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8월 29일 토요일 오전 10시 14분 17초 제 목(Title): 노마 필드/문명론과 자본주의 전지구적 동원(動員)을 향하여 --문명론과 자본주의 노마 필드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산과 미국 대학의 구조 개편 새로운 결핍 담론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경제의 역할을 새로이 강조하기 위하여 과잉노동의 감수성 노동의 종식 승화와 탈승화 정치의 계절 후기 이런 자리에서는, 훌륭한 청중들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되어 영광이라든가 기쁜 마음으로 초청을 수락했다든가 하는 감회를 표명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창작과비평』 창간 30주년을 여러분과 함께 기념하게 된 것이 영광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영예로운 만큼 기쁨은 좀 복잡해진다. 이 잡지가 겪어온 온갖 난관과 한국의 지적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그리고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점일 텐데, 이 잡지도 그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을 한국의 지적 삶의 폭과 깊이를 생각하면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물론 지금이 한국 정치에 있어 중대한 한 순간이라는 점도 있다. 역사와 만나는 희귀한 공적인 작업(전직 두 대통령 및 기타 관련자에 대한 12·12, 5·18 및 비자금 재판 - 옮긴이)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지켜보며 부러움과 우려를 동시에 갖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부럽기 짝이 없는데, 한편으로는 결과가 어찌될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고,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 진행되는 공적인 드라마가 끝났을 때 거기서 밝혀진 사실들이 어떤 장기적인 효과를 가질 것인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같은 우려는 이 시대의 공적인 삶에서 구조와 사건이 갖는 관계에 대한 나의 지속적인 관심의 일환이다. 이 시대는 대중매체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역사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구경꾼의 위치에 서게 된 시대로, 갈수록 사람들이 그때그때의 생존 문제, 바꿔 말해 가난에 쪼들리거나 혹은 가난하기보다는 사실 상당히 유복한 편이지만 역시 일상생활의 관리된 분주함에 시달리느라, 엄청난 역사를 불러일으킨 중대한 사건이나 사태인 경우에도 거기서 생겨난 지식을 기억하고 반추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없게 된 그런 시대인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제몫을 하게 될지 걱정도 해보았지만, 나는 이번의 초청을 있는 그대로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 세계에서 노동이 갖는 위치를 생각하는 일에 여러분의 도움을 청하는 기회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이 점에서 오늘 심포지움의 핵심어, 특히 ‘전지구적’과 ‘문명’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두 단어 모두 곤혹스런 용어다. ‘전지구적’이라는 말은 즉각 ‘지구화’를 연상시키는데, ‘지구화’라는 말은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고 사용하는 논자들의 경우에도, 평등화하는 면은 있겠으나 엄연히 숙명적인 수평적 초거대차원(the sublime)을 함축하며, 이에 반해 ‘문명’은 분명히 수직적이고 위계화하는 초거대차원을 의미한다.註1) 이런 용법에서 지구화는 현재성의 초거대차원으로 여기에 문명이 시간성의 축과 역사적 깊이의 장엄함과 미래의 영광의 언약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연상들에 저항하고 새 연상을 제시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들, 즉 우선 미국, 그 다음으로 일본에서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여기서 일본에 대한 언급들이 한국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내가 과도하게 상정했을 공산이 큰데, 이 점을 비롯하여 여러분이 관심을 가질 법한 모든 다른 문제에 대해 비판적 토론을 기대한다.) 새로 출현하고 있는 과잉노동(과로)과 과소노동의 상황들을 연결지어 생각해보고, 그럼으로써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 ‘새로운 결핍 담론’의 기율에 저항할 필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계급 개념을 버릴 것이 아니라 재구성해내야 하며, 피상적인 탈신비화의 심리적·물적 위험들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자 한다. 여기서 피상적인 탈신비화란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더 정확하지만 껄끄러운 표현으로는 ‘억압적 탈승화’(repressive desublimation)에 해당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산과 미국 대학의 구조 개편 우선 이 글을 쓰는 내가 자리한 위치부터 밝히고 시작하자. 그곳은 미국의 엘리뜨 대학가의 한 구석이다. 바로 이곳에서 나는 ‘지구화’ 현상과 매우 긴밀히 연관된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중인데, 그런 연관은 딱히 지적 관심사 때문도, 그렇다고 증식되어가는 정보기술 때문도 아니라, 구조 재조정의 다양하고 모순적인 현상들 때문이다. 고등교육 역시 사회 전반을 휩쓰는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것은 없다. 정부 역할의 축소는 미국 전역에 광범위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연방정부 예산과 마찬가지로 대학 예산도 진상을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예산 문제 전문가나 예산에 가장 큰 힘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잘 모를 정도다. 경제의(자본의) 작동이란 개개인이나 기관에게는 통제는 고사하고 이해하기조차 힘든 것이라는 이유도 물론 있다. 이와 동시에 최신판 결핍 담론은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으로 근자에 경험한 통제 중 가장 침략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를 정당화하고 있다. 20세기 말에, 그것도 이 세기의 거의 절반 동안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행세해온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좌당 수강인원의 증가, 고용 축소, 시간제 노동자(강사진)에 대한 의존도 상승, 등록금 인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의 비율 감소 등 현재 미국의 ‘고등교육’ 기관에서(고등교육이라는 표현이 지금 얼마나 이상하게 여겨지는지!) 벌어지는 일들을 결핍 담론은 정당화해준다. 막대그래프로도 쉽게 표현되는 이 낯익은 범주들의 역할은 해당 교육기관이 공립인가 사립인가, 엘리뜨 기관인가 대중적인 기관인가에 따라 당연히 달라진다. 그렇지만 -- 고용과 여타 계약관행 및 대학 입학 등에서 흑인과 여러 소수민족 및 여성에게 가해진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불의를 시정하려는 온건하기 짝이 없는 시도인 -- ‘긍정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원칙에 등을 돌리는 미국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이 범주들은 희망의 조건을 대거 말살하고 사회정의에 대한 영원한 냉소주의를 부추기는 효과를 낳는다. 대학교육이 다시금 기득권층의 영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1960년대 후반 및 70년대 초반에 성인이 된 우리 세대에게는, 강요된 역사적 후퇴처럼 여겨진다. 현재의 결핍 담론은 국가를 포함한 모든 기관더러 회사처럼 행동하라고 몰아붙인다. 여기서 모순적이며 따라서 혼란스러운 현상들이 빚어진다. 대학세계 가운데서도 내가 있는 엘리뜨 연구 대학에서는, 고급 고객(학생)을 끌어들이고자 좀더 세련된 교육상품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절약의 필요성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거듭 강조하면서도 몇몇 선별된 지점에 눈에 띄게 호화로운 교수진을 배치하는 따위의 결과도 빚어지고 있다. 젊은 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도 한정된 수의 명사들이 잉여가치를 더해가며 이 기관, 저 기관으로 옮겨다니는 스타 체제는 분명 여전히 성황을 누리고 있다. 학문적 출판물이 -- 학술논문이든 학술잡지든 -- 정신없이 쏟아져나오고 학회, 심지어 국제규모의 학회까지 무성하게 열리는 반면, 기본적인 학습과 연구를 위하여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을 위한 기금은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이런 시기도 곧 지나가고, 몇년 안에 결핍은 더 널리 분배된 만큼 더 그럴싸한 현실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핍의 민주화는, 비록 현재의 양극화보다는 낫겠지만,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또한 결핍 운운하는데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지난 몇년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을 축소경영한다’(Downsizing America)라는 제목으로 1면부터 지면을 할애하여 일주일 동안 개재한 연재물에서 『뉴욕 타임즈』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인플레와 실직률은 낮고 기업이윤은 강세를 띠면서 주식시장의 활황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의 혜택에서 많은 미국인이 배제되고 있다.” 실제로, 1990~94년에 소득이 뚜렷이 증가한 층은 최상층 5%이고, 절대다수 미국인의 소득은 감소했다.註2) 경제적 곤궁이 중산층까지 깊게 파고든 점에서, 현재의 ‘결핍’은 근자의 다른 경우들보다 좀더 민주적이다. 매우 부유한 소수와 나머지 사람들의 심화되는 양극화는 아직도 정치에서 건설적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註3)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손쉽게 이민이나 해외의 ‘값싼 노동력’을 탓하지만, 주가 하락과 실직률 저하의 연관성이 드러난만큼 ‘자유시장제도’에서 득을 보는 것이 정확하게 누구냐는 정치적 논란이 일 법한데도 그냥 넘어간다. 오히려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선 뷰캐넌(Patrick Buchanan)이 미국내 일자리 감소를 선거 쟁점으로 삼고 나왔는데, 그의 관점이야 끔찍하지만 아무튼 경제위기에 대한 하나의 대응책을 제시한 데 비해, 너무나도 많은 진보세력들은 경제위기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데만 급급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1995년 말에서 1996년 초에 걸쳐 두 차례 임시휴업에 들어갔으며, 그중 2차 휴업은 3주씩이나 지속되었고, 그래도 조직적인 저항은 한번도 없었던 사태까지 겪은 후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이런 사태를 언급하는 이유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전지구화론, 국지주의, 혹은 지역주의 따위를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위기와 대결해야만 하는데, 학계 지식인들이 이 경제위기에 대해 아무런 발언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반세기의 이론적 발전들을 뭉뚱그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르든 문화연구로 부르든간에, 그 이론들은 60년대 지식인들과 그 학생들을 엄청난 사회변화 앞에서 이상스런 침묵에 빠뜨렸다. 젊은 학자들이 -- 이 경우에는 예일대학의 대학원생 교육조교들이 -- 자신들을 학교의 수입에 꼭 필요한 지적 노동(교육 및 학부학생들의 학업 평가)을 수행하는 노동자로 설정하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나온 드문 경우에, 대학은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고도 아무 탈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의 역할이 대폭 줄어든데다 이론 차원에서도 급진론자나 좌파라 자임하는 학계 지식인들이 계급과 경제 개념의 적실성을 거부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니, 대학가 지식인들 역시 일반 주민처럼 자신의 생계에 가해지는 위협에 대해서 일체 무반응이거나 고작해야 원자화되고 개인화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도 놀랄 일이 못된다. ‘텍스트성의 정치학’의 훈련은 학자들로 하여금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가시적이고 집단적으로 구현하도록 고무한 바가 별로 없다. 새로운 결핍 담론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경제의 역할을 새로이 강조하기 위하여 에이즈를 둘러싼 운동, (특히 한국계 미국인 학생들이 펼친) 소수민족연구 운동, 혹은 낙태권 획득을 위한 근자의 페미니즘 운동 등을 무시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전반적인 ‘축소경영’ 관행을 통해 진행되는 사회의 양극화를 감당할 만한 총괄적인 분석과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는 조짐은 아직 별로 없다. 그런 분석과 실천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인종차별주의·성차별주의·동성애공포증·여성공포증 등에 반대하는 운동들에서 이룩한 성과마저 결핍 서사가 초래한 분열 기제 앞에서 무산될 지경이다. 이 시점에서 거의 10년 전에 우드(Wood)가 제시한 명제를 상기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착취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정체성(신원, identity)에 구조적으로 무관심한 만큼, 경제외적 불평등과 억압을 떨쳐버릴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자본주의가 가령 성별 억압이나 인종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한편, 그런 해방의 성취가 자본주의의 철폐를 보장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경제 외적 정체성에 대한 바로 이같은 무관심 덕분에 자본주의는 그 정체성들을 이데올로기적 외피로 활용하는 데 특히 효율적이고 유연할 수 있다.註4) 내 생각으로는 마지막 문장에 함축된 경고가 가리키는 일차적인 현상은 자본주의가 성별·인종·성애·종족·민족 등 우드가 ‘경제 외적’이라 부르는 차이들을 상호경쟁적으로 동원해냄으로써, ① 자본 그 자체를 위한 자본(“자기확장적 가치”)註5) 의 가속화된 재생산 원리 말고는 다른 지향점이 없는 스스로의 공허하면서도 현실적인 작동을 위장하고, ② 그럼으로써 피착취자들(전에는 분명하게 ‘노동계급’이라 불리던 사람들)을 혼동시키고 상호분열시킨다는 점이다. 차이의 생산은 자본주의 작동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문명’이나 ‘민중’과 같은 범주들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가운데 정체성의 경쟁적이고 변별적인 양상들이 없어지는 상황에서라도 이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집트의 경제학자이자 ‘제3세계 포럼’(Forum Tiers Monde, 쎄네갈의 다까르에서 개최)의 주관자인 싸미르 아민(Samir Amin)의 “근대의 세계문화는 서양문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문화다”註6) 라는 결론에 유념하면서, 우리는 지리적으로 가장 먼 곳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곳, 즉 우리 자신의 정신과 육체에 걸쳐 자행되는 전지구적 착취의 실제적인 행위들을 식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사실상 기여하는 전통이나 인민주의의 고취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이는 곧 비판적 에너지를 계급 그리고 당연히 경제의 범주에 다시 집중함을 뜻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나 그와 관련된 지적 조류들이 말하는 사회적 변화들로 말미암아 경제의 작동을 분석하고 대응하기는 고사하고 그것을 식별하는 능력마저도 전반적으로 현저히 약화되어 있는 만큼, 이 과제는 특히 절박하다. 이것이 앞서 거론한 우드의 논문에 담긴 주된 교훈인데, 자본주의와 사회적(‘경제 외적’) 정체성들의 관계를 좀더 따져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보자. 경제적 착취가 ‘경제 외적’ 요소들과 겹치는 경향이 있으며 계속 이것들을 활용해나간다는 점은 사실이다. 달리 말해 피착취계급들에서는 여성과 소수민족 그리고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국경 안팎의 ‘비시민’의 비율이 유독 높다. 자본주의는 착취대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는 ‘경제 외적’ 도움 없이도 생존할 수 있을까? 그 경우, 자본주의는 인간을 순수히 경제적인 착취로 몰아넣을 것인가? 자본주의가 일체의 착취를 제거해낸다면 그래도 여전히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맑스가 지적한바 “〔자본은〕 노동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하면서도, 또한 노동시간을 부의 유일한 척도이자 원천으로 설정한다”註7) 는 근본적인 모순과 관련된 물음들이다. 위 인용에 이어지는 우드의 지적은 이렇다. 사회주의가 “그 자체로 여성억압이나 인종차별주의의 역사적·문화적 양태들의 파괴를 보장해주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일부 성별·인종 억압으로 지탱되는 이데올로기적·경제적 욕구들은 제거할 것이다”(20면).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 외적’인 사회적 정체성들에 입각한 착취에 항거하되 그런 정체성들을 위해 따낸 승리에 자족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승리란 언제나 부분적이다. 해방된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방 자체가 자본주의 안에서는 근본적으로 제한되게 마련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착취를 일차적으로 경제 외적 착취처럼 보이게 만든다. 즉, 어떤 특정 집단의 경제적 박탈을 설명하는 데 흔히 경제 외적 요소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대량산업생산과 노조활동의 시기에는, 노동자가 계급의 제유(提喩)이자 노동(명백히 위험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경우 힘든 노동)과 생계유지 사이의 부정할 수 없는 연계의 제유로 명백히 가시화되어 있고, 따라서 계급 또한 경제의 제유로서 가시적이었기 때문에 경제가 세계이해의 한 기본 범주로 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이미 몇십년 전부터 산업체 일자리나 착취적 작업장에서의 노동이 말 그대로 수출되거나 불법이민으로 충당되는 은폐된 지대에 국한됨에 따라 가장 친숙한 의미에서의 계급인 ‘노동계급’도 중심부국가에서 후퇴하였다. 한편으로 이같은 감소된 가시성과 다른 한편으로 마이크로칩이나 광섬유 케이블 -- 새로운 부 산출 영역의 물적 거점 내지 표상 -- 이 포착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추상화된 금융자본과 맞물리면서(과연 차입금투기를 통한 매점, 경쟁기업 접수, 일본 은행 들이 표상하는 부란 무엇인가?), 사회분석의 필수요소에서 계급 -- 정량적인 중공업 노동과 긴밀히 연관된 -- 을 밀어내는 데 분명 일조하였으며, 이런 점이야말로 전후(戰後) 시대에 자본이 산출한 진정한 변화들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시장개방은 이제 말 그대로 전지구적 현실이 되어버린 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함을 말해준다.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 학계의 (아주 넓은 의미의) 문화연구 류의 글에서는 ‘인종, 성별, 종족, 성애 그리고 계급’ 식의 목록을 들고 여기에 대해 독자의 도덕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일이 잦았다. 흔히 계급은 나중에 생각나 덧붙인 정도였지만, 아무튼 이 범주들의 상호구성을 주장하는 경우조차 더하기 식인 점은 마찬가지였다. 더하기 원칙도 한가지 점에서는 적절하다. 그같은 전통적이고 한정된 ‘계급’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요소가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인간을 억압한다는 점을 요긴하게 상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경제적 착취를 위해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제들을 모색한 나머지 생겨난 산물들을 가리키는 용어 역시 필요하다. 나로서는 새로운 단어를 제시하기보다는, 혼란의(혹은 케케묵은 소리라고 도외시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계급’을 이런 의미로도 쓰자는 제언을 하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계급의 두 가지 작동, 즉 사람들의 구별이라는 경제적 원칙이 관철되는 작동과, 경제가 경제 외적 요소들을 통해 관철되는(혹은 자기 모습을 감추는) 작동 및 양자의 상호작용 방식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의 목표는 경제가 지식인들의 중요한 분석범주에서 빠지는 현상에 대한 성찰에 기여하는 데 있다. ‘경제’ 개념의 쇠진이 시장 세력의 전지구적 확산과 동시에 일어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경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외면은 ‘승화와 탈승화’에서 더 따져볼 터이지만, 그 준비를 겸해서 우리와 노동의 관계를 먼저 생각해보기로 한다. 과잉노동의 감수성 하나는 단발적이고 하나는 지속적인 두 가지 경험을 계기로 노동에 대한 나의 추상적인 이해는 뒤늦게나마 바뀌게 되었다. 첫번째 경험은 한 여자 친구와의 대화로, 그 친구는 일본의 한 비중있는 출판사에서 편집자 일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대화는 종전 50주년을 앞둔 어느해 8월에 이루어졌는데, 당시에는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 지역에 대한 일본의 침략전쟁을 다룬 텔레비전 기록물이 유독 자주 방영되고 있었다. 그 젊은 친구는 오랜 학교 교육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일본이 저지른 짓을 알게 되어 정말로 기쁘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 친구로서는 다시 일어나 출근하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고 느꼈던 절박감은 그렇게 사라질 것이었다. 베트남전쟁 시절에 존 버거(John Berger)는 「고통의 사진들」(Photographs of Agony, 1972)이라는 글에서 이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신문에 흑백사진으로 실린 고통의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진에 담긴 순간과 자기 삶 사이의 불연속성에 압도되고, 그 불연속성을 바로 ‘자신의 개인적인 도덕적 부적합성’으로 느끼게 된다. 개인적 부적합성의 충격은, 자기 나라가 모든 동료 시민의 이름을 팔아 잔혹한 전쟁을 수행하도록 허용한 그 부자유에 대해 행동을 취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사진에서 받은 전율을 해소하며, 사진을 보는 경험은 물론이요 사진의 소재조차 탈정치화시킨다.註8) 내 친구의 경험에서는 탈맥락화 -- 버거의 표현으로는 불연속성 -- 의 맥락이 더 넓다. 그 친구가 자기 나라의 과거에서 끄집어낸 충격적인 영상을 접했을 때 일본은 이미 놀라운 번영을 창출하고 거기에 푹 빠진 상태였다. 자국가 현재 진행중인 전쟁에 항의하는 일도 나름의 난관이 있으며, 일반 여론이 전쟁에 호의적인 편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자국의 과거에 대한 망각을 국가에서 부추기고 있으며 동료 시민들이 그 과거에 무지한 상태일 때, 이러한 망각과 무지에 항의하기란 어려우며, 현재의 경제적 성취 때문에 불평이 부당한 듯 보일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특정한 노동윤리가 놓여 있다. 전후 복구기에는 이런 윤리가 당연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이 윤리는 그 결과물이자 원인인 자랑스런 경제적 성장처럼 그 자체로서 정당한 것이 되어버렸다. 잘 알다시피, 일본의 1인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다른 나라보다 길며 그 뒤를 미국이 바짝 추격해왔다. 사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이미 1993년에 미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1992년에도 여전히 일본 남성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연간 3천 시간 이상을 일했으며, 자살을 포함한 카로시(過勞死) 건수는 계속 증가한다. 일본인 노동자 집단을 통해 이 현상이 문자 그대로 전지구화됨에 따라 한국어에서도 그렇겠지만 영어에서도 이 표현이 유명해졌다.(뉴욕과 브뤼쎌에는 일본인을 위한 과로사 핫라인까지 개설되었다.)註9) 물론, 이런 수치들은 내 친구가 깨어 활동하는 시간을 규정하는(사실상 잠자는 시간마저 제한하는) 그 세계, 역사의식에 입각하여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 황당하지는 않더라도 무연하게 여겨지게끔 만드는 그 나름의 분위기와 윤리를 지닌 그 세계를 숫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일본의 노동시간은 물러날 줄 모르는 경기침체 때문에 줄어들고 있지만,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21세기 세계경제의 화끈한 장소로 간주되어왔다. 번영과 함께 새로 생겨나는 즐거움들이란, 노동을 방해하기는커녕 계속 노동에 굴종하도록 정신과 육체를 회복시켜주는 그런 양식과 시간틀로만 소비가능한 것들이다. 가장 치명적인 일은 아마도, 어린이의 정신과 육체마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식민화된다는 점이다.註10) 미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에서도 알 수 있듯, 일하느라 인생을 탕진하는 현상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수치들도 좀더 분석해볼 필요가 있지만(미국인의 노동시간이 늘어난 원인의 하나는 새 일자리의 보수가 쫓겨난 일자리보다 적다는 점이다), 계급에 관한 나의 견해에 영향을 미친 두번째 경험, 즉 나를 비롯하여 다른 교수들의 행동을 관찰한 경험을 간단히 언급하고 싶다. 지금 내가 염두에 둔 이들은 대개 스스로를 좌파(비록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혹은 탈맑스주의적인 경향의 좌파인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로 여기며, 자본주의란 아니면 최소한 기성질서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 스스로가 생산주의의 논리에 물들어, 마치 자신이 세계 금융시장을 갖고 놀며(!) 그런만큼 한시도 쉬지 않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젊은 은행가라도 되는 듯이 쉬지 않고 일할뿐더러, 항상 지식을 소비 내지 생산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이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설령 연대를 이룩할 상상력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대학가 안팎에서 자행되는 경제적 힘들의 살육적인 작동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다수다. 내 말의 취지는, 한편으로는 엘리뜨 지위(전통적인 의미의 계급)의 속박을 재확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논리가 사람들의 육체적 심장과 형이상학적 영혼을 규제한다는 점, 대항적인 분석과 실천을 해나갈 최선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한낱 개인으로서는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다 하겠다. 노동의 종식 이렇게 과잉노동을 논의하면서도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데, 과잉노동이 행해지는 한편으로 무노동의 영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말한 대로 미국에서 역력하거니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고 일본에서도 이런 추세는 아직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註11) 기술발전은 인간을 지루한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동시에 그 와중에 사라질 일자리를 십분 보상해주겠다는 약속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전지구의 노동력이 스트레스가 높은 엘리뜨 노동이라는 꼭대기층과 착취적 작업장에서의 노동이라는 밑바닥층으로 양극화되고, 점점 불어나는 중간층은 실직이나 저고용 기간이 갈수록 늘어나게 된 현상이다. 10년 전에 벌써, 실직이나 불안정 고용 상태의 ‘탈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영국, 미국, 프랑스 및 당시의 서독에 상당한 규모로 존재했으며, 새로운 노동자층의 다수가 이 집단의 후보격이었다.註12) ‘窓際族’이라는 일본어 표현이 생겨난 것도 적어도 10년 전 일이다. 이것은 평생고용이 -- 적어도 엘리뜨 기업체 남성 사원에게는 --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 동료들은 죽도록(가끔은 말 그대로 죽기도 하면서) 일하는 특권을 누리는 동안에 다윈식 투쟁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밀려나 사무실의 변두리인 창문 옆자리나 지키는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부분의 성인이 유급고용됨으로써 노동이 사라지리라는 점은 얼마 전부터 사상가·입안가·정치가 들이 거론해왔다. 미국에서는 이 문제의 한 방안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축소하자는 것에 대해 레이건-부시 시절에 남보다 훨씬 큰 혜택을 입은 최고경영자층이 가장 강경한 반대 세력으로 남아 있다. 리프킨(Jeremy Rifkin)은 최근 저서 『노동의 종말 -- 지구 노동력의 감소와 탈시장시대의 새벽』에서 이 문제의 절박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이 거의 근절된 경제로 가는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법한 것은 ‘안전한 안식처 혹은 끔찍한 구렁텅이’라고 규정한다.註13) 프랑스의 앙드레 고르즈(Andre Gorz)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할 권리, 즉 사회건설에 참여할 권리에 따라 수입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작업을 거의 20년 전부터 해왔다. 기술변혁의 결과,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를 분배하는 근거로 여전히 노동시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오로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지배에 있을 뿐”이고, 현재의 노동윤리는 탈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적합한 합리성’, 즉 하나의 지배형태를 대표하게 되었으며, 탈산업 프롤레타리아트나 갈수록 줄어드는 전일제 피고용자층은 이것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탈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제기되는 과제는 “자신들의 임노동 관계에 끼여드는 빈번한 단절들을 새로운 자유로 바꾸는 것, 즉 주기적인 비고용 상태를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일이 아니라 찾아 누리는 권리로 만드는 것”이다.註14) 그러나 권리로서의 주기적 비고용 상태는 만인의 목표인바, 기술혁신에서 얻어지는 이득은, 『경제적 이성 비판』(The Critique of Economic Reason)이라는 그의 좀더 앞서 나온 저서의 제목에서 시사된 대로,註15) 경제적 이성의 우선성을 극복한 사회로 전환하는 데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 전지구적이라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우리’ -- 는 갈수록 경제적 합리성의 세력의 포로가 되고 있다. 작업라인이나 도서관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갈수록 빨라지는 리듬을 내면화해서든, 아니면 단순작업화한 한 일자리에서 그다음 일자리로 -- 이것도 운좋은 경우 이야기겠지만 -- 하향 이동하는 나선형 구조 속으로 밀려들어가서든 말이다. 물론 이때 유린당하는 층은 이미 궁핍한 사람들이다. 즉 세계은행과 IMF(국제통화기금)의 부드러운 손길에 내맡겨진 제3세계 주민이나, 안전책이 사라지고 ‘복지에서 〔있지도 않은〕 노동으로’라는 프로그램이 들어서고 있는 미국 도시의 제4세계 주민 같은 사람들이다. 20세기도 마감되어가는 이 시점에 세계 주민의 절대 다수는, 지루한 노동의 속박에서 풀려난 인간 에너지의 창조적 가능성을 관조하기는커녕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등 참담한 생활고에 직면하기 직전이고, 한편 소수 특권층 역시 자신들이 만들어내지는 않은 시간성에 식민화되고 있다.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더 시급하게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승화와 탈승화 여기서는 마르쿠제의 ‘억압적 탈승화’(소비중심적인 고도산업사회에서는 리비도의 억압적 변용인 ‘승화’보다는 거꾸로 욕구충족을 내놓고 부추기는 ‘탈승화’가 핵심적인 억압기제라는 발상 - 옮긴이)라는 개념을 원용하면서 두번째 질문에 대해 간단한 성찰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냉전에 휩싸인 미국에서 씌어진 『에로스와 문명』(Eros and Civilization)에서 그는 문명에서는 행복과 자유가 공존할 수 없으며 따라서 ‘행복의 억압적 변형(승화)’이 필연적으로 야기된다는 프로이트의 논지를 되풀이했다.註16) 마르쿠제의 취지는 개인의 행복을 사회의 요구와 너무 성급히 화해시키려 한 수정주의적 정신분석이론에 도전하는 데 있었다. 행복과 〔인성의〕 ‘생산적 발전’을 사회와 양립가능한 것으로 재규정하는 것은 “정신분석이론의 그 폭발적인 사회비판과 폭발적인 내용의 약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발전이 억압적인 것으로 변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註17) 의무나 죄의 기억과도 다르고 불의에 대한 망각이나 용서와도 다른, 과거의 행복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성급한 화해에 저항한다. 자기 이야기가 지나치게 관념론적으로 들릴까 우려한 마르쿠제는 “이러한 시간의 패배(기억이 과거를 되살릴 때 시간이 힘을 잃는다는 말 - 옮긴이)는 예술상의 일이고 눈속임일 뿐이다. 기억은 역사적 행위로 전환되지 않는 한 현실의 무기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곧장 덧붙임으로써 우리를 일깨우며, 빠리 여러 곳에서 탑에 달린 시계에 탄환이 발사되었던 7월혁명(1830) 당시 일화를 언급한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말을 인용한다.註18) 자, 이런 것과 우리의 논제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또 한번의 우회가 필요하다. 1980년대 니까라과와 엘 쌀바도르에서 자행된 수녀와 신부, 여자와 아이들의 학살을 다룬 글에서, 라틴아메리카 학자인 프랑꼬(Jean Franco)는 사적이고 여성화된 공간인 가정·사창굴·수도원이 피난처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점을 지목한다. 프랑꼬는 이 공간들이 여성을 가두어온 점 또한 잊지 않는만큼, 그것들을 ‘유토피아적 공간’이라 평가할 때도 감상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마르쿠제가 프로이트적 어휘를 사용하고 “아이들이 저마다 악기 하나씩을 맡아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던 저 유럽의 아늑한 부르조아 가정생활에 대한 향수”에 지나치게 빠지기는 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상품문화, 부채투성이의 경제, 그리고 복원된 정치적 민주주의 형식들”로서는 보상할 길이 없는 “탈승화된 세계의 가공스러움에 주목”을 환기한 점을 높이 산다.註19) 성급한 탈신비화, 탈신비화를 위한 탈신비화인 ‘억압적 탈승화’ 효과를 낳는 분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작업의 기본적인 방향은 두 가지, 즉 가림과 드러냄, 승화와 탈승화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경제적 곤란을 겪는 게 다 이민 탓이라고 여기도록 부추길 수도 있지만, 이윤 중심의 의료체계가 의학의 신비를 벗겨내고 그와 함께 쓸데없는 비용도 없앤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드러냄이란 언제나 가림, 공허한 ‘자기확장적 가치’인 자본과 자본가의 자기확대의 역설적 결합을 은폐하는 가림이다. 바로 이런 유의 드러냄 작업인 억압적 탈승화는 신비화에 대한 일면적인 거부로서 그 자체가 오도된 것인데, 우파만이 아니라 좌파에서도 나타난다. 안전하게 보호받는 처지에서, 윤색되지 않은 만큼 더없이 황량한 모습의 진실에 직면하는 용감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긍지에서 보상적 만족감을 느끼기 십상인 지식인들은 그 직업상 이런 현상에 기여하기 쉽다. 많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이론화, 특히 (관계성보다) 파편화와 차이를 기리는 예찬은 이런 긍지에 사로잡혔고 그럼으로써 현재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미국 학계 지식인들의 무능력에 약간이나마 기여해왔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현금의 이론과 자본주의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이 이론 생산자들이 다소간 특권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파편화·차이라든가 특히 ‘유희’(play)의 모티프들이 포스트포드주의 세계에서 겪는 삶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과적 관계의 기각(알뛰쎄Althusser의 구조적 인과성 개념의 영향이 강한), ‘총체적인’(totalizing) 분석과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혼동, 일체의 거대서사에 대한 의심 역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변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억압적 탈승화에 대한 비판 역시 실제 세계 상황에 적용되어야 마땅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미국령 뿌에르또리꼬를 지구화에 의해 생겨난 ‘탈노동 사회’의 거점으로 보는 최근의 한 분석은 ‘탈노동’ 현상과 관련하여 탈승화의 정치를 생각해볼 자극적인 자료를 제공한다.註20) 주변부 탈산업화 개념에 입각한 로뻬스(Maria Milagros Lopez)는 고르즈가 묘사한 탈노동사회의 특징들이 완전히 하위프롤레타리아트화한 뿌에르또리꼬에 이미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해낸다. (복지 등의 수혜) 자격의 성별화된 성격에 주목함으로써 그녀는 피난처에 대한 프랑꼬의 통찰을 전쟁지역에서 관료제로 확장한다. 가부장제에서 생계수단을 얻는 중간계급 여성과 달리 복지대상 여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국가를 이용한다. 권리의 문화, 수혜 자격이 있다는 태도, 혹은 사회적 요구 … 란 매우 부분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지불받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최소한일지라도 일정한 양의 물적 만족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다. 그것은 또한 … ‘좌우당간’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깊이 뿌리박힌 느낌과도 관련이 있다.註21) 사회임금(보건·교육·노인연금 등에 대한 국가지출)의 확대, 아이를 기르기 위해 집에 머물고자 하는 복지모(welfare mother)에 대한 지원, 노동으로부터의 탈유인책의 확대(그럼으로써 젊은 노동자층이 직책을 맡을 수 있게끔 만드는)를 주창하는 한편으로, 로뻬스는 또한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요지부동·침묵·무관심·사보타지 등의 승리”를 예찬한다.註22) ‘노동의 형이상학’(노동 윤리)에 대한 이같은 양면적인 도전은 탈승화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국가정책에 관심을 갖는만큼 그녀는 단순히 형이상학에서만 벗어나려 드는 사람들과 다르다. 그러나 ‘요지부동’ 등등의 승인이란 삶의 주변에 기적적으로 엄존하는 창의성과 놀라운 활력에 보내는 마땅한 헌사인 반면, 또한 -- 이 글이 실린 잡지와 비슷한 유의 잡지들의 독자인 주변적인 학자들은 분명 아닌(아무튼 아직은 아닌) -- ‘우리’로 하여금 뿌에르또리꼬를 하나의 모델처럼 생각하도록 일견 유도함으로써 디스토피아적인 탈노동사회의 영속화에 기여할 위험이 있다. 여기 오기까지 이리저리 우회한 셈이지만, 이 심포지움의 핵심어로 표현하자면, 반겨 맞이할 만한 전지구적 문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과잉노동과 과소노동 내지 무노동의 현상들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튼 실재하는 현상들로서 이들은 이미 연결되어 있다. 오늘 거론한 미국이나 제3세계의 예 가운데 많은 것이 지금은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전지구적 경제의 함의를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한국 역시 경기침체의 결과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어쨌든, 한편으로 대학졸업자의 고용 감소와 다른 한편으로 여가선호 경향의 증가가 90년대 초부터 이미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註23) 자본의 이익에 따른 자본의 전지구적 장악은 인간적 이익을 위한 전지구적 대응을 요청한다. 이것은 어쩌면 민족국가처럼 지구보다 작은 범주들의 동원을 뜻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 합류를 둘러싸고 1994년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논란은 보수주의자와 좌파를 결합시켰다. 좌파는 오로지 국가적 경계 안에서만 존속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진보적 실천들이 희석되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북미자유무역지대에서 (기업적 이익에 대립되는) 무슨 사회적 이득이 나왔는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할 일이나, 미국의 기준을 캐나다에 적용함으로써 빚어진 대가, 가령 의약품 전매특허 유효기간이 더 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인하된 가격의 의약품이 출시되기까지 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든가 하는 대가에 대해서 여러 보고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설령 국경을 재강조하자는 주장이 진보적인 이유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라 해도, 국제연대에 대한 모색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확대가족이든 핵가족이든, 각기 그 나름의 억압을 내포한) 가족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제도들은 결함이 있긴 하지만 너무나도 쉽사리 무시되어버리는데, 이것들은 아직도 피난처 및 그 이상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우리들을 고립되었으면서 동시에 상호교환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소비해버릴 수 있는 숫자로 간주하려드는 세력들에 저항하는 훈련장소로 변형되면서 말이다. 일반화하자면, 새로이 전지구화된 시대에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낡고도 새로운 결핍 담론을 강요하는만큼, 우리는 묵은 형태의 결사들을 재활성화하되 경쟁적인 상호 파괴와 세계적인 개인화의 소규모 모방에 말려들지 않도록 최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데 능해질 필요가 있다. 미국의 역사가 밴 윅 브룩스(Van Wyck Brooks)의 기억할 만한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한테는 많은 종류의 ‘사용가능한 과거(들)’이 필요하다. 정치의 계절 한국의 여러분은 기억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세월 내내 ‘정치의 계절’(일본식 표현)을 살아왔다. 이것은 역사적 짐이자 특권이다. 아다시피 일본의 사정은 전혀 달랐으며, 2차대전 종전 50주년인 그 실망스런 한 해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무사히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1995년 9월 오끼나와(沖繩)가 터져나왔다. 이 일화는 양면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어우러진 전체상은, 정치적 결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앞서 언급한 도전들도 함축한, 전지구적 상호연관의 소우주를 보여준다. 세 명의 미군이 열두살짜리 소녀를 강간한 사건은, 오랫동안 내부의 반식민지와 같은 처지였던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오끼나와현에서 미국 군대를 철수시키려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핵심 사건으로 말하자면, 처음에 나는 아이가 강간당하는 지경까지 가서야 많은 어른들이 내내 원해왔다고 하는 미군철수 요구에 어른들을 동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싶어 서글픈 마음이었다. 물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이벤트’(사건)가 필요했던 것은 어른들의 동원이라기보다는 언론매체의 동원이고 따라서 국익의 동원이었다. 헌신적인 반전활동가는 언제나 있었고, 오끼나와의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사건이 지금만한 규모로 발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또한 이 일화를 계기로 조선인을 비롯한 여러 국적의 이른바 ‘위안부’의 역사가 새로이 부각되기를 바랐지만, 이런 소망의 한편으로 곤혹스럽게 실감한 것은 여성들의 성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되 여성들 자신의 복리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난 관심이 아닌 경우가 얼마나 잦았던가 하는 점이었다. 덧붙이자면,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투쟁 자체도 동해 너머의 협동이 있어야 제대로 될 수 있다. 문제가 여기까지 오게 되니, 외국 군대의 존재가 단순한 강요로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으며, 해당 지역에는 그것에 의존하고 간혹은 거기서 상당한 이득을 얻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현재의 오끼나와 상황에서 놀라운 점은 미군에 땅을 임대한 지주들 가운데 불과 한줌의 지주들만이 임대기간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모순적인 정황들에도 불구하고 오끼나와현 지사 오따는 탄탄한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소신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실천해냈고, 경제보다 정치(윤리)가 우선함을 고집했다. 그러나 워드프로쎄서 화면에 이 두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왜 자기네를 분리시키느냐고 항의하는 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사건의 전개를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지켜보면, 이제는 아들이나 남편의 봉급을 수령할 수 없게 된, 해당 군인들의 흑인 아내나 어머니, 자녀들의 넋나간 모습을 화면에서 보게 되면, 분명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처럼 미국 사회의 주변부에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남자들은 돈 되는 일자리와 따라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이끌려 세계를 반 바퀴나 돌 정도로 먼 곳까지 파견된 것이다. 물론 정치와 경제가 불가분한 것은 단지 주변부에서만이 아니다. 오끼나와에도 정치의 계절은 오랫동안 찾아들지 않았다. 오끼나와인들 역시 자신들의 이른바 후진성을 극복하느라, 나중에 ‘본토’에서 경쟁해도 꿀리지 않게끔 ‘본토’의 교육과정보다도 더 힘든 장애물 코스 같은 교육에 자식들을 집어넣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지식인과 민중 모두 전면적인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해 무감각한 대부분의 서구국가와 미국과 일본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1995년 12월 프랑스 동맹파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하자. 한 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그것은) ‘금융시장’의 독재와 비인간적 경쟁의 지배에 대한 가능한 대안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많은 언론인은 그것을 끝나가는 시대 최후의 낡은 파업으로 보려 든다. 그것이 다가오는 세기 최초의 위대한 반(反)신자유주의 파업이 아니란 법은 어디 있는가?註24) 전지구적 문명이 유용한 범주가 되려면,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을 금융시장의 독재를 거부할 자원들의 저장소로 만들어내야 한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이는 두 가지 전선을 지닌 싸움이다. 금융자본의 무의미한 투기가 자행하는 심적·사회적·정치적 착취로 구성된 전선과, 바로 이것이 자아낸, 우리 자신과 다른 국적·종족·인종의 사람들, 우리와 다른 빈민·여성·동성애자 들에 대한 유동적이며 증오어린 두려움으로 구성된 전선이 있다. 이 심포지움의 핵심어들을 사용해 거듭 말하건대, 우리는 인간해방의 국지적 조건들을 전지구적으로 지탱해줄 그런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후기 서울에서 돌아온 지 한달쯤 되어, 시카고의 한 영화관에서 박철수 감독의 1995년작 「301·302」가 상영되었다. 그것은 분명 내가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혼을 빼놓는 불편한 영화다.(그렇지만 내가 지독히 무지하며 폭력적인 영화는 피하려든다는 점을 얼른 덧붙여두어야겠다.) 그 독특한 면모를 공정하게 다룰 생각은 해볼 수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선진자본주의가 산출한 감수성들에 대한 탁월한 연구라는 점만은 말해두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10여년 전에 나온 일본 영화감독 이따미 쥬우조오(伊丹十三)의 「탐뽀뽀」(蒲公英, 민들레)가 생각났다. 이번 영화는 오싹할 정도로 엄격한 그 미학과 비(非)이성애적 관심의 결과 일관성에서 훨씬 뛰어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한일간의 차이나 두 감독의 차이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데, 「301·302」의 압축적인 세련을 가능하게 만든 ‘포스트모던’한 시기의 경과에 대해 성찰해보는 데 더 매력을 느낀다. 또한 말해둘 것은 처음에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 민족국가의 것이라고 식별해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동아시아 번영의 뚜렷한 광휘를 지닌 -- 특히 젊은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두드러지는 -- 그런 도시 정경 말이다. 간단히 말해 나는 서울에서 내가 토오꾜오에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의 고급 여성지들에서 보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가보면 어떤 사회든 고급 잡지의 사진들을 보고 예상했던 모습과 딱 들어맞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숱한 방문객들처럼, 나도 광범위한 정치적 관심의 징표가 아직 남아 있는 점에 매료되었다. 어쩌면 이는 노동절이 멀지 않은 시점인 관계로 더 두드러졌으리라. 문학도들과 대화하면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학문화의 생기, 가령 영문학 연구가 현재 한국에서 독자적인 뚜렷한 용도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영미권의 조류를 그때그때 파악하고 있는 점은 분명했지만, 이것이 추종적인 사업을 낳지 않았다는 점 또한 명백했다. 실로 ‘비평가’(critic)라는 단어가 거듭 언급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미국의 경우 문학비평에서 문학이론으로 넘어가면서 학계와 사회 일반에 빚어진 상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심포지움과 워크숍 행사에서 나는 동료 참석자들로부터 대부분의 그런 행사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한, 매우 많은 것을 배웠는데, 아마도 서로간의 관심사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있었던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흔히 그렇지만, 논의되는 내용에 강한 관심을 가졌음이 분명한 여성 중 많은 이가 침묵을 지킨 점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휴식 시간에 나에게 과감히 의견을 말하라고 부추겨준 젊은이들 또한 기억에 남으리라. 분홍·하양·노랑의 빛깔들이 풍성하게 녹아든 시골 풍경이란 정말 처음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내 마음 한구석에선 슬픈 예감마저 일었다. 이런 아름다움도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개발의 맹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일본에서 본 것보다도 더 만개한 아리따운 벚꽃이 사랑받는 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문득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히데요시(豊臣秀吉) 일왕의 침략으로 이 땅이 얼마나 유린되었는지 전혀 몰랐던 점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찾아온 방문객들이 흔히 입에 담는바, ○년 전의 일본 생각이 난다는 말은 분개할 것까지는 없더라도 지겨운 상투어일 것이라는 점은 나도 안다. 그러나 이 말에는 국가개발의 궤도 이상의 교훈이 들어 있다. 특히 춘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다른 승객들의 쾌활함에 놀랐다. 고속열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리고 비행기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명랑성이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고독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에 실상은 결여된 로맨스를 덧칠하는 꼴이다. 특정한 국면에서 번성하는 어떤 기술발전들은 특정한 종류의 인간들의 교류를 허용하는데, 이것의 소멸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향수에 불과한 것일까? 〔金英姬 옮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