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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8월 29일 토요일 오전 10시 05분 49초
제 목(Title): 한기욱/ 촘스키,'미국이 진정으로..'서평





추스르지 않는 폭로의 한계와 미덕 

  --노암 촘스키 지음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한울 1996 




  한기욱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참으로 특이한 인물이다. 촘스키 하면 누구나 
현대 언어학의 행로를 바꾸어놓은 ‘변형생성문법’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 
그가 미제국의 한가운데서 그 치부를 거침없이 폭로해왔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는 대학시절에 이 언어학의 대가가 베트남전의 실상을 파헤친 명저 『미국의 
힘과 새로운 실력자들』(The American Power and the New Mandarins)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야릇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개입을 리영희 
교수 못지않게 단호하게 비판한 이 책의 저자가 통사론 수업에서 배우는 바로 그 
촘스키라는 것이 못내 이상했고, 동일인임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는 그 비범한 
내력에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의 언어학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도 
벌써 30여년이 흘렀는데 그의 사회·정치비평은 지금 처음으로 번역·소개되었다는 
사실이 군사독재 치하에서 우리의 지식인이 보여준 이데올로기적인 편식증을 
드러내는 것 같아 자못 부끄럽다. 게다가 우리 학자들이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을 
금지옥엽처럼 떠받들면서도 그의 제국주의 비판에는 무관심한 것은 전혀 
촘스키답지 않은 방식으로 촘스키를 받아들이는 격이다. 우리는 지난 30여년 동안 
촘스키의 반쪽만을 배우고 가르쳐온 것이다. 
  하지만 촘스키의 양면을 동시에 포용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양쪽은 자신도 통합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촘스키의 한쪽이 
현대 언어학을 주도하는 동안 그의 다른 한쪽은 미국의 간섭적인 외교정책과 
제국주의 행태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데 열중한다. 한쪽은 미국 학계에서 가장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다른 한쪽은 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만큼 급진적이고 
‘불온한’ 사회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촘스키가 자신의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발판으로 삼아 급진적인 정치활동을 해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그의 
언어학 이론과 무정부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현실비평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촘스키 자신은 인간의 보편적인 언어 능력을 
상정함으로써 언어학에서도 만인평등의 사상을 구현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의 
언어학은 실천적인 지향성을 담기에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론 
일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의 현실비평은 특정한 사회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항상 특수한 쟁점을 중심으로 허구와 위선을 들추어내어 비판하는 
구체성과 선명성을 지니고 있다. 촘스키의 이같은 모순적인 양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분명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에 소개된 책은 그동안 가려진 촘스키의 ‘불온한’ 반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여러 강연·연설·대담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대중용 책자인데, 그의 좀더 본격적인 저서에 비해 치밀한 분석이나 풍부한 자료 
제시 면에서는 떨어지지만 그가 다루는 다양한 주제들을 구색 맞춰 소개하고, 
은폐된 것은 무엇이나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촘스키 특유의 독설을 보여주는 
미덕을 갖고 있다. 강렬한 수사와 선명한 논지로 미국의 실상을 파헤치고 그 
비리를 직시하고 있어 대학 초년생들에게는 ‘미국 바로알기’용 교재로도 활용할 
만하다. 아쉬운 것은 이 대중용 책자가 지닌 폭발적인 선동력과 적나라한 선명성이 
그간 우리 운동권의 ‘과격성’과 ‘선명성’ 세례를 받은 독자들에게는 진부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이 책이 담고 있는 매우 값진 통찰들마저 
유실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이런 우려를 막기 위해서라도 촘스키의 대작들이 
빠른 시일 안에 소개될 필요가 있다.) 
  가령 2차대전 이후 미국 외교의 제일 목표는 흔히 주장하듯 소련의 위협을 
봉쇄하는 데 있다기보다 제3세계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는 주장은 되새겨볼 만하다. 말하자면 미국의 
진짜 적은 소련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자주민주정부를 건설하려는 “제3세계의 
악당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트남의 호치민 정부, 칠레의 아옌데 
정부, 니까라과의 산디니스따 정부, 심지어 인구 십여만의 작은 섬나라 그라나다의 
개혁정부조차도 미국의 침략이나 간섭을 받아야 했던 연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비록 군사적으로는 패했으나 베트남의 통일정부가 제3세계의 
모범적인 예로 성장할 가능성을 파괴함으로써 최소한의 전쟁 목적은 달성했다는 
주장도 남다른 데가 있다. 이런 관점은 냉전을 미소간의 적대적인 대립관계로만 
규정하지 않는 데서도 드러난다. 즉 “냉전이란 소련의 지배세력에게는 그들의 
제국 내부와 동유럽의 위성국들을 단단히 장악할 수 있게 했고 미국에게는 
제3세계와의 전쟁을 지휘하고 유럽의 동맹국들을 조종할 수 있게 했던, 소련과 
미국 사이의 무언의 협정과도 같은 것”이며, 이런 냉전 메커니즘을 통해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이 저지른 범죄들을 들추어내어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적, 즉 자국의 국민들을 조종했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이같은 
삐딱한 논지는 남미와 동남아시아와 중동에 이르는 제3세계 국가들 하나하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때 그때마다 
분석·평가하는 저널리스트적인 감각에 의해 뒷받침된다. 미국이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무력으로 응징하고 서방세계와 동맹국에 전쟁분담금을 요구한 사실을 
두고 미국이 ‘세계적인 청부폭력배’로 전락했다고 꼬집는 대목도 촘스키의 
시사적인 감각과 매서운 독설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처럼 여러 나라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일일이 논평하다보니 어떤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독자를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특정한 주제에 
관하여 차분하게 따지고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표리부동한 현상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뒤집어엎고 그 위선을 맹렬하게 질타하는 바람에 속된 말로 
‘남아나는 게 별로 없다.’ 가령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전도되어 
지배세력에게는 “재계와 그에 관계된 엘리뜨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제도”를 
지칭하기에 이르렀다는 풍자를 들으면 속은 후련해지지만 민중의 입장에서 왜 
민주주의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참뜻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미련을 아예 버려야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고민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폭로는 
선명성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 또한 무엇이건 
진실을 은폐하면 가차없이 ‘까발리겠다’는 태도에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확신하고 
이를 준거로 자신의 올바름을 내세우는 도전주의적 자세가 엿보이는데, 이런 
올바름이란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과 결합되지 않으면 인민주의로 흐를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촘스키의 특이한 점은 자신의 올바름을 어떤 체계적인 주의로 전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촘스키의 미덕이 있다. 어쩌면 이것이 촘스키의 
무정부주의의 골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점에서 촘스키는 사회주의의 전통 
못지않게 미국의 도덕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전통, 예컨대 소로우(H. D. 
Thoreau)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사상을 물려받았다고 하겠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촘스키의 이런 특이한 면면을 온전히 보여줄 것 같지는 않지만 
‘자립’ 정신으로 약자의 편에 서서 정부의 위선과 자만을 끊임없이 질타하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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