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10월 3일 토요일 오후 04시 05분 27초 제 목(Title): 이코노/이사벨 팬티 글의 성격상 섹스보드에 가야하겠지만, 왠지, 목사님이 무서워서 갈수가 없어요.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지에 연재되는 곽대희씨의 코너는 제가 항상 즐겨보는 섹션인데, 오늘내용은 '팬티사'로 요약해도 좋을만큼, '역사'적인 면이 있군요. 역사보드를 사랑하시는 분들, 기분전환으로 읽어보세요. :) 완전한 사랑 / Love 제 456호 1998.10.05/12 ------------------------------------------------------------------------------- - 곽대희 코너 이사벨 팬티 곽대희 피부비뇨기과 원장 ------------------------------------------------------------------------------- - 1970년대 초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뉴욕 섹스 백화점 진열대 위에 걸려 있는 버텀리스 팬티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최소한 가려야 할 부분이 뻥 뚫려 있었던 것이다. 또 어느 것은 마치 커텐처럼 앞쪽만 가리도록 디자인된 것도 있었다. 포장만 들치면 여성의 비너스동산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진 것이 보수성에 찌든 동양인의 눈을 휘둥그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처럼 카섹스 등에 편리하도록 디자인된 팬티가 아니더라도 요즘 여성의 속옷들을 보면 매우 섹시하다는 느낌을 준다. 브래지어 및 팬티의 디자인이나 무늬가 잘 어울리고 또한 코튼이나 폴리에스테르 등 갖가지 소재가 부드러운 느낌을 더 한층 강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백화점 점원의 말에 의하면 현대 여성들은 평균 약 50벌 정도의 팬티를 가지고 있다 한다. 요일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며 입을 수 있는가 하면 생리중일 때 입는 것과 섹스를 하고 싶을 때 입는 팬티가 다르게 디자인된 유럽 제품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미국의 어떤 출판물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속옷의 앙케트가 실렸는데, 놀랍게도 미국 여성 중 4%는 자신의 팬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예컨대 1백명 중에서 4명은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니까 데이트 때는 물론이고 일할 때나 식사할 때도 노팬티라는 말이다. 미국의 속옷 가게에서는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팬티도 사기 전에 입어볼 수 있게 돼 있다. 그것도 별개의 견본 같은 것이 아니라 팔려고 내놓은 상품들을 맨 살에 입어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영복을 입어보는 것도 팬티위에 덧입어보는데 그치니까 습관의 차이라고나 할까. 민족성의 차이가 드러나 보인다. 속옷의 역사를 보면 모양깨나 내던 유럽에서도 예전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입는 사람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보지 않고 또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속옷은 자신의 몸에 맞건 말건 아무래도 괜찮았던 것이다. 게다가 발목까지 가리는 롱 스커트가 주류이던 시대였으므로 입지 않는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17세기께의 유럽에서는 목욕하는 습관이 없었던데다 속옷값이 너무 비쌌으므로 손상되지 않게 하려고 별로 세탁도 하지 않았다. 왕후나 귀부인들도 마찬가지여서 불결한 속옷이 악취를 풍겼으므로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가 발달했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생겨난 것이 ‘이사벨 칼라’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이사벨 왕비의 남편 페르디난드公이 오스탄트城 공략을 개시했을 때 ‘성이 함락될 때까지는 결코 속옷을 갈아입어서는 안된다’는 특이한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싸움은 3년 3개월 동안 이어졌고 그 동안 이사벨 왕비는 한 벌의 속옷을 계속 입어야 했다. 이윽고 성이 함락된 때는 본래 새하얗던 속옷이 땀과 때에 찌들어 몰라보게 변색돼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은 남편에 대한 그 아내의 애정을 두고 ‘이사벨 칼라’라고 찬양했다. 부덕(婦德)이긴 하지만 3년 이상 입은 팬티라니 상당한 냄새가…. 그런데 최근의 포르노 숍 같은 데서는 젊은 여성이 실제로 입고 있던 팬티를 비싸게 팔고 있다. 이사벨 칼라가 있다면 그것은 꽤 고가에 팔렸을 것이다. 그런 점포에선 언제나 팬티를 입어주는 여성 모니터 걸을 모집하고 있다. 그것도 팔등신 미인만을 대상으로 뽑는다고 듣고 있다. 보통 여성은 창피해 그런 따위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여대생 등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요즘의 팬티와 비슷한 것이 일반에 보급된 것은 18세기 이후이고 그 이전에는 발레 춤을 출 때라든가 스케이팅을 할 때, 높은 곳의 창유리를 닦을 때만 입었다. 그러나 1830년께 속옷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속옷을 입지 않는 것은 불결, 천박, 교양없는 하층계급, 부도덕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당시 속옷은 흰색. 본래 일본 사람들에게는 팬티라는 것이 없었다. 1932년 도쿄 일본교에 있는 백목옥(시라기야, 지금의 동급백화점) 4층에 불이 났을 때 여점원들이 로프를 타고 내려오려고 했었다. 그때 화제에 의한 상승기류 때문에 옷자락이 뒤집혔다. 그러나 옷자락을 잡아 누르자니 로프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14명의 여성이 처참하게 불에 타 죽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점원에게 강제로 여성용 팬티를 입히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팬티 착용의 효시라고 한다. ▲ 제456호 -------------------------------------------------------------------------------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