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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04시 18분 51초
제 목(Title): 창비토론/백낙청,이미경,정운영,백영서 




  종합토론 



  백낙청(白樂晴) 
  이미경(李美卿) 여성운동가, 국회의원 
  정운영(鄭雲暎) 『한겨레』 논설위원,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백영서(白永瑞) 



보론 1  
보론 2   


  
  
  백영서(사회) 이제 알짜만 남으신 것 같은데 좀 오붓하게 모여서 하면 어떨까요? 
지금 한 시간쯤 여유가 있습니다만, 미리 말씀드린 종합토론의 논평자 세 분의 
의견을 듣고, 그것에 대해서 앞에 나와 계신 발표자들이 간단하게 답변을 하고 그 
다음에 앞서 토론해주신 선생님들과 지금까지 진지하게 경청해주신 여러분들께 
기회를 드려서 난상토론을 통해 뭔가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냈으면 합니다. 
  종합토론은 이미경 선생님이 먼저 해주시고, 그 다음에 정운영 선생님, 그리고 
백낙청 선생님, 이런 순서로 하겠습니다. 먼저 이미경 선생님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를 역임하시고 지금은 국회의원으로 
환경노동위·여성특별위·예산결산특별위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전 
토론들에서는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얘기됐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시민사회운동 영역과 국가의 영역을 결합하는 부분에 대해서 아마 많은 경험이 
있을 걸로 압니다. 좋은 말씀 기대합니다. 
  이미경 먼저 『창작과비평』 통권 100호를 기념한 학술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무려 다섯 시간이 넘는 긴 토론회에 많은 
분들이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 감동을 받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토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체적으로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 전환’이라는 제목 
아래서 모든 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냉전체제 이후의 세계시장과 세계자본의 
지배라는 점에 대해서 지적하셨는데, 저는 20세기말의 성격에 대해서 몇가지만 
부연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냉전체제의 붕괴가 우리의 민족통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하고, 또 이제까지의 개발독재체제가 붕괴되면서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시민사회 형성의 기초가 한국에서도 마련됐다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덧붙일 게 있다면, 세계자본의 지배를 가능하게 한 경제적 기초인 21세기 
산업의 태동, 예를 든다면 정보통신산업과 멀티미디어 산업, 생명공학의 발전, 
이런 중요한 문제들이 모든 분들의 발제에서 지적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사실은 21세기 세계시장을 가능하게 한 기초가 아니었나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런 기초 위에서 그야말로 국가간의 방어벽이라든지 산업기관간의 
장벽이 무너지는 세계시장 체제가 마련된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세계시장 또는 자본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있었는데, 사실 언제나 
경쟁과 갈등을 전제로 출발하는 자본주의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고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넘어서서 지금 세계시장이 무한히 확대된 상황에서 자본주의와 세계시장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전에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가지고 있던 유토피아적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세계 
자본주의 시장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미래의 대안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이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인 것 같은데, 저도 특별하게 그런 희망을 대체할 
만큼 새로운 대안은 제시할 수 없습니다. 
  IMF체제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논의해주셨고 미국자본의 음모라는 얘기들도 
나왔는데, 저는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동아시아 성장모델, 또는 우리 식으로 하면 
박정희식의, 국가가 주도하여 자본과 부를 배분하던 방식이 변해야 하는 시대에서 
미처 그걸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경제위기를 맞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세계자본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IMF의 요구 중에서 미시적인 요구들, 예를 들면 금융구조 개편이나 
재벌구조 해체 같은 문제는 사실 우리의 국내적인 개혁 요구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IMF와의 협약에 대해 지지하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 또한 
미시적인 플랜은 우리의 요구와 많이 일치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시적인 경제구조의 변화와 연관해서 본다면 많은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해서는 IMF를 잘 알고 있는 학자들이 
제기하는 많은 문제들, 예컨대 금리나 재정긴축 문제 등에 대해서 IMF와 잘 
조율해가면서 처리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강력한 재협상을 실시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런 측면에서 국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IMF와의 협상 방식이 
인도네시아나 타이와 우리나라가 다를 수 있는데 여하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미래를 전망하고, 경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협상하는가에 따라서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국가의 역할이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IMF사태와 연관해서도, 예를 든다면 재벌들이 해외에서 진 빚이 
260만불인가요? 그것에 대해 지금 국가가 빚보증을 서줬는데─그건 잘못한 
것이지만요─하여튼 그런 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세계시장경제로 넘어가면 국가의 
역할은 별로 없고 자본과 자본끼리 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자본과 
자본 간의 역할에만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자본이 국가를 끌어들여서 
이런 식으로 빚보증을 서게 하면서 그것에 대한 고통을 전국민에게 전가해버리기도 
하죠. 따라서 자본이 국가를 이용하기도 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에 이런 시대에서 우리의 생존과 발전 전략으로서 최원식 교수님께서 
대국론과 소국론을 펴셨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항상 
대국과는 다른 개념으로 목표를 선진국에 두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OECD에도 
가입하고, 여전히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선진국은 일본이나 중국, 미국 같은 패권적인 대국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패권적인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런 
지향을 갖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국론이 그런 지향이라면 
저는 여전히 대국론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봤고요.(웃음) 
  그 다음에 우리 문화와 연관해서는, 우리는 선비정신에 따라 돈보다는 명예와 
의리를 더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와 전쟁을 겪으면서 자본주의를 알게 
되고 돈을 우습게 아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물질적인 이중적인 면을 지니게 
되었죠. 하지만 근면하게 일해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사회가 가치를 부여하는 
쪽으로 가야 해요. 돈이냐 명예냐 하는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둘 다 중요한데 둘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거지요. 
예컨대 정신대 배상문제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은 민간기금이라도 받는 것이 낫지 
왜 안 받느냐며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간기금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낫다는 식의 생각을 하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국제회의에 나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문제에서 우리 가치를 살리면서 조금 잘못되어갔던 것을 문학이나 문화 쪽에서 
바로잡아주는 일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은데요. 여기에 앉아 들으면서 제 마음속에는 
우리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거대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과, 또한편으로는 이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병존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점에서 저도 어쩔 수 없는 민족주의자이고, 아직도 국민주의적인 틀을 못 벗어나고 
있고, 고상해지지 못하고 현실적인가 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많은 국민들 혹은 여기 계신 청중들의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추구하면서도 현실 문제를 어떻게 딛고 나가면서 새로운 
방안을 찾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여하튼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는 아주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만은 아니고, 여직까지 자본주의에 잘 
적응해왔듯이 앞으로도 이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고 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이제는 굉장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우리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민족주의를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참 애매하거든요. 한국은 밖에 나가서 매우 미움을 
받는 외토리로 전락하고 있는데, 77그룹에서는 잘산다고 뻐기는 나라, OECD에서는 
돈은 있지만 그야말로 졸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주의가 전세계적인 가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항상 우리만 피해를 
당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만 해왔지 우리의 고통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또 고통을 받은 사람이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사정을 잘 알고 도와주면서 자기도 발전해나가는 그런 성숙된 가치를 못 
가졌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민족주의의 과제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민족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잘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그냥 서구 사람들이 갖고 있던 신민족주의는 필요없다는 식으로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박수) 
  백영서 네. 감사합니다. 이어서 정운영 선생님을 소개드리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정운영 선생님은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이시고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신문사의 
간판 논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중성을 확보한 경제평론으로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주제 중의 하나인 ‘IMF시대’가 경제학과 관련된 
것인데 앞에서 토론하신 분들 가운데 아쉽게도 경제학 하시는 분은 없었죠. 그런 
점에서 중요한 발언을 해주실 걸로 기대합니다. 
  정운영 지금 이 자리의 제 심사가 다소 불편합니다. 제가 무엇인가를 오해하지 
않았느냐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참담한’ 기분 같은 것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먼저 그 오해에 관해서는 당초 주최측이 저한테 연락할 때 
‘종합토론’이라고 하기에, 저는 주제별 토론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했거나 
혹은 해결하지 못한 어떤 거창한 문제를 놓고 종합토론에서 저희가 ‘최종판정’을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저희 임무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앞에서 다 논의한 터라 종합토론에서 특별히 판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해한 것이구요. 그리고 토론회가 시작된 오후 1시부터 
지금까지 거의 여섯 시간을 방청석에서 쪼그리고 기다린 뒤 겨우 10분 발언의 
차례가 돌아온 점입니다. 그래서 참담한 심정입니다.(웃음) 
  종합토론의 절차에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말씀을 세 대목으로 
나누겠습니다. 첫째 부분은 주제와 토론회의 ‘형식’에 대한 것이고, 둘째 부분은 
발제 ‘내용’에 대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토론 전반에 대한 제 ‘소감’입니다. 
  우선 형식의 문제로서 토론회 주제인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 
전환’이라는 제목이, 아까 어느 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앞뒤가 썩 어울리는 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IMF시대는 어차피 과도기적인 시기이고, 그 체제 
아래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언젠가는 끝날 고통입니다. 더욱이 
전세계가 모두 IMF한파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우리가 그 덫에 걸린 
것입니다. 거기 비해서 세기말 문명의 문제는 훨씬 심각하고 장엄한 현안입니다. 
막말로 “그 불결한 IMF 따위를 감히 장엄한 문명 전환과 비기다니” 하는 것이 
솔직한 제 심경입니다. 그러는 가운데도 언뜻 이런 생각이 스치는군요. 빌리 
하스(Willy Haas)의 책 『세기말과 세기초: 벨 에포크』(까치 1994)를 보면 
지금부터 100년 전인 1890년대부터 1910년대 전반까지의 4반세기가 이른바 벨 
에뽀끄(Belle Epoque), 즉 ‘좋은 시대’인데 이때 각종 문예사조를 비롯해 
음악·연극·영화·건축·조각·의상 등 문화예술 전반에 꽃이 피었답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생산력에 힘입어 그 조류가 다분히 퇴폐적인(d럄adent) 방향으로 
흐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그렇게 신나던 시절이 없었다는데, 
정작 유감스런 일은 그놈의 문화가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한 세기 전의 이 불길한 전례와 비슷한 어떤 징후들이 흔히 팽 드 
씨에끌(fin de si뢢le)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세기말’ 세태에 엿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엉뚱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당시의 데까당스 조류와는 
혈통이 크게 다르겠습니다만, 오늘 우리의 생활과 정신을 휩쓰는 각종 ‘포스트’ 
사조를 저는 아주 불길하고 불순하게 바라봅니다. 1890년대라면 제국주의의 
절정기로서 오늘의 유행인 신자유주의의 할아비쯤 되는 자유주의 사조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유’의 특권으로 지구를 나눠 
먹는 식민지 강탈을 개시했는데, 실제로 그것은 지구를 평정한 유일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지금 우리한테 강요하는 경쟁력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즉 강대국은 
강하고 약소국은 약하므로 약육강식의 질서에 따라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식은 개인의 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져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게 
마련이라는 소위 사회적 다위니즘(social Darwinism) 설교가 판을 치는데, 우리는 
그것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행여 이런 불쾌한 대비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 인류는 100년 전에 당했던 그 참혹한 재앙을 
다시 부를지 모른다는 요망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제목에 시비를 걸면서도, 
제목이 던지는 제법 심각한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형식에 대한 다른 하나의 트집은 네 명의 발제자 가운데 문학평론가가 두 분, 
사회학자가 두 분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IMF 같은 주제가 들어 있다면 아무리 
경제학이 ‘사양 업종’일지라도 경제학자 하나쯤 넣어주어야 구색이 
맞는데,(웃음) 문학평론가와 사회학자가 나눠 먹은(?) 것이 못내 섭섭합니다. 
그리고 문명의 물적 토대가 경제라는 식상한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더라도, 이 
논의에 필요한 경제학의 몫은 분명히 있을 듯합니다. 다만 IMF사태 전후에 
경제학자의 전망이 하도 빗나간 터라, 경제학 푸대접에 대한 이런 원망의 말씀을 
꺼내기조차 민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둘째 부분인 발제 내용에 대한 느낌입니다. 발제자 네 분이 공통으로 거론한 
문제의 하나가 시장경제에 대한 경계입니다. 시장 기제를 별로 신용하지 않는 
저로서는 솔직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 아래서도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 시장경제론’이 불도저처럼 나라 경제를 누비는 터에 “어이, 
시장이 전부가 아냐. 조심해”라는 경고 메씨지를 여기서 듣게 된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시장 ‘밖에서의’ 경계만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의’ 
반성이나 비판까지 곁들였더라면 토론이 한결 돋보였을 듯합니다. 
  네 분의 발제자가 모두 언급한 다른 하나의 요소가 맑스주의인데, 이것도 참 
‘신통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주책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합니다만, 언젠가 
김수영(金洙暎) 시인이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진지한 문학 얘기가 오가는 일은 
포화가 작열하는 메콩강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이나 드물다고 한 말이 
기억나는데, 요즘 진지한 맑스주의 얘기를 듣기가 정말 메콩강의 진주만큼이나 
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토론과는 무관하게 요즘 맑스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들고는 합니다. 먼저 젯상에 올리는 
북어처럼 맑스주의라는 것도 그저 구색을 맞추려고 올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오늘 발제한 분들께 하는 얘기는 ‘절대로’ 아닙니다만, 
이땅에서 맑스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가끔 맑스를 들먹임으로써 극우의 
딱지를 피하려는 지식인의 약삭빠른 처세 같은 것이 엿보이는데, 이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시장 얘기를 했으니까 맑스주의 얘기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양심(兩心)의 표출이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아주 
드물고 우직하게는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불사조처럼 언젠가 홀연히 
사회주의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처절한 ‘연민’으로 그런 얘기를 
꺼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추리가 들어맞든 오늘의 토론은 대체로 시장도 문제가 
많지만 역사적 사회주의도 틀렸다는 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주제를 요리하는 ‘기술’과 관련하여 한마디 보탤 말씀은, 제가 백낙청 
선생님보다 먼저 얘기하기 때문에 형편이 매우 불리한데, 발제자 네 분이 모두 
백선생님을 거론하거나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거 왜들 이러시나” 하고 
생각해보니,(웃음) 하나는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한테 보내는 의례적인 덕담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백선생님이 지닌 학문적인 관심사나 실천의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는데…… (청중에게) 글쎄, 어떤 쪽이 맞습니까?(웃음) 
  발제와 관련한 마지막 잔소리로 문명 전환의 방향이랄까 우리 사회의 좌표랄까, 
이에 대해서는 네 분의 모색이 모두 달랐습니다. 어떤 분은 소국주의를 제시했고, 
어떤 분은 생명공동체를 거론하고, 어떤 분은 사빠띠스따(Zapatista) 경험마저 
인용하고, 또 어떤 분은 국가와 생활의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모두가 옳은 
말씀이기도 하려니와, 여기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토론하는 자리도 아니어서 
제가 특별히 무슨 말씀을 더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소국주의 발상이 이윤의 
잣대로 세계시장을 통합하고 민족국가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탐욕 본능을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은 듭니다. 그렇다고 대국주의가 살길은 아니겠으나, 소국을 
소국으로 가만두지 않는 자본주의 세계체제(capitalist world-system)의 생리를 
감안한다면, 소국주의 추구는 자칫 안만 계산했지 밖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은 
결과일지 모릅니다. 
  시간이 다된 것 같은데 세번째 부분에 대한 얘기를 조금만 하겠습니다. 
종합토론에서 뒤늦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절차에 어긋납니다만, 문제제기 
형식으로 몇마디 소감을 말씀드리지요. 백영서 교수께서 아까 제게 경제를 
공부했으니 IMF 얘기를 하라고 했는데, IMF라면 솔직히 신물이 납니다.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많이 읽고 쓰다 보니 이런 자리에서는 오히려 문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저와 다른 동네에 사는 이 양반들은 세기말의 
문명 전환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많이 궁금했는데 사실은 많이 듣지를 못했습니다. 
앞의 빌리 하스 책에서 “어떤 사물이 불멸을 추구하려면 먼저 그 시대의 죄를 
속죄해야 한다”는 프란쯔 베르펠(Franz Werfel)의 근사한 경구를 읽었습니다. 
여기의 어떤 사물을 어떤 사상으로 고치면 이 말을 인용한 저의 의도가 한층 
분명해질 듯합니다. 문명의 불멸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다음 시대의 문명을 
얘기하려면 먼저 이 시대의 죄를 보속해야 하는데, 의문은 우선 이 시대의 죄가 
무어냐는 것입니다. 오늘 토론의 범위 내에서 그것은 IMF일 수도 있고, 대국주의일 
수도 있고, 시장경제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민족문학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공부하는 경제학에는, 비록 주류의 관점은 아닙니다만,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노동에 대해 자본이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자본 중에도 최근에는 생산자본에 대해서 투기자본이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투기자본의 생산자본 포섭(subsumption), 이것이 아마도 이번 세기말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경제 현상의 하나일 듯한데요, 어쩌면 이것이 자본주의 
종말, 좀 심하게 말해서 문명 종말의 징후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지요. 전후의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나는 1970년대 이래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기껏해야 3% 안팎이고, 라틴아메리카는 거기도 못 미치기 일쑤이며,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는 생계조차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만은 
근년에 10%대를 육박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는 지구의 생산력 벨트이고, 생명 
벨트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를 먹여 살리는 아시아 경제를 미국을 위시한 
세계의 투기자본이 죽이고 있습니다. 투기자본이 지구의 생산력을 파괴하는 
행위야말로 문명 전환기의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가장 큰 범죄입니다. 그 죄의 벌이 
어떤 것일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경제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과연 무엇을 이 시대의 죄로 규정하는지, 혹은 경제가 들이대는 이런 
난제에 어떤 대답을 마련하고 있는지 의문이 많습니다. 역사학자 홉스봄(E. 
Hobsbawm)처럼 사회주의 ‘불사조’의 신화를 간절히 기대하든, 정치학자 
헌팅턴(S. Huntington)같이 앵글로-쌕슨 문명의 패권 이양에 완강하게 저항하든 
여하간 세기의 전환기에 접어든 우리에게 이 지구의 장래에 대한 메씨지 청취는 
절실한 요청입니다. 
  시간이 많이 넘었을 텐데, 사회자께 조금만 양해를 구합니다. 문명 전환의 
의미에 이어 그 방법에도 점검이 필요합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의 
사대부는 문자를 독점한 뒤, 이를 지배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글을 못 배워 
개명의 혜택에서 제외된 백성들은 양반의 문자 위력에 굴복했는데, 지금은 누구도 
문자를 독점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는 없는 세상입니다. 그 대신 돈을 
지배함으로써 사람을 지배합니다. 오늘 우리가 조선 지배층의 문자독점 횡포에 
고개를 젓는 것처럼 한 세기 뒤의 우리 후손들도 우리를 향해 이렇게 낄낄댈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조무래기들이 동화책을 들추면서 “야, 이거 봐. 우리 선조들 
참 웃긴다. 글쎄 100년 전에는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주물렀대. 그전에는 
글자를 독차지한 사람들이 그랬다는 거야.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있었다니”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행여 그렇게라도 삶의 가치에 변화가 생기면 문명 종말의 위협과 
위험에 어떤 구원이 찾아질지 모릅니다. 반면 오늘 우리가 몰두하는 축재(蓄財)의 
권세와 미망에서 깨어나지 않을 때는 100년 뒤의 후손들이 결코 선조들의 실수 
얘기를 꺼내지 않을 테고, 그들 또한 그 ‘바보짓’을 여전히 계속할 것입니다. 
전환이고 이행이고 혁명이고 간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이런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고, 바로 이 변화에 자양을 공급하는 것이 지식인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식인의 문제와 관련하여 유감스럽게도 사회과학은 한물갔다는 생각입니다. 
투기성 금융자본이 기승을 부리는 한 특히 진보적 사회과학은 당분간, 그 당분간이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회 감시와 비판이라는 그 본연의 
기능을 되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맑스는 자본주의 정치경제가 끝나면서 
정치경제학도 끝난다고 말했는데, 돈 놓고 돈 따먹는 투기자본주의 경제 아래서 그 
경제학이 끝나기는 어렵고, 더구나 돈에 대한 거역을 가르치는 체제저항적 
사회과학이 살아남을 길은 더 막연합니다. 그래서 혹시 구원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문학이나 예술의 몫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김사인 선생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쪽 동네도 아주 복잡하더라구요.(웃음) 점잖은 자리에 상소리가 됩니다만, 
소비자의 처지로 보면, 오늘의 각박하고 황폐한 삶에서 문학은 자칫 
‘마스터베이션’ 충동이기 쉬운데, 우리는 지금 그 자극과 배설조차 고마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정래(趙廷來)의 작품을 읽은 학생들은 적어도 
얼마 동안은 “아아, 우리의 형들이,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이렇게 싸우다 
갔구나” 하며 이 척박한 땅에 스민 민족의 비원을 되살릴 것입니다. 그들이 
다음날 즉시 전자오락실로 달려갈지라도, 문학이란 간접체험을 통해서 잠시나마 
‘뜨거운 가슴’을 느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소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물간(?) 사회과학보다 차라리 문학 쪽에 구원을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입니다.(웃음) 피상적인 관찰임을 전제하고 드리는 
말씀인데, ‘창작과비평’ 그룹이랄지 ‘민족문학’ 그룹이랄지 아무튼 이분들의 
논의에 대해 국외자가 느끼는 감정의 하나는 분단사회의 특수성을 자본주의 지배의 
일반성에 비해 과도하게 강조하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저의 관찰이 사실이라면 
방법론적 재점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분단사회이기 때문에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은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닌 서구자본주의 사회를 
관철하는 법칙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진단과 처방이 나오는 듯한데, 
저는 상당 부분 그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그런 접근방법에는 상당 부분 
동의를 유보합니다. 자본주의 지배의 일반성이라는 원칙 내에서 분단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행여 그 특수성을 일반성으로 대체하거나 혹은 양자를 
대립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재생산의 본질을 오해하거나 간과한 결과일지 모른다는 
제 나름의 염려 때문입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박수) 
  백영서 워낙 오래 기다리셨다니까 통제하기가 힘드네요. 자, 마지막 분, 백낙청 
선생님은 편집인이니까 알아서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백낙청 저도 처음부터 나와서 한 분의 기조연설과 세 분의 발제, 그리고 
약정토론자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쌓였습니다. 게다가 
종합토론에서 다른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까 그분들 말씀에 대해서도 
논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10분밖에 없다는 것이 저도 다소 ‘참담한’ 
기분입니다.(웃음) 하지만 저는 주최측이기도 하니까 시간을 정확하게는 못 
지키더라도 지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처지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가운데서 두 
분의 얘기, 혹은 두 대목에 관해서만 우선 말씀드리고 혹시라도 오늘 일진이 
좋아서 마이크가 제게 다시 돌아오면 그때 다른 얘기도 해볼까 합니다. 
  두 가지 중 하나는, 최원식 교수의 기조발제에는 약정토론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논평을 자세히 해줄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하나는 제 분야가 문학이기 때문에 아까 임규찬 선생의 민족문학론에 관한 
발제와 그에 뒤따른 토론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리는 것이 제 임무인 듯합니다. 
사회자께서도 아까 그렇게 주문까지 하셨으니까 무언가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먼저 민족문학 논의에 대해서 몇가지만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박혜경 선생이 논평하는 과정에서 민족문학론을 펴는 사람들이 아직도 민족을 너무 
신성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있었지요. 거기에 대해서 임규찬 선생은 
‘민족주의와 다른 이념의 창조적 결합’을 위해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답하셨습니다. 제가 거기에 덧붙일 것은 이 고민이 비단 9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적어도 해방 직후부터, 우리 문학에서 민족문학운동이 벌어지고 민족문학 
논의가 시작되면서 쭉 계속되어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민족문학론에서는, 
적어도 어느 수준 이상의 논의에서는, 민족이라는 것이 신성시되거나 절대시된 
일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좀더 애정과 
성의를 갖고 그동안의 논의를 점검해보시면 금방 확인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두번째는 신세대문학에 관한 논의였는데요. 저는 임규찬 선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아니, 신세대문학에 대해서 저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 있을까? 
민족문학론이 자기반성을 한다면서 너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조금 더 
들어보니까 임규찬 선생이 말씀하시는 ‘신세대문학’은 아주 특수한 의미인 것 
같아요. 거기서 공선옥은 물론 빠지고, 신경숙과 은희경이 빠지고, 윤대녕도 
빠지고…… 그러니까 연령적으로도 이들보다 더 아래 세대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그중에서도 특수한 경향, 물론 요즘 크게 유행하는 경향이겠습니다만, 그런 것에 
국한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생각한 것은 만약 
그렇다면 ‘신세대문학’이라는, 이건 저널리즘에서 만들어가지고 유행시킨 
용어인데, 이걸 그대로 받아서 쓰기보다는 조금 더 특정 작가들을 중심으로 성격을 
규정해서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마치 민족문학과 젊은 
세대의 문학이 서로 대치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80년대 문학이라든가 
90년대 문학이라고 할 때에 그 연대에 들어와서 활동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문학을 
중심으로 너무 국한시켜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령 우리가 
80년대 문학의 성과를 말한다면 이미 50년대말부터 활동해온 고은 시인이나 신경림 
시인, 또 80년대에 들어와 『장길산』과 『무기의 그늘』을 완성한 황석영 같은 
소설가, 이런 사람들의 업적을 빼고 과연 우리가 80년대 문학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90년대 민족문학론을 얘기한다면, 제 경우 활동이 
부진해서 미안하긴 합니다만, 거기에는 당연히 저 같은 사람도 90년대 평론가로 
자처하고 있고 90년대 문학의 일부로 끼워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웃음)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너무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말로는 편협한 문학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한 시대의 문학적 성과를 말할 때는 시·소설 등 그야말로 
순문예적 장르에 속하는 작품만 가지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90년대에 
들어와서, 또는 그전부터 우리 문학에는 시·소설·희곡만이 아니라 가령 90년대의 
기행문학이라든가 자전적 에쎄이, 80년대의 르뽀문학 같은 분야에서도 훌륭한 
업적이 많이 나왔고 우리 문학의 중요한 자산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80년대 문학을 얘기하든 90년대 문학을 얘기하든 그런 것도 포함해서 논의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김사인 선생이 임규찬 선생더러 ‘왜 백낙청은 비판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고, 조금 아까 정운영 선생도 제 이름을 들먹이셨는데 임규찬 선생 
답변을 제가 대신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닙니다만, 짐작컨대 80년대에 하도 혹독한 
비판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요즘 와서는 미안해서 좀 봐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제가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 하면, 혹시 토론자들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러분들이 창비에서는 백아무개 하면 무조건 봐주고 떠받들고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하실지 몰라서 말씀드리는데 그 점은 사실과 다릅니다. 창비 
지면을 지켜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백아무개에 대한 가열한 비판이 80년대는 
물론이고 90년대 들어서도 계속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런 개방성이라는 면에서는 
다른 어느 잡지보다 활발하다고 저희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최원식 교수의 기조발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선생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와 함께 창비 일을 하고 있어서 그동안의 최교수 작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편인데요. 이번 발제에서 저는, 특히 대국주의와 소국주의의 
내적 긴장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 그간의 최원식 선생 작업에서 새로운 
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새롭다기보다는 적어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 
상당히 참신한 문제제기였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최교수 자신이 끝에 가서 저의 
‘복합국가론’이라든가 ‘한민족공동체론’에 대해 언급을 하셨습니다만, 제가 
어떤 데서 ‘우리 한국이 세계체제 속에서 너무 잘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못살지도 않는 나라로서의 이점을 살려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뭔가 새로운 모범을 
전세계에 보여주자’고 했던 발상과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이 
문제의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개념 규정이 좀더 엄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대국주의에 대해서도, 그것이 아까 이미경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패권주의적인 대국이 되려는 것을 대국주의라고 하는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부국강병론 자체가 곧 대국주의인지, 이런 것이 좀더 
분명해졌으면 좋겠고요. 특히 소국주의의 경우에는, 최선생은 제목에 ‘소국주의 
추구’가 아니라 ‘대국주의와 소국주의의 긴장’을 말씀하셨고, 또 결론에서도 
대국주의도 소국주의도 아니고 그 둘을 종합할 것을 주장하셨는데, 실제로 
소국주의 자체를 추구하는 듯한 인상도 더러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발제에서 사용되고 있는 소국주의라는 개념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제가 볼 때는 소국주의의 개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하나는 
기존의 세계체제 속에서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문명 전환’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궁극적인 목표로 삼을 필요가 없다, 또는 대국주의 이념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함직한 소국주의, 다른 하나는 궁극적으로 바람직할지 몰라도 
아직은 현실이 허용하지 않아 우리가 섣불리 추구할 것도 아닌 소국주의, 이렇게 
둘로 나눠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령 작고도 단단한 
나라라고 할 때 쉽게 떠오르는 것이 스위스나 북구 나라들, 네덜란드 등 베네룩스 
나라들같이 작으면서도 부강한 국가들인데, 그들은 역시 세계체제 속에서 
부국강병에 성공한 사례들입니다. 또 그와 성격이 좀 다르고 더 낮은 위상이지만 
우리 현실과는 훨씬 가까운 예가 타이완일 터인데,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분업구조에 안주하는 상태에 대해서는 최선생 자신이 분명히 우리가 
지향할 소국주의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장기적으로 지향할 면이 많은 소국주의로는 가령 지금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에서 『녹색평론』 같은 잡지가 강조하는─새로운 안빈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그런 것이 있고…… 또 기조발제에서는 중세 안빈론을 언급했습니다만, 
중세보다 더 올라가서 노자(老子)가 말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 즉 나라는 작고 
인구는 적은 것이 좋다는 사상과 통한다고 보는데, 저는 여기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볼 만한 바가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장래의 ‘작은 나라’는 
어디까지나 전지구적 인류공동체의 일부이지 옛날식의 고립된 공동체와는 달라야 
하고, ‘적은 수의 백성들’ 역시 세계시민으로서의 식견과 저항력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 전제조건으로서 첫째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해야 하고, 둘째로는 과학기술과 인간과의 관계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과학기술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체제의 변화 내지는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소국주의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더 세분하고 더 발전시켜서 생각한다면 소국주의와 대국주의 간의 
긴장이 정확히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추구할지에 대해 중지를 좀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 나름으로 생각한 바가 아주 없지도 
않습니다만, 옆에서 지금 사회자가 뭔가 위협적인 몸짓을 해대고 있어서 이만 
그치는 게 좋겠습니다.(박수) 
  백영서 감사합니다. 대국주의, 소국주의 말이 나왔지만 대물들 세 분이 
논평하시는 바람에 제가 시간 통제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제 주제 발표자들 
중에서 코멘트를 하실 분은 하시고 다음에 청중석으로 가겠습니다. 임규찬 
선생님께서 하시겠습니까? 
  임규찬 제 발표와 직접 관련지어 언급하신 백낙청 선생님의 발언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발표문에서 90년대 작품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충분히 농익은 논의를 펼치지 못했기에 신세대문학과 관련된 여러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관용적으로 통용되는 신세대문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관계로 아까 
토론과정에서 이것과 신경숙·은희경 등의 작품의 변별성을 뒤늦게 지적하는 등 
애매함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들 외에도 90년대에 등단한 작가들간에도 
역시 질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러한 분석으로까지 정치하게 나아갈 때야 비로소 
90년대의 새로운 문학적 징후라는 것도 그 정체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얼마간 
제 개인적인 느낌을 다소 성급하게 일반화한 면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청중 저는 김영택이라고 합니다. 아까 정운영 교수님께서 토론회의 제목이 잘 안 
맞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문명은 꽉 차 있기 
때문에, 있는 대로 팽창해 있기 때문에 곧 터지고 말 것이고, 그러면 분명히 
새로운 문명이 나올 텐데 지금 IMF를 맞은 것은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운영 선생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제는 
이데올로기에서 경제가 지배하는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IMF 얘기도 
나오는데 저는 이것도 곧 끝날 거니까 그렇다면 곧 새로운 이념이 필요할 것 
아니냐, 본질적으로 인간의 문제로 새로운 이념이 귀결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그럴때 그 인간의 문제가 어떻게 제기될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전개될 
것인지 여쭙고 싶고요. 그리고 저는 세상 만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자본과 경쟁력이 노동을 지배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자본에 예속되어가고 인간은 계속 황폐화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청중 성균관대 4학년 임동석이라고 합니다. 다들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먼저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가 ‘창비’ 통권 100호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거잖아요.(박수) 통권 200호쯤 될 때는 방청석의 젊은 사람들과 단상의 
선생님들이 바톤 터치를 해서 밝은 과제로 토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IMF사태 
때문에 현재 경제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지만 저는 분단의 현실에서 
앞으로 창비가 풀어가야 할 과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편집인인 백낙청 
선생님이나 주간인 최원식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청중 김명인입니다. 저도 80년대 소장평론가의 한 사람인데, 80년대 
소장비평가들의 이론은 딱히 민족문학론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민중적 민족문학론, 노동해방문학론, 민족해방문학론, 민주주의 민족문학론 등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민족문학론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80년대 비평가들의 내용적 질의 특수성이 퇴색하고 붕괴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것은 객관세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결과이기도 하고, 객관세계 
자체의 힘에 의한 파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80년대의 악령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처럼 욕을 먹고 있는데 저는 80년대 소장비평가들이 
성취한 바는 없는가 하고 약간의 항변을 하고 싶습니다. 우선 80년대 
소장비평가들은 문학을 하기 보다는 운동을 한다는 의식이 더 강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운동을 하는 것이었지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소장비평가들과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긴장이 없었다면 백낙청 선생님이 이 
자리에서 스스로를 90년대 비평가로 불러달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번째는 민족문학론의 위기냐, 민족문학의 위기냐 하는 점을 명확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족문학론의 위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컨대 백선생님을 비롯한 
민족문학이라는 커다란 자산 속에서 활동했던 비평가들이 지닌 담론 질서의 
위기죠. 그렇지만 민족문학의 위기라고 하면 그건 이론의 위기가 아니라 문학적 
실체, 현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학적 작업들 전부의 위기인 셈입니다. 끝으로 
민족문학론은 지금 백선생님이 혼자서 감당을 하시고 젊은 평론가들은 뒤따라가는 
형국인데 그 내부에서의 새로운 긴장과 이론적인 전선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영서 감사합니다. 일단 청중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양해 말씀을 드릴 것은 원래 예정된 시간은 7시 30분까지였는데 조금 지났어요. 
하지만 사회자의 직권으로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우선 정운영 선생님부터 
간단하게 답변을 해주시죠. 
  정운영 다시는 차례가 오지 않을 것 같은데, 할말은 많고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데올로기의 시대에서 경제의 시대로 
넘어왔고, 다음은 아마도 인간의 문제가 시대의 과제일 것 같은데 과연 이를 위한 
새로운 이념 창조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경제→인간으로의 
단계구분은 다소 어색합니다만, 질문자의 말뜻은 충분히 알아듣겠습니다. 글쎄, 
거기 이렇게 대답 아닌 변명으로 대신해도 될까요? 로마의 어떤 성당에 예수의 
십자가에 박혔었다는 쇠못을 진열해놓았습니다. 바띠깐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리스도의 손과 발을 뚫은 못이라기에 저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육중한 쇠못이 몸을 뚫고 들어올 때 예수께서 “아버지, 저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르니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빌었다는데, 제게는 그 
고통에 대한 연민에 앞서 대체 인간의 어떤 논리로 그 가이없는 용서와 사랑을 
뒤집겠느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쇠못이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데 “이놈들을 
벌하시라”는 대신 “저들을 용서하시라”고 외친 그 처절한 휴머니즘에 도대체 
무슨 핑계를 대고 고개를 돌리겠습니까? 바로 그 예수의 말씀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진리, 즉 질문자가 바라는 의미의 ‘새로운 이념’ 아니었겠습니까? 
석가모니의 고행과 자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여전히 
평화롭고 정의롭지 않은 것은 그 사랑과 자비의 노력이 아직 열매맺지 못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정말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예수님도 못하고 부처님도 못한 
일을 가지고 저한테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 것은 정말 
말도 아닙니다.(웃음) 아니, 이거, 대단히 죄송합니다. 
  계속 망발이 나옵니다만 예수님도 부처님도 못한 일을 다른 누가 대신했는데, 
그것이 자본입니다. 이를테면 예수께서 이렇게 해야 정의로운 사회가 오나니 내 
말을 따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이 옳은 줄은 알지만 삶이 고단하다든지 
세상사가 뜻같지 않다는 따위의 핑계로 피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자본이 나서서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이대로 하라고 외치면 모두가 따릅니다. 기독교 
사회든, 불교 사회든, 이슬람 사회든, 히말라야 산간의 참선(參禪) 사회든 이 
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느님도 통일하지 못한 것을 자본은 단번에 
통일했습니다. 본의아니게 계속 불경죄(lㄹe-majest?를 짓습니다만 예수님 
말씀보다 집요하고 부처님 가르침보다 끈질긴 것, 그게 자본입니다. 따라서 그 
자본의 이기와 탐욕에 대한 공격이 선행하거나 병행하지 않고는 인간을 개조하여 
정의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조물주의 웅대한 계획조차 실현이 험난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크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혁명이라는 것을 가난의 
결과, 빈곤의 산물로 알았습니다. 혁명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가 밥을 
달라며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혁명의 이런 고전적인 공식이 
1968년 ‘빠리의 5월’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풍요를 가장 크게 
누리는 대학생들이, 지식인들이, 그러니까 밥걱정을 않던 사람들이 이놈의 문명, 
이놈의 제도가 이제 보니 전혀 사람 살 터전이 아니라면서 항거의 불씨를 지핀 
것이지요. 최근 어디에 글을 쓰면서 68년의 모형을 염두에 두고, 그때는 그것을 
한낱 해프닝으로 생각했지만 30년이 지난 오늘 그것은 매우 소중한 체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질문한 분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도망가겠습니다. 프랑스든 어디든 대학생은 등록금을 대줄 만한 부자 아버지를 
두거나 달리 어떻게 학비 마련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사회의 은혜를 입은 
계층인데, 이들이 그 풍요와 기득권을 거부하며 저항의 봉화를 올렸다면, 그 
교훈이 30년 뒤의 우리에게도 전연 남의 일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자본의 질곡은 
물론 집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저항도 강인할 수 있습니다. 정(正)에는 
반(反)이 따르고, 정이 강할수록 반도 거세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변증법의 교훈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두번째 질문은 경쟁력 지배와 견제의 
조화로운 해결책 문제인데, 솔직히 말씀드리거니와 이런 자리에서 당하는 가장 
곤혹스런 질문의 하나가 바로 그 대책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대책이라면 저보다 
장관의 소관일 것 같습니다. 글쎄, 저를 입각시켜주면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보지요.(웃음) 
  백영서 다음에 문학 관계는 어느 분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백낙청 저한테는 지나가면서 하는 질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만, 이럴 때 
마이크를 안 잡으면 기회가 안 돌아올 것 같아서……(웃음) 아까 분단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창비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 주문에 제대로 부응한다기보다 이제까지 나온 
얘기에 포괄적으로 논평을 하고 싶습니다. 
  아까 정운영 선생께서도 처음에는 오늘 토론회의 큰 제목에서 IMF와 문명 
전환이라는 것이 안 맞는다고 하셨다가 다시 생각해보면 맞는 것도 같다고 
하셨는데, 청중석에서 맞는다고 말씀해주셔서 저는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은 제목은 아닙니다만, 분명히 관계가 있고 우리가 관계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얼마만큼 제대로 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까 질문하신 분도 
IMF사태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정말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IMF시대의 당면과제 해결과 문명 전환이 연결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거기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가령 IMF 극복 노력도 최원식 
선생이 말하는 대국주의 이념에 따라서 무조건 고도성장시대의 복원을 꾀한다든가 
또는 정반대로 비현실적인 소국주의 이상을 추구한다고 할 때는 당면 대책을 문명 
전환으로 연결시킬 수가 없다고 하겠죠. 더구나 대국주의도 극단적인 대국주의, 
우리 분수에 넘치는 큰 부자가 된다든가 흡수통일을 통한 강대국화 같은 헛꿈을 
꾼다든가, 또는 소국주의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소국주의, 지금 현실에는 맞지 
않는 소국과민의 꿈을 그대로 실현하려고 한다면 IMF위기를 극복하는 일조차도 
실패하고 완전히 골병이 들기 십상일 것 같아요. 반면에 현재 세계체제의 분업체계 
안에서 가능한 ‘타이완식’ 소국주의랄까 부국강병론을 추구한다면 어느정도 
현실적응은 가능하겠지만 문명 전환이라는 큰 사업에서 무슨 뜻있는 몫을 해낼 
수는 없겠지요. 여기서 바로 소국주의와 대국주의 간의 긴장이라는 것이 
중요해지고 애초에 제가 말했던 대로 너무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나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그런 나라 특유의 이점을 살리는 일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현존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응하면서 일정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라면 ‘대국주의’라는 것도 너무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하신 이미경 선생 말씀에 동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왕 얘기를 하는 김에 그동안 논의가 많이 된 ‘시장경제’에 대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시장이라는 것과 
시장경제가 일치하는 면도 있지만 이것을 분리해서 볼 필요도 있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시장경제라는 말은 아까 어느 분도 지적하셨습니다만,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대명사로 쓰이고 있고, ‘시장’은 또 ‘시장경제’의 준말로 곧잘 
쓰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행은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이 본래 
의미의 시장과 합치하는 면도 있지만 이를 억압하는 면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시장이라는 것은 원래 자본주의 이전에 아주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 사회주의가 되든 뭐가 되든 인류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서 만나고, 물건을 사고 팔고 
바꾸기도 하는 것은 인간의 공동체생활에서 매우 긴요한 일부인데,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싹이 터서 이것을 발전시켜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자유로운 만남과 교역의 터로서의 시장을 억압하고 그걸 전혀 다른 
성격의 것으로, 오히려 교환의 자유가 억제되고 독점이 판을 치는 곳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막연히 시장경제라고 말하고 
‘시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의 극복을 말하다 보면 
굉장한 혼란이 생길 수도 있는데, 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은 10년, 20년 
단위로 볼 때는 엄연한 현실이고 최원식 선생 말대로 그 바깥으로 도망갈 길이 
없지만 100년, 200년 단위, 아니 100년이 채 못 되는 단위로 보더라도 인류와 안 
맞는 체제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장경제는 극복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그 논리에 적응하면서 시장경제를 이용하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의 
장기적인 목표는 오히려 본래 의미의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도 시장경제는 극복해야 
한다는 쪽으로 확실히 잡아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운영 백선생님 말씀에 10초만 토를 달아도 되겠습니까? 지금 말씀을 
경제학적으로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물건을 교환하는 시장은 고대에서 현대 
사회까지 ‘초역사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바꾸는 시장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시장입니다. 오늘 토론에서 거론된 시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즉 이윤 동기로 작동되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시장입니다. 이처럼 시장이라는 하나의 말에 담긴 뜻이 여럿이므로, 어떤 
시장이냐를 분명히해야 논의가 정확해집니다. 어떻습니까, 경제학이 제법 쓸 
만하지요?(웃음) 
  백영서 감사합니다. 오늘 긴 시간 동안 토론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창비와 
관련된 여러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여러 명사들, 우리가 잘 아는 분이 많이 
들르시고 중간에 오신 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계속 방청하신 분들이 몇분 계신데 그분들 가운데서 한 분을 모셔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이부영 의원님, 맨 앞줄에 계시면서 시종 진지하게 
참관하셨는데 논평해주실 것이 있습니까? 
  청중 국회의원 이부영입니다. 저는 최원식 선생님의 소국주의에 관한 담론은 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러내놓고 말씀은 안하셨지만 아마 이런 
문제제기는 통일된 이후 어떤 모형의 국가이념을 가질 것이냐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체제하에서 남북 양쪽에서 추구했던 부국강병론은 상당히 
민족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민들을 어떤 환상에 젖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앞으로 등장할 통일국가가 부국강병론을 내세우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중국·러시아·일본, 심지어 미국까지도 아마 통일이 
조성되려는 그 조건 자체를 막으려고 할 겁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의 
결론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무력만 가지고 있으면 됐지 
우리가 남을 침략할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는 한없는 높은 문화, 한없이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앞으로 우리 통일된 한반도가 지향해야 할─그것을 꼭 소국주의라고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우리 분수에 맞는 국가상을 가리킨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최선생님의 말씀과 한번 연관시켜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울러 오늘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 전환’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면서 북에 대한 언급이 거의 안 나오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IMF체제하에서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북이 겪는 
고통이 앞으로의 우리의 여러 모색과 무관한 것인가, 물론 우리가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기말의 문명 전환을 얘기하면서 북을 너무 소홀하게 
다룬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당면한 남북의 위기가 거의 동시에 
닥쳐온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전세계가 냉전시대를 극복하고 그후를 
모색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냉전시대를 한치도 넘어서지 못한 데 따르는 업보 
같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남북이 군비나 군사대결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넣는 것을 보면 우리가 겪는 이런 업보가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밖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현재 우리에게 그런 여러가지 좋은 생각들, 새로운 모색을 
실천하고 뚫고 나갈 주체가 마련되어 있느냐? 정치주체라고 해도 좋고, 이런 문명 
전환을 이루어나갈 주체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백영서 그러면 최원식 주간님께서 마지막 발언을 해주시죠. 
  최원식 여러분의 논평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까 임규찬 선생의 발제에 대한 
토론시간에 저의 기조발제에 대해 질문했던 성대 학생 계십니까? 그 질문을 
듣다가, 특히 몽골에 대한 감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감탄이냐고 날카롭게 따지는 
대목에서 ‘들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현백 선생님도 저의 소국주의 
재평가가 민족주의로부터 진짜 벗어나자는 것인지 아닌지 약간의 의문을 
표시하였습니다. 발표에서는 소국주의와 대국주의의 내적 긴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둘 사이에서 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발제 
서두에서 저는 오늘 발표가 제 자신의 강렬한 대국주의적 지향에 대한 일종의 
고별사 또는 작별의 예식이라고 지적했는데, 아직도 제 내부에는 대국주의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국주의의 재평가를 내세우면서 몽골에 깊은 
흥미를 느끼는 것도 아마도 좌절된 대국주의의 심리적 상처를 스스로 위무하려는 
무의식적 욕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급변하는 국내외적 상황을 감안하건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추동해왔던 대국주의적 지향을, 개인적인 호오(好惡)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일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단순한 소국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운영 선생이 지적하셨듯이 우리가 
소국으로 가자고 마음먹어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냥 내버려둘 리도 없고, 
타이완처럼 세계체제의 하청국가로 안주하는 소국주의 또한 그리 보람있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이미경 의원의 말씀대로 대국주의를 무조건 
폐기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발제에서 소국주의와 대국주의의 내적 긴장이라는 
목표를 건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적, 특히 백낙청 선생의 자상한 분별이 저의 엉클어진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론은 저의 
동아시아론에서 중요한 준거처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번 발표에서는 버거워 
미뤄놓았던 것입니다. 소국주의론이 제대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도가(道家)를 
비롯해서 중국과 한국의 전통적 정치사상들에 대한 본격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특히 대국주의와 소국주의 사이에서 고심했던 개화파의 사상과 운동 들에 대한 
통투(通透)한 재해석이 절실합니다. 앞으로 논평에서 나온 얘기들을 잘 유념하면서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될지를 좀더 냉철히 점검하여 이 
문제를 더욱 발전시켜볼까 합니다. 
  그리고 아까 어느 학생이 창비 200호 기념 토론회에서는 앞에 앉은 발표자들과 
자리를 바꾸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정말 대환영입니다. 창비 주간으로서 오늘 
행사에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주신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쁩니다. 
200호도 멉니다. 하루빨리 여러분들이 창비를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박수) 
  백영서 감사합니다. 약속한 시간을 넘어 벌써 여덟시가 다 됐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은 물론이려니와 지금까지 남아 계신 여러분의 진지함은 저희 
『창작과비평』 100호 지면에 그대로 반영될 것입니다. 이번 여름호를 
기다려주십시오. 아까 질문하신 학생이 제의한 대로 200호에 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참석해주시고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이것으로 오늘 모임을 끝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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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론 1 
  
  
  이시재 
  
  
  
  종합토론 시간에 별도로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종합토론에서 제기된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나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선 민족주의의 문제이다.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들 모두가 우리의 민족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대체로 공감하지만 민족주의의 대안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한, 민족의 실체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 
공동생활의 기초로서 가족을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민족의 단위로 
볼 때 어느 민족이든 어느정도는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성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존재와 가족주의가 구별되듯이 민족의 존재와 민족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민족중심주의, 즉 민족주의를 기조로 역사를 
해석하고 사회를 편성하는 것은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적이며 부정적인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수세기 
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와 탄압을 받아 지금 전세계에 우리 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민족의 삶의 양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또 국내에 살면서도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의 이동이 심하고, 정보와 교통이 발달하여 교역과 교류가 빈번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치 다민족국가에서 살고 있는 듯이 민족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다른 민족과 공존·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장의 문제이다. 백낙청 선생께서 시장과 시장경제를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을 했지만, 그 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본문에서 시장과 시장경제를 혼동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였다고 생각한다. 국가-시민사회-시장의 3원구조를 
말할 때의 시장은 지배의 공간분할이라는 측면과 사회통합의 원리로서의 
시장경제라는 것을 다같이 포함하고 있다. 폴라니(K. Polanyi)도 
시장(marketplace)과 시장체제(market system)를 구별하였으며, 시장체제는 그 
가운데 자율적인 가격형성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는 반면, 시장은 사회구조의 한 
부분으로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나의 발표문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시장경제이며, 교역의 장소와 기구로서의 시장 일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은 생활·생명을 축으로 
하는 사회편성의 원리를 세우자는 것이며, 또 이것을 바탕으로 시장경제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 발표문에서는 ‘시장경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으나, 좀더 정확하게는 사회구성 원리가 시장경제 원리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하며 생명·생활의 원리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시장경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토론회에서 맑스를 인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정운영 교수의 
질문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맑스주의나 맑스를 
부정하기 위해 맑스를 인용하거나 언급하고자 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이 무너진 이후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변혁을 논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동구와 소련의 붕괴가 맑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맑스주의 이론의 
성패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맑스의 이론은 폴라니나 프로이트, 
혹은 말리노프스끼(B. K. Malinowski)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사회과학의 
이론적 고민을 위한 ‘메타’이론으로서 아직도 가장 좋은 텍스트가 되고 있다. 
발표문에서 맑스를 인용한 것은 맑스의 자본주의 이해가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고, 또 반공산당선언을 제창한 로스토우의 
이론과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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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론 2 
  
  
  백낙청 
  
  
  
  여러 사람이 말한 대로 시간에 쫓겨 충분한 토론을 못한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일일이 되새길 필요는 
없겠다. 다만 한두 가지 덧붙일 기회가 생긴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먼저 민족문학론에 관해서인데, 그나마 종합토론에서 시간을 할애하고서도 
산발적인 논평에 그쳐 논의의 핵심은 비켜가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을 느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민족문학론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민족문학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간판’으로서 가졌던 쓸모는 줄었다는 임규찬씨의 발제에 
동의한다. (다만 그는 “이 말을 하나의 ‘간판’처럼 지나치게 남용하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이는 초점이 불분명한 지당한 말씀으로 들릴 
우려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밝힌 글이 발제문에서 인용한 「지구시대의 
민족문학」이었고, 우리의 민족문학이 ‘남한의 국민문학’도 겸하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벌이자는 제언이었다. 그동안 평단에서 이에 대해 별다른 논의가 
없던 참이라 나는 임규찬씨의 언급이 내심 고마웠고 좀더 본격적인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토론자 한 분에 의한 다소 회의적인 질문이 있었을 뿐 
발제자는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않았으며, 종합토론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길게 
한다는 것 또한 마땅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간판’ 내지 구호로서의 ‘민족문학’은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사의 특성상 ‘국민문학’과 대비되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영어로 
한다면 둘다 ‘national literature’이건만 우리가 굳이 ‘민족문학’을 고집한 
것은 일본국 신민으로서의 국민문학이나 분단국 한쪽만의 국민문학을 거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민족문학의 기본 성격을 고수하면서도 
남한의 국민문학도 겸하자는 제안은 ‘국민문학이 아닌 민족문학’이라는 구호에는 
실질적인 수정을 가하는 일이며, 그야말로 전에 없던 ‘곡예라면 곡예’를 새로 
주문한 셈이다. 이것이 애당초 무망한 놀음인지 아니면 얼마든지 가능할뿐더러 
실제로 90년대의 (비평 담론들을 포함한) 문학적 성과에 이미 어느정도 반영된 
것인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좀더 활발한 토론이 있기 바란다. 
 「지구시대의 민족문학」이 내세운 또하나의 주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문학이 민족의 현실에 충실함으로써 세계문학의 대열에 당당히 참여할 수 
있음을 주로 강조해온 편이지만, 지구시대의 현정세는 민족문학의 이바지가 특별히 
필요할 만큼 ‘세계문학의 대열’ 자체가 몹시도 헝클어진 형국”이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민족문학론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면서도 ‘간판’으로서의 민족문학은 
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세계문학의 위기, 문학 자체의 
전지구적 위기를 말하는 것이 민족문학을 위해서도 때로는 더욱 절실할 법하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이 곧 민족주의 문학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여러 군데서 밝힌 바 있다. 
그 가장 큰 근거는 민족문학의 주된 관심사인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든가 세계문학의 
옹호가 민족주의로써는 해결될 수 없는 과제라는 사실이다. 민족문학 담론이 
계급문제에 여전히 집착하고 환경파괴와 성차별 문제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믿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번 토론회에서 여성문제가 다른 발제자들에 
의해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다. 반면에 환경·생태계운동에 
관해서는 적어도 그 중요성만은 충분히 환기되었다고 본다. 또,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가능성을 두고 토론자들 사이에 뚜렷한 의견차이가 드러나서 많은 
사람에게 생각거리를 남겨주었다. 나 역시 이에 대해 좀더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는데, 특히 노동운동은 부(富)의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지만 그 확대재생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비(非)시장적 연대’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이필렬 교수의 지적이 날카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당장의 실감인즉 두 운동의 연대가 정말 불가능하다면 노동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둘다 큰일난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전자가 분배의 불균형을 약간 
시정한다든가 후자가 환경파괴에 일정한 제동을 거는 ‘개량주의적’ 성과로 
만족하지 않고 계급적 착취가 근절된 사회, 또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진지하게 추구한다면 양자간에, 그리고 다른 모든 체제변혁세력과 연대를 
이룩함이 없이 어떻게 그 지난한 일을 해내겠다는 것인가? 독자적인 무슨 방책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연대가 가능하냐 안하냐를 따지기 전에 ‘어떻게 
하면 가능해질까’를 묻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가령 노동운동이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목표로 삼는다거나 환경운동이 ‘계급적 착취가 근절된 
사회’를 지향하기로 한다면? 혹시 이것이야말로 저들 운동이 이미 설정하고 
있는─적어도 당연히 설정해 마땅한─궁극 목표를 달리 표현했을 따름이 아닌지?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공정한 분배는 분배 그 자체보다도 결국 인간사회의 조화를 
위한 것일 텐데 이것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가 깨어지고 환경이 파괴된 
상태에서 불가능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환경운동이 꿈꾸는 자연과 조화된 
삶이 인간끼리의 계급적 착취가 지속되고 인간사회 내부의 조화가 깨어진 상태에서 
가능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의 확대재생산 추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통의 장기 목표를 
향한 과정에서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중기 목표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보다 더욱 한정된 단기 목표일 경우에는 심지어 환경운동측에서도 한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과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공통의 장기 목표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확고하기만 하면, 중기 목표가 설혹 다르더라도 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포기할 이유가 없으며, 단기 목표를 향한 한시적 유대를 이룩할 때도 
단순히 상대방을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궁극적인 일치를 위한 
자기훈련이라는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또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경우에도 현재 그 
목표로 흔히 일컬어지는 내용을 한번 맞바꾸어 생각해보는 이런 ‘발상의 전환’을 
제안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런 맞바꾸기가 안 먹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혹시 
중·단기 목표가 궁극적인 목표로 잘못 설정되어 있는 게 아닌지 재검토해보자는 
것이다. 
  끝으로 종합토론에서 정운영 교수가 ‘창작과비평 그룹’에 대해 제기한 문제를 
나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도 언급을 않고 넘어갔기 때문에 혹시 그의 비판을 
수긍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없지 않다. 창비측에서는 ‘자본주의 지배의 
일반성’보다 ‘분단사회의 특수성’을 앞세우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였는데, 적어도 우리가 강조해온 분단체제론이나 민족문학론에 관한한 
그렇지 아니하다는 점을 해명하고 싶다. 물론 분단체제론의 발상 자체가 어설픈 
것일 수 있고 발상은 그런대로 인정하더라도 우리의 논의수준이 정교수 보기에 
너무나 미흡할 수도 있지만, 분단체제론이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한 하위체제로 본다는 점만은 나 자신 누누이 강조해온 터이다. 
(세계문학론 및 문학·예술론 일반과 연계된 민족문학론의 경우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리의 논의가 정교수뿐 아니라 사회과학계 전반에 걸쳐 
아직도 제대로 인지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부인 못할 사실이다. 다만 
거기에는 우리 자신의 모자람도 물론 크게 작용했지만 기존의 사회과학 교과서에 
‘자본주의 지배의 일반성’이 한반도에서처럼 작용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논의가 
전무하기나 다름없다는 점도 기여했을 듯하다. 또한 ‘일반성 대 특수성’ 대비의 
바탕에 깔리기 십상인 ‘보편 대 특수’라는 서양 형이상학의 틀 자체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문제제기가 제대로 열매맺거나 전달되지 못한 탓도 없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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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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