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18일 금요일 오전 05시 50분 02초
제 목(Title): 이코노/ 프랑스 영화 '당통' 




문화 / Culture 제 454호 1998.09.22 

-------------------------------------------------------------------------------
-
 

영화로 보는 세계경제사 
부르주아의 반란,프랑스 대혁명 
자유주의-평등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을 상징한 혁명의 두 주역 



이재광 기자·leejk@
-------------------------------------------------------------------------------
-
  

 
▲원제:Dan Ton(1983)
감독:안제이 바이다
주연:제럴드 드 파르듀, 보이체크 프소니악
비디오배급:
삼부프로덕션(1989)  
 1983년 1월. 한 편의 영화가 프랑스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당통’-. ‘강철의 사나이’로 2년 전 칸 영화제 작품상을 거머쥔 유럽의 
거장이며 폴란드 노조운동의 영웅이 프랑스로 추방된 후 제작한 첫 작품. 거기에 
6년 후로 다가온 프랑스혁명 2백주년. ‘당통’은 어느 모로 보나 화제가 끊이지 
않을 작품이었다. ‘혁명 2백주년’을 준비해 온 정부는 이 영화에 3백만 
프랑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대주며 은근히 ‘대작’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영화는 정부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미테랑 대통령은 비록 비공식 
석상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역사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사회당과의 연정(聯政)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공산주의자들은 
영화의 약점 찾기에 혈안이 됐다. 빌로바렌의 수염이 너무 길었다거나 데물랭은 
실제보다 허약했다는 등 시시콜콜한 점까지 들춰내며 흠을 잡았다. 어떻게든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심보였다. 

왜일까. 뒷돈까지 대주며 영화제작을 부추겼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당통’은 혁명의 주역이자 프랑스 좌파의 뿌리인 
로베스피에르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미테랑 정부는 뚜렷한 이유나 근거 없이 
‘성역’을 건드린 영화 ‘당통’과 바이다 감독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혁명의 상징적 인물들. 이들이 치른 ‘전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세계사를 이끌어 왔던 이데올로기 대립의 ‘원조’다. 자유와 평등-. 
이들은 또한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대변해 준다. 당통=자유주의, 
로베스피에르=평등주의라는 등식을 만들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니다. 
당통=자본주의, 로베스피에르=사회주의라는 등식도 물론 가능하다. 

미테랑 대통령 “역사 공부 다시 시켜라” 

대발견시대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은 눈이 부셨다. 국내든 국제든 상업을 통한 
이윤에 눈을 떴고 또 돈을 벌 수 있는 기법이 발전했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주식회사의 최초 형태는 1602년 동인도회사에서 발견된다. 동인도회사는 
1593년부터 아시아무역을 담당하던 몇몇 기업들이 합동해 세운 회사. 동방무역을 
독점해 날로 번성함으로써 이후 기업 형태의 모범으로 등장한다. 
17세기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주식회사의 개념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산업혁명이 끝날 무렵이면 오늘과 거의 같은 ‘기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무렵이면 은행이나 주식시장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걸맞는 법인체들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자본주의의 발전은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던, 전혀 새로운 
‘신인류(新人類)’를 만들어 냈다. 바로 ‘부르주아’다. 은행이나 기업의 
경영자, 주식 보유자, 상업을 통해 이익을 얻은 무역업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돈을 번 기업인….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돈’을 찾아 헤매 다니지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돈벌이에 일찌감치 눈을 뜬 ‘부자’들이 바로 당시 유럽의 새로운 
계급 부르주아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지 ‘부(富)’를 축적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민했으며 
부지런했고 또 돈을 아꼈다. 이전의 지배계급이던 구(舊)귀족층과는 전혀 반대되는 
성격들이다. 귀족들이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둔했고 게을렀으며 
사치와 낭비로 하루 하루를 보내던 존재로 각인돼 있었다. 
‘돈’이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하는 자들의 몫이다. 귀족과 국왕의 정책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은 무엇보다 정보를 찾아 헤맸고 거기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또 국가적 사안에 예민했던 부르주아들은 언론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알리며 힘을 
합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정보를 더 널리 유포시켜야 했다. 신문과 잡지 같은 
인쇄매체가 누구보다 소중했던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만 
모두 85종의 신문·잡지가 창간됐다. 최초의 프랑스 신문인 ‘가제트 드 
프랑스’가 빛을 본 것도 이때. 부르주아들은 새로운 뉴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해 냈으며 이들은 바로 현대의 여론 선도층인 공중(公衆, public)의 모태가 
됐다. 18세기 들어 비로소 ‘뉴스를 읽는’(news-reading) 계층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이들은 성직자와 귀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과 싸워야 할 운명이었다. 
먹느냐 먹히느냐-. 단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전쟁에서의 승리는 ‘부르주아’의 것이었다. 역사는 이 과정을 
‘혁명’으로 규정한다. 이른바 ‘부르주아 혁명’이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1442~60)과 명예혁명(1688)에 이은 미국의 독립혁명(1776) 그리고 
프랑스혁명(1789년)이 대표적인 사례. 특히 프랑스혁명은 그 변혁 정도나 파급 
효과가 워낙 커서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 어느 혁명보다 
반(反)체제적이었으며 부르주아적이었다. 혁명의 주체세력들은 부르주아 또는 
부르주아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전문직 종사자들이었으며 구(舊)체제는 철저하게 
파괴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질적으로 혁명 후 귀족과 승려에 부여됐던 특권은 
완전히 폐기됐다. 승려의 재산은 몰수됐고 지배계급의 상징인 국왕 루이 16세는 
혁명이 일어난 지 3년 만에 길로틴(단두대)의 제물이 됐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감옥 습격사건.  
 
로베스피에르 ‘희화화’에 좌파 ‘발끈’ 

영화 ‘당통’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1793년 말 파리에서 벌어지는 혼란에서 
1794년 봄 당통이 처형되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역사적 사실들을 한 번 훑어본다는 
기분이면 된다. 당통의 처형 과정이나 이유 역시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유주의를 
강조하던 당통파는 평등주의에 기초해 국가를 개조하려는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놓은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몇 차례 경고를 내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신문을 통해 여론과 민심,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던 당통은 
결국 혁명파의 최대 위협 세력이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이들을 단두대에 
보낸다. 

영화는 따라서 스토리보다 인물의 성격과 갈등에 초점이 모아진다. 여기에는 물론 
주연 당통과 조연 로베스피에르가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에서 시작해 로베스피에르로 끝난다. 제목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관람한다면 ‘로베스피에르’ 또는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이라는 제목을 상기할 
만하다. 적어도 ‘당통’ 한 명의 이름만 나올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도 당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로베스피에르의 강인함과 카리스마가 희화화됐다는 점이 문제로 
드러난다. 당통 처형의 당위성을 연설하는 의회에서 키가 작아 발뒤꿈치를 올리는 
장면은 이를 상징한다. 

병색이 완연한 창백한 얼굴, 가발이 벗겨지며 구겨진 체통, 당통을 처형한 직후 
공포에 떠는 모습들. 역사가들이나 프랑스 좌파가 그리는 로베스피에르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냉철한 성격, 대담무쌍한 용기, 예리한 통찰력, 대중을 압도하는 
웅변, 탁월한 조직력, 정평이 나 있는 청렴함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공평무사…. 영화는 이같은 장점을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미테랑 
정부의 분노를 이해할 만하다. 

 ▲
제454호   



-------------------------------------------------------------------------------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