心) 없어야 현재(賢才) 등용 ------------------------------------------------------------------------------- - 율곡의 위정사상이라고 할까 안민사상은 이 네 가지 논문과 책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네 가지를 기초로 해서 율곡 선생의 생각을 정리해본 것입니다. 먼저 위정에 들어가기 전에 임금의 수기(修己)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임금이 마음을 바로 쓰는 것이야말로 모든 정치의 기초가 되는데, 그러려면 임금이 바른 뜻을 세워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욕이 없어야 된다는 겁니다. 사(邪)가 있으면 소인이 은밀히 스며든다고 얘기합니다. 임금에게 사심이 있으면 소인과 간신배가 그 사심을 타고 접근한다고 해서 무사(無邪)를 강조합니다. 그 다음이, 임금은 애민(愛民), 성심(誠心)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심을 모두 버리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뜻을 세워라, 그게 제일 큰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임금이 수양하는 방법을 말했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분들은 이미 공직생활을 하고 계신 분도 있고 앞으로 하실 분 있으니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조직의 장이든지 공직을 맡은 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게 다산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윤리장입니다. 이 장을 보면 옛날의 바람직한 공직자 모습은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촛불을 밝히고 앉아서 제일 먼저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거경(居敬) 혹은 지경(祗敬)이라고 하는데 소위 정심(正心)을 함양하는 공부로 아침을 맞는 공직자가 해야 할 바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또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을 우선 마음으로 정리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일을 하되 사심을 끊고 자신이 하는 일이 천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그러고 나서 동이 트면 촛불을 끄고 그대로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심을 세우다가 아랫사람들이 들어오면 그때 인사를 받고 공무에 임하는 겁니다. 이것이 공무를 다루는 사람의 기본적이고 바람직한 자세라고 『목민심서』에 기록돼 있습니다만 『성학집요』에도 임금에게 이와 비슷한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사가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가 하는 일이 천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반성하는 것이 모든 위정의 기초로 돼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수양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용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임금 스스로 수양을 함으로써 관인지안목(觀人之眼目)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을 쓰는 건데 사람을 쓰려면 자기 스스로가 마음이 흔들리거나 수양이 부족하면 올바른 사람을 제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인을 현인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려면 임금 스스로 자기수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자기 속에 사심이 있거나 수양이 부족하면 앞에 와서 듣기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을 쓰게 되고 이렇게 되면 천하 인재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임금에게 특히 깊은 수양을 요구하는 겁니다. ------------------------------------------------------------------------------- - 임금의 세 유형, 폭군 혼군 용군 ------------------------------------------------------------------------------- - 그 다음에 정치에서 중요한 것이 「득현재취선다(得賢才取善多)」입니다. 즉 현명한 인재를 구하는 거거든요. 흔히 용현(用賢)이라고 하는데, 임금이 훌륭한 신하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치국과 난국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잠시 전 제가 『동호문답』이라는 논문이 치난지도, 치국과 난국의 도를 가르쳤다고 했는데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두 가지 경우와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두 가지 경우를 들고 있습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임금이 뛰어나고 영웅호걸을 제대로 등용하며 이들한테 모든 일을 잘 맡기는 경우에 나라가 화평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설사 임금이 부족하더라도 어진 신하를 만나서 모든 걸 맡기면 나라는 화평해집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두 경우 중 첫째는 임금이 자기 총명만 믿고 신하를 믿지 않으면 나라는 어지러워집니다. 다른 하나는 임금의 자질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을 좋아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그래서 임금을 세 유형으로 나눕니다. 우선 스스로 총명하다고 생각해서 모든 충언을 물리치고 꾀와 힘으로 일을 도모하여 멸망에 이르는 임금, 율곡 선생은 이런 임금을 폭군(暴君)이라고 표현했어요. 그 다음은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뜻은 있으나 총명이 부족해서 어진 자와 어질지 못한 자를 구별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멸망하게 되는데 이런 임금을 혼군(昏君)이라고 얘기했어요. 셋째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의지가 없는 경우를 용군(庸君)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경우 나라를 어지럽히는 임금이라고 얘기합니다. 『동호문답』에서 율곡 선생이 강조하려는 것은 치국과 난국, 치난지도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절대 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때라는 것은 윗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 윗사람이 뜻을 굳게 세우고 바르게 나아가면 나라를 바로 세울 기회는 항상 있다는 게 『동호문답』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용현을 대단히 강조하는데, 사실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임금과 신하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장과 간부들을 잘 만나야 위정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쓰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하는데 율곡 선생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신분과 파벌과 지연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능력과 인품만 보아서 거기에 알맞은 직책을 맡기는 것이 정치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율곡 선생은 『사람을 쓰는 데 성심으로 임금이 구해야 되고 스스로 직접 점검을 해야지 추천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옛날에도 추천제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임금에게 얘기하길 추천에만 의지하지 마시고 그 사람에 대해서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을 직접 불러서 대화를 해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일을 맡겨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봅니다. 즉 사람을 점검해서 바르고 유능한 사람이라면 그때는 믿고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모든 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얘기합니다. 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쓰면 반드시 믿고 위임하라는 얘기입니다. 또 율곡 선생은 『임금이 훌륭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선한 정치가 안 되는 것은 세상에 유능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도자 자신이 사람을 안 썼기 때문입니다, 지도자 자신에게 성심이 없어서 인재가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꿈을 꾸다가도 임금이 할 일은 사람을 찾는 것인데, 찾으면 예로 대하고 예로 공경하고 믿으라는 이런 얘기예요. 그것이 정치의 기초라고 얘기합니다. ------------------------------------------------------------------------------- - 임금은 나무꾼에게도 지혜 구해야 ------------------------------------------------------------------------------- -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취선(取善)이에요. 취선이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조직이든 회사든 학교든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모으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으로부터 지혜를 모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의 장이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을 많이 하는 겁니다. 위에 있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 입을 다물고 간신들이 모여들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많은 말을 하지 말고 얘기를 많이 듣는데 나무꾼한테까지 들으라는 겁니다. 옛날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이 지나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은 내 스승이라고 했는데 이 많은 백성들 중에서 임금이 들어야 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나무꾼한테도 묻는 그런 마음으로 천하의 지혜를 모아서 천하의 문제를 풀라는 얘기입니다. 소수의 지혜로 천하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중요시하는 게 그런 지혜를 모으는 임금의 자세입니다. 언로를 틔워야 되고 충성스러운 진언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겁니다. 독선을 하게 되면 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율곡이 쓴 글을 보면 이런 식으로까지 표현합니다. 『신하들이 가서 얘기를 할 때 듣기 싫은 표정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어떻게 신하들이 자기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겠습니까. 그래서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들을 적에 절대로 표정에 나타내시면 안 됩니다. 진지하게 들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가서 충언을 하면 듣기 싫어하시는 표정을 하시니 신하들이 유약해지고 최선을 다해서 충성을 하려고 하지 않고 마음에 욕심을 부려서 보신주의로 나갑니다』 그 다음에 시무(時務)가 되겠습니다. 정치하는 데 중요한 게 때에 따라서 할 일을 구별하는 것인데 크게 나누면 창업(創業)의 시기가 있고 수성(守成)의 시기가 있습니다. 특히 수성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개혁하는 것입니다. 모든 법은 오래 되면 폐단이 생기고 폐단이 생기면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요청에 따라 수시로 제도를 변용할 것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런데 제도를 고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물론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선조가 이걸 고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만 결국 행동을 안 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습니다. 그래서 율곡 선생은 『굉장히 답답한 상황 속에서 경장(更張)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나라가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장을 해서 나라가 흥하든 망하든 간에 일단 시도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좋은 업이 있으면 유지 발전시키되 민생을 피폐하게 하는 잘못된 제도는 반드시 경장해야 합니다. 경장을 할 적에는 물 속에 빠진 사람이나 불 속에 있는 사람을 구하듯이 신속하고 단호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경장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 - 명군과 현신의 팀워크가 중요 ------------------------------------------------------------------------------- - 그 다음에 정치와 관련해서 실공(實功)을 많이 강조합니다. 실공은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바가 없다는 뜻인데, 결국은 실질 효과가 있는 일을 하라는 얘깁니다. 『난국일수록 말을 숭상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일수록 구호가 많아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율곡 선생이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글과 말이 많이 올라온다고 해서 정치가 바로잡히고 풍속이 순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명군(名君)과 현신(賢臣)간에 부자지정의 신뢰를 쌓아야지 나라일을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임금과 신하 간에 그런 팀이 형성될 적에 그 나라에 실공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침을 만든 다음에는 대관들한테 권한과 책임을 모두 맡기십시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대관들 중에 개혁에 무임승차하는 이들이 많았고, 복지부동이 상당히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면 1519년에 기묘사화가 일어납니다. 조광조 등 신진사림들이 개혁정치를 하려다가 권력을 지키려는 훈구파한테 당한 겁니다. 그리고 1545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납니다. 특히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통해서 소위 지식인들의 기가 많이 꺾입니다. 그래서 율곡 선생의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기묘사화, 특히 을사사화 이후에 사림 학자들은 공포와 위협이 두려워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고 누구도 국사를 논하려 하지 않습니다. 국사를 논했다가 희생될까 걱정하여 개혁에 대한 논의는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 지금의 실정입니다. 그리고 충신이 입을 다물고 길 가는 사람들이 눈으로 서로의 뜻을 표한 지가 20년이 지났습니다』 을사사화 이후는 조선사회 선비들의 기가 꺾이는 시대입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보는 여러 시각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사림파와 훈구파가 개혁과 반개혁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역사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50년대부터 1720년대까지 자료를 한번 뽑아봤어요, 30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인데 열두 번의 사화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누구도 개혁이나 변화를 얘기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됐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번 사화가 일어나면 대부분이 죽고 나머지는 유배를 당하거나 시골로 낙향해서 조그마한 학교를 차리고 제자를 가르칩니다. 이 제자들이 커서 과거시험을 쳐서 다시 정부요직에 들어갈 때쯤 되면 다시 개혁이 분분합니다. 그러니까 조광조가 나올 때를 보세요. 조광조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요직을 신진사림이 독점하게 됩니다. 검찰 등 사정팀을 딱 잡고서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다가 몰리면 내려가고, 내려가게 되면 그 다음부터 「안민지도」를 연구하지 않고 「수기」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기이원론이니 이런 주제를 가지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연구를 하거나 수양을 하다가 다시 중앙무대에 올라오면 그때 치인을 하게 됩니다. ------------------------------------------------------------------------------- - 『대간들은 간신 몇 명 적발하고』 ------------------------------------------------------------------------------- - 율곡 선생은 당시 상황이 이런 사화가 있은 지 20~30년밖에 안된 때라서 많은 식자들의 기가 꺾였다고 걱정한 것이죠. 율곡 선생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대신들은 한가하게 자신들의 앞과 뒤를 보살피는 데만 진력하고 있습니다. 소관들은 여유있게 기회를 노려 백성들한테서 이익을 취하고 세월이 흘러서 승진할 기회만 탐합니다. 대간들은 간신 몇 명만 적발하고 맡은 일을 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라는 점점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대신은 요즘으로 말하면 장차관급 정도 될 거고 대간은 감사원이나 검찰이 되겠습니다. 아무튼 실공을 구하기 위한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율곡은 임금에게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라고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책의 일관성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다산의 『목민심서』 공공장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교승(交承)이라는 것은 전임자와 후임자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교승에도 법도가 있는데 자신이 후임자에게 당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신의 전임자에게 하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전임자한테 흠이 있으면 가능한 한 감싸주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조용한 가운데서 고치도록 노력해라. 그런데 후임자 마음속에는 전임자와 차별화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지난 정사를 모두 뒤집어버리고 큰 추위 뒤에 따뜻한 봄이 오는 법인데 자기가 따뜻한 봄을 가지고 왔다고 자처하고 혁혁한 명예를 얻으려고 한다』 율곡 선생은 이것이 덕으로도 경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대단히 혼란시키기 때문에 애민지도(愛民之道)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정책의 차별은 사후에 나타나는 것인데 사전에 차별화해서 전임자와 후임자 간에 알력을 보이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해가 될 뿐만 아니라 실제 내용에서도 크게 다르지도 않으면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결국은 백성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애민지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후임자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전임자와 구별하고 차별화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지만 이것은 수령으로서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얘기를 합니다. 정치의 첫째 원리가 「득현재취선다」입니다. 즉 먼저 현명한 인재를 얻은 다음 많은 지혜를 모으기 위해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입기강정풍속(立紀綱正風俗)」입니다.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겁니다. 국가의 기강은 원기인데 국가의 원기를 바로잡는 것이 정치의 처음이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백성의 풍속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은 어떻게 하느냐? 먼저 중요한 게 위에 있는 사람이 청렴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청렴이죠. 그 다음에 사심이 없는 것이 기강을 세우는 데 첫째 조건입니다. 이것은 율곡 선생 뿐만 아니라 다산 선생도 강조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간에 기강을 세우는 데는 조직의 장이 깨끗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인사에 있어서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위에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어질지 못하고 무능한 사람은 밑에 놓아야 되는데 만약에 거꾸로 놓으면 조직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능력도 없고 인품도 바르지 못한데 엉뚱하게 윗자리에 앉게 되면서 존경해야 할 상사를 존경하지 않게 되고 그 조직의 기강은 깨지기 시작한다는 얘기죠.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전제된 다음에 공정한 상벌을 통해서 기강을 보강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도덕적인 청렴성이 앞서고 법적인 엄정성이 뒤에 와야 그 조직의 기강이 잡히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기강을 세운 다음에야 백성들의 풍속이 바로잡힌다는 겁니다. 나라를 끌어가는 지도층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으면 국민들의 풍속이 절대로 바로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 - 제도개혁, 사회보장, 절용애민 ------------------------------------------------------------------------------- - 끝으로 「선안민후명교(先安民後明敎)」인데 여기서 안민이란 물질적인 풍요를 얘기합니다. 백성들한테 어느 정도 물질적인 풍요를 먼저 준 후에 교육이 가능하다는 얘기예요.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항심(恒心)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부, 어느 수준의 경제발전은 필수적이고 그런 연후에야 가르칠 수가 있는 것이죠. 율곡 선생은 안민과 관련해서 세 가지를 얘기했는데 첫째가 제도개혁입니다. 율곡 선생이 주장하는 제도개혁의 주내용은 토지제도와 세제입니다. 토지가 생산에 제일 중요한 수단이던 시대에 훈구파가 오래 지배하다 보니 공신이다 뭐다 해서 토지 소유가 대단히 불평등해지고 한쪽으로 집중되었던 겁니다. 이것을 좀더 공평하게 분산시켜 보자는 것이 사림파들이 늘 주장한 내용입니다. 토지를 공평분배하는 동시에 경자유전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와 물질적인 풍요를 보장하자는 겁니다. 그 다음은 세제입니다. 정치가 오래될수록 세제는 문란해지고 자의적이 됩니다. 사람도 없는데 세금을 부과한다든가 자의적으로 용역을 강요한다든가…. 그래서 세제와 토지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제도개혁에 관건이었습니다. 하나 더 있다면 인재등용방법의 개혁입니다. 인재등용에서 위인설관이라든가 하는 것을 없애고 공정한 인사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제도개혁입니다. 둘째는 환과고독(鰥寡孤獨)입니다. 환은 나이먹었는데 여자가 없는 남자를 얘기하고, 과는 남자가 없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고는 부모가 없는 애들이고, 자식이 없는 노인이 독입니다. 그래서 이 네 그룹은 정부가 각별히 보호하라는 얘깁니다. 이게 요즘의 사회보장이랄까 공적 부조입니다. 이것은 율곡 선생도 그랬고 다산 선생의 글에도 나오는데, 제도개혁을 해서 백성들이 자유스럽게 경제 활동을 하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이 네 부류에 대해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보조해주고 삶을 살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항상 강조합니다. 그래서 지방에 나가는 수령들한테 항상 신경을 쓰도록 하는 게 이 네 그룹에 대한 것입니다. 이게 또 하나의 중요한 안민지도입니다. 셋째는 절용애민(節用愛民)입니다. 이건 공공부문의 낭비를 줄이라는 얘기입니다. 토지제도나 세제를 바로잡고 사회의 어려운 계층에 대해서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그 다음에 공공부문의 생산성 제고랄까 낭비를 줄이라는 겁니다. ------------------------------------------------------------------------------- - 나라가 망하는 네 가지 이유 ------------------------------------------------------------------------------- - 이처럼 안민하는 걸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에 명교, 즉 가르치라는 것인데 명교와 관련해서 하나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율곡 선생이 강조한 것이 훈도(訓導)입니다. 그때는 서당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천했던 모양입니다. 지극히 천한 소임으로 훈도를 생각하고 글깨나 읽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굶는 것이나 면하게 하는 식으로 훈도를 정하면 누가 그 사람을 존경하겠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훈도로 정하면 훈도가 교생들에게 뭘 가져오라고 자꾸만 얘길하는데, 즉 촌지인지 모르겠는데, 이래서는 누가 교육을 바로잡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훈도의 지위 향상과 이 사람들의 선발에서 공도를 확립하는 것을 교육개혁에 기초로 삼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시폐소』는 율곡 선생이 47세에 자기의 붉은 마음(丹心)을 모아서 쓴 글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글을 소개하면서 제 얘기를 끝낼까 합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지금 네 가지 상황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풍속의 타락입니다. 이 사회에 예의와 염치가 없어지고 상호비방과 상호투쟁이 증가하고, 선비가 사리를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율곡 선생은 선비가 사리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아무튼 정의가 무너지는 등 풍속의 타락이 나라가 망하는 첫째 이유라는 겁니다. 둘째 이유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목적을 상실했다는 겁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런 표현을 씁니다. 『월급만 탐하고 위인설관하고 옳고 바른 사람이 나타나면 헐뜯고 어리석다고 하고, 관직의 고하를 막론하고 직무에는 뜻이 없고 형식적인 회의만 반복하니 국사는 날로 어려워집니다』 이처럼 관직의 목적상실을 둘째로 보았습니다. 셋째로 유언비어에 의한 정치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유언비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지만 유언비어가 장안에 한 번 돌기만 하면 그걸 가지고 사람을 바꾸고 정책을 바꿉니다. 이건 무엇과 같으냐 하면 쌀 만석을 배에다 싣고 가는데 배의 키를 잡은 사람이 키를 놓고 배를 풍랑에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유언비어는 국가쇠망의 셋째 요인입니다』 그 다음 이유는 구제도의 폐단과 민생고입니다. 권신과 간신이 잘못된 옛날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걸 고치지 아니하고 기강을 세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노력조차 없고, 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고 민생고는 가중되니까 나라는 망한다 이겁니다. 율곡 선생은 이렇게 쓰면서 바로잡는 길을 얘기합니다. 중요한 내용은 이미 율곡의 안민지도에서 설명했습니다. 48세가 돼서는 이제 10만 양병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면서 소위 개혁안을 선조한테 제시했으나 결국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서도 반발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성룡 같은 명재상도 10만 양병론에 대해서 군대를 일으키면 그것이 도리어 전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해서 반대했습니다. 이 때문에 율곡 선생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 - 한국 지식인의 두 유형, 율곡과 퇴계 ------------------------------------------------------------------------------- - 율곡과 퇴계는 상당히 대조적인 인생을 산 셈입니다. 율곡 선생은 죽는 그날까지 나라를 사랑해서 선조한테 간청을 하고 진언을 했습니다. 선조가 사람은 상당히 양순하고 밝았던 모양인데 결단력이 굉장히 약했던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일을 할듯 할 듯하면서 못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율곡 선생은 안타까운 나머지 시골에 내려갑니다만 시골에 가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또 마음이 바빠서 올라와서 진언을 하고…. 이런 식으로 노심초사하다가 마흔아홉 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퇴계 선생은 50세까지는 정치를 합니다. 50세가 되면서 낙향을 해서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퇴계 선생은 50세부터 공부를 해서 65~67세에 좋은 책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70세까지 장수하셨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가 너무 어지럽자 신하들이 선조에게 『퇴계 같은 사람을 재상으로 좀 모셔와야지 사회의 기강이 잡힙니다』 해서 퇴계 선생을 모시러 여러 번 보냅니다만 퇴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물론 퇴계 선생이 올라오지 않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퇴계 집안에서 앞에서 얘기한 을사사화에 일부 연루됐기 때문에 거기에서 느꼈던 환멸도 있었을 겁니다. 여하튼 퇴계 선생이 올라오지 않자 한번은 율곡 선생이 직접 내려갑니다. 율곡 선생은 『선배님, 벼슬이라는 것은 나 개인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까지 말하면서 한양으로 올라올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만 결국 이를 물리치고 70세까지 잘 사시다가 돌아가십니다. 그래서 율곡과 퇴계는 이론에서도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만 삶을 사는 태도 역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율곡과 퇴계가 한국 지식인들의 딜레마를 아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거의 율곡의 길이냐, 아니면 퇴계의 길이냐라는 딜레마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하튼 율곡 선생의 글을 읽어보시면 뜨거운 감정,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하는 절절한 마음, 그리고 선조에 대한 정말 추상 같은 직언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분은 『동호문답』이 자신의 논문집이지만 『만언봉사』나 『진시폐소』에서는 『지금 잘못되고 있습니다』라는 원안을 쓰고 이걸 바로잡기 위해서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모든 글의 마지막에 씁니다. 율곡 선생은 『개혁정책을 써서 3년 동안에 우리 사회가 바로잡히지 않으면 제 목을 치십시오. 나를 벌하십시오. 제가 세상을 어지럽혔으니 저를 벌하십시오』 하는 얘기를 할 정도로 간곡한 글을 씁니다. 물론 시대가 다르고 환경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율곡 선생의 글이 우리 시대에 그대로 맞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대선배 학자들 중에 이렇게 훌륭하고 나라를 사랑한, 한없는 좌절감 속에서도 조금도 자기 이상의 불길을 끄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대선배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제 말씀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다음은 박세일 전수석이 강연을 끝낸 후 청중들 질의에 대한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박 전수석이 율곡의 개혁정치에 자신의 심정을 투영시킨 것을 간파한 청중들은 진지하고도 뼈 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말씀하신 내용이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만민평등사상에 기초한 것이 민주주의라고 합니다만 정말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가치가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대단히 훌륭한 지도층이랄까, 그 사회에 리더십이 있을 때, 특히 사를 버리고 공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이해관계만 가지고 뛰게 될 때는 민주주의는 빠른 속도로 우중정치가 되거나 소위 바게닝 데모크라시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민주주의일수록 지적인 지도층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과거 30~40년간 권위주의 정부와 싸울 때는 우리가 반대할 질서가 무엇인가가 명백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를 끝내고 나서 민주주의 단계로 들어온 다음에는 우리가 건설할 질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건설할 지도층이랄까 건설할 세력이 스스로에 대한 자기점검과 철학적인 기초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부실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것이 혼란을 일으킨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율곡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시대는 먼 옛날입니다만 지도자의 원리나 공직을 맡은 공인의 원리, 사회 지도층의 원리나 몸가짐, 사물을 보는 관점, 어떤 일을 처리하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선시대와 지금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임금이 정해졌고 후계자가 될 세자는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만, 지금은 국민들이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을 신중히 선택하든지, 국민들이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치나 행정 쪽을 볼 때 현재 상태로는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박 수석도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바위에다 계란 던지기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현 정권 임기내에 누군가 시행만 해준다면 될 수 있는 개혁안이나 방법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전 개인적으로 김영삼 전대통령의 5년과 김대중 대통령의 5년이 먼 훗날에 보면 성격상 하나의 시기로서 규정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광복 후의 일정기간 동안은 독립운동 지사형 정치가 있었고, 그 다음에 군부가 들어와서 약 30년간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근대화를 했고, 그후에는 권위주의 정부와 싸웠던 민주화 세력이 문민정부부터 시작해서 10년간 가는 것이지요. 제가 문민정부의 개혁과제를 다룰 때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프로젝트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를 올바로 풀기 위한 노력이니까 좀 나아진 부분도 있고 잘 안 된 부분도 있겠지만 개혁은 끊임없이 연결될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개혁에 실패했다고 하는데 저는 개혁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87년에 양김이 분열하지 않고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민주화 세력이 분열되면서 과거세력과 합작해 두 번 정권을 잡긴 했지만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도 여러 가지로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좀더 일사분란하게 변화와 개혁을 추진했더라면 IMF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된 데 대해서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한국에도 국가경영형 정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그 정치세력과 개혁 청사진을 가진 세력이 결합해서 나라를 잘 끌어나간다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우리가 최대한 힘을 모으고 도와줘야 되겠죠. 그렇게 하려면 자기 몸을 던지는 소수 학자들이 나와야 될 것 같습니다. 율곡 선생은 팀이라는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명군과 현신 간에 신뢰가 있어야 되고, 한 몸처럼 수족처럼 움직여줘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사실은 창의적 소수가 역사를 만드는 건데 창의적 소수가 팀이어야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모든 정부 정책이 나아가다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팀의 내분 때문입니다. 팀이 정확한 방향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한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상당부분 고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팀 안에서 어떤 불협화음이 나올 때 밖에 있는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이 가장 빨리 행사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개혁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바깥에는 나라를 걱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만한 능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많은데 이걸 받아들여서 정치적으로 세력화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내부세력이 있느냐는 겁니다』 ―역사는 율곡의 안민지도도 결국은 임진왜란 등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쓰고 있는데, 김영삼 정권의 개혁도 실패했기 때문에 국난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 개혁이 실패한 원인이 뭐냐, 군주가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얘기하면 간단하겠지만 제가 볼 때는 적어도 선조 임금은 아주 우매하지는 않았어요. 선조는 조선 역대 임금 중 중간 정도는 된다고 보는데, 개혁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것은 율곡의 치국지도가 미흡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퇴계 선생이 율곡에게 한 얘기가 있습니다. 『너무 일을 벌이지 말라』 그런 식으로 경계한 게 있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율곡이 개혁에 실패한 원인 중의 하나가 오늘날에 비춰볼 때는 개혁세력을 세력화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율곡은 많은 적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개혁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거기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다른 견해 없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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