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18일 금요일 오전 06시 12분 33초 제 목(Title): 뉴스+/전환기 시대의 논객,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객’ 리영희선생 “남북한-미국 함께 변해야 통일온다” 서울 근교 산본의 자택 응접실에서 리영희선생과 마주앉은 나는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연륜을 새삼 실감했다. 그것은 아마 지금껏 머릿속에 자리잡아온 그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이 「나름의 진실」에 머물 때, 다섯차례의 투옥과 네차례 해직을 견디며 「공의(公義)로운 진실」을 변함없이 추구했다. 그에겐 늘 열정적인 청장년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어느새 대쪽같은 노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몇마디 말을 건네다가 그는 갑자기『이리 좀 와보라우』라며 필자를 창가로 이끌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따라가 본 창문 너머에는 아침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부드러운 굴곡의 수리산 자락이 뒤뜰인양 드리워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두시간씩 산에 다녀온다며 산행길을 짚어보였다. 문득 정겨운 오솔길마냥 다가서는 산길을 걷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가 누리는 소탈한 행복이 가슴에 와닿았다. 서재를 가득 메운 사회과학서적 가운데서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 「역정」을 발견한 나는 언젠가 그 책을 읽으며 느낀 진한 감동을 떠올렸다.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한 장면도 허투루 덧붙임없이 그려낸 지독할 정도의 정직성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흥분이랄까. 자전적 에세이에서조차 한치의 어긋남없는 정직성으로 지켜지는 사실전거(典據)주의가 국내외 현실을 분석하는 논문에서 한층 엄격하게 적용될 것은 당연한 이치. 언젠가 그는 원고지 다섯장을 채우기 위해 1200쪽의 미국무부 문서를 원문으로 읽었다고 했다. 요컨대 그가 평생 몸던져 추구해 온 진실이란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조금도 비약한 적이 없고 바로 그 때문에 조그만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문화혁명기의 중국에서 진행된 사회주의적 인간실험에 관심이 깊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8억인과의 대화」라는 편역서를 펴냈다. 하지만 거대한 사회주의적 실험은 실패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제 탈(脫)사회주의 역사의 뒤안길에서 「적지 않은 실망과 배신감」을 고백했던 그는 요즘 이념 문제에 어떤 결론을 마련하고 있을까. 그는 인간이란 도무지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도 빚어서 변화시킬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도덕재무장운동이라든지 사회주의와 같은 구조결정론적 시각같은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시도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요컨대 인간이란 이기심과 소유욕을 본성적으로 타고난 존재이므로 「불가능한 상태까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을 만들려 했던,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그렇다치고, 그 실험을 바라보는 그 자신은 왜 그토록 「뜨거웠던」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 현대사를 전단해 온 환멸스런 인간군상에 대한 쓰라린 기억, 그리고 그 기억에 토대를 둔 「얼룩진」 인간관으로부터 훌쩍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박한 기대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제 그는 이기심과 소유욕을 포함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하되 그 속에서 도덕주의적 인간성에 「90분의 60」 정도의 가치를, 이기적 인간성에 「그 나머지 30」 정도의 가치를 할애하는 사회를 대안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도덕주의적 인간성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고의 수준(그는 그것을 대략 「90분의 60」 정도로 본다)으로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마르크시즘의 가치를, 물론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도입할 것을 제시한다. 『지난 시기 자본주의의 내적인 병폐가 골수까지 미치지 않았던 것은 사회주의가 페니실린 같은 인간학적 대항역할을 했기 때문이에요. 특히 21세기는 세계적인 무한경쟁에 기인하는 도덕과 자연환경, 그리고 생명의 파괴 때문에 자본주의가 정말 골수까지 깊이 병드는 시기 아니겠어요. 그래서 지난날의 사회주의적 가치와 방법론을 자본주의에 도입해, 마치 암세포가 체내에서 자기 세포를 죽여가듯 자본주의 체세포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마이신을 만들어내야 해요』 하지만 필자는 사회주의 국가의 후광(後光)도 사라져가는 마당에 마르크시즘의 가치라는 게 과연 자본주의 체제의 인간성을 버팅겨주는 현실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문득 「개인의 이성」과 「집단의 광기」가 인류를 어떻게 이끌어 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돼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개인은 분명히 지적-정서적인 자기규제가 가능한 이성적 존재인데, 이게 서로 대립-갈등하는 관계로 집단화했을 때는 이성이 상실되지요. 그래서 개인의 양식이나 이성을 무시하고 내달리는 집단의 비이성적 방향이 있게 마련이며, 이것이 집단 전체의 생존을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고 봐요. 구체적인 예가 바로 핵무기와 환경문제, 인간을 복제해내는 생명공학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에 대해 개체로서의 이성은 모두들 두려움을 이야기하지만 자본주의가 이것을 통해 이윤을 얻고 그것을 극대화하려 하므로 결국은 공인돼 갈 것이 분명하죠』 개인의 이성이 집단의 광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으며, 그 이유는 인간이 개체로서 지닌 이성적 통찰력이 불행하게도 집단의 것으로 전화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성적 브레이크를 갖추지 않은 인류의 광기어린 질주를 대단히 비관적으로 보는 그는 인류가 묵시록적인 파멸로 치달으리라고 보는 것일까.『핵무기, 환경파괴, 인간복제 문제 등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아주 어렵게 그 단계마다 그것을 간신히 피하고 넘어서는 일을 거듭 되풀이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각 단계마다 언제나 죽지 않고 살고자 하는 생명의 충동과 욕구는 작용할 테니까』 그가 말하는 「생명의 충동」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또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띤 김지하의 생명사상과는 어떻게 다를까. 『그것은 처참한 전쟁의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우리 동생도 거기서 죽었어요. 전쟁에 동원되는 명분이나 사상은 전부 가식이며 그것이 지나간 뒤에는 오로지 죽음, 즉 생명의 파괴만 남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개개 생명의 구체적 행복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어요. 당시에 그같은 생각이 여물었던 것은 아니고, 6·25까지 한 삼사십년 갈등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이제 조금 관조하는 차원에 와서 종합할 때 비로소 생명이라는 것에 도달한 거지요』 필자는 나도 모르게『바로 인간이네요』라고 되물었고 그는『그래요, 인간이에요. 네, 인간이라구』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뒤이어 휴머니즘이라는 일개 주의(主義)로는 도무지 싸안을 수 없어보이는 그의 체감(體感)의 깊이가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눌렀다. 그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거머쥔 이 생명의 충동 혹은 욕구란 어떤 사상의 틀거리 속에 가지런히 정돈해넣기 힘든, 어쩌면 체험의 사리(舍利)같은 것이 아닐까. 그는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무저항주의자가 되려한다고 했다. 북한의 호전성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호전적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서로 꼬리를 물고 무한정 나선적 상승작용을 빚어 온 우리 현대사에 대해 자기 반성을 결여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핵무기 개발로부터 최근의 미사일(또는 인공위성) 발사로 이어진 북한의 도발적 행동 역시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코너로 몰아 온 미국과 남한도 현재의 상황에 「동일한 정도」의 책임이 있으며, 북한은 마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살기 위해 고양이조차 무는 식의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남북한과 미국의 3자가 함께 변해야 하는데, 북한 역시 헌법구조와 내각을 일단 개방쪽으로 가져가고 국제파-온건파인 김영남이 국가주석에 해당하는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등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군사적 대치국면과 경제난을 맞아 정치통제-사상통제만은 강력하게 유지해나가겠다는 의사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 이같은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외눈」이 아닌 「두 눈」일텐데, 우리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현실을 너무도 몰라 걱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도 남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며『저런 거 발사해서 이로울 것 하나 없는데…』라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문득 그가 펴낸 책의 제목(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이 생각나서, 우리나라에서 건강한 의미의 보수주의가 발전해갈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봤다.『그럼 생겨나야죠. 지금도 차츰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보수주의쪽도 그렇고 진보쪽도 그렇고, 지난날을 반성하고 그 부작용을 비판하면서 차츰 중용을 향해 쌍방에서 접근해 왔다고 봐요』 대화가 네시간쯤 지났을 때 그는 치과예약 시간에 대어 가야 하겠노라며 말을 마무리했다. 딱딱한 이야기로 일관하느라 그의 인간적 면모에 별로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 인터뷰 내내 성가신 질문을 던지는 필자를 틀림없이 밉상으로 지켜보았을 부인쪽으로 말문을 돌렸다.『두분 얘기하실 때도 이런 얘기만 하세요? 재미 없으실 거 같은데요』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아유, 아녜요. 돌아가는 얘기도 잘 하시고, 농도 잘하세요. 딱딱해 보이시기만 하죠?』 그때 외출 채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리선생이 부인에게 던진 한마디.『당케 쉔!』 리영희선생 약력 * 1929년 평북 삭주 출생. * 합동통신과 조선일보의 외신부장을 역임하고 1972년 이래 한양대 신문학과 교수로 재직중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 학원탄압에 반대하는 「지식인 선언」 「교수재임용법」 「5·17」 등으로 네차례 해직. * 1977년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가 반공법 위반으로 지목돼 구속되는 등 다섯차례 투옥. * 70년대 이래 냉전논리에 대한 「우상파괴자」로서 민족민주운동을 벌여온 그는 1994년 한양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일체의 집필을 중단하고 냉전체제의 붕괴에 뒤이은 문명사적 전환에 대해 모색중이다. 강영희 / 문화평론가 ------------------------------------------------------------------------------- -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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