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12시 43분 58초 제 목(Title): 한겨레21/신라에 정착한 서역유리병 신라에 정착한 ‘서역 유리병’ (사진/유문유리봉수병. 청색유리잔<왼쪽부터>)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일 듯한 투명한 담청색, 나팔꽃처럼 유연하게 말아올린 주둥이, 진청색 유리로 장식한 손잡이, 중년의 풍만한 여체를 떠올리게 하는 몸체.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용기들은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든다. 대개의 사람들은 경주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는 이런 유리용기들이 우리 선조인 고대 신라인의 손으로 빚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유리병들은 멀리 서방에서 만든 제품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수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박물관 이인숙(49) 학예연구실장은 유리용기들의 세부적인 형태와 기법 따위를 면밀하게 비교 검토한 뒤 이렇게 주장한다. 사실 신라문화에 서역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다는 사실은 고고학계에서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딱히 서역적인 요소를 분간해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역과의 교류를 ‘명백히’ 밝혀줄 수 있는 비단이나 향료 따위의 품목들은 쉽게 썩어버려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금이나 은 장식품 따위의 남아 있는 유물에서는 문화교류의 ‘흔적’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유리제품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고대 문화교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로 여겨졌다. 유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게다가 유리는 흙에 섞인 금속성분에 따라 색깔이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원산지를 비교적 쉽게 추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현재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유리용기류는 대개 4∼5세기경 왕릉급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30개 정도를 헤아린다. 이 실장은 이 시기 고분들에서 발견된 대개의 유리용기류가 후기 로마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로마는 기원전 1세기경 대량으로 유리제품을 만들 수 있는 대롱불기 기법을 발명했다. 당시 귀중품으로 인식되던 유리제품은 로마인들의 활발한 상업활동에 기대어 이집트, 터키, 독일 등 유럽 전역과 흑해연안까지 전파된다. 이 실장은 “경주에서 출토된 것은 형태와 기법상 서로마가 지배하던 4∼5세기경 제품으로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등 동부 지중해 연안의 유리제작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경주 남분에서 출토된 우아한 자태의 봉수형 유리병은 로마에서 생산하던 보편적인 유리용기였다. 이 실장은 로마의 유리제작지와 세계의 박물관을 답사한 뒤 “봉수형 유리병이 이스라엘 박물관과 알렉산드리아시의 그레코-로만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오니노코에 병과 크기, 타원형의 몸체 비율, 기법 등에서 지극히 유사하다”고 결론지었다. 경주 금령총과 합천 옥전고분에서 출토한 반점문 잔도 후기 로마 유리제조의 일반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밖에도 경주에서 출토된 비커 형태의 유리병, 갑골문 형태의 유리병 등도 동부 지중해 연안의 유리산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역만리의 유리제품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동쪽 반도의 끝 신라까지 들어올 수 있었을까. 이 실장은 당시 유라시아대륙의 초원을 지배하며 활발한 교역과 문화를 전달하던 흉노족 등 유목민들의 역할로 추정한다. 뛰어난 기동력을 지닌 이들은 실크로드의 여러 간선 루트를 따라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동북 중국에 이르기까지 서역 문물을 전달해왔다. 똑같은 형태를 지닌 유리병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분포돼 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신라는 중국 동북 지역에 전파된 서역 문물을 해상이나 육로를 통해 수입했을 것이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수입용기’들은 고대 한국의 문화교류와 활동무대가 후대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는 고대의 비밀은 수두룩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서 서역쪽으로 간 물품은 없을까, 서역과의 문화교류가 신라사회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왜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따위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고대 동서 문화 교류의 비밀은 여전히 유리병 속에 갇혀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